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2 회)

제 5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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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창억은 어느 누구에게나 먼저 말을 건네는 일이 없었고 내내 울기오른 얼굴로 누워있었다. 끼니때마다 밥도 몇숟가락 들다가는 그만두었다.

어느날 밤 권일균이 초불을 들고 그의 자리로 주춤주춤 다가왔다. 그는 초대를 창억의 머리맡 어디엔가 붙여놓고 부상당한 팔을 아기다루듯이 조심스럽게 배앞에 옮겨놓으며 곁에 앉았다.

권일균은 묵묵히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시꺼멓게 꺼져들어간 권일균의 눈확언저리에 침통한 그늘이 비꼈고 얼굴전체가 어딘지 모르게 이그러진 인상이였다.

《너무 속을 썩이지 말라구. …》

권일균은 석쉼한 소리로 이렇게 속삭였다.

《나는 인간적으로 말하고싶네.… 장룡산동무가 온 날 우연히 잠을 깨게 되여 다 들었소. 남의 사생활비밀을 엿들었다구 나무람할수도 있겠지만… 비루하게 생각지는 말라구… 여기서는 내가 좌상이거던… 년장자는 그런것도 알아 조언도 줘야 하니까.》

창억은 대꾸없이 멍한 눈으로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자네가 이렇게 고민하니 나도 괴로와 잘수 없네.… 아, 우리가 다 지난날 시책을 잘못 썼던탓이네.… 너무 고심말라구. 크게 생각해야 되네. 혁명이 심각일로를 걷고있는 때에 혁명전사가 쬐쬐한 문제로 몸부림쳐서야 쓰겠나… 속이 정 풀리지 않으면 차라리… 여보게, 차라리 나를 때려주게, 내 뺨을 쳐주게.…》

창억은 외면하여 모로 돌아누웠다.

권일균은 한참 말없이 앉아있다가 자기 자리로 가서 차관에서 물을 따르는것 같더니 고뿌를 두손에 받쳐들고 다가왔다. 창억은 머리를 돌려 허리를 구부정하고 다가오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창억은 그가 동정을 보이며 지꿎게 달라붙는것이 역겨웠다.

《꿀물이네. 마시라구. 속이 후련해질거네.》

마시고싶지 않았다. 창억은 다시 외면하여 반대쪽으로 돌아누웠다.

권일균은 그의 등뒤에 말없이 앉아있더니 손을 팔우에 가볍게 올려놓았다.

《여보게 창억이, 흠… 체통만 컸지 졸장부라니까… 이제 아무리 고심한들 무슨 소용이겠나… 가버린 녀자가 돌아서겠나. 속담에 처도 돌아누우면 남이란 말이 있는데 녀자들속내는 몰라.… 혹 저쪽 물건너에 새 배우자가 생겼는네 알겠나.… 사람이란 그저 그래… 아예 단념하구 크게, 모질게 마음을 먹으라구. 툭툭 털구 일어나 보란듯이 싸워야 하네. 창억이야 젊겠다, 혁명군대원이겠다, 앞날에 녀성이 없을가? 여보게 창억이, 내 말을 듣나?》

권일균은 또다시 그의 팔을 건드렸다.

창억은 그의 손을 뿌리치며 벌떡 일어나앉았다.

《참견 마시오!》

권일균을 쏘아보는 그의 눈에서는 원망과 저주의 빛이 번쩍거렸다.

권일균은 놀라서 몸을 뒤로 젖혔다.

《아-니, 이 사람이?…》

《시끄럽소. 가서 자란 말이요!》

옆에서 잠을 깬 환자들이 그에게 소리쳤다.

《창억이!》

《무슨 말본때요?…》

《정신 나갔나?》

그 목소리들을 듣자 권일균은 노여움이 북받쳐올라 엉거주춤 일어나 상한쪽 팔을 싸쥐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창억은 분기를 터뜨려 방자하게 소리쳤다.

《나는 모르오! 모른단 말이요! 대접을 받겠으면 똑똑하게 처신하란 말이요!》

《동무!》

권일균은 발을 탕 구르며 소리쳤다. 이런 위혁에도 그의 웨침은 동강이 나지 않았다.

《당신이 무슨 근거로 남을 헐뜯느냐 말이요! 남의 량심에 흙칠을 하느냐 말이요! 다른 배우자한테 간걸 당신이 봤소? 그런 녀자는 아무렇게나- 말이 나가는대로 줴쳐도… 좋은가 말이요?》

그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자리에 마구 엎어졌다.

이때 림성실이 뛰여들어왔다. 그는 하얗게 빤 내의꾸레미를 가슴에 안고있었다.

내의꾸레미를 얼른 내려놓은 림성실은 시원하게 고운 눈에 겁을 머금고 이 사람, 저 사람을 둘러보았다.

《아니, 왜들 이래요? 아닌밤중에…》

권일균은 그의 물음에는 아랑곳없이 창억의 등뒤에 대고 욕설을 퍼부었다.

《괴롭고 분하다구 아무나 물구뜯는가? 내가 당초에… 동무를 동정 해나선것부터가 잘못이였소. 얼굴을 들구 좀 보라구. 온 입원실이 다 잠을 깼소. 그리구 이랬거나저랬거나 가버린 안해인데… 그렇게 내놓구 두둔하는 남자가 세상에 어디 있소?》

잠자코 있던 창억이 베개에 얼굴을 묻은채로 조용히 말했다.

《내… 다 잘못했소. 가서 쉬시오!… 앞으로 참견 마오. …참견만 마시오.… 당신만은…》

림성실은 얼굴이 해쓱해져서 권일균이곁에 다가섰다.

《아니, 무슨 일이세요?》

권일균은 숨을 씨근거리며 혼자소리로 뇌까렸다.

《수양이 덜됐소…》

《무슨 일인데요?》

권일균은 그를 흘깃 돌아보고는 비양조의 미소를 지었다.

《흠, 철학적인 문제요. 부녀회장동무, 참 잘 왔소. 동무가 어디 이 동무들 이야기를 듣고 판결을 내려보오.》

그리고 그는 자기의 구석자리로 무겁게 걸어갔다.

방안에는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어디선가 우뢰소리가 울려왔다. 방안공기가 떨렸다. 구석쪽 천장에서 흙모래가 우수수 떨어졌다.

얼마후 림성실은 밖으로 나왔다. 동남쪽하늘에서 마른번개가 치듯 시퍼런 화광이 펑끗거렸다. 큰배나무골을 흐르는 산골물은 여느때없이 소리를 솨-솨- 높였다.

림성실은 무거운 마음으로 오솔길을 따라 걸어내려왔다. 그는 오늘 부녀회일로 하루종일 앉을 사이 없이 뛰여다녔으나 아직도 할일을 채 못하였다. 요사이 김일성동지께서는 사령부에 계시지 않았다. 장군님께서 계시지 않는 사이에 부녀회원들은 그이께서 덮으실 여름이불과 요를 만들어놓자고 의논하고 이틀째 리재명회장네 집에 모여앉아 솜을 다듬고 바느질을 하였다.

그 이불과 요가 다 되였다면 장군님께서 오늘 밤에라도 돌아오시면 덮으실수 있도록 사령부에 올려와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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