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5 회)

제 6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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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장군님께서는 적의 《토벌》을 예견하시여 유격대의 모든 초소들과 진지들을 옮겨놓으시였다.

하루종일 새 방어진지들을 돌아보시고 저녁무렵에 큰배나무골어귀로 들어서신 그이께서는 목이 말라 샘터로 내려가시였다. 바닥에서 퐁퐁 솟구쳐오르는 샘물이 수정같이 맑은 물우에 파문을 그려 하얀 조약돌들이 한들한들 흔들리는듯 하였다.

문득 리광의 얼굴이 그 맑은 물우에 얼추 비껴든것 같아 마음이 쓰려오시였다. 이 샘물은 리광이가 희생되기 전에 사령부에 찾아왔다가 새로 파놓은것이였다.

그토록 깊은 동지적우정을 맺었던 반성위마저 세상을 떠나고나니 분통하게 목숨을 잃은 또하나의 혁명동지 리광이가 못견디게 그리워지시였다.

어느덧 그이께서는 리광이를 마지막으로 보시였던 그날이 생각히우시여 조용히 추억에 잠기시였다.

장군님께서 사령부에 찾아온 리광의 안해에게 편지를 주어 떠나보내신지 보름이 지났을무렵이였다. 현정부에 갔다가 돌아오신 그이께서는 이전의 박우물은 메꾸어버리고 그우에 좀 올려다가 바위짬에서 나오는 샘터에 네모반듯하게 새 박우물을 파놓은것을 보시고 의문어린 시선으로 리성림을 바라보시였다. 박우물가장자리에는 납작납작한 돌들을 깔았고 물밑에는 하얀 조약돌들을 펴놓았다. 아무모로 보나 리성림의 솜씨같지 않았다.

그이께서 바가지로 그 정갈하고 시원한 물을 퍼마시는데 전령병 리성림이 기쁨에 넘친 얼굴로 어리광스럽게 물었다.

사령관동지, 이 박우물을 누가 팠겠는가 맞춰보십시오.》

그이께서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기웃거려보이시였다.

《글쎄 성림이 솜씨같지는 않아…》

《하하하… 모르겠지요?》

《모르겠는걸…》

《라자구에서 리광동지가 왔습니다!》

그 말에 장군님께서는 펄쩍 놀라시였다.

《뭐요?》

《리광동지는 사령부 박우물이 낡았다고 하며 이렇게 샘구멍을 찾아 제꺽 새 박우물을 만들어놓았습니다. 솜씨가 어찌나 날랜지 히야- 그냥 번개입니다.》

《어디… 어디 있소?》

《마을을 돌아보고 사령부에서 기다립니다.》

장군님께서는 사령부를 향해 급한 걸음으로 다가가시였다.

리광은 무슨 생각에 골똘하였는지 기척을 느끼지 못하고 사령부의 마당가에서 왔다갔다하고있었다. 보기좋은 중키에 몸매가 단단하고 미끈하게 생겨 어디 내세워도 유격대지휘관답게 의젓해보이던 그였건만 타관에서의 고초때문인지 좀 수척해진듯 하였다. 그의 군복잔등은 희누렇게 색이 날았다.

장군님께서는 반가움에 겨워 소리치시였다.

《리광동무!》

리광은 화닥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이를 알아보는 순간 그의 잘생긴 얼굴이 환히 밝아지고 서글서글한 눈이 반가움에 겨워 번쩍이였다.

리광은 두손을 앞으로 뻗치며 그이앞으로 달려나왔다.

사령관동지!》

장군님께서는 그의 두팔을 잡고 돌아가시며 정겨운 눈길로 얼굴이며 옷차림을 쓸어만져주시듯 여겨보시였다.

《이게 얼마만인가. 그래 모두 잘있소?》

《예, 잘있습니다!》

《부인도… 아이도?》

《예, 다 잘있습니다.》

《나도 보다싶이 건강하오.》

주전자를 들고 막 달려들어오던 전령병도 걸음을 멈추고 이 감격적인 상봉을 바라보다가 실눈을 지으면서 활짝 웃었다.

