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1 회)

제 5 장

11

 

그날은 하늘도 여느때없이 새파랗게 물들어보이고 날씨 또한 유난스럽게 화창하였다.

《허- 참, 날자가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갔군!》

반성위는 석별의 애석한 정을 이기지 못하여 쓸쓸한 미소를 머금고 근거지의 마을들과 연두빛이 짙어가는 가까운 산발들을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그답지 않은 퉁명스러운 소리를 한마디 하였다.

《넨장, 날씨두.…》

《허, 과연 이건 작별을 하기엔 아까운 날씬데…》

반성위는 한숨을 내쉬였다.

《아-참, 떠나자니 고향생각까지 겹쳐듭니다.》

《고향이 어디라고 했지요?》

《경상도…》

《참 노래에도 나오는 동래라지요?》

《여태 말을 안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여기 와서 꿈에 어머니를 두번이나 만났습니다. 아마 혁명의 승리가 확고히 내다보이니 어머니까지 만나보게 된것 같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그의 팔을 옆에 끼시며 껄껄 웃으시였다.

이것은 아침에 개울가의 세면장에서 있은 일이다.

장군님께서는 반성위와 겸상을 하여 아침식사를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식사후 무슨 일로인가 밖으로 나가고 방에 계시지 않았다.

반성위는 혼자서 행장을 꾸린 다음 이마에 손을 고이고 오래동안 앉아있었다.

떠나고싶지 않았다. 그는 지금에야 이전에 자신이 종종 체험하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 딱히 몰랐던 공허감 비슷한 감정이 어디에서 온것인가를 똑똑히 알수 있었다. 그것은 찍어말하면 국적상실자의 감정이였다.

그는 혁명을 한다고 만주와 중국, 일본과 도이췰란드, 프랑스, 로씨야로 돌아다니며 이국의 찬바람에 얼굴을 태웠었다. 리별을 앞둔 이 시각 자기가 이때까지 한 연설이며 운동이며 그 모든 열변들이 허황한것으로, 지어는 거짓으로, 위선으로까지 느껴지는것은 무슨 까닭인가.

반성위는 가슴을 아프게 찢으며 속으로 부르짖었다.

(나는 넋에서 알맹이가 쑥 빠져나가버렸댔어, 알맹이가!… 자기 조국과 민족의 구체적인 현실에 발을 붙이지 않고 허궁 떠서 범인류적인… 범세계적인 혁명을 운운한다는건 다… 죄다 공허한짓이다. 참된 혁명가의 자세가 아니다! 조선혁명의 현실을 모르면서 조선혁명을 열렬히 운운했으니 나는 도대체 무엇인가? 위선자인가, 행세군인가?)

반성위는 문득 코를 벌름거렸다. 새로 단 문에서 풍기는 송진냄새가 페부를 찌른것이다. 그는 그 송진냄새마저도 조국의 향기로 생각되였던지 욕심스럽게 들이켰다.

아동단학교쪽에서 종소리가 땡-땡- 하고 야무지게 울려왔다. 아이들을 교실로 부르는 종소리이다. 이제 새별눈이라는 별호를 가진 그 녀선생이 아이들에게 백두산, 두만강, 압록강을 가르칠것이다. 새별눈선생이 《백두산!》하고 고운 목소리로 부르면 아이들 눈이 모두 새별로 반짝이며 《백두산!》하고 따라외울것이다.

거듭하여 울려오는 종소리는 반성위의 가슴에 가득차서 크게 공명되면서 긴 여운을 끌었다.

(아, 저 소리!… 저 소리는 여기 근거지에서 태여나고있는 새 정권의 힘찬 고고성이 아닌가! 아, 그렇다. 나는 여기에서 조국의 미래를 본것이다!)

그는 이곳에 와서 한달남짓하게 있으면서도 밭이랑에 땀 한방을 떨구지 않고 료해하고 분석하고 평가하는 관조자의 립장에 있었다는것을 비로소 깨달았으며 그것이 못내 부끄럽게 여겨졌다.

이러한 뉘우침에 잠긴 그는 뜨락으로 나가 마당비를 들었다.

반성위는 마당을 쓸기 시작하였다.

이때 장군님께서 전령병에게 보꾸레미를 들려가지고 마당으로 들어서시다가 그를 보고 저으기 놀라시였다.

그이께서는 반성위에게로 다가가서 비자루를 앗으려고 하시였다.

《아니, 이게 웬일입니까?》

김일성동지, 무슨 신세를 갚자는게 아닙니다. 자신을 위안해보자고 이럽니다.》

《예?》

《저는 여기 와있으면서도 아무 보탬도 드리지 못했습니다.》

반성위는 마당을 쓸고 장군님께서는 깊은 생각에 잠기시여 그를 바라보시였다.

이윽고 그이께서는 반성위에게 큰소리로 물으시였다.

