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2 회)

제 6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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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게 닦은 운동장에는 흰모래로 여러가지 경기용줄들이 얼기설기 그어졌고 축구꼴문대까지 세워졌다. 운동장을 마주하고 약간 둔덕진 곳에 여러개의 풍막으로 차일들이 쳐있었다. 가운데 차일은 주석단자리이고 그 량쪽의 차일들은 래빈들의 자리였다.

가슴에 꽃송이를 단 보금이는 주석단옆 차일의 제일 앞줄에 국내대표들을 앉히고 자기도 그옆에 자리를 잡았다. 각 지방에서 온 대표들은 명절기분에 설레이며 서로 아침인사들을 하고 구면인듯 떠들썩하게 이야기들도 나누었다.

운동장에는 무장을 갖춘 유격대와 반일자위대의 중대들이 주석단쪽을 향하여 줄을 지어 섰다. 운동장둘레에는 근거지인민들이 빙 둘러앉아있었다.

보금이는 설레이는 가슴을 지그시 누르고 손님들의 얼굴표정도 훔쳐보고 유격대의 대렬쪽에도 눈길을 주었다. 지휘관들이고 대원들이고 모두 낯선 얼굴들뿐이다. 창억이는 어디에 서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운동장둘레에 앉았던 군중들이 일어나며 박수를 치고 만세를 부르자 차일안의 래빈들도 웅성거리며 일어섰다.

목갑총을 차신 키가 후리후리한 장군님께서 군모를 벗어들고 환하게 웃으시며 래빈석앞으로 걸어오시였다. 한흥권을 비롯한 여러 지휘관들과 인민혁명정부의 간부들이 그이의 뒤를 따라 걸어왔다.

온 산천을 들었다놓는 만세와 박수의 환호속에서 장군님께서는 손님들과 하나하나 인사를 나누며 걸어오시였다.

장군님께서 앞에 오시자 전장원과 전수원면장, 한설봉이도 허리를 굽혀 그이께 절을 하였다.

장군님께서는 한설봉을 먼저 알아보시고 못내 반가와하시며 로인의 손을 뜨겁게 잡아흔드시였다.

《로인님, 먼길에 오시느라고 수고하셨습니다.》

로인은 기쁨과 흥분에 채머리를 떨며 그이를 우러러보았다.

장군님, 수고는 무슨 수고겠습니까? 날아왔습니다. 지난봄에 장군님을 우리 류다섬에 처음 모셨을 때 내 이제는 죽어 원이 없다 생각했는데… 오늘은 이런 영광을 누리게 되니 정말 꿈만같소이다.》

《류다섬인민들은 모두 무고하십니까?》

《예, 모두 장군님을 하늘같이 믿고 살아갑니다.》

《숙소는 불편하지 않습니까?》

《좋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극락세상에 온것 같은게 잠도 잘 오고 밥맛도 더 나고 그저 마음이 편안합니다.》

《좀 불편한 점이 있더라도 널리 량해해주십시오. 저는 그때 류다섬에서 국수대접까지 잘 받았는데… 여기서는 대접이 변변치 못한것 같습니다.》

《원, 무슨 말씀을… 장군님, 잘 말지도 못한 국수였는데 아직도 그걸 잊지 않으셨습니까?》

《잊다니요. 조국에 나가 대접받은 국수인데 그 맛을 제가 잊겠습니까. 허허허…》

로인도 그날의 추억에 눈굽이 젖어올라 손을 눈가에 올리며 《허허…》하고 웃었다.

이때 전장원이 사촌형을 장군님께 소개하였다. 그이께서는 전수원면장을 보시고 매우 놀라며 기뻐하시였다.

《저는 면장님은 못 오실줄로 알았습니다. 몸을 용케 뺐습니다. 정말 이렇게 와주시니 고맙습니다.》

전수원은 송구한 마음을 금할수 없어 앞에 모아쥔 손을 주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올렸다.

장군님, 저는… 저는… 죽어도 한번 장군님을 만나뵙고 여기 현실도 보고싶었습니다. 장군님께 말씀올릴것도 있고 해서…》

《예, 후에 조용히 만납시다. 그런데 면장님은 특히 후환이 없어야겠는데… 놈들이 무슨 기미라도 차리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전장원이 연길에 있는 5촌조카의 결혼잔치를 핑게로 삼아 들어왔으니 별일이 없을것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렇다면 여기서 일을 보고 꼭 연길에 들려 잔치도 보십시오. 우리도 지하조직을 통해 별일이 없도록 대책을 취해놓겠습니다.》

장군님께서 다음다음 래빈들에게로 걸음을 옮겨가며 멀어지시자 한설봉이 전수원의 허리를 툭 건드리며 그러면 그렇다고 말해야지 사람을 그토록 머저리로 만드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제사 노여운 말을 하였다. 욕을 당한 전수원은 년장자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사과의 말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가운데에 선 전장원이 껄껄 웃어대자 두사람도 마주보며 화해의 뜻으로 너털웃음을 웃었다. 뒤에 앉은 사람들이 무슨 일이냐고 안내원에게 물어왔다.

