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2 회)
제 7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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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8월말,
인민혁명정부가 보다 넓은 범위에서 민주주의적개혁들을 철저히 수행하고 혁명을 추진시키려면 대무력으로 적의 《토벌》거점들을 소탕하여 근거지에 안정된 생활을 보장하는것이 중요하였으며 련합작전을 통하여 이미 기초가 마련된 조중련합전선을 강화하면 반일성전을 일대 고조에로 이끌수 있고 근거지방위에도 유리한 력량관계를 조성할수 있었다.
오사령은 이에 정중하게 동의하면서 련합군의 총지휘권을
오의성은
동녕현성을 치는데는 채려장도 동의하였다.
조중련합부대가 서로 도우며 장거리행군을 하여 동녕현성부근의 야산들에 이르니 우쑤리강 저쪽 씨비리평원으로부터 이국의 선기를 품은 써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9월 6일 21시, 유격대의 서산포대공격으로써 련합작전이 개시되였다.
동녕현성의 성벽밖에서 때를 기다리던 사려장부대와 채려장부대의 기본력량은 남문으로, 채려장부대의 나머지 력량은 동문으로 일시에 공격해들어갔다.
유격대부대들은
그리하여 전장에는 결정적으로 유리한 형세가 조성되게 되였다. 그러나 이때 시가의 동쪽지구에서는 심상치 않은 사태가 벌어졌다. 채려장부대가 사려장부대의 익측에서 제멋대로 떨어져나가 위만군장교관사들에 달려들어 불을 지르고 재물들을 략탈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이 위만군병영에 알려지자 왜놈들에게 총부리를 돌리겠다던 위만군련대는 다시 저항해나섰다. 위만군 1개 대대는 지하통로로 빠져나가 령사관거리와 남문거리의 교차점에 배치된 왜놈들과 합세하였다. 그리하여 그 교차점부근의 건물들에 중기관총들을 배치하고 남문거리를 따라 진격해들어오는 사려장부대에 반타격을 가할 준비를 갖추고있던 적진에는 력량이 배로 증강되였다.
사려장부대에는 엄중한 위험이 닥쳤다.
시급한 대책이 필요하였다.
사려장부대는 남문거리를 따라 적을 정면으로 공격할것이 아니라 뒤골목의 장애물들을 리용하면서 좌측으로 우회하여 공격해야 하였다. 채려장부대는 략탈을 즉시 중지하고 남문거리우측으로 우회하여 교차점의 적을 익측으로부터 타격함으로써 위험에 직면한 사려장부대를 구원하여야 하였다.
두 련락병이 길을 뛰여건너가 어둠속에 사라지자
사려장을 지원하기 위한 부대들이 움직이는것을 보신 다음에야
옥상에 오르니 서늘한 바람기가 느껴지시였다. 우쑤리강쪽으로부터 불어오는 선기를 품은 눅눅한 바람이 초연을 날라왔다.
채려장의 방향인 성시의 한끝 저 멀리 동문거리쪽의 어둠속에서는 산발적인 총성이 간간이 들려왔다. 역시 채려장의 방향인 남문거리의
동쪽지구에서는 시뻘건 불길들이 처처에서 날름거리고있을뿐 총소리나 폭음은 별로 들려오지 않았다. 그곳은 문제로 된 위만군장교들의 관사지구이다.
채려장은 아직도 략탈행위에 매달려있는것인가?
사려장의 방향에서는 전투가 격렬하게 벌어지고있었다. 그 부대는 남문거리의 서쪽지구에서 벌써 적의 종심으로 깊이 뚫고들어갔다. 그쪽에서는 총소리들이 끓어번지고 폭음이 우뢰쳐올랐다. 맞총질하는 불빛들과 박격포탄과 수류탄들이 터지는 화광에 건물들의 지붕이며 불타는 벽체들, 폭풍에 날아오르는 물체들이 언뜻언뜻 드러났다. 사려장을 지원하기 위하여 시가의 중심을 동서로 가로지른 령사관거리를 따라 진출하는 유격대의 방향에서도 총소리들이 끓어오르고 화광이 번개쳤다. 그러나 채려장의 방향만은 의연히 잠잠하였다.… 련락병들이 떠난지 1시간반이 지나도록 그 방향에서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련락병들이 와야 실태를 알아보겠는데 웬일인지 그들도 돌아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