(제 121 회)

제 8 장

9

 

포위환을 뚫고 적후로 나가는 습격대가 출발하기 직전에 여러가지 불길한 전조들이 나타났다.

마촌에 밀려든 적들이 공격을 계속할대신 여러 분견대들을 산골짜기들에 널어놓으며 수색전을 벌릴 기세를 보였다.

대왕청과 셋째섬일대의 버덩에서 적기병대의 행동이 맹렬해졌다. 적은 분명히 포위환을 최후적인 단계에까지 좁혀놓고 총공격의 명령을 기다리며 경계를 강화하는것 같다.

달빛이 여느때없이 밝아 눈에 덮인 산과 들은 희푸르스름한 빛으로 유난스럽게 반짝거렸다. 눈보라는 사나와지는가 하면 잦아들기도 하면서 종잡을수 없이 불어댔다. 모든 자연조건마저 습격대의 행동에 거역해나서는듯 하였다.

성림이와 창억이는 가슴이 타들어 입술까지 말라들었다.

습격대는 자정이 지나서 길을 떠났다.

첫 목적지는 동남방향 약 16키로메터지점에 자리잡고있는 자그마한 산간마을이였다.

전방척후가 숲속을 은밀히 누비며 앞에서 걸어가고 그뒤로 본대오가 따랐다.

유격대원들은 모두 백포로 위장하였다. 유격대원들이 눈을 밟는 소리가 밤하늘에 가득차서 메아리치는듯 하였다. 그 소리는 창억의 뇌리를 지끈지끈 쑤시였다. 달빛이 어찌나 환한지 눈우에서 흘러가는 짙은 그림자들이 십리밖에서도 보일것만 같았다.

성림이는 장군님의 앞에 서고 창억은 뒤에서 따랐다. 둘사이에는 누구도 모르는 약속이 되여있었다. 만약 최악의 위기가 닥치면 힘이 억척같은 창억이 장군님을 모시고 안전한 곳으로 뛸것이며 성림은 몸이 그대로 육탄이 되여 적을 막아나설것이다. 이 약속은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서로 육탄이 되여 적을 막겠다고 주장하던 끝에 창억이가 지고말았다.

달밤의 변덕스러운 눈보라는 안개처럼 행군종대를 감싸주다가도 휘영청 밝은 달빛아래에 대오를 남기고 아츠러운 울부짖음소리를 여운으로 끌며 멀리로 밀려가군 하였다. 어느 으슥한 나무밑이나 눈보라의 안개속에서 복병들이 달려들지도 모른다.

습격대는 발소리를 죽여가며 눈보라속에 자태를 감추기도 하면서 그림자처럼 움직여나갔다. 전방척후는 습격대의 촉각이다. 그들이 주춤거리거나 멎으면 전 대오가 주춤거리기도 하고 멈추기도 하였다. 그들은 이렇게 멈추었다가는 나가고 다시 뛰다가는 으슥하게 후미진 곳에 엎드리기도 하면서 조심조심 전진하였다.

대왕청의 뒤산마루에 오른 유격대는 놀라운 광경에 부닥쳤다. 눈이 모자라게 펼쳐진 우등불의 바다가 근거지를 둘러싸고있었다.

왜놈들이 처처에 우등불을 질러놓고 그옆엔 둘러서서 번갈아 몸을 녹여가며 전투경계를 물샐틈없이 펴고있는것이였다. 황황 타오르는 불길에 손을 쬐며 둘러선 왜놈들의 그림자들이 유령의 무리들처럼 눈우에서 춤을 추었다.

우등불과 우등불사이로는 보병이나 기마순찰병들이 뛰여다녔다.

여기저기에서 밸까지 토해놓는듯이 꽥꽥거리는 고함소리들과 무턱대고 쏘는 총소리들이 어지럽게 울렸다.

습격대는 이러한 소음속을 누비며 배밀이로 기여나갔다. 어떤 때는 우등불을 지척에 두고 기여나가는가 하면 순찰병놈들과 마주칠번 하기도 하였다. 한번은 기마순찰병놈들이 전방척후와 부대와의 사이를 꿰질러 달려간 일도 있었다. 그때마다 유격대원들은 눈속에 납작 엎드렸다. 펄럭이는 백포자락과 눈보라의 갈기가 달빛의 미묘한 조화로 한모양새로 어울려져 기마순찰병놈들의 눈에 걸리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성림은 이런 위기를 겪고나서는 부대지휘관들을 마음속으로 비난하였다.

전투경험이 많은 그들이 이밤에는 미욱하게 움직여 대오를 위태한 곳으로만 끌고가는것 같아서였다.

