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2 회)

제 6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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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청하기슭의 풀밭에 몸집이 우람한 사람이 벌렁 누워 뿌옇게 흐려진 눈으로 하늘을 쳐다보고있었다.

그는 권일균이였다.

십리평에 나갔다 돌아오던 그는 다리쉼을 하려고 풀밭에 앉았다가 온몸이 녹작지근해져 누워버리고만것이다.

수풀속에서 숨을 죽였던 풀벌레들이 다시 기승을 부리며 울어대기 시작하였다.

송이구름 한점 없이 파란 하늘이 웬일인지 어둑하게 보였다.

그는 미풍에 살랑대며 이마를 간지럽히는 새잎을 홱 잡아채여 끊어서는 한끝을 입귀에 물고 질근질근 씹었다. 땀이 질벅한 미간과 눈가에 깊은 주름살들이 잡히고 관자노리가 푸들푸들 떠는듯 하더니 눈에서 랭랭한 빛이 뿜어나왔다.

(그자때문에 이제는 끝장이란 말인가?)

권일균은 며칠전에 떠나간 반성위에 대하여 앙심을 품고 생각하고있었다.

반성위는 처음에 와서 이틀동안 같이 지낸 다음에는 단 한번밖에 만나주지 않았다. 만나서도 한동안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고는 매우 공식적으로 담화하였다. 거기에 모욕을 느끼고 심사가 뒤틀어진 그는 쏘베트로선에 대한 비판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물음에 대답하면서 자기의 의사와 감정을 순탄하게 표현하지 못하였다. 그는 혁명일반과 자신에 대한 회의심을 드러냈는가 하면 자기반성의 빛을 보이기도 하고 우려의 말도 두서없이 하였다. 그러자 반성위는 그의 눈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며 쏘베트로선을 제창했던 사람들의 사회운동경력과 파벌관계 그리고 국제당에 보낸 무기명서한의 필자가 누구인지 가늠이 가지 않는가고 물었다.

그리고 마감으로 유격대의 왕재산진출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고 질문하였다.

권일균은 마지막의 그 물음으로 국제당이 자기의 사상을 최종적으로 꿰뚫어보려고 한다는것을 직감했다. 그는 가슴이 돌덩이처럼 굳어지며 대답을 망설이였다. 그때 국제당파견원이 의미심장하게 실눈을 지으며 건너다보자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좀 시간을 달라고 얼버무렸다.

모든 징후로 보아 국제당파견원의 립장이 인민혁명정부로선에로 기울어졌다는것이 명백해졌을 때 권일균은 왕재산진출에 대한 자기의 립장을 밝혀야 하겠다는 절박한 생각에 쫓겨 그를 조용히 만나려고 구정부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반성위는 자리를 뜨고 없었다. 책상우에 있는 보고문초안을 읽어본 그는 가슴이 허물어져내리는듯 하여 저도모르게 신음소리를 내였다.

이틀후 권일균은 왕청과 훈춘현계의 산간마을에서 박두남을 만나 반성위가 쓴 보고문내용을 알려주고는 그가 이제 훈춘에도 갈수 있는데 형세가 이렇게 기울어진것만큼 모두 자중하는것이 좋을것이라고 일러주었다. 그리고 반성위가 근거지의 현실을 외곡하여 써보낸 무기명서한의 필자가 누구인가를 아는것 같다고 말하면서 당신네도 이제는 국제적으로 고립되여 그 어떤 지지도 못 받게 될것이라고 덧붙였다.

박두남은 그를 설복하지 못했다고 화를 내는가 하면 처세가 능한자들이 바른소리하는것을 못 봤다고 로골적으로 비꼬면서 훈춘에 오면 어떤 수단을 써서나 돌려세워놓겠다고 큰소리를 탕탕 던졌다.