이윽고 그이께서는 리광이와 퇴마루에 나란히 앉아 조용조용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리광은 국내진출을 단행하신 소식을 들었다고 하며 그 대오에 함께 서지 못한것을 못내 아쉬워하였다.

장군님께서는 그의 무릎우에 놓인 손을 다정하게 잡으시며 말씀하시였다.

《내가 보낸 편지는 받았소? 그래 거기 형편은 어떻소?》

리광은 장군님의 가르치심대로 고참모의 제의를 적당히 넘겨버린데 대해서와 그동안의 공작정형을 구체적으로 보고드리였다.

라자구일대에 주둔하고있는 구국군의 내부형편은 의연히 복잡하며 우리 혁명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서로 달랐다.

라자구일대의 구국군부대들을 통솔하고있는 오의성사령은 반일의 기상은 높으나 철저한 반공산주의자이다. 공산주의에 대한 그의 리해는 매우 유치한것으로서 심히 외곡되여있다. 때문에 그는 공산주의자들과의 련합전선에 대하여는 생각도 안하고있다.

요즘 오의성은 와해되여가는 부대들을 묶어세우고 자기의 통솔권을 확립하려고 무진애를 쓰고있다. 그는 총살까지를 포함한 각종 징벌처분과 《쟈잘리》와 같은 결의형제를 뭇는 방법으로 이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며 삼국지나 고대병서들에서 령군술의 비결을 찾아내려고까지 한다. 그의 부하 려장들은 겉으로는 그를 존경하는척 하고 뒤에서는 허수아비처럼 여기며 제멋대로 행동하고있다. 그리하여 군대의 전반적지휘체계가 마비되여가고있으며 군기가 극도로 문란해졌다.

오의성의 밑에 있는 려장들중에서 제일 경향이 좋고 온전한 사람은 하층계급출신의 사려장이며 제일 경향이 나쁜 사람은 경찰관출신의 채려장이다.

사려장은 공산주의자들에 대하여 중립적인 립장이나 자기의 계급적 출신으로부터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이 매우 강하다.

그는 량곡징수도 지주나 부농들에게 국한시키고있다. 략탈을 적게 하는 그의 부대는 자주 기근에 허덕이고있으며 따라서 탈주병도 많다. 고향으로 도망치는자도 있고 잘사는 부대로 가서 편입되는자도 있다.

채려장은 공산주의자들이 민족을 유산계급과 무산계급으로 갈라놓고 내란을 일으킨다고 생각하며 공산주의자들을 적으로 치부하고있다. 그에게 지독하게 반공바람을 불어넣는 사람이 하나 있는데 그 부대에 모사격으로 있는 리청천이란 사람이다. 그는 일제를 반대하여 싸우기 전에 공산주의자들을 소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채려장의 부하들은 공산주의자라고 짐작되는 사람이면 덮어놓고 잡아서 사살한다. 게다가 그의 부대는 수적으로 제일 우세하다. 하지만 오합지중에 지나지 않는다.

채려장의 인간적인 특질에 대하여 한가지 더 부언하면 그는 다른 사람들 호상간에 맺어진 의리에 대하여서는 가차없이 짓밟으나 자기와 다른 사람과의 사이에 맺어진 의리에 대하여서는 매우 귀중히 여긴다.

때문에 그는 한때 자기 상관이였으며 결의형제를 무은 사이인 사려장을 오사령보다 더 존중한다.

그밖에 동두령의 부대를 비롯한 적지 않은 부대들이 반일을 한다고 무장을 들기는 했으나 거의나 토비화되여 이 일대를 돌아치고있다.

동산호는 략탈을 일삼아 부하들을 잘 먹이기때문에 무지한 병사들속에서는 《광야의 범》으로 우상화되고있다. 그는 물욕을 비롯한 타락한 욕망을 성취시켜주는것으로써 병사들을 끌어당기고있기때문에 부대안에는 풍기가 문란하다.…

리광은 서글서글한 눈을 번쩍이며 열정적으로 말하였다.

