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2 회)

제 6 장

저물어가는 갑오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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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공사의 집무실에서 조선관계자들의 회의가 열리였다. 스기무라서기관과 구스세무관을 비롯한 공사관원들과 호시 도오루, 오까모도 류노스께와 같은 조선정부고문관들이 참석하고있었다.

얼마전에 일본정부의 강요와 이노우에공사의 강박으로 조선정부는 일본고문관들을 채용하였는데 제1차로 추천된 고문관으로 일본중추원 의장을 하던 호시 도오루가 조선법무고문으로, 법제국 참사관이던 이시즈까 에이즈, 농상정무차관이던 사이또 슈이찌로가 각 부문의 고문으로 되였으며 그리고 조선주재 일본공사관무관이던 구스세 사찌히꼬중좌가 조선군무고문으로 되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흑막적인 인물로 암약하던 랑인 오까모도 류노스께가 제일 중요한 조선궁성의 궁내부고문으로 임명되였는데 무쯔외무상의 강력한 안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것은 이미 비밀이 아니였다.

어쨌든 일본은 고문관제도를 통하여 조선정부를 더욱 꽉 틀어쥐고 조선내정을 제 마음대로 료리함으로써 조선을 쉽게 먹어치우자고 타산하였던것이다.

이들을 상대로 이노우에는 일장 훈시를 하였다.

《제군들, 우리는 오래지 않아 명치 18년인 새해 을미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돌이켜보면 올해 갑오년은 동양의 수천년력사에 일찌기 있어보지 못한 참으로 다사다난한 한해였습니다. 정초에 있은 고부민란의 폭발, 그것의 갑오농민전쟁에로의 확대, 상해에서의 김옥균의 암살과 내외여론의 비등, 동학농민군의 전주입성과 화의, 그를 진압하기 위한 일청량군의 출병, 일본군에 의한 조선왕궁점령과 대원군의 집정, 일청전쟁의 발발과 아산풍도해전에서의 경이적인 승리, 뒤이어 평양성탈환과 청군의 압록강밖으로의 축출, 륙군의 료동, 려순점령과 산동에로의 진출, 해군의 청도, 위해위탈환과 황해에서의 완전한 제해권의 행사, 동학농민군의 재기와 서울에로의 진격, 공주대전과 폭도들에 대한 완전한 괴멸, 군국기무처의 설치와 내정개혁의 실시, 대원군과 민비의 정계에서의 축출… 실로 어느 하나도 스쳐지날수 없는 력사적사건들로 충만된 한해였습니다.》

잠시 말을 끊은 이노우에는 고개를 지수굿하고 무게있게 걸음을 옮겼다. 걸으면서 그는 다시 말을 뗐다.

《우리는 지난 한해를 통하여 무엇을 보았으며 무엇을 느꼈으며 무엇을 교훈으로 삼게 되는가.

그것은 우선 우리 대일본제국이 드디여 동양의 맹주로 등장하였다는것입니다. 일청전쟁을 통하여 사람들이 생각했던것처럼 청국이 <슬리핑 라이온> 이 아니라 <슬리핑 피그>였다는 사실입니다. 다시말해 로대국 청나라가 <잠자는 사자> 가 아니라 <잠자는 돼지>에 지나지 않았다는것이 폭로되였습니다.》

일본인들은 서로 돌아보며 벙글거렸다. 그들은 이노우에의 박식과 그의 달변에 저으기 감동되고 감복하여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노우에는 정색하여 말을 계속했다.

《다음으로 조선정복을 목적으로 한 우리 일본의 대조선정책이 여전히 난관에 부딪치고있다는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조선의 자주독립>과 <조선의 내정개혁>을 표방한 우리의 슬러건(구호)이 조선인들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할뿐아니라 도리여 반발을 불러일으키고있습니다. 단적인 실례로 반일적인 동학농민군의 폭거와 대원군의 청군지원에 관한 편지건을 들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무리 내정개혁피리를 불어대도 그에 맞추어 춤춘것은 정부내의 몇몇 친일분자들뿐이였습니다. 더우기 조선의 혁신관료들이 자체로 내온 군국기무처는 우리 일본이 전쟁에 몰두하고있으며 수구파세력이 제거된 기회를 리용하여 개혁사업을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적극적으로 밀고나갔습니다. 만약 군국기무처의 개혁활동이 계속된다면 조선사회는 급진적으로 근대화를 실현하고 자주적발전의 길에 들어설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이로부터 우리의 목하임무는 군국기무처를 해산하고 그가 실시한 갑오개혁을 말살해버리는것입니다. 이를 위해 조선정부의 갱질이 필요한바 박영효, 서광범과 같은 친일세력을 부식시키는데 선차적인 주목을 돌려야 합니다. 반일적인 동학농민군의 철저한 진압, 근대적인 군국기무처개혁의 전면적인 파괴, 친일적인 조선정부의 수립, 이 세가지는 우리가 금년안으로 반드시 끝장을 보아야 할 중대과제입니다.

제군들, 일층 분발하여 년말년시를 빛나게 장식합시다. 새해 을미년은 반드시 락관적인 해로 될것입니다.》

연설을 일단 끝낸 이노우에는 바지뒤주머니에서 흰 손수건을 꺼내 이마며 목덜미의 땀을 닦았다. 그의 열띤 장광설에 지루감을 느끼던 청중도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하지만 자기의 열변에 스스로 도취한 이노우에는 희극배우와도 같은 연기를 연출함으로써 웅변의 마감을 우습게 만들었다.

《제군들, 끝으로 우리모두 천황페하 만세3창을 부릅시다.》

이렇게 말한 이노우에는 방복판에 두다리를 떡 벌리고 서서 《덴노헤이까…(천황페하…)》 하고 제 목소리같지 않은 괴상한 음성으로 열광적으로 웨쳤는데 별안간 목이 꽉 잠겨버려 뒤소리를 잇지 못하였다. 이것은 자아도취를 잘하는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흔히 있는 일이였다. 다행히 모임참가자들이 웃음을 물고 《반자이!(만세!)》 하고 그의 뒤말을 이어주어 만세3창은 그럭저럭 해결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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