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6 회)

제 6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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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이른아침 사처의 망원초들에서 적의 침습을 알리는 검은 봉화들이 타올랐다.

왜놈들은 셋째섬방향과 대왕청어귀, 뾰족산방향으로 일시에 공격해들어와 유격대병력이 이전에 배치되였던 고지들로 접어들었다. 이것은 장군님께서 예견하신 사태였다. 그이께서는 이미 배치를 달리하였던 주력부대들로 놈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들에서 불의에 총화력을 퍼부으면서 단호한 반타격전을 벌리도록 명령하시고는 장룡산의 중대를 셋째섬으로부터 적의 배후로 은밀히 우회시키시였다.

장룡산은 골짜기를 따라 누렇게 기여드는 왜놈들의 행군종대를 내려다보며 중대를 이끌고 숲속을 누벼나갔다. 참나무숲이 무성한 나지막한 산등성이에 올라선 그는 중대를 전투대형으로 산개하려고 지형을 돌아보다가 이끼오른 진대나무뒤에서 웬 사람의 그림자가 움쭉 일어나는것을 보고 놀라서 걸음을 멈추었다.

썩은 진대나무통을 두손으로 짚고 이쪽을 노려보는 그 사람은 권일균이 틀림없었다. 어디에서 딩굴었는지 구겨지고 찢어진 옷은 흙투성이가 되였고 독기어린 얼굴은 푸들푸들 떨고있었다.

장룡산은 그자의 눈빛을 보고 모든것을 깨달았다. 그자는 자기 정체가 드러났는가 어쨌는가 기미를 알아차리려고 산속을 헤맨것이 분명하였다.

(더러운 놈, 끝내 내 손에 걸려들었구나!)

장룡산은 입안에 쓰거운 열물같은것이 도는것을 느끼며 놈을 무섭게 쏘아보았다. 그는 골짜기로 행군해들어오는 왜놈들때문에 소리를 치거나 총소리를 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며 한걸음 또 한걸음 다가갔다.

괴괴한 숲속에는 거치른 숨소리와 발자욱소리만 높았다.

권일균은 왜놈들의 군화발소리가 진감하는 골짜기를 홱 내려다보더니 산짐승처럼 수풀속을 꿰질러 그쪽으로 달려내려가면서 단말마적인 함성을 내질렀다.

장룡산은 가슴에서 터져오르는 증오에 온몸이 확 불타올라 앞뒤를 가리지 않고 뒤쫓아가다가 나무가지들사이에서 언뜻거리는 놈의 잔등을 내쏘았다. 놈은 길길이 뛰여오르는듯 하더니 수풀속에 구겨박혔다.

인민들의 증오를 담아 놈에게 철추를 내린 총성은 골짜기에 메아리치고 왜놈들은 그 소리를 듣고 미친듯한 함성을 내지르며 달려올라왔다.

때문에 장룡산은 적의 익측과 배후를 기습할수 없게 되였다. 그리하여 기본진지의 유격대부대들은 예견했던것보다는 불리한 조건에서 전투에 진입하게 되였다.

장군님께서는 백마에 뛰여올라 총포성과 포연속을 누비며 전장으로 달려나가 유격대의 부대들을 과감하게 전투에로 불러일으키시였다.

그리하여 천험의 요새를 이룬 근거지의 산봉우리, 험한 산기슭, 깎아지른듯 한 벼랑우로부터 밀려드는 왜군들의 누런 무리들에 불소나기가 쏟아졌다.

장군님께서는 군마로 혹은 도보로 포연자욱한 전장을 누비며 달리고 또 달리시여 뾰족산과 마반산 그리고 대왕청골짜기어귀의 백바위에도 올라 권총을 휘두르며 전투를 지휘하시였다.

전령병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시는 그이의 종적을 잃어버리는 때도 있었다.

전령병은 불붙는 수풀속과 자욱한 초연속을 헤매며 그이를 찾다가 하늘을 찌르는 권총의 발사소리, 전장을 짓누르는 불호령소리, 나팔소리 등을 듣고 달려가면 거기에 그이께서 바위처럼 거연히 서시여 전장을 지휘하고계시는것이였다.

적의 공격이 중지되면 그이께서는 마차길을 따라 혹은 숲속의 오솔길을 따라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찾아다니시며 인민들이 인민혁명정부두리에 그 어느때보다도 더 굳게 뭉쳐 제반민주주의적개혁들을 철저히 실시하고 유격구를 튼튼히 꾸리도록 이끄시였다. 인민혁명정부 일군들과 담화도 하시고 인민들이 하는 심중의 이야기를 밤이 깊도록 들어도 보시였다. 숲속의 오솔길을 누벼가는 이런 정치공작의 길에서 그이의 군복과 행전은 밤이슬에 화락하니 젖었다. 그러면 젖은 군복을 짜서 털어입으시고 마을로 들어가시군 하였다.

어느날 밤 장군님께서 마촌의 사령부로 돌아오시니 왕청쪽에 나가 지하조직과의 련계밑에 정찰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온 장룡산이 그이를 기다리고있었다.

장룡산의 몸에서는 시큼한 땀냄새가 풍겼다.

장군님을 따라 방에 들어온 그는 적의 《토벌》이 앞으로도 더 계속될것 같다는 정찰보고를 하고는 품속에서 신문지로 싼 얍슬한 꾸레미를 꺼내놓으며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게 뭐요?》 하고 그이께서는 물으시였다.

생활에서 엉뚱한데가 있는 장룡산은 인차 대답하지 않고 땀이 배여 눅눅해진 신문지를 풀었다. 신문지안에서 네모반듯하게 접은 붉은 천이 나왔다. 광택이 흐르는 천이였다.