《우리에 대한 두령들의 감정과 립장에는 약간한 차이들이 있습니다.

이 차이에 우리가 손을 들이밀수 있는 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틈에 손을 넣기만 하면 두령들도 움직여놓을수 있습니다. 그리고 요새 하층병사들속에서는 새로운 움직임이 보입니다. 근거지에서 토지개혁을 하여 빈농민들에게 땅을 무상으로 나눠줬다는 소문을 듣고 빈고농출신 병사들이 부러움을 금치 못해하며 이것저것 물어오는가 하면 적대감을 로골적으로 드러내는 일이 드물어졌습니다.

특히 제가 일전에 편지로 보내드렸듯이 동두령의 부대가 고참모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경향성이 아주 좋아졌습니다.》

리광은 신심에 넘쳐 말하였다.

《이거야말로 좋은 기회가 아닙니까? 이런 기회에 선전공작을 대대적으로 벌릴가 합니다. 우선 연극을 하나 잘 준비해 그들을 공연에 초청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연극각본도 가져가고 도움을 받자고 왔습니다. 선전자료랑 있으면 한짐 지고 가자구요…》

《구국군내부에 왜놈들의 선이 들어와있는것 같지 않소?》

《아직까지는 그런 기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왜놈들이 구국군의 손을 빌어 동무들까지 해치려고 책동할수 있소.》

《구국군이 쉽게 놀아나진 않을겁니다.》

《아니요. 왜놈들이 무슨짓인들 못하겠소. 정신을 차려서 구국군내부에 왜놈들의 선이 들어오지 않았는가 알아보고 구국군상층부의 움직임도 예리하게 감시하면서 공작해야 되오. 만약에 조금이라도 불길한 기미가 느껴지면 즉시 철수하오. 알겠소?》

리광은 선뜻 대답을 하지 않고 머리를 수굿하고있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예…》

장군님께서는 철석같은 믿음을 담아 리광의 손을 굳게 잡으시며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그러나 피동에 몰리거나 수세에 빠져서는 안되오. 우리는 이제부터 대대적인 공세로 나가 인민혁명정부로선을 철저히 관철해나가겠소. 동무는 라자구에서 구국군과 반일련합전선을 결성하는데 꼭 성공해주오. 그래야 우리 혁명이 새로운 앙양을 일으킬수 있소!》

장군님께서는 그와 겸상을 하여 저녁식사를 나누시였다. 리광은 날이 아주 어두운 다음에 사령부를 떠났다.

장군님께서는 긴장된 정황때문에 그를 하루밤 곁에서 재우지도 못하고 인차 떠나보내는것이 못내 가슴아프시여 그의 팔을 끼고 밖으로 나가시였다.

밖에는 달빛이 환했다. 시원한 바람에 이슬맺힌 잎사귀들을 반짝거리며 나무가지들이 부드럽게 설레였다. 골짜기에 가득한 희푸르스름한 달빛을 받아 바위밑의 어스름속에서 리광이 파놓은 박우물이 거울판처럼 번쩍거렸다.

장군님께서는 그것을 이윽토록 굽어보시다가 아무 말씀도 없이 리광의 손을 뜨겁게 잡아흔드시였다.

《아무쪼록 조심하오. 조금이라도 수상한 기미가 느껴지면 내 지시가 없어도 즉시 철수하오.》

그러자 리광은 배포유하게 웃어보이며 그이께 말씀드렸다.

사령관동지, 걱정마십시오. 그저 저 샘물이 철철 넘쳐흐르면 우리가 모두 무고한줄로 알아주십시오.》

장군님께서도 그 말에 껄껄 웃으시였다.

《허허허, 그러지…》

그렇게 떠나간 리광이였다.

그런데 샘물은 지금도 이렇듯 철철 넘쳐흐르지만 리광이는…

난데없이 들려오는 소쩍새의 울음소리가 가슴속을 아프게 누비는듯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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