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4 회)

제 7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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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를 승리적으로 결속지은 조중련합군은 이튿날 오후 동녕에서 60리가량 떨어진 가재골에 집결했다.

가재골은 앞에 들판이 펼쳐지고 뒤에 수림이 울창한 깊지 않은 골짜기였다. 골안으로 들어가면서 산기슭 여기저기에 삼십여호의 농가들이 들어앉아있었다. 군대들이 들만 한 집은 몇채 없었다. 구국군부대들과 유격대는 산기슭이며 개울가의 풀밭에 천막들을 치고 숙영했다.

가재골은 군인들과 사민들로 들썩거렸다. 쌀포대를 메고 취사장으로 달려가는 유격대원들, 로획물자를 등짐으로 지고 들어오는 인민들, 로획한 군마들을 풀밭으로 끌어내는 구국군병사들, 웃음소리, 회파람소리, 떠들어대는 소리, 서로 이름을 불러대는 소리, 군마들의 투레질소리… 골안은 온통 명절기분에 휩싸였다.

군영에는 땅거미가 내리고 여기저기에서 저녁연기가 평화롭게 피여올랐다.

수많은 로획물자의 반출까지 엄호하시고 친솔부대와 함께 제일 뒤늦게 가재골에 도착하신 장군님께서는 선발대로 온 대원들이 쳐놓은 천막에 잠간 들리시였다가 사려장을 찾아가시였다.

사려장은 산벼랑에 붙여지은 동기와집의 웃방에 들어있었다.

방안에는 피와 약냄새가 떠돌았다. 아래목에 모포를 깔고 반듯이 누워있는 사려장은 붕대가 칭칭 감긴 왼쪽다리를 배낭우에 올려놓고 동통이 심하게 오는지 얼굴을 괴롭게 찌프리고있었다. 려장의 머리맡에서 발그레한 불꼬리가 가물거리는 초대에서는 초물이 방울방울 굴러떨어졌다.

방안에 들어서신 장군님을 알아본 그는 몸을 일으키려고 애썼다.

그이께서는 려장의 어깨와 가슴을 가볍게 눌러 자리에 눕히시고는 곁에 가까이 다가앉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그의 손을 뜨겁게 잡아쥐시며 근심스럽게 물으시였다.

《려장님, 좀 어떻습니까?》

《괜찮습니다.》

그리고 려장은 외면하여 얼굴을 벽쪽에 돌리고는 소리를 죽여 흐느꼈다.

《저는… 저는 기막힌… 기막힌 배신을 당했습니다. 철이 없는 군졸들은 다 들구뛰여도 채려장 그 사람만은 올줄 알았습니다. 안 왔습니다.… 내 맘속으로 그토록 불렀는데 안 왔습니다. 아까 내 막료들이 하는 말이 그 사람은 제가 깔고앉을 방석까지 성시에서 끌어왔답니다. 방석을 가져올 생각은 하면서도… 이런 기막힌 배신이 어디 있습니까? 그게 분해… 내 가슴이 터집니다. 그 사람한테는 내가… 제 형제가 방석보다도 아깝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게 분해 내 땅을 쳤습니다. 이번에 지내보니까 세상에 의리가 깊은분은 오직 한분입니다! 김사령뿐입니다. 김사령은 제 생명의 은인입니다!》

사려장은 다시 흐느껴울었다.

장군님께서는 그의 손을 잡아 가볍게 흔드시며 조용히 달래시였다.

《려장님, 이러지 마십시오. 진정을 하십시오. 흥분하면 피가 더 나옵니다.》

이때 문이 벌컥 열리며 채려장이 들어섰다. 그는 의기양양해진 얼굴이다. 치째진 눈에는 오만한 미소가 번쩍이였다. 그의 뒤를 따라 번들거리는 비단보자기에 무엇인가를 가득 싸안은 고참모가 들어섰다.

사려장은 순식간에 눈물이 말라들어 얼음쪼각처럼 번뜩이는 눈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채려장은 의아해하면서도 반죽이 좋게 말을 건넸다.

《사형, 왜 고집스럽게 정면공격을 했소, 엉? 그러니까 상했지?》

사려장은 대답대신 눈을 크게 떴다. 눈확에서 방금 튀여나올듯 한 그의 눈동자에서 준절한 빛이 번뜩이였다.

《물러가주게.… 썩 나가주게!》

《허참… 고집은 제가 부리고 이제와서 나한테 노여움이요? 내가 김사령의 의견을 가져온 련락병까지 보냈는데 왜 우기고 정면으로 공격했는가 말이요?》

장군님께서는 엄하신 눈길로 그를 쳐다보시였다.

《채려장, 그 련락병들이 어떻게 됐는가 모사선생한테 좀 물어보시오!》

채려장은 어안이 벙벙해져서 리청천을 돌아보았다.

리청천은 순식간에 얼굴이 창백해지며 부들부들 떨었다.

