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0 회)

제 8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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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동지께서 걸어나가신 자국자국마다에도 벌건 빛이 가득 괴였다. 창억이는 나무가지들을 붙잡고 몸을 의지하며 앞으로, 앞으로 비틀비틀 걸어나갔다. 나무가지들에서 눈가루가 쏟아져내렸다.

사방의 어둠속에서 이따금 총소리들이 메아리치고 산포들이 둔중하게 울부짖었다. 포위환을 둘러친 적들이 유격대가 돌파를 시도할가봐 위협사격을 하는 소리였다.

적들은 유격대와 인민들을 이 산중의 좁은 지역에 압축하고 포위를 완성하였다. 그 수를 헤아릴수 없는 병력으로 겹겹이 포위환을 둘러쳤다. 근거지들사이의 련계는 완전히 끊어졌다. 서로 지원할수도 없다. 모든 근거지들이 고립무원한 상태에서 소멸당할수 있다. 최악의 위기가 닥쳐왔다.

저놈들은 이제 날이 새면 포병의 일제사격과 함께 총공격을 개시할것이다.

장군님께서는 산등성이의 둘레를 한바퀴 또 한바퀴 돌아가시였다.

무겁게 옮겨지시는 발길에 채워 풀썩풀썩 날아오르는 눈가루들이 그이의 다리에 휘감겨들었다. 산등성이에 오르신 사령관동지께서는 그 무슨 결심이 잡히신듯 키높은 소나무가지를 붙잡고 걸음을 멈추시였다.

마촌쪽을 내려다보시는 그이의 존안에 벌건 빛이 물결쳤다.

《아, 이놈들!》

소나무가 몸부림쳤다. 나무우듬지로부터 벌건 눈가루가 불구름처럼 사품치며 쏟아져내렸다.

창억이는 다음순간 하늘에서 무서운 변화가 일어나는듯 한 느낌이 들어 머리를 번쩍 쳐들었다. 컴컴하게 바라보이는 아득한 하늘에서 우-우우우-하고 기이한 굉음이 들려왔다.

(눈보라가 터지자는게 아닌가?)

그는 가슴이 철령 내려앉았다.

 

×

 

사령관동지께서 지휘처앞에 이르시였을 때 리성림이 달려나오다가 우뚝 서서 놀란 눈으로 그이를 우러러보았다. 그는 자기가 허기증을 못이겨 까무라쳤던것을 몹시 죄송스럽게 여기는 얼굴이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의 손을 잡아쥐시며 좀 정신이 들었느냐고 부드럽게 물으시였다. 창억이는 그에게 아무 말도 안했다.

리성림은 사람들이 와서 기다린다고 보고하였다. 리재명이와 림성실이 아까부터 와서 사령관동지를 기다린다는것이였다.

지휘처는 어느 시절엔가 산전막으로 쓰이던 헐어빠진 두칸짜리 귀틀집이였다.

전령병들이 찬바람이 새여드는 벽짬을 이끼풀로 틀어막고 온돌에 불을 땠으나 벽에는 성에가 하얗게 덮였다.

방안은 겉바람이 심하여 아늑한 맛이라고는 전혀 없고 한지나 다름없었다.

사령관동지께서 방안에 들어섰을 때 리재명이 달려나와 그이의 손을 덥석 잡았다.

장군님!》

그의 부들부들 떠는 얼굴에는 반가움보다도 비분과 극단적인 결심이 어려있었다. 림성실은 벽에서 가물거리는 등불곁에 침통한 얼굴로 서있었다.

리재명의 절통한 목소리가 방안에 가득차서 울렸다.

《사람들은 피값이나 하자고 들구일어납니다. 놈들한테로 도끼를 메고 달려내려가는걸 겨우 말렸지만 그들을 어찌 나무리겠습니까. 풀뿌리를 씹으며 한달이나 견뎠습니다. 이제는 이발이 물러나 그것도 씹지 못합니다. 앉아서 굶어죽고 얼어죽고 맞아죽기보다는 차라리… 차라리 저놈들을 한놈이라도 물어뜯고 죽어야지, 에익… 이제는 마촌도 다 불타고 아무것도 남은게 없습니다. 저는 우리 혁명이 이렇게 될줄은…》

그는 머리를 떨구고 꺽꺽 느껴울었다.

