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7 회)

제 7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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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오가 밋밋한 고개마루에 올라서니 시야가 탁 트이며 앞에 넓은 벌방지대가 펼쳐졌다. 저 멀리에 보라빛으로 바라보이는 로야령산줄기로부터 흘러내린 푸른 지맥들이 들쑹날쑹한 파도를 이루며 벌방변두리를 울바자처럼 둘러쌌다. 벌방 여기저기에 바다의 섬처럼 점점이 널려진 야산들 기슭에 인가들이 촘촘히 들어앉았다. 어떤 마을에는 조선식초가집들이 몇채 보였으나 거의모두가 벽이 어둑한 만주식집들이였다. 라자구시가쪽은 짙은 연무에 덮여 아무것도 바라보이지 않았다. 땅도 흑토이고 하늘 역시 검스름하게 흐려보였다. 대기속에서는 매캐한 그을음내와 니긋니긋한 기름내 같은것이 흐르는듯 하였다.

송아지만 한 재빛털개가 짐승의것인지 사람의것인지 모를 허연 뼉다귀를 물고 길에 올라서더니 다가오는 대오를 멍청하니 바라보았다.

한흥권이 발을 구르며 꿱하고 소리지르자 개는 기이한 신음소리를 내며 꼬리를 사리고 길을 느릿느릿 가로건너갔다. 그 짐승도 형형색색의 무장단과 군대들의 출몰에 습관이 된 모양이였다. 누구나 이방의 하늘밑으로 왔다는 생각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재빛이 약간 도는 백마를 타신 김일성동지께서는 내내 대오의 앞장에 서시였다. 그이의 뒤를 따르는 대원들은 헛눈을 팔지 않고 앞만 똑바로 보며 보무당당히 걸음을 옮겨갔다.

가깝고 먼 야산들의 숲속에서 구국군들이 황황히 뛰여다니는것이 언뜻언뜻 바라보였다. 그들은 난생처음 보는 희한한 군대의 도도한 기상에 어정쩡해져 함부로 접어들지 못하고 유격대가 들어온다는것을 서로 련락해주며 경계를 강화하고있는것 같았다. 공격에 유리한 지형에서 적당한 시각에 덮쳐들자고 은밀히 포위의 올가미를 둘러치고있는지도 모른다.

대오는 자그마한 중국인촌락들을 몇개 지나서 라자구시가에서 멀지 않은 태평촌으로 들어갔다.

대오가 초가집들앞을 지나갈 때였다. 웬 녀인의 부르짖음소리가 총소리의 메아리처럼 공기를 째며 울려왔다.

길에서 백걸음남짓한 거리의 집들쪽으로부터 옷차림이 람루한 녀인이 남새밭을 가로질러 허둥지둥 달려나왔다. 그 녀인은 머리칼을 흩날리며 달려오면서 손을 높이 들어 정신없이 흔들어댔다.

장군님께서는 군마를 멈춰세우시였다.

얼굴이 가무잡잡하고 체소한 그 녀인은 길로 뛰여올라와 군마에 매달려 등자에 끼여있는 장군님의 군화발을 가슴에 와락 붙안았다. 그리고는 머리를 뒤로 젖히며 그이를 쳐다봤다. 그 녀인의 얼이 나간듯 한 눈에 눈물이 가득 괴였다.

장군님!… 장군님!… 가지 마십시오! 저를… 저를 모르시겠습니까. 가지 마십시오!》

장군님께서는 비로소 언제인가 남편의 편지를 품고 마촌으로 찾아왔던 리광의 안해를 알아보시였다.

《아주머니!》

그이께서는 말에서 뛰여내려 공숙자의 손을 뜨겁게 잡아쥐시였다. 공숙자는 장군님을 만나자 남편을 잃은 비애와 설음이 터져올라 으흐흑 하고 흐느껴울었다.

《아주머니! 아주머니!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장군님, 가지 마십시오! 속지 마십시오! 저것들이… 저것들이 장군님을… 위험합니다!》

리광의 안해는 얼굴을 싸쥐며 흐느껴울었다.

전 대오에 비감과 절통한 울분이 굽이쳐흘렀다.

장군님께서는 공숙자의 손을 다시 뜨겁게 잡으시였다.

《아주머니, 안심하십시오. 우리가 가서 구국군문제를 풀어야 리광동무 수고도 헛되지 않을겝니다.》

장군님!》

공숙자는 눈물이 북받쳐 더 말을 잇지 못하고 그이를 우러러보기만 하였다.

장군님께서는 이윽고 두손을 허리에 올리시고 하늘을 묵묵히 쳐다보시다가 한흥권에게로 천천히 돌아서시였다.

《한흥권동무, 오늘은 여기서 묵읍시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 마을에서 묵으면서 오의성에게 부대가 라자구시가로 들어간다는것을 통고하기 위하여 리성림을 구국군사령부에 파견하시였다.