《두령… 난 모르오. 고참모란 놈이…》

채려장은 곁에 있던 고참모의 어깨를 와락 거머쥐였다.

《뭐야? … 무슨 일이야?》

《전… 모릅니다! 모릅니다!》

채려장은 문을 열고 그를 밖으로 내던졌다.

그리고는 총을 꺼내들었다.

《말하지 못할가?》

채려장은 자기만 모르고 모두가 다 아는 일이 있었다는것에 가슴이 벌컥 뒤집혀졌다. 그리고 무엇인가 험악한 배신이 있었다는 아리숭한 느낌이 안개처럼 가슴에 서려들었다. 온몸의 피가 머리로 솟구쳐올라와 소용돌이치는듯 하고 눈앞에서 마른번개가 펀뜻거렸다.

이때 하영이가 마당에 나타나 고참모가 련락병들을 쏘았다고 알려주었다.

채려장이 격분하여 고참모를 쏘려고 하는데 난데없는 총성이 울리고 고참모가 쓰러졌다.

뒤돌아보니 리청천이가 쏘았다.

《저놈이… 저놈이  일본놈들과 내통해있은게 분명해.…》

채려장은 정신이 아찔해져서 눈을 꾹 내리감으며 비명을 터뜨렸다.

《으으음!…》

《려장님, 리선생도 그 사실을 알고있었습니다. 그런데 려장님께 말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하영의 다음말은 채려장을 더욱 놀라게 했다.

《어째서 그랬소?》

리청천은 당장 쏘아죽일것처럼 다가드는 채세영의 무서운 기세에 뒤걸음치며 《그, 그건…》 하고 얼버무렸다.

채려장은 비렬한 몰골로 자기앞에서 떨고있는 리청천을 보자 그를 모사처럼 섬긴 지난날의 자신이 가소롭게 생각되였다.

《내 눈앞에서 썩 사라지라!…》

채려장은 공중에 대고 총을 쏘았다.

리청천은 기겁하여 주춤 물러섰다. 그러더니 고개를 떨구고 터벌터벌 자리를 떴다.

채려장은 얼굴을 이그러뜨리고 무섭게 번들거리는 눈으로 그를 쳐다보다가 모여온 장교들에게 고참모의 시체를 가리키며 명령하였다.

《이자를 땅에 묻지 말고 들판에 내다버려라!》

그리고 환도를 뽑아들었다. 머리우에 쳐들린 시퍼런 칼날이 준절한 선고의 울림처럼 징- 울었다.

채려장은 두손을 맥없이 드리우고 고개를 떨구었다. 이마우에 흩어져내린 머리칼은 한쪽눈까지 덮었고 축 처진 수염발은 입가장자리에 볼품없이 붙어버렸다.

지금에는 모든것이 석연해졌다.

리청천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구국군이 유격대와 합작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반공바람을 불어댔다. 그래서 리광이를 죽인 동산호의 부하 고가놈도 부대에 받아들이자고 극성스레 설복했다. 리청천은 동녕에서 련합작전이 잘되여가자 련락병까지 사살한 고참모를 눈감아주어 사려장네를 일본군의 집중화력권으로 몰아넣고 김사령부대와의 련합작전을 파탄시키려고 하였다. 위만군관사에 불을 지르고 략탈을 감행하도록 병사들을 추동한것도 그래서일것이다.

채려장은 술취한 사람처럼 비칠거리며 자기가 어찌하여 그런자의 요설질에 그토록 귀가 솔깃해졌던가를 돌이켜봤다. 문득 리청천, 그자가 평소에 자기 귀에 불어넣던 말들이 생각났다. 오사령은 무능하고 사려장은 숙맥이다. 그러니 만주황야에서 천군만마를 거느릴 인물은 채려장, 당신밖에 없다. 타고난 그 용맹에 지략까지 겸비하면 희세의 영걸이 되겠는데 군사지식이 부족한것이 유감이다. 이렇게 지껄이며 부족한 군사지식은 보충해줄수 있다는 암시를 늘 해왔었다.

그따위 소리에 귀가 넓어져 리청천의 수에 놀다나니 형제지간의 의리도 저버리고 사려장을 사경에 몰아넣게 됐다.

채려장은 무서운 신음소리를 내지르며 한손으로 머리칼을 와락 움켜잡았다.

(아, 김사령이 찾아왔을 때 만나기만 했어두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게다.…)

채려장은 허둥지둥 다시 방안으로 달려들어갔다.

사려장은 여전히 아래목 그 자리에 누워있었다.

김사령이 그의 팔을 붙잡아주고 은테안경을 낀 의사가 주사를 놓았다.

채려장에게는 갑자기 사려장앞에 엎어지며 울음을 터뜨렸다.

《사형, 용서하시오!》

사려장은 순식간에 얼굴빛이 근엄해졌다. 그는 부들부들 떨며 몸을 일으켜 벽에 비스듬히 기대여앉았다.