《이게 무슨 천이요?》

사령관동지, 이 천으로 인민혁명정부의 기발을 만들면 어떻겠습니까?》

《어디서 구했소?》

《왕청시가의 포목상과 련계를 맺고있는 지하조직동무들을 통해서 구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깐깐하고 차분한데라고는 조금도 없어보이던 장룡산의 이런 소행이 못내 대견하고 기쁘시여 서둘러서 천을 책상우에 쭉 펴보시였다. 순간 신선한 아침노을빛과도 같이 불그레한 장미빛이 방안에 가득찼다.

그이께서는 기쁨에 넘치시여 옆에 앉은 장룡산을 돌아보며 시원하신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좋소, 아주 좋소! 이걸로 기발을 큼직하게 만들어 하늘에 척 띄워 펄펄 날리면 얼마나 보기 좋겠소! 동무가 어떻게 기발감을 구해올 생각을 다했소?》

장룡산은 분에 넘치는 치하의 말씀에 흐뭇한 미소를 머금으며 수염털이 꺼실꺼실한 턱밑을 슬슬 쓸어만졌다.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제가 곰이나 범하고 씨름하던 장포리인가 해서 미욱하게 여기지만 저한테두 세밀한 구석이 있습니다. 허허허…》

그 롱말에 장군님께서도 허리에 두손을 올리시고 즐겁게 웃으시였다.

이윽고 장룡산의 눈에 심각한 빛이 어리였다.

사령관동지, 저는 사실 우리 로선을 지지한 국제당파견원을 쏜 박두남이나 권일균이놈때문에 분통이 터져올라 며칠밤을 자지 못했습니다. 이놈들, 아무리 발악해봐라. 우리는 인민혁명정부의 기발을 하늘에 더 높이 띄우리라. 이런 배심에서 왕청에 나갔던김에 지하조직동무들한테 제일 좋은 천으로 구해달라고 했더니 이런 천을 가져왔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다정하신 눈길로 그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장룡산의 목소리는 잦아들며 웅심깊게 울렸다.

《이 천을 품고 사령부로 걸어오면서 저는 정말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지난날 총을 잘 쏘면 똑 제일인줄로 알고 우리 혁명로선을 깊이 알지 못했기때문에 권일균이같은 종파쟁이들이 쏘베트바람을 일으키는것도 철저히 반대해 투쟁하지 못했습니다.

저희들이 똑똑했더라면 사령관동지께서 여기 와서 수고를 덜 했을게 아닙니까. 이제 조국이 광복되면 저희들이 여러 지방들에 나가 정권기관들을 세우고 그 사업을 지도해야겠는데 아는게 있습니까? 지금 똑똑히 배우고 잘 봐둬야 하겠습니다. 사령관동지, 저도 앞으로는 정치공작에 참가시켜주십시오!》

장군님께서는 그의 어깨에 손을 다정하게 올려놓으시였다.

《동무는 오늘 정말 좋은 생각을 많이 했소. 그렇소. 조국이 광복되면 여기서 하던 경험에 기초해서 정권기관들을 세우고 운영해야 하오. 때문에 여기서 올리는 인민혁명정부의 기발은 조국의 미래를 상징하는 기발이기도 하오.》

그이께서 말씀하시는 조국의 미래를 내다보는듯 장룡산의 눈이 그윽하게 빛났다.

그를 돌려보내신 장군님께서는 곧 리재명회장의 사무실로 찾아가시였다. 리재명은 그이를 반겨맞아 쌍암촌에서 인민혁명정부와 아동단학교건물을 번듯하게 새로 지었는데 여러 지방에서 참관단도 불러 아동단학교개교식을 크게 하여 인민들을 고무하려고 한다고 말씀드렸다.

장군님의 안광에 부드러운 회억의 빛이 어리였다. 쌍암촌은 지난 이른 봄에 그이께서 쏘베트시책을 바로잡기 위하여 나가시였던 마을이다. 그이의 눈앞에는 인상적인 쌍바위며 얼어붙은 내물, 옷자락에 매달리던 아이들, 그리고 쏘베트를 쇠버치라고 하며 기염을 토하던 농민들의 얼굴이 선히 떠오르는것이였다. 어제는 어수선하기 그지없던 마을에 인민혁명정부가 서고 토지개혁이 실시되더니 오늘은 아동단학교까지 새로 섰다!

장군님께서는 못내 대견하시여 리재명의 계획에 동의하시고 그에게 기발천을 주시며 이 천으로 기발을 크게 두개 만들어 하나는 마촌에, 다른 하나는 쌍암촌에 띄우되 개교식과 함께 기발게양식도 동시에 하라고 이르시였다.

리재명은 기발천을 책상우에 펴놓고 상다리밑으로 흘러내린 천의 한쪽귀를 조심스럽게 만져보며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대단합니다. 이 기발을 띄우면 온 천지가 더 환해지겠습니다!》

흥분하면 과장병이 심해지는 리재명의 이런 소리에 장군님께서는 그저 빙긋이 웃으시였다.

이튿날아침 재봉소에서 붉은기발 두폭을 제꺽 만들었다. 리재명이 그 기발 하나를 토목양복속에 품고 림성실이와 함께 쌍암촌으로 떠나갔다.

장군님께서는 장룡산이 2개 소대의 인원들을 데리고 쌍암촌으로 나가 리재명의 사업을 돕도록 하시였다.

장룡산은 큰 경사를 맞은듯 새 군복에 새 신발을 신고 노상 벙글거리며 쌍암촌으로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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