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4 회)

제 8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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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투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치렬해졌다.

적들은 만신창이 되여 허덕이면서도 후방에 있던 부대들까지 동원하여 유격구를 봉쇄하고 전 전선에서 일제히 공격을 개시하였다.

대포들이 울부짖고 보병과 기병들이 련대, 대대, 혹은 중대와 소대단위로 근거지의 골짜기와 산발들을 타고 누렇게 달려들었다. 어느 산발, 어느 골짜기, 어느 길, 어느 버덩에나 왜놈의 군대들과 중무기들, 각종 전투기재들이 한벌 깔려서 붐비였다.

하늘은 뭉게쳐오르는 초연에 거멓게 흐려졌다. 포성과 기관총들을 쏘아대는 소리들이 산악들의 바위벼랑에 부딪쳐 자지러지게 메아리치면서 골짜기들이 와르릉와르릉 울었다.

산간의 처처에서 조선사람들에 대한 가장 야만적인 도륙이 시작되였다.

왕청지구에서는 백초구와 왕청에서 밀려올라온 일제의 대무력이 대왕청과 소왕청 앞쪽에 공격출발진지를 차지하고 산개하였다. 그것은 쯔루하라부대인데 사또라는 놈이 선두부대를 이끌고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놈들은 본격적인 전투행동은 개시하지 않고 소대, 분대가량의 작은 병력들을 여러 방향들에 들이밀군 하였다. 근거지의 방위력과 화력배치정형을 타진해보려는 수작이였다.

유격대원들과 자위대원들은 허위진지들에서 집적거려보는 식으로 달려드는 왜군들의 작은 무리들에 혼뜨검을 내주고는 기본진지로 와서 전호들을 더 깊숙이 파올리고 위장을 철저히 하였다.

그날도 하늘은 찌뿌듯이 흐렸다. 아침에 싸락눈이 날리는듯 하다가 인차 멎고 쌀쌀한 바람이 불어왔다.

뾰족산의 잡관목들은 을씨년스러운 바람에 바들바들 떨며 앙상한 잔가지들에서 마지막잎사귀들을 털어버렸다. 산꼭대기를 중심으로 원형방어선을 이룬 유격대의 전호들에서는 허연 입김이 몰몰 날아올랐다. 유격대원들은 전호앞턱에 팔꿈치를 올려놓고 엎드려 안타까운 얼굴로 고지아래를 내려다보고있었다. 왜놈들은 아침에 고지에 박격포탄을 퍼부으며 부대를 대왕청하기슭을 따라 앞으로 내밀었는데 공격은 하지 않고 모두 개울기슭의 잡관목덤불속이나 바위뒤에 숨어 두시간이 지나도록 총창 하나 번뜩거리지 않았다. 그래서 모두 가슴들이 바작바작 타고 갑갑증이 난것이다. 어떤 대원은 목을 길게 빼들고 소왕청하 건너 다른 중대가 배치된 무명고지를 바라보았다. 그쪽도 역시 고요하다.

장룡산중대장은 적들에게 발견되지 않게 허리를 구부정하고 전호에서 전호로 달려가며 대원들을 진정시켰다. 그는 작탄이 데룽거리는 허리띠에 개암나무가지 몇대를 꽂았다. 다른사람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긴 몸집을 그따위것으로 가리워보자는것이 괴짜가 아닐수 없다.

그는 경사가 급한데서는 꽁무니에서 춤을 추는 목갑총을 잡고 세발걸음을 쳐서 전호가로 다가가 대원들에게 일렀다.

《조급해도 말고 맘을 늦춰도 안되오. 가만 보니 저 쪽발이들이 와닥닥 달려들 잡도리야. 담배쯤은 피워도 일없소!》

마동호는 눈에 불을 켜고 아래를 내려다보고있는데 그옆 김창억의 전호에는 사람의 머리도 총도 보이지 않았다.