《훈춘에는 꼭 들렸다가 가야 합니까?》

반성위는 비질을 멈추고 그이를 바라보았다.

《그 시간이면 여기서 더 지내다가 가면 어떻습니까?》

《그랬으면 좋겠지만… 가야 하겠습니다. 외곡된 통보자료도, 무기명서한도 다 그쪽에서 들어왔습니다. 훈춘에 좌경바람이 좀 심하게 분것 같습니다. 그 사람들을 만나 회답도 주고 좀 정신이 번쩍 들게 하여야 하겠습니다.》

반성위는 이날 현당과 구정부, 유격대, 반일자위대에 들려서 작별인사를 하는데 두시간이나 걸렸다.

유격대에 들려서는 김창억이를 보고 이제 다시 나오겠는데 그때에는 씨름이랑도 한바탕 해보자고 을러메였다. 창억은 벙글거리며 기다리겠노라고 말하였다.

장군님께서 계시는 귀틀집앞에서 국제당파견원을 호위하여갈 한흥권중대장이 말 두필을 끌고와서 기다리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방에 들어가시여 전령병이 들고온 보퉁이를 풀고 새 유격대군복을 반성위에게 선물로 주시였다.

반성위는 기뻐서 어찌할바를 모르며 자기는 이 옷을 입고 국제당에서 일을 보겠노라고 하였다.

미소어린 안광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시던 장군님께서는 밖으로 나가 한흥권에게 말만 남겨두고 돌아가라고 이르시며 자신께서 친히 바래우겠다고 말씀하시였다.

뒤따라 나온 반성위가 깜짝 놀랐다.

《자리를 뜨면 되겠습니까?》

《괜찮습니다. 십리평까지만 같이 가면서 이야기랑 더 나눕시다. 거기 가면 훈춘쪽에서 우리 동무들이 마중나올것입니다.》

마반산뒤고개를 넘어서자 넓은 버덩이 앞에 펼쳐졌다.

명주필을 필필이 늘여놓은듯 산굽이들을 감돌며 흘러내리는 대왕청하는 해빛을 눈부시게 반사하고있었다. 어디를 보나 신록이 우거졌다.

노랗고 파란 꽃들이 대왕청하기슭의 풀밭을 수놓았다. 산기슭의 숲속에서 새들이 우짖고 풀벌레들의 울음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산들바람이 말갈기를 부드럽게 날리였다. 바람은 후끈한 기분과 함께 향긋한 꽃향기, 시크무레한 풀냄새와 시원한 물비린내를 실어왔다.

노루 한마리가 대왕청하기슭에서 물을 마시다가 머리를 번쩍 들고 이쪽을 빤히 보더니 산기슭쪽으로 냅다 뛰여갔다.

장군님께서 타신 말은 수걱수걱 걸어갔으나 반성위가 탄 말은 웬일인지 자주 투레질을 하였다.

들쑹날쑹한 달구지길은 개천을 옆에 끼고 뻗어나가다가도 산쪽에 가붙으면서 가파롭게 치달아오르기도 했다. 어떤데서는 말을 타신 장군님과 반성위의 그림자가 거울같은 물면에 선명하게 비껴들었다.

물면에 산천어가 떠올라 꼬리를 치면서 번져가는 파문속에 두 그림자가 한데 어우러졌다.

《에-참, 좋은 계절이 왔는데 떠나는군요. 한번 산천어죽이라도 푸짐히 대접한다던노릇이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싫어도 가야 할 길인데 어찌겠습니까. 저는 고향에 왔다가는 기분입니다.》

장군님께서는 말안장우에서 몸을 뒤로 약간 젖히시고 눈에 정기를 번쩍이시며 반성위를 돌아보시였다.

《이제 조국이 광복된 다음에 우리 고향 만경대로 찾아오십시오. 평양에서 한 이십리도 못되는 곳입니다. 꼭 오십시오. 우리 집 바로 앞으로 대동강이 흐르는데 숭어가 이런 놈이 펄펄 뛰여오릅니다.》

장군님께서는 팔뚝을 내흔드시며 호방한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그놈을 몇마리 잡아서 국도 끓이고 회도 쳐놓고 불같이 뜨끈한걸 몇모금 들이키면 지금의 이 로고들이 다 풀릴겝니다. 허허허… 몸이 거뜬해질겝니다. 어떻습니까? 오겠습니까?》

《가겠습니다. 꼭… 꼭 가겠습니다. 여기 와서 한흥권동무한테서랑 만경대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반성위는 그날을 그려보는듯 공상에 젖어 그윽하게 빛나는 눈으로 장군님을 우러러보았다.

장군님께서는 손으로 공기를 내리치시였다.