권일균은 홍병일에게는 아무런 말도 안했다. 자기에 대한 감정이 나쁜 그로부터 배신적인 보복을 당할 우려도 있고 또 속이 얕고 성미가 팔팔한 그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몰라서였다.

국제당파견원까지 돌아섰으니 이제는 어디에 기대를 걸데도 없다.

앞으로도 토지개혁때처럼 숨을 죽이고 지낼 일을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해졌다. 토지개혁날 땅을 분여받은 농민들이 밭들에 하얗게 널려서 흥성거릴 때 그는 방구석에 누워있었다. 기세가 오른 농민들이 토지의 《공동소유》, 《공동경작》을 실시하려고 사람들을 몰아댔던 자기에게 앙심을 품고 덤벼들가봐 무서웠던것이다.

이제 여기서 인민혁명정부로선이 철저히 관철되는 날에는 자기를 근거지에서 아주 들어내자고 접어들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하니 가슴속에서 피거품같은것이 끓어올라 권일균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신음소리를 내였다.

《음…》

이때였다.

독립군때부터 훈춘에서 넘어오는 파발이 다니던 고개길로 말 한필이 흙먼지구름을 날리며 질풍같이 뛰여내려왔다.

말잔등에 납작 엎드린 사람은 말을 정신없이 몰아댔다. 선지피냄새를 맡은 말들만이 저렇게 미친듯이 달린다는 생각이 뇌리에 번개쳐 권일균은 벌떡 일어나앉았다.

땅을 구르는 말발굽소리들사이사이로 채찍이 공기를 가르는 아츠러운 휘파람소리가 울려왔다.

말은 주저없이 대왕청하에 뛰여들어 물을 튕겨올리며 서너걸음의 뜀으로 이쪽기슭에 올라섰다.

권일균은 말앞으로 달려나가며 소리쳤다.

《여- 서라- 섯, 무슨 일인가?》

말우의 젊은 유격대원은 그를 사납게 돌아봤다. 새까맣게 질린 그의 얼굴에서는 땀물이 철철 흐르고 군복 앞가슴과 한쪽 팔소매에 피물이 즐벅했다.

《어디를 다쳤소?》 하고 권일균은 재차 목청껏 소리쳤다. 유격대원은 그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고 거칠게 물었다.

《여보, 당신은 누구요?》

권일균은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는것으로 보아 그가 훈춘유격대에 속한 대원이라는것을 알았다.

《나는 현당조직책이요!》

《뭐요?》

《현당조직책이란 말이요!》

유격대원은 사납게 날뛰는 말을 멈춰세우려고 고삐를 힘껏 뒤로 잡아챘다. 말은 지독한 땀냄새를 풍기며 권일균의 둘레를 돌았다. 말주둥이에서 날려오는 실거품이 그의 얼굴이며 목에 선뜩하게 휘감겼다.

말우의 유격대원은 숨이 턱에 닿아 부르짖었다.

《국제당파견원이 피살됐소!》

《무엇이- 어째?- 누가 쐈는가?》

《박두남이란자가 쐈습니다.》

《뭐라구? 박두남이 쐈다는걸 어떻게 아오?》

《마당에 있던 많은 대원들이 목격했습니다.》

《뭐?… 좋-소. 동무는 돌아가오. 내가 알았으니 됐소. 돌아가오!》

권일균은 그를 돌려세우려고 황황히 말앞으로 다가섰다.

유격대원은 고삐를 잡아채여 말을 비켜세우며 끌날같은 눈으로 그를 흘깃 돌아보았다. 내가 뭐 당신에게 복종하는줄 아는가 하는 표정이였다.

그는 말을 몰아 소왕청쪽으로 내달려갔다.