다음날 그이께서는 만약의 경우를 생각하시여 박훈의 중대를 태평촌 아래마을에 은밀히 잠복시키시였다. 중대가 막 떠나려는데 두필의 군마가 먼지구름을 뽀얗게 날리며 마을로 들이닥쳤다. 앞말에는 리성림이 탔고 가운데말에는 젊은 구국군장교가 탔다.

그들은 장군님께서 드신 집앞에 이르러 구령에라도 맞추는듯 똑같이 군마에서 뛰여내렸다.

몸이 호리호리하고 얼굴이 갱핏한 젊은 장교는 리성림의 안내를 받으며 걸어들어오다가 마당에 서계시는 장군님을 보자 무춤 서버렸다.

《성주!》

반가움에 겨워 얼결에 터져나오는 부르짖음이였다.

장군님께서도 그를 인차 알아보시고 두팔을 넓게 벌리시였다.

《아-니, 이게 누군가?》

《와달라고 해놓고는 후회했는데 끝내 왔구만.》

장군님께서는 그를 힘껏 붙안고 한바퀴 돌아가며 마당이 떠나갈듯이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그러시고는 그의 두팔을 붙잡고 얼굴을 들여다보시며 반가움에 겨워 말씀하시였다.

《이런데서 만날줄이야, 하하하…》

《성주!》

진한장의 목소리는 눈물에 젖어 갈리였다.

장군님께서는 그를 지휘관들에게 인사시킨 다음 이렇게 물으시였다.

《여기까지 나와 일없겠소?》

《오사령이 마중나가서 안내해오라고 분부했소.》

《오의성사령이?》

진한장은 기쁨에 겨워 의미있게 눈을 슴벅이며 머리를 끄덕이고는 오의성의 동향에 대하여 말하였다.

아침에 진한장은 련락원이 가지고온 그이의 친서를 오의성에게 읽어주고는 자기도 김일성장군을 좀 아는데 아주 좋은분이라고 말하였다.

오의성은 펄쩍 놀라 서리가 내린 장미를 곤두세우고 매눈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뭐라구? 그 사람은 공산당인데 님자, 어떻게 그를 잘 아는가? 님자도 공산당과 내통해있는게 아닌가?》

그때 진한장이 지은 선량한 미소가 효과를 낸것이 틀림없었다.

《사령님, 제가 부친의 뜻을 거역하여 공산당이 되겠습니까? 저는 길림에서 같이 공부한 동창생으로서 과거부터 김사령을 잘 압니다.》

《아- 동창인가!》

《예… 육문중학교에서 같이 공부를 했습니다. 그때부터도 뜻이 높고 의리가 깊은 출중한분이였습니다. 한번 만나보셔도 크게 랑패가 없으리라고 봅니다. 세상에 흔한 공산주의자들과는 판판 다를겝니다. 옛날사람들은 영걸이 영걸을 알아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오의성은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그럼 한번 만나 점심이라도 함께 나누어보자고 하였다.

점심까지 나누자고 하며 자기의 비서장까지 마중내보내는 그 지나친 호의에 전혀 미심쩍은데가 없는것은 아니여서 모두 얼굴빛이 긴장되였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시였다.

《들어갑시다!》

대오가 기복이 심하지 않은 구릉지대의 밋밋한 올리받이를 몇개 넘으니 라자구시가가 한눈에 안겨왔다. 우중충한 산들을 병풍삼아 그앞에 오붓하게 펼쳐진 도시였다. 해빛에 창문들이 운모쪼각처럼 반짝거리는 관청건물들과 삐죽하게 솟은 제분소의 지붕 그리고 제재소건물들을 제외하고는 땅에 들어붙은듯 한 단층집들이 빽빽이 들어앉은 시가는 대지의 빛갈과 어울려 그 륜곽이 뚜렷하지 않고 어둑하게 보였다. 력사의 먼지를 고스란히 들쓰고있는 고풍의 도시라는것이 첫인상에 느껴졌다.

시가로 들어가는 길옆과 남새밭 건너쪽에는 추녀가 낮은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았다.

장군님께서 남새밭 저쪽의 밭두렁에 날카로운 눈길을 돌리시였다. 밭두렁뒤에 복병들의 머리며 잔등이 보였다. 그들의 총구들이 모두 이쪽을 겨누고있었다. 반나마 허물어진 토성우에서도 총창들이 번뜩이고 병사들의 머리가 언뜻거렸다.

한흥권이 장군님을 막아 한걸음 나서서 진한장에게 격한 소리로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요?》

진한장은 억이 막혀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는 밭두렁의 복병들쪽을 보다가 두손으로 가슴을 움켜잡고 몸부림쳤다.