장룡산은 그리로 달려갔다. 김창억은 화김에인지 전호를 두세사람이나 들어가게 깊이 파올리고는 바닥에 퍼더버리고앉아 땀을 흘리며 무엇인가를 쩝쩝 씹어먹고있었다. 그의 앞에 애숭이신대원이 마주앉아 역시 입을 놀리고있었다.

창억이는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신대원에게 말하였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요. 우리가 저 동녕현성을 들이칠 때는 굉장했어. 그때부터 저놈들은 우리 사령관동지 명함만 들어도 벌벌 떨거던. 저놈들이 지금 죽어엎데있는건 사령관동지께서 이 뾰족산에 와계시지 않는가 해서 저러는게요. 다른게 아니요.》

《정말 그런것 같아요!》

《그럼! 접어들면 아예 된주먹을 멕여서 사령관동지께서 여기 계신것처럼 보여야 돼. 그래야 움쩍을 못하거던.… 지금은 진득하게 참아야 되오.》

시퍼래졌던 장룡산의 얼굴에 웃음이 피여났다. 그는 긴 허리에 두손을 올리고 벙글거렸다.

《어, 전호를 잘 팠구만!》

둘은 벌떡 뛰여일어났다.

《마동무가 봐주겠다고 해서 땀을 들이자고 좀 앉았더랬습니다.》하고 창억이 변명조로 말했다.

《먹는건 뭐요?》

《미역입니다. 청진에서 보낸건데… 이걸 씹으면서 눈을 감아보십시오. 동해가 환히 보입니다.》

창억이는 미역쪼박지를 올리밀었다.

장룡산은 그것을 받지 않고 기분좋게 껄껄 웃기만 하였다.

《허허… 젠장, 동무 못하는 소리 없구만!》

그는 전호들을 더 돌아보지 않고 산경사면을 따라 흙먼지구름을 뽀얗게 날리며 아래로 뛰여내려갔다. 산중턱에 담벽처럼 높다랗게 쌓아올린 돌무지뒤에 김진세와 마종삼이 든장대를 안고 숨어있었다. 그쯘하게 쌓아올린 그 돌무지가 그들이 생각해내서 사령관동지의 인정까지 받은 《돌대포》였다. 든장대로 돌무지밑에 깔려있는 통나무를 밀어제끼면 돌들이 한꺼번에 허물어지며 밑으로 날아내려가게 되여있다.

유격대 중대장이 나타나자 김진세와 마종삼은 움쭉 일어났나.

《시작되는가!》하고 마종삼이 눈에 불을 켜고 갈린 목소리로 물었다.

《아닙니다.…》

《넨장…》

그들도 속이 타드는듯 얼굴들이 캄캄하게 질렸다.

김진세가 그를 보며 허거프게 웃었다.

《우리는 중대장이 오길래 시작되는가 했지… 여보게, 저놈들이 이게 어떻게 된 노릇인가! 와지끈 붙어보자는겐가, 그만두자는겐가 ! 에익, 좀스러운것들…》

장룡산은 돌무지를 슬슬 쓸어만지며 벙굿이 웃어보였다.

《아바이네도 속이 타지요?》

그러자 마종삼이 김진세의 잔등을 가볍게 도닥이며 웃었다.

《오늘 이 석전사령이 폴싹 늙네.》

《헛허… 그럴겝니다. 좀 기다리십시오. 왜놈들은 다 속이 마른것들인데 오래 엎데 견뎌내지 못합니다. 이제 발딱 일어나 접어들겝니다.》

장룡산은 흐뭇하게 웃으며 산중턱이며 아래를 둘러보았다. 산중턱을 돌아가며 《돌대포》가 다섯군데나 쌓여졌다. 그리고 열댓걸음 아래쪽에 숨어있는 오판단의 전호로는 인발선 세줄이 흘러들었는데 그 줄을 잡아당기면 소왕청하기슭에 묻어놓은 작탄지뢰들이 터진다.