보금이 사연을 소곤소곤 이야기해주자 그들은 과연 이런 자리에서 있을만 한 일이라고 유쾌하게 웃었다.

환호소리에 들끓던 장내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맑고 푸른 하늘에 나팔소리가 랑랑하게 울려퍼지고 뒤따라 연길폭탄(소리폭탄) 3발이 폭발하였다. 그것은 체육대회의 개막을 선포하는 신호였다. 폭음에 놀란 새들이 하늘에서 야단스럽게 우짖으며 날아다녔다.

장군님께서 차일밖으로 나서시여 운동장에 모인 군중을 둘러보시였다.

장내는 물을 뿌린듯 고요해졌다.

래빈석의 손님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그이만을 바라보았다.

장군님께서는 먼길을 걸어 찾아온 래빈들에게 사의를 표하는 따뜻한 말씀을 하시고 격정에 넘치신 음성으로 인민혁명정부의 수립과 민주주의적개혁들의 실시가 갖는 의의에 대하여 연설하신 다음 이 체육대회가 항일무장력과 유격구, 반유격구인민들, 각계각층 반일력량들의 단결을 더한층 강화하는 계기로 되기를 바란다고 하시였다. 그리고 선수들은 매 경기종목마다에서 평소에 단련된 체력과 투쟁정신, 단결력을 남김없이 발휘하라고 격려하시였다.

장군님의 짤막하고 격동적인 연설이 끝나자 국내혁명조직들을 대표하여 전장원이가 온성인민들의 지성이 깃든 축기를 들고 주석단앞으로 나가 그이께 드리였다. 주석단의 리재명이 축기를 높이 들어 펼쳐보이자 운동장에 정렬한 유격대원들과 자위대원들은 총을 높이 들어올리며 우렁찬 만세로 화답하였다.

래빈석의 사람들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이어서 유격대와 반일자위대의 분렬행진이 시작되였다.

4렬종대로 선 유격대의 중대들이 먼지구름을 날리며 보무당당히 행진하여 앞을 지나갈 때 래빈석은 박수와 만세, 찬탄의 소리들로 끓어번졌다.

래빈석의 뒤좌석에 앉은 한 로인은 손바닥으로 무릎을 철썩철썩 내리치며 환성을 터뜨렸다.

《조선군대구나! 우리 군대구나!》

래빈들은 일어서서 지나가는 대오에 박수를 보내는가 하면 목이 터지게 만세를 부르다가 발돋움하여 목을 길게 빼들고는 장군님께서 계시는 차일쪽늘 바라보기도 하였다. 한설봉은 눈물에 젖어 박수를 치다가 자리에 주저앉아 팔소매에 얼굴을 묻고 잔등을 떨며 소리를 내여 흐느꼈다.

《어- 살았구나, 나라가 살았구나!》

윤보금은 로인의 그런 모습을 보자 눈앞이 자꾸 흐려와 앞을 지나가는 대오의 얼굴들도 똑똑히 가려볼수 없었다. 한 종대가 래빈석앞을 지나갈 때 뒤에서 시아버지의 목소리가 울렸다.

《얘야, 보니? 저기… 저기… 두번째 줄에 우리 사람이 간다. 보이나? 응? 두번째 줄이야!》

그러나 보금이는 가로 두번째 줄인지 세로 두번째 줄인지도 알수 없었거니와 모두 같은 군모, 같은 군복에 한결같은 모습들이여서 눈앞이 아물거릴뿐 누가 누군지 알아볼수 없었다. 그저 대오의 힘찬 발구름소리와 환호소리에 정신이 얼떠름해지고 가슴이 터질듯이 벅차올라 정신없이 두리번거리기만 하였다. 마지막종대가 래빈석앞을 다 지나갔을 때 운동장밖에 담벽을 이루고 서있는 군중들속에서 한 로파가 달려나와 대오의 옆에서 허둥지둥 따라가며 눈물에 젖은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석범아- 야- 석범아- 이쪽으로 고개를 돌려라. 네 얼굴을 좀 보자- 이녀석아-》

로파는 손자의 장한 얼굴을 보았던지 두팔을 날개처럼 벌렸다가 내렸다.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졌다. 래빈석에서도 그 모습을 바라보며 웃어대였고 주석단쪽에서도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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