《아, 제가… 제가 무능해서… 저건… 저건… 채가의 복병들이 틀림없습니다! 김일성동지, 당분간… 당분간… 돌아서는게 어떻습니까?》

《한번 내디딘 걸음인데 물러서겠소? 한홍권동무! 기발을 올리오! 나팔을 부오!》

그리고 대원들을 향하여 신심이 넘치는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동무들, 복병들에게 눈을 팔지 마오. 절대로… 앞만 똑바로 보오! 보무당당히 시가로 행진해들어갑시다!》

대오의 선두에 선 기수가 기대에 말았던 붉은기를 풀어 높이 쳐들자 기폭이 바람을 안고 불길처럼 펄펄 휘날리였다. 뒤이어 힘찬 나팔소리가 하늘을 찔렀다. 그 나팔소리는 온갖 편견과 적의를 밀어제끼는 선언처럼 시가우로 랑랑하게 울려퍼져갔다.

대오는 발구름소리를 힘차게 울리며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장군님께서는 말을 달려 대오의 앞장으로 가시였다. 그이의 뒤에서 나붓기는 기발, 나팔소리, 땅을 척척 밟는 발구름소리… 대오는 거침없이 시가로 들어갔다. 토성뒤의 복병들은 머리를 쳐들고 눈이 퀭하여 행진해들어오는 대오를 바라보았다.

푸른 하늘에서 쏟아져내리는 해빛에 대원들이 어깨에 멘 총들이며 가죽배낭, 혁띠, 군화들이 번쩍번쩍거렸다. 나팔소리는 시가의 상공에 메아리치고 척척 울리는 발구름소리는 거리를 들었다놓았다. 군마들도 숨결이 벅차지여 코김을 씩씩 내불며 귀를 쭝긋거리였다.

거리를 따라 마주 달려오던 포장마차에서 마부가 황황히 뛰여내렸다. 기름때가 알른알른한 검은 옷차림의 마부는 허리를 동그랗게 굽히고 안깐힘을 쓰며 고삐를 당겨 말을 길옆으로 끌었다. 마차의 소창에서 어느 부호의 마님인듯 한 중년녀인의 유들유들한 얼굴이 밖을 내다보더니 기겁을 하여 눈이 휘둥그래졌다.

거리에서 붐비던 사람들은 왁작 떠들며 길량옆으로 갈라져 섰다. 광주리를 안은 아낙네도 전족을 재게 놀리며 뚱기적뚱기적 길옆으로 피해갔다. 멜대를 집고선 장정, 군청색다부산자에 은테안경을 낀 신사, 파파늙은 로파, 쌍태머리처녀, 앞머리칼이 보르르한 사내아이… 길옆에 늘어선 형형색색의 그 사람들은 공포와 의혹, 경악과 찬탄의 착잡한 눈길로 대오를 바라보았다.

수군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게 어느편 군대요?》

《첨보는 군댄데…》

《에그, 끌끌해라!》

《저 기발을 보오. 혁명군이야!》

《조선군대요! 조선유격대요!》

《조선군대가 왜 오노?》

은테안경쟁이가 화가 나는듯 손을 홱 내저으며 뇌까린다.

《신문이 있어야지, 신문이… 이 도시엔 젠장, 신문도 없단 말이야!》

거리에 즐비하게 늘어선 점방들에서 주인들이 목을 길게 빼들고 내다보았다.

날개를 퍼덕거리는 게사니 두마리를 옆에 끼고 가던 구국군병사가 뒤를 돌아보더니 펄쩍 놀랐다. 그는 안았던 게사니를 내동댕이치고 골목으로 달려들어가며 무엇이라고 다급하게 소리쳤다. 길홈타기에 떨어진 게사니가 날개를 푸득푸득거리며 시궁창물을 튕기였다.

이 골목 저 골목에서 달려나오는 사람들, 달려들어가는 사람… 온 거리가 와글와글 끓어번졌다. 총들을 거꾸로 둘러메고 걸어오던 한개 분대가량의 구국군병사들이 걸음을 뚝 멈추고 이쪽을 빤히 바라보더니 기겁한 소리를 지르며 골목으로 뛰여들어갔다. 그러나 반장인듯 한 자는 총을 벗겨들고 거리 한복판으로 달려나가며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내질렀다.

《래-슈-이-》

《래-슈이-》

장군님께서는 말고삐를 늦춰주시며 뒤에서 따르는 진한장을 돌아보시였다.

《저건 무슨 소리입니까?》

진한장은 얼굴에 난처한 미소를 그리였다.

《네, 별거 아닙니다. 물이 온다고 소리치는겝니다.》

《물이 온다니?》

《그전날 마적들이 쓰던 은어인데… 물은 륙군의 래습이나 재난을 예고하는 뜻인것 같습니다. 강물이 자주 범람하여 대대로 내려오며 막대한 수해를 입은 송화강류역의 인민들에게는 물이 제일 무서운게였습니다. 이런 연원에서 생긴 마적들의 은어인데… 군기가 문란해지다나니 마적단의 은어까지 통용되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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