권일균은 그의 뒤를 쫓아가며 서라고 소리치다가 먼지가 풀썩풀썩 이는 달구지길을 따라 허겁지겁 발걸음을 옮겨갔다. 그의 얼굴로는 식은땀이 줄줄이 흘러내렸다. 박두남이 그자가 왜 그따위 망나니짓을 했는가? 몰래 손을 써서 없애치울게지 숱한 사람들앞에서 그따위 미욱한짓을 하다니. 미친놈, 도깨비, 망종이! 숱한 사람들앞에서 그런짓을 했으니 그 자리에서 붙잡혔을것이다. 그자는 심문을 당하면 내가 국제당파견원의 보고문내용을 알려준것부터 불것이다. 그리고 평소에 악의를 품고있은 홍병일은 이 기회에 나를 제거하고 저도 협의에서 벗어나려고 기를 쓰고 접어들것이다. 아, 이 일을 어찌는가? 권일균은 오늘 저녁 아니면 밤중에 자기를 체포하려고 유격대원이나 자위대원들이 달려들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는 해빛이 싫어났다. 사람들의 눈을 피하여 어디로인가 그늘진데로 숨어들어가고싶었다. 그는 소왕청쪽으로 간다는것이 길을 헛갈려 서대포쪽으로 달려갔다.

이때 장군님께서는 사령부방에서 주먹으로 책상을 치시며 뛰여일어나시였다.

《어느놈이?》

그이의 격한 음성이 방안에 쩌러렁 울리였다. 천장에서 흙모래가 떨어졌다.

훈춘유격대원은 이 참변이 자기의 실책에서 오기라도 한듯 죄스러워하며 눈길을 떨구었다. 처음 방에 들어섰을 때만 하여도 새까맣게 질린 그의 얼굴에서는 땀물이 창창 흘러내리고 격렬한 흥분과 비감에 온몸이 푸들푸들 떨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얼굴에서 피기가 가셔지고 입술이 파랗게 질려서 화석으로 굳어진듯 까딱 움직이지 못한다.

《누가 쐈소? 어떻게… 어떻게 하다가 이런 일이 생겼소?》

《대대정치위원 박두남이 쐈습니다.》

훈춘유격대원은 주눅이 든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그자가 왜? 어째서 그를 사살했는가?》

훈춘유격대원은 한마디로 대답할수 없어 자기가 먼곳에서 총성을 듣고 아우성이 끓어번지는 사건현장으로 달려가던 일부터 떠듬거리며 이야기하였다. 그는 달려가며 마주치는 사람들한테서 여러가지 소리들을 들었다. 모두 제정신들이 아니였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고 다른 사람은 저렇게 말하고 온통 뒤범벅이였다.

회의를 하다가 국제당파견원 반성위와 박두남사이에 론쟁이 붙었다.

론전은 칼부림처럼 격렬해지다가도 반성위의 리성에 의하여 잦아들군 하였다. 반성위는 김일성동지께서 제시하신 인민혁명정부로선에 전적인 지지를 표시하였고 좌경적인 쏘베트로선의 부당성을 진지하게 분석비판해주며 그를 납득시키려고 애썼다.