사령관동지의 존안에 준절한 빛이 어리시였다. 그이께서는 흐느끼는 리재명을 세워두신채 등불옆으로 걸어가시여 림성실의 해쓱한 얼굴을 들여다보시였다.

《동무도 그래서 왔소?》

《아닙니다.… 장군님! 저를 유격대원으로 받아주십시오. 사령부에서 밥을 짓든지 아무 일이나 시켜주십시오.》

그리고 얼굴을 소곳이 숙였다. 그의 속눈섭에 후더운 눈물이 맺힌다. 그 눈물에 가버린 애인의 뜻을 따르려는 결심이 방울방울 맺히는듯 하다.

그이께서는 리재명에게로 돌아서시였다.

《회장동무, 우리 혁명이 어떻게 됐다는겁니까? 우리가 엄혹한 시련에 부닥친건 사실이지만 그래 아주… 망했단 말입니까? 인민들이 선거해서 인민혁명정부 회장으로 내세운 동무가… 동무가 이러면 유격대는 누구를 믿고 싸웁니까?》

방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리재명은 코물을 쭉 삼키며 얼굴을 뒤로 젖히고 천장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의 움푹 패인 볼에서 눈물이 번들거렸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조용히 떨리는 음성으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나도 저 마촌이 불타는걸 보니 참을수 없습니다. 가슴이 터져와서… 나는 마을이 타는걸 보면서 유격대가 있고 인민이 있고 풀과 물이 있는 한 끝까지 싸워서 저놈들을 백배, 천배 복수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때 문밖에서 떠드는 소리가 났다. 이윽고 문이 열리며 리성림이 눈투성이가 된 쌀자루를 안고 들어왔다. 그의 뒤를 따라 얼굴에서 땀물이 번들거리는 자그마한 녀인이 들어섰다. 윤보금이였다.

사령관동지와 창억이는 물론 방안의 모든 사람들이 놀라서 그 녀자를 바라보았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보금의 앞으로 다가가시였다.

《이게 웬 쌀이요? 여기까지 어떻게 찾아왔소?》

보금이는 대답대신 곱아든 두손으로 눈을 가리우며 흑흑 느껴울었다. 그의 저고리소매며 치마자락은 험상스럽게 찢어졌고 머리칼은 흩어져내려 볼에 붙었다.

《어떻게 된거요? 말을 해야 알지.…》 하고 창억이 다우쳐물었다.

보금이는 얼굴에서 손을 내리고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장군님을 바라보며 흐느낌소리를 삼켰다.

장군님, 이 쌀은 다른데 돌리지 말아주십시오!… 아버님 소원입니다. 마지막소원입니다.》 그리고는 다시 머리를 숙이고 흐느꼈다.

《아니, 김진세아바이가? 그 아바이가 어떻게 됐소?》 하고 장군님께서는 놀라시였다.

아버님은… 아버님은… 사령부에 식량이 떨어졌다는것을 아시고 몰래 마을로 내려갔습니다. 집뒤울안에 묻어둔… 저 쌀을 지고나오다가… 마아바이만 돌아오고… 장군님, 아버님생각을 해서라도 다시는… 다시는… 이 쌀은 다른데 돌리지 말아주십시오.…》

보금이는 한손으로 입을 싸쥐며 흐느낌소리를 삼켰다.

《사령부에 식량이 떨어졌다는걸 어떻게 알았소? 누구한테서 들었소?… 성림이… 창억이… 동무들이 쓸데없는 소리를 돌렸는가?》

그이께서는 준절한 눈빛으로 그들을 번갈아 돌아보시였다.

창억이는 그제야 자기가 절골로 련락가다가 새골에서 보금이를 만나 한 이야기가 가슴을 쳤다. 어떻게 되여 이런 일이 생겼는가 하는것이 불을 보듯이 명백해지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쌀자루를 아기처럼 안고 그우에 고개를 숙이신채 움직일줄 몰랐다. 그이께서는 그 쌀자루와 끝없는 이야기를 나누시는듯하였다.