성림은 자주 장군님을 돌아보았다.

장군님께서는 목갑총을 한손에 쥐신채로 팔굽으로 언땅을 짚으시며 번쩍이는 눈으로 앞을 내다보시면서 기여오고계시였다.

그이의 뒤에서 창억의 머리가 오르내리는것이 보였다. 개활지대를 배밀이로 기여지나가던 대오는 뜻하지 않은 위기에 맞다들었다.

네명의 왜놈들이 전지불로 눈우를 샅샅이 비쳐보며 무엇인가를 찾으면서 이쪽으로 다가오고있었다. 놈들은 군률이 엄격하게 보관할것을 요구하는 물건을 잃어버린것이 분명하였다. 네놈은 톱날형으로 전지불을 비쳐보다가는 무엇이라고 서로 묻기도 하고 신경질적인 욕설을 퍼부어대기도 하면서 한걸음한걸음 다가왔다.

대오는 눈속에 엎드려있었다. 얼마 멀지 않은 저쪽에서는 세개의 우등불이 타오르고있었다.

창억이는 전방척후를 내다보았다. 모두 엎드려만 있다. 눈보라가 그들의 우로 휩쓸어지나간다.

모두 어찌자는것일가? 너무 긴장된 나머지 머리가 굳어진게 아닌가? 모두 너무도 뜻밖의 일이고 너무도 아연해 속수무책으로 엎드려있는것인가? 성림이와 자기가 예상하였던 최악의 위기가 닥친것이다. 그런 위기를 방정맞게 앞질러 생각했기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것이 아닌가. 그건… 그건 확실히 방정맞은것이였어. 아, 저놈들이 잃어버린것을 빨리 찾았으면… 제길, 망할놈새끼들 무엇을 잃어버렸는가?… 전지불은 점점 다가온다. 벌써 유격대원들의 잔등이며 발들이 전지불의 각광속에 들어 희미하게 드러나보인다.

장군님께서도 엎드려만계신다. 아마 척후의 행동에 기대를 걸고계시는듯 하다. 그런데 척후는 왜 잠자코 있는가? 창억은 등골로 식은땀이 흐르는것을 느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입안에 눈을 가득 물고 씹으며 앞을 쏘아보았다. 모두 어떻게 잘못된것이 아닌가? 기여나가서 사람들을 흔들어볼가?

우등불쪽에서 한자가 이쪽에 대고 무엇이라고 꿱꿱 소리지른다. 앞에서 오던 전지불이 번쩍 쳐들린다. 앞에서 오던 놈은 뒤를 돌아보며 외마디로 신경질적인 소리를 내지른다. 뒤따라오던 놈들이 그놈에게 성난 목소리로 소리친다. 그러자 그놈은 꽥해서 두세마디의 고함소리를 지르고는 전지불을 흔들며 다시 다가오기 시작한다.

창억은 이제야말로 장군님을 모시고 내뛸 시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성림이는 왜 아무런 기미도 안보일가?… 앞장선 놈의 뒤에서 따라오던자가 무엇에 발을 걸채여 앞으로 철썩 거꾸러진다. 앞장선 놈이 그자를 돌아본다. 엎어진 놈은 게두덜대며 일어선다. 앞장선 놈은 그자에게 주의의 말을 주는것 같더니 다시 다가온다. 한걸음 또 한걸음… 창억이는 어금이를 악물었다. 온몸의 근육들이 푸들푸들 떤다. 일어서라! 하나… 둘…

그가 발로 언땅을 차며 뛰여일어나려는 순간 눈보라가 무서운 함성을 지르며 휩쓸어들었다. 창억은 그 눈보라에 날려 눈속에 구겨박혔다.

눈보라는 뽀얀 안개의 장막처럼 하늘땅을 뒤덮으며 한동안 불어대다가 즘즘하게 잦아들었다.

창억이는 머리를 부르르 떨어 눈을 털며 두리를 살펴보다가 너무도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여 눈을 슴벅거렸다. 사령관동지를 중심으로 하여 그 둘레에 봉긋봉긋한 눈더미같은것들이 눈이 모자라게 겹겹이 엎드려있었던것이다. 누가 명령하지 않았으나 그이를 옹위하려고 전 대오가 눈보라속에서 몰래 기여와 그이를 둘러싼것이다.

창억이는 가슴이 뭉클해지며 눈앞이 흐려졌다.