박두남은 야비하고 비렬한 어투를 섞어가며 그의 모든 론거들을 다 반박하여나섰다. 그자는 론전에서 궁지에 빠지자 당치않게도 어디서 얻어들은 레닌의 하나의 《명제》에 매달리였다. 국가란 사회가 불상용적인 대립으로 분렬되였다는것의 고백이다. 국가는 사회우에 서있는 세력으로서 충돌을 완화시켜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것이다. 때문에 쏘베트의 관할구역도 하나의 사회인것만큼 모순과 충돌들이 있을수 있는것이며 이러한것들을 례를 들어 쏘베트의 시책을 비난하는것은 리치에 맞지 않는것이다. 반성위는 그의 무지에 아연해진듯 너그러움을 보이며 레닌에게는 그러한 명제가 없다고 일러주고는 그가 레닌을 거들었기때문에 구태여 이런 말을 하게 된다고 하면서 긴 설명을 하였다. 레닌은 자기의 저서 《국가와 혁명》에서 엥겔스의 말을 인용하였는데 엥겔스는 국가에 대하여 대체로 이러한 사상을 피력하였다. 국가는 사회가 해결할수 없는 자체모순에 빠졌으며 자기의 힘으로는 벗어날수 없는 불상용적인 대립으로 분렬되였다는것의 고백이다. 그런데 이 대립, 즉 경제적으로 서로 모순되는 리해관계를 가진 계급들이 무익한 투쟁에서 자신과 사회를 기진맥진하게 만들지 못하도록 하자면 외관상 사회우에 서있는 세력, 충돌을 완화시켜 사회를 《질서》의 한계내에 유지할 세력이 필요하게 되였다. 사회로부터 발생하였으나 그우에 서서 사회와는 더욱더 멀어져가는 세력이 곧 국가이다. 반성위는 명석한 두뇌의 갈피갈피에서 레닌이 인용하였던 엥겔스의 명제를 술술 풀어내며 진심으로 박두남을 일깨워주려고 하였다. 그는 국가에 대한 엥겔스의 이 분석은 이 세상에 로동계급의 국가가 발생하기 이전시기의 착취계급의 국가에 대한 규정이라고 말하였다.

박두남의 무지는 여지없이 드러났다. 그는 사람들앞에서 망신을 당한데다가 그의 진지한 해설을 모욕으로 받아들여 얼굴빛이 시퍼렇게 되였다. 그는 눈을 독살스럽게 번뜩이며 반성위를 쏘아보았다.

《그래서?》 그의 목소리는 거칠게 울렸다.

반성위는 침착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당신들은 김일성동지가 맑스-레닌주의 고전이나 다른 나라 혁명의 경험에도 없는 전혀 새로운 정권형태인 인민혁명정부로선을 내놓았다는 그 하나의 리유때문에 그 사상을 접수하지 않고 별의별 시비질을 다 하여왔소. 이 사실자체가 당신들이 그토록 숭상하는 맑스의 립장과도 얼마나 어긋나는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해보았소? 레닌의 표현에 의하면 맑스는 국가라고 하는 프로레타리아트의 이 조직이 어떠한 구체적형태를 취하게 될것인가, 바로 이 조직이 어떻게 가장 완전하고 철저한 <민주주의의 전취>와 결합될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대중운동의 경험에서 그 해답을 기다렸소. 때문에 맑스는 빠리콤뮨의 경험에 대하여 그토록 깊은 주의를 가지고 연구하였소. 만약에 맑스가 지금 생존해있다면 인민혁명정부로선에 대하여도 커다란 환희를 가지고 연구 분석하였을게요. 박두남동무, 나는 마감으로 당신에게 한가지 묻겠소. 당신은 유격대의 왕재산진출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오?》

박두남은 왈칵 분통을 터뜨렸다.

《나는 모르오! 애당초 나는 관여하지 않았고 또 관계하고싶지도 않소!》

그래도 반성위의 목소리는 변함없이 침착했다.

《그러면 무엇에 관심이 있소? 자기 나라 혁명보다도 자파의 령도권쟁취에 더 관심이 컸다고 봐도 일없겠소? 우리는 자기 나라 혁명에 무관심한 사람을 참된 혁명가로 볼수 없소. 그러한 사람은 국제혁명에도 성실할수 없소. 내가 여기 와서 료해하고 종합한 제반 사실에 의하면 국제당에 무기명서한을 보낸 사람들은 쏘베트로선을 고집하면서 인민혁명정부로선을 접수하지 않은 종파잔당들이요. 그들은 국제당을 업어 김일성동지의 로선을 뒤엎으려고 꾀하였소. 천만에, 안되오! 김일성동지편에 진리가 있소. 만민이 따라야 할 위대한 진리가 있소! 어떠한 음모와 간계로도 우리 혁명의 지평선우에 떠오르는 저 진리의 태양을 막을수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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