《에익, 참 가슴도 애잡짤해지는데 한바탕 달려보지 않겠습니까? 맘껏 냅다 달려봅시다!》

《예, 그게 좋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말고삐를 휙 잡아채시며 말배를 가볍게 차시였다. 군마는 흠칫 놀라는듯 하더니 뒤발로 땅을 차며 앞발을 힘껏 내디뎠다.

반성위의 말도 목과 가슴팍근육을 부르르 떨더니 질주의 쾌감에 휘말려드는듯 거침없이 내달렸다.

장군님께서 앞에서 내달리시고 반성위가 죽을내기로 뒤따랐다.

땅을 걷어차는 말발굽밑에서 달구지길이 뿌옇게 흐려지며 날아지나갔다. 말의 밤빛갈기가 세차게 물결쳤다.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귀전에서 광풍소리가 울부짖었다. 하늘과 땅, 산들이 마구 뒤흔들리고 강물이 곤두서는듯 했다.

반성위는 이름할수 없는 쾌감과 모험심에 자신도 알수 없는 함성을 내지르면서 고삐로 말을 죽자고 때렸다. 그는 바람이 입안으로 확확 쓸어들 때마다 헉헉 느끼였다.

뽀얗게 날아오르는 먼지구름의 저 앞쪽에서는 장군님께서 타신 말이 달리고있었다. 그이께서는 뒤를 돌아보시며 쾌활하게 소리치시였다.

《따라오시오-》

《따라갑니다-》

반성위는 고삐로 말궁둥이를 힘껏 때리고는 안장에 납작 엎드렸다.

말이 공기를 가르며 내달리는 소리가 태풍처럼 울부짖었다. 어느덧 반성위의 말은 장군님께서 타신 말옆에서 달리고있었다. 장군님께서 속도를 늦추신것이다. 보조를 맞추어 가지런히 서서 달리는 두 말의 발굽소리가 가락맞게 울리였다.

얼굴이 불깃하게 상기되신 장군님께서 반성위를 돌아보시며 활기에 넘친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승마술이 괜찮습니다!》

《저두 한때는 꽤 탔는데 이젠 안되겠습니다. 허허허.》

땀에 축축히 젖은 말들은 습보로 달리다가 발을 느릿느릿 옮겨놓기 시작하였다. 온 세상에 아늑한 고요가 깃드는듯싶었다. 십리평마을은 앞에 보이지 않았으나 저 멀리에 셋째섬으로 건너가는 갈림길이 바라보였다.

그 갈림길을 보자 반성위는 문득 석별의 정이 목구멍을 막는듯 꿀꺽 하는 소리가 나게 침을 삼키며 얼굴을 숙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외면을 하시고 그가 가야 할 훈춘쪽과 그뒤의 먼 하늘가를 깊은 생각에 잠겨 바라보시였다.

문득 반성위가 나직하고 석쉼한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내 고향을 떠나올 때 나의 어머니

문앞에서 눈물 흘리며 잘 다녀오라

하시던 말씀 아 귀에 쟁쟁해

 

장군님께서는 놀라시였다. 그가 언제 《사향가》를 배웠는지 알수 없다.

그의 폭이 넓은 걸걸한 목소리는 망향의 비감에 젖어 구슬프게 울리였다.

 

우리 집에서 멀지 않게 조금 나가면

작은 시내 돌돌 흐르고 어린 동생들

뛰노는 모양 아 눈에 삼삼해

 

군마들도 머리를 떨구고 뚜벅뚜벅 발걸음을 옮기였다.

장군님께서는 가슴이 저미여지는듯 하시였다. 또다시 이국의 하늘밑으로, 언제 돌아올지 기약할수 없는 길을 가는 그의 심중이 헤아려지시였다.

(아니다. 이대로 보낼수 없다. 그냥 이렇게 그 먼길로 떠나보낼수 없다.)

장군님께서는 그의 말고삐를 잡아쥐시였다.

《나는 이렇게 보낼수 없습니다! 우리 이길로 십리평에 들려보지 않겠습니까?》

장군님께서는 그를 데리고 십리평마을로 들어가 한 이틀쯤 함께 천렵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싶으시였다.

반성위는 허거프게 웃으며 말하였다.

《이거 정작 헤여지자니 어쩐지 감상적이 되였는가봅니다.》

그리고는 이내 결심을 내린듯 말고삐를 돌려채였다.

말을 몰아 대왕청하물을 힘차게 건너선 그는 저쪽기슭에 올라서 돌아섰다.

그는 장군님을 향하여 한손을 높이 들어보이며 목청껏 웨쳤다.

김일성동지! 안녕히 계십시오! 혁명 만세!》

장군님께서도 손을 들어보이시며 조용히 입속으로 뇌이시였다.

《리기동동지, 안녕히 가시오!》

얼마 멀지 않은 웃쪽에서 물새 한마리가 날개로 물면을 푸드득 엇비스듬히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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