사처에서 타오르는 우등불들이 다시 이쪽을 응시하는것 같았다. 총소리만 내면 저 우등불곁에 있는 놈들이 모두 달려들것이다. 한개 중대 아니, 한개 대대가 달려올지도 모른다. 캄캄한 공간속에서 전지불이 은백색으로 번쩍이며 다가온다. 창억이는 입술을 피터지게 깨물었다. 일어나자! 앞으로! 하나… 둘… 셋! 창억은 발끝으로 언땅을 걷어차며 장군님께로 몸을 날렸다. 이 찰나 그는 누구인가 자기를 밀쳐눕히는 바람에 눈우에 엎어졌다. 다음순간 귀가 꽉 메며 온 세상이 산산 부서져나가는듯 한 쟁음이 울렸다.

창억은 세상을 뒤엎어놓은듯 한 변화를 의식하며 몸을 벌떡 일으켜 꿇어앉았다.

무엇인가 부드러운것이 얼굴을 스쳤다. 질풍처럼 앞으로 날아지나간 장군님의 백포자락이였다. 그는 안개처럼 자욱한 눈보라속에서 달려나가는 그이의 뒤모습을 보았다. 장군님께서 달려나가며 쏘신 총탄에 맞아 두놈은 눈우에서 몸을 비틀고있었다.

도망치려던 다른 놈들도 훌쩍훌쩍 뛰여일어나는것 같더니 앞으로 푹푹 거꾸러졌다. 우등불들쪽에서 놈들의 멱따는듯 한 소리들이 들려오고 총소리들이 공기를 쨌다. 아우성치는 눈보라가 모든것을 삼켜버렸다. 창억은 운무속에 휘말려들어가버린듯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손에 쥐신 목갑총으로 하늘을 찌르며 무엇이라고 웨치시는 장군님의 모습, 나붓기는 백포자락…

《박태화동무, 1분대를 데리고 적을 유인하오. 반대방향으로- 본대는 나를 따라 앞으로-》

눈보라의 아우성에 삼키워 토막토막 들려오는 웨침소리를 들으며 창억은 정신없이 두리번거렸다. 눈보라의 뽀얀 장막속에서 앞으로 내달리시는 장군님의 모습이 보였다. 박태화와 그의 대원들이 우등불쪽으로 달려가며 총을 쏘는 모습들도 언뜻거렸다.

누구인가 창억이를 앞으로 홱 잡아채였다. 창억은 눈보라속으로 뛰여들어갔다. 기본대오는 하늘끝까지 눈가루를 날려올리며 아우성치는 눈보라속에 숨어 앞으로, 앞으로 내달렸다.

창억은 뒤에 오는 대원들에게 떠밀리우고 옆에서 내달리는 대원들과 부딪치기도 하면서 정신없이 내뛰였다. 그는 장군님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성림이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보지도 듣지도 못하였으나 대오의 과단성있는 움직임으로 장군님께서 척후대의 앞장에서 내달리시고있다는것을 가슴벅차게 느꼈다.

(아-아!)

습격대가 새벽녘에 사동마을에 이르러 휴식할 때 성림이 김이 문문나는 세면물대야를 장군님께서 드신 방앞에 놓고 돌아서나오다가 창억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사령관동지가 아니시였다면 에- 그런 고비를 어떻게 넘겨?… 참 모두 어떻게 될번했어? …》

창억이는 전지불을 든 놈들이 다가오던 그 아슬아슬했던 순간을 생각하자 소름이 끼쳐와 머리를 저으며 모두숨을 후- 내쉬였다.

《야-참… 우리 소대장동지두 어쩔바를 모르더라-  담이 모자랐던게지. 허-참…》

이때 울바자안쪽 뜨락에서 장군님께서 물을 푸푸 뿜으시며 세면을 하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성림이와 창억이는 그 소리를 듣다가 이름할수 없는 감격과 기쁨이 북받쳐올라 서로 외면하며 눈을 슴벅거렸다.

저아래 마을끝의 어느 집에서인가 수닭이 홰를 치며 울어댔다. 훤히 밝아오는 미명속에 집집의 굴뚝들에서 흰 연기가 평화롭게 피여오르는것이 보였다.

얼마후 장군님께서 어깨에 수건을 걸치시고 불깃하게 상기되신 존안에 밝은 미소를 지으시며 걸어나오시였다.

《허허- 얼마나 좋은 아침이요. 여기는 완전히 평화지대요!》

그이께서는 창억의 어깨에 한손을 가볍게 올려놓으시고 마을의 고요를 즐기시였다.

《우리가 여기로 나오기를 얼마나 잘했소. 보오! 놈들은 후방을 텅 비워놓았소. 이 마을에서 푹 쉬고나서 놈들의 뒤통수를 되게 답새겨야 하겠소!》

이틀후 습격대는 량수천자를 치고 북봉오동의 위만군과 경찰, 자위단을 족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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