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2 회)
제 8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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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격대원들이 김중권이를 메고 마촌에 도착하였을 때 림성실을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왜냐하면 김중권이와 림성실의 관계는 사람들속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기때문이다.
구정부로 달려온 사람들도 고인에게 영결의 묵상을 하고 나오다가는 그가 해놓은 일의 크기를 말해주듯 마당에 산더미같이 쌓인 원호물자의 무지를 쳐다보며 눈물에 젖어 혀를 차거나 무거운 한숨을 짓기만 하였다.
그리하여 그 원호물자들을 근거지로 들여보내기 위해 목숨바친 젊은 투사는 남모르는 열정으로 사모해온 약혼녀의 눈물에 가슴도 적셔보지 못한채 영별의 시각을 기다리며 누워있었다.
현관과 사무실에 빼곡이 들어선 사람들은 뒤로 물러서며
김중권의 몸에는 그때까지 붉은 기발이 덮여있었다. 비바람에 씻겨 색이 날고 얼룩이 진 기발이였다. 그것은 셋째 섬을 지나올 때 그곳 일군들이 자기네 촌정부의 지붕에서 나붓기는 기발을 내려 덮어준것이다.
그러시고는 김중권의 얼굴에 기폭을 도로 덮어주시고 그옆에 머리를 떨구고 오래동안 움직임없이 앉아계시였다.
시간의 흐름조차 멎는듯 하였다.
《성실이가 왜 보이지 않소?》
옆에 서있던 리재명이 그 말씀에 비분이 울컥 터져올라 머리를 외로 돌리며 눈을 껌뻑거렸다. 굵은 눈물방울들이 경련이 이는 볼이며 옷자락에
후두둑 뿌려졌다. 그는 바지주머니에서 누런 손수건을 얼른 꺼내 눈이며 코밑을 훔치고는 벌겋게 피진 눈으로
《좀 말씀드릴 일이 있어서… 성실동무는 지금 서대포에 나가있습니다.》
《왜 거기 나가있습니까?》
《아동단학교 아이들 겨울옷 만드는 일에 부녀회원들을 동원하느라고… 당장 눈이 오겠기에.》
《그 동무한테 알렸습니까?》
《너무 기막혀 알리지도 못했습니다. 달려와도 기막혀서 어떻게 알려줍니까…》
《오면… 저한테 보내십시오!》
뒤울안에서 나오신
방안에 들어가 어찌할바를 모르고 서성거리시던
사진속의 김중권이와 림성실은 머리를 가지런히 하고 앉아있다. 림성실은 얼굴에 밝은 미소를 활짝 피웠고 김중권은 표정이 어색하게 굳어졌지만 한쪽입귀에 보일듯말듯 한 미소가 어려있다.
《중권이!》
오후에 입술이 새까맣게 탄 전령병이 달려들어와 부녀회장동무가 온다고 알리였다.
림성실은 새로 지은
그는 말없이 통버선을 아래목에 놓고는 어리둥절해진 눈으로
림성실은 자기 운명에 무슨 일이 생겼다는것을 막연하게 느끼는것 같았다.
《오다가 누구를 만났소?》
《리재명회장동무를 만났는데 부르신다고 해서…》
《또 누구를 만났소?》
《창억동무를 만났습니다. 먼발치에서 인사를 하고는 어째 그러는지 피하는것 같았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성실동무, 혁명투쟁과정에 있을수도 있는 일이라고 말들은 하지만 막상 당해놓고보니 어떻게 말했으면 좋겠는지… 아, 기막힌 일이요.…》
림성실은 놀란 눈으로
《나도 믿어지지 않소. 이게 거짓이고 사실이 아니였으면 얼마나 좋겠소. 그런데… 김중권동무는 지금 저 구정부사무실에 누워있단 말이요!》
림성실은 아래입술을 깨물고 어딘가 먼 앞쪽을 뚫어지게 바라보는것 같았다. 그의 속눈섭에 이슬이 방울방울 맺혔다. 그것은 피할길 없는 불행을 막아보려는 마지막저항의 눈물이였다.
《두만강에서… 어제밤 그렇게 됐소.…》
림성실은 저고리고름을 쥐여 눈을 가리우며 소리없이 울었다.
《국내 혁명조직들에서도… 최동무를 오래오래 잊지 못할게요. 성실이… 여기서 숨을 좀 돌리오. 좀 있다가 내가 동무해줄테니 같이 구정부로, 김중권동무한데로 가자구.》
성림이 밖에 내다 거풍을 시킨듯 한 이불을 안고 들어와서 웃목에 내려놓고 나가려다가 림성실쪽을 돌아보며 울먹이였다.
새 이불이다. 언제인가 림성실이
림성실은 의아한 눈으로 성림이를 쳐다보았다. 어린 전령병은 외면하여 벽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조용히 말했다.
《
전령병이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휘뿌리며 달려나갔다.
그가 나간 다음 이불을 쓸어만져보던 림성실은 약혼사진을 찍도록 배려하시고
마당가를 거니시던
불에 시꺼멓게 탄 먼 산발들에서는 광풍이 휘몰아치는지 재가루가 뿌옇게 날아올라 하늘가를 덮었다. 어딘가 먼 서남방향에서는 포성이 구궁- 구궁- 울려왔다.
저 아래 소왕청하우의 하늘에서는 메새 한마리가 바람속을 날아돌고있었다.
한동안이 지나서 림성실이 방에서 나왔다. 그는 머리를 단정하게 다듬었고 옷매무시도 산뜻하게 바로잡았다. 얼굴은 피기가 가셔져 해쓱해지고 눈은 약간 부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