왕청에서 올라오는 큰길과 소왕청골안으로 들어오는 길은 여러곳에 돌장벽을 쌓아 차단하여놓았다. 산기슭, 오솔길, 은페지로 쓰일수 있는 후미진 곳들에는 함정들이 파져있다.

함정밑바닥에는 무기수리소에서 벼려온 날이 선뜩선뜩한 창들을 세워놓고 마른 삭정이로 그우를 덮어놓았다. 그리고 적들의 기동이 예견되는 모든 곳들에 널판자에 못을 박은 차단물들과 두꺼운 널판자에 물레가락을 여러개 박은 《물레송곳》장애물들을 묻어놓았다.

장룡산은 지휘관다운 엄숙한 낯빛으로 두 로인을 돌아보았다.

《저 아래서 오판단이가 줄을 당겨 작탄지뢰를 터뜨리면 왜놈들이 이 산밑으로 밀릴겝니다. 그때 〈돌대포〉를 쏴야 합니다. 오판단이가 꿰올라오기 전에는 절대 쏴서는 안됩니다.》

김진세는 심중하게 들으며 머리를 끄덕이고 마종삼은 넌지시 웃어보였다.

《걱정 말게, 우리 석전사령이 다 회계가 있네.》

장룡산이 산꼭대기의 자기 전호로 돌아와 담배를 피워물고 몇모금 맛스럽게 빨아들이는데 대기를 찢는 아츠러운 비명이 머리우를 스쳐지나갔다. 박격포탄들이 산꼭대기의 여기저기에서 터지며 시꺼먼 연기가 풀썩풀썩 날아올랐다.

장룡산은 담배대를 홱 뱉어버리고 전호앞턱우로 몸을 솟구치며 산밑을 내려다보았다.

소왕청하 저쪽 무명고지와 마반산일대에서도 박격포탄이 터지는 시커먼 연기가 솟구쳐오르며 폭음이 대기를 뒤흔들었다.

소왕청하와 대왕청하의 합수점부근의 잡관목숲과 후미진 곳들에서 누런 왜군의 무리들이 구름처럼 기여나왔다. 물건너 산굽이 뒤쪽에서 총소리, 말발굽소리… 대기는 무섭게 떨어댔다. 말을 탄 두 장교놈이 길을 따라 뾰족산앞으로 거드름스럽게 달려나와서 이쪽을 손가락질하며 무엇이라고 지껄여대다가 소왕청하기슭으로 달려올라오는 보병서렬을 향하여 뭣이라고 꿱꿱 고함소리를 쳤다.

그러자 보병서렬은 둘로 갈라져 한무리는 무명고지쪽으로 향하고 다른 무리는 뾰족산앞으로 곧바로 달려올라왔다. 이쪽에서 사격하자 두 장교놈은 말을 내몰아 길가의 벼랑밑으로 숨어들었다. 연막탄 몇발이 산중턱에 와 터져 시허연 연기가 솟구쳐오르더니 구름처럼 뭉게뭉게 피여오르며 퍼졌다.

장룡산은 전호앞턱에 뛰여올라서서 권총을 틀어쥔 주먹으로 공기를 내리치며 무서운 함성을 내질렀다.

《야- 오판단이-》

다음순간 왜놈들이 한벌 깔린 소왕청하기슭에서 작탄지뢰들이 터져 시뻘건 불기둥들이 줄줄이 솟구쳐오르며 무서운 폭음이 골짜기를 들었다놓았다. 확확 퍼져오르는 시꺼먼 연기와 흙먼지구름우로 검은 물체들이 날아올랐다. 단말마적인 아우성속에서 왜놈들은 앞을 다투어 밀고닥치며 뾰족산밑의 길바닥으로 밀려올라왔다.

이때였다. 밑에서 우르르 하고 산이 뿌리채 뒤흔들리는듯 한 어마어마한 땅울림이 일었다.