이윽고 그이께서는 고개를 서서히 들고 보금에게 물으시였다.

아버님은 어떻게 됐소?》

《쌀을 빼내자구 놈들과 싸우다가 사로잡히는것을 봤다는데 그후 마을에 인차 불이 일어난걸 봐서… 아버님은…》

보금의 목소리는 흐느낌소리로 바뀌였다.

그이께서는 김진세로인과 처음 만나던 일이며 그후의 가지가지의 일들이 떠올라 그윽하게 빛나는 눈으로 등불쪽을 지켜보시였다.

방안에는 따뜻한 기운이 떠도는듯 하였다. 창억이 안해를 데리고 방에서 나갔다. 그들이 나가자 장군님께서는 긴 한숨을 내쉬며 리재명이를 돌아보시였다.

《김진세아바이는 우리와의 의리를 끝까지 지키자고 사지에 가서 이렇게 쌀까지 보내왔습니다. 지금 우리 인민들의 심정은 다 김진세아바이와 같을것입니다.》

밖에서 나무가지들이 윙-윙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보라가 일기 시작한것이다. 지붕에서 동기와장들이 덜컥거렸다. 점점 기승을 부리는 눈보라는 이 헐어빠진 산전막을 산산 부스러뜨려 하늘에 날려보낼듯이 벽을 후려쳤다. 집이 통채로 떨며 벽체들이 찌꾹거렸다. 방안으로 흘러드는 음산한 바람에 등불이 꺼질듯이 가물거렸다.

림성실이 손으로 불심지를 막아주었다. 그의 손그림자에 방안 절반이 묻혀버렸다.

눈보라의 무서운 울부짖음소리는 그이의 말씀들을 누비며 지나갔다.

《우리는 비록 지금 이 좁은 지역에 몰려 포위됐지만 여기와 저 포위환 밖에는 우리 인민들이 있습니다. 이 일년동안 우리와 혈연적인 의리로 맺어진 형제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토지개혁을 하여 그들에게 땅을 나눠줬습니다. 인민혁명정부를 세워 혁명정권의 주인으로서 참된 삶을 누리도록 해주었습니다. 학교들을 세워 아이들은 공부를 시켜주고 청년들은 유격대에 받아주었습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인민들이 그 의리를 저버리고 우리를 외면한다면… 여기 와서 우리가 한 모든 일, 모든 시책… 무산민중을 믿고 의거하는데로부터 시작된 우리 로선에 통털어 정의가 없다는걸 말해줄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김진세로인을 보시오. 마종삼로인을 보시오. 저 윤보금녀성을 보시오! 이 시각 인민들은 그 어느때보다도 열정적으로 우리를 지지성원하고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크나큰 예비가 있습니다. 포위환을 뚫고나가 그들에 의거해서 유격전을 벌린다면 놈들의 공세를 짓부시고 능히 근거지를 건져낼수 있습니다!… 가능성은 아직도 많습니다.》

리재명이 눈앞이 번쩍 트이는듯 희망에 빛나는 눈으로 그이를 우러러보았다. 그의 목에서 울대뼈가 오르내렸다. 림성실은 타는듯 한 눈으로 그이를 우러르며 마른침을 삼켰다.

사령관동지의 안광에는 예지가 번쩍이였다.

《이렇게 합시다. 로약자들과 어린이들은 라자구와 요영구쪽으로 들여보냅시다. 동무들이 책임지고 그걸 조직해주시오. 나는 유격대의 주력을 데리고 포위환을 뚫고나가 놈들의 배후를 치겠습니다. 저놈들의 후방은 반드시 텅 비였을겝니다. 배후에서 교란작전을 벌리면 놈들은 반드시 혼란에 빠져 퇴각하지 않을수 없을것입니다.

나는 이제 곧 이 문제를 가지고 지휘관들과 토론하겠습니다.》

밖에서는 눈보라가 아우성치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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