《용서… 용서를… 무슨 면목에? 님자는 제가 용서되는가?》

참고참아온 분격이 터져올라 그의 목소리는 거칠게 울렸다.

채려장은 머리를 떨군채 몸부림을 쳤다.

《사형이 관용을 베풀어 옛정을 되살리면 그 힘에… 그 힘에 살아보자구 비루한 마음을 먹었더랬소.》

분격에 혐오감까지 겹쳐서인듯 사려장은 손으로 문쪽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물러가게… 나가주게!》

그러자 채려장은 치욕감에 얼굴을 이그러뜨리고 말을 못하다가 장군님을 우러러 쳐다보았다.

《김사령! 라자구에서 그때… 그때 김사령을 만났더라면… 아, 내 이 꼴은 안됐을겁니다!》

그의 뉘우침을 보신 장군님께서는 손을 잡아주시며 밝게 웃으시였다.

《아니, 왜들 이럽니까. 싸움도 이기고 경사가 난 날에…》

그러시고는 사려장을 돌아보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달래시였다.

《려장님, 채려장이 깊이 뉘우치는것 같은데 노여움을 푸십시오. 저도 풀겠습니다. 이제는 리광이네를 사살한것이 왜놈들의 작간이였다는것이 명백해졌습니다. 이번 일만 봐도 왜놈들은 우리 공동의 철천지원쑤입니다! 손을 굳게 잡고 일제를 반대하는 성전을 벌려야 할 우리가 과거지사에 너무 매달려서 옥신각신해서야 되겠습니까?》

채려장은 머리를 깊이 숙였다.

이윽고 사려장은 그를 측은하게 지켜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였다.

《님자 허물이자 내 허물이지.… 우리들끼리야 용서고 뭐고 있겠나. 터놓고 말하면 김사령앞에 부끄러워 얼굴을 못 들겠네. 여기 앉아계시는데 이런 말을 해서 안됐지만… 김사령은 내 생명의 은인이구 우리 모두를 깨우쳐준 은사이네.》

채려장은 눈물에 젖어 그이를 똑바로 우러러 쳐다봤다.

《김사령!》

장군님께서도 이러한 화의에 눈굽이 젖어오르시여 한동안 말씀을 못하시였다.

《과거지사는 다 잊고 우리 굳게 손을 잡고 반일을 합시다.》

그러자 채려장의 눈에 절망적인 빛이 가득 어렸다.

《김사령… 저는… 의리가 없는 놈으로 알려져 안됩니다.… 안됩니다!》

《채려장! 기운을 내십시오. 지난날의 그 용맹과 기상을 반일전에 돌린다면 전체 병사들이 려장을 따를겝니다.》

채려장은 자기 두손을 모아쥐신 그이의 손등에 불찌같이 뜨거운것을 뚝뚝 떨구었다.

이날 정오, 가재골어귀의 산벼랑에 군마의 울부짖음소리가 메아리쳤다. 오사령이 로흑산으로부터 대오를 거느리고 달려오는것이였다. 오후에 가재골에서 경축모임이 열려 장군님께서와 오사령이 감동적인 연설을 나누었다.

장군님께서 연설을 마치시였을 때 오의성은 그이의 손을 뜨겁게 잡아흔들며 답례의 말을 하였다.

《김사령은 이 승리로써 우리들의 련합전선을 굳게 다지였을뿐아니라 소신의 예하려장들의 우의까지 두터이 하여주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앞으로 귀군의 근거지를 후면으로부터 공격하려는 일본군은 우리가 막아 싸우겠습니다!》

골짜기가 떠나가도록 환호성이 터져올랐다.

넓은 경축회장에 빼곡이 들어선 구국군과 유격대의 지휘관들과 대원들은 총을 높이 쳐들어흔들며 목이 터지도록 만세를 불렀다. 그칠줄 모르는 만세의 환호성이 고조될 때마다 높이 쳐들린 총대들이 해빛에 번쩍거리며 갈대숲처럼 설레였다. 그 장쾌한 광경을 바라보며 만족스럽게 웃던 오의성의 얼굴에서 감격의 눈물이 줄줄이 흘러내렸다.

경축모임이 끝난 다음에도 모두 명절기분에 휩싸여 흥성거렸으나 장군님께서는 개울가의 자갈밭을 홀로 거니시였다. 오늘의 승리를 보지 못하고 간 리광이와 반성위에 대한 아픈 추억이 가슴에 갈마들어서였다. 그이께서는 담판과 련합작전의 나날에는 그 모든 감정을 이겨낼수 있었지만 크나큰 승리가 이룩된 지금에는 비통한 마음을 돌려세우시기 어려워 이렇게 홀로 거닐게 되는것이다.

개울물도 숨을 죽이며 흐르고 나무가지들도 설레이기를 삼가하는듯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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