왼쪽끝에 있는 전호에서 누구인가 숨이 넘어가는듯 한 소리를 내질렀다.

《저것 봐라- 돌이다- 바위돌이 날아간다-》

산중턱에서 뭉게뭉게 피여오르는 흙먼지구름속에서 바위돌들이 휙휙 튀여오르는것이 보였다. 산을 울리며 질풍처럼 밀려내려가는 바위돌들은 산기슭과 길바닥에서 와글거리는 왜놈들의 무리들을 흙먼지구름으로 휘감으며 사태처럼 쏟아져내렸다. 바람을 타고 날아내린 어떤 바위돌은 길바닥에 부딪쳐 두세쪼각으로 갈라지며 다시 튀여올라 소왕청하에 곤두박히면서 시허연 물기둥을 일으켰다. 산밑에서 비명소리, 고함소리, 군마의 바스러지는 울음소리들이 끓어번졌다. 왜놈들은 전투서렬이 뒤죽박죽이 되여 소왕청하쪽으로 내리뛰기도 하고 산기슭으로 올리붙기도 하고 길을 따라 무질서하게 도망쳐내려가기도 했다.

머리를 싸쥐고 개울쪽으로 뛰여가는 놈, 눈알이 빠졌는지 두팔을 허우적거리며 길바닥에서 맴돌이치는 놈, 등자에 발이 걸린채 거꾸로 늘어진 장교를 끌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군마… 놈들에게 정신을 차릴 여유를 주지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뇌리에 번개치자 장룡산은 권총으로 하늘을 찌르며 목이 터지게 웨쳤다.

《반-돌-격-앞-으-로!-》

전장의 소음속을 헤치고 날아오른 기다리고기다린 그 웨침소리를 듣자 창억이는 전호앞턱으로 어떻게 날아올랐는지 몰랐다.

그는 어깨에 거치장스럽게 붙어있는 위장용나무가지들을 와락와락 뜯어서 내동댕이치고는 옆으로 머리를 홱 돌렸다. 마동호가 총창을 꼬나들고 달려내려갔다. 그의 저쪽에서도 유격대원들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나가는것이 보였다. 긴허리를 구부정하고 달려내려가는 장룡산중대장은 권총을 내흔들며 대원들에게 무엇이라고 웨쳐대고있었다.

창억이는 귀전을 스치는 바람소리를 아리숭하게 들을뿐 발바닥이 땅에 닿는것은 전혀 느끼지 못하였다. 그는 바람을 탄 바위돌처럼 껑충껑충 뛰여오르며 자신도 모를 함성을 터뜨리며 달려내려갔다. 누구인가 옆에서 부르는것 같아 홱 돌아보니 《돌대포》자리에서 아버지가 달려나오려는 동호 아버지의 허리를 안고 뒤로 끌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안돼, 우리가 섞이면 방해만 돼!》

《놓소!》

《여보게!》

마종삼아바이는 든장대를 머리우에 높이 쳐들어 흔들어대며 피타는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동호- 동호야-》

저만치에서 달려내려가던 마동호가 뒤를 돌아보았다.

《아버지-》

《저놈들을 골안에 들여놓지 말라-족쳐라-족쳐라-》

《아버지-》

《이녀석아, 저안에 우리 밭이 있다-》

동호는 아버지가 보라는듯 총창을 번쩍 쳐들고 무서운 함성을 내지르며 초연속으로 뛰여들어갔다.

아들의 장한 모습을 보는 마종삼은 북받쳐오르는 격정을 못이겨 갑자기 허리를 꺾으며 꺽꺽 느껴울었다.

김진세는 허리를 꿋꿋이 펴고서서 수염발을 날리며 근엄한 얼굴로 아들을 지켜보았다.

창억이는 아버지의 그런 모습에 문득 눈굽이 저려올라와 홱 돌아서서 아래로 몸을 날렸다. 그는 입을 크게 벌리고 함성을 내지르며 달려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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