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9 회)

제 5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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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보금이는 아버지를 따라 타막골의 숯구이막까지 어떻게 달려갔으며 숯구이막안에서 장룡산이를 비롯한 유격대원들과 무슨 말로 어떻게 인사를 나누었는지 몰랐다.

숯구이막안은 어둑시근하였다.

사람들은 안쪽에 누워있는 농민복차림의 청년곁에 둘러서서 아버지가 가져온 천과 솜으로 상처를 싸매느라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누구의 손인가가 쳐들고있는 불그스레한 등불이 그들의 일손을 밝혔다. 어느 누구도 문곁에 오도카니 서있는 보금에게 주의를 돌리지 않았다.

막안에는 옥도정기냄새가 지독하게 풍겼다.

사람들의 몸이며 다리들사이로 남편의 억세게 생긴 얼굴과 눈에 익은 커다란 손을 알아본 순간 보금이는 저도모르게 손을 입에 가져갔다.

가슴이 후둑후둑 방망이질하는 소리에 누구의 말소리도 가려들을수 없었다. 목이 타들었다. 그저 저들이 상처를 되는대로 대충대충 싸매는것 같고 무슨 일이 당장 일어날것 같은 조바심에 가슴에서 재가루가 폴싹폴싹 일었다.

그는 보꾸레미를 헤덤비며 풀어 겹저고리안이며 치마를 와락와락 찢어가지고 사람들의 뒤로 다가갔다. 장룡산이 그것을 얼른 받았다.

사람들이 남편을 담가에 눕혀가지고 맞들고 나올 때 보금이는 와락 다가들어 남편의 머리밑에 보꾸레미를 베개처럼 밀어넣어주다가 끝내 흐느낌소리를 터뜨리고말았다.

담가는 그에게 더 어쩔 틈도 주지 않고 사정없이 앞을 지나갔다. 이마에 붕대가 칭칭 감긴 남편의 얼굴은 이전보다 더 애되여보이고 몸도 졸아들어보였다.

바깥은 벌써 어둑해졌다.

담가는 지난 이른봄 장군님께서 걸으셨던 그 길을 따라 타막골어귀를 빠져 두만강가로 향하였다.

보금이는 사람들의 맨뒤에서 허둥지둥 따라갔다. 그의 온 마음은 담가에만 쏠렸다. 담가는 잡관목숲속을 굽이굽이 누벼나간 가파롭고 험한 길을 따라 조심조심 내려갔다. 사람들은 모두 담가에 달라붙었다. 앞에 선 사람들은 담가가 기울지 않도록 채를 어깨에 메였고 뒤에 선 사람들은 두손으로 채를 맞들었다. 앞에서 뒤걸음질치며 두손으로 담가채 끝을 쳐들어올리는 사람도 있었다. 나무가지들이며 풀넝쿨들이 담가채에 시끄럽게 걸리는가 하면 거미줄이 사람들의 얼굴에 덮씌웠다. 모두 담가가 들추지 않도록 가락맞게 발을 옮겨가다가도 나무뿌리나 길바닥에 내민 돌부리를 차서 자주 비칠거리군 하였다. 그때마다 담가가 기우뚱거리며 부상자의 다리며 머리를 들추었다. 그것을 보는 보금의 등골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담가가 펑퍼짐한 길에 나섰을 때 앞에서 누군가의 거치른 목소리가 울렸다.

《전장원 그 동무가 정신이 쑥 빠졌다니까.》

장룡산의 목소리이다.

《저보구 누가 옥도정기를 구해오랬는가? 금시 기습이 있어놔서 꺼떡하다가는 의심을 사겠는데 가만 배겨있지 못하구. 사람은 듬직해뵈는데 그 모양이거던.》

《아까 돌려보내면서 톡톡히 얘기해줬습니다. 깊이 새겨듣습디다.》

《깊이 새겨듣구 뭐구가 있는가. 제가 로출되면 온성조직이 다 드러나는 판인데 여태 그걸 몰랐대?》

《그래서 사령관동지께서 직접 나와 꾸려주신 조직이구… 지금도 얼마나 걱정하시는지 아는가고 오금을 박아놨더니 집에 배겨있겠다고 했습니다.》

《허참…》

담가채를 맞들고 뚱기적거리며 걸어가던 윤치석은 그들이 주고받는 말을 듣자 목안이 칼칼하게 말라들었다.

(전선생이 무사해야 되겠는데… 이걸 어쩐다? 기습이 있자 저 애가 간데온데없이 사라지면 저놈들이 진짜 공작원으로 여길게 아닌가. 그러지 않아도 오라가라 하며 면주재소에까지 불러다가 심문을 하던 놈들인데… 그럼 저 애를 마차에 실어온 전선생은 당장 혐의를 들쓰게 된다. 나나 로친이야 별 고생을 해도 일없지만 저 전선생만은… 어쩐다?…)

담가는 강뚝을 넘어섰다.

사람들은 찬기운과 습기를 풍겨올리며 거창하게 숨쉬는 두만강을 보자 흥분하여 조심성을 잃어버렸다. 걸음들이 빨라졌다. 강기슭에서는 바위에 비끄러맨 나루배가 출렁대는 물결우에서 불안스럽게 기우뚱거리고 저기 강복판쪽에서는 엄청난 위험을 품은듯 한 젖빛안개가 굼실굼실 퍼져오르고있었다. 하류와 상류쪽에서 짧은 동안을 두고 총소리들이 울려왔다. 그 야무진 총소리가 강량안의 산벼랑들에 부딪쳐 와르릉와르릉 울린다.

겁에 질린 국경수비대놈들이 헛총질을 하는것인지, 무슨 기미를 느끼고 경계신호로 쏘는것인지 알수 없다. 사람들은 갑자기 초조감에 휩싸여 가락맞게 옮겨짚던 발걸음들이 흐트러졌다. 담가가 몹시 기우뚱거리며 아래로 걷잡을수 없이 밀려내려갔다.

윤치석은 그들이 사위를 엎질러놓을가봐 조마조마해져 다른 생각은 다 버리고 담가채만 두손으로 꽉 붙잡고 따라내려갔다.

배사공로인은 담가가 배에 오르지 않았는데도 바위로 뛰여가 바줄을 헤덤비며 풀었다.

사람들은 담가를 멘채 허리까지 치는 강물속으로 들어가서 부상자를 배에 맞들어올렸다. 그들의 머리우에서는 물새가 외마디소리를 피타게 내지르며 날아돌았다. 처절썩 배전을 두드리는 물소리, 튀여오르는 물방울… 어느새 사공은 고물에 훌쩍 날아올라 노를 물속에 철썩 박았다. 그 바람에 튀여오른 물갈기가 윤치석의 얼굴을 후려쳤다. 그는 드센 물살의 차거움과 석별의 애석한 정이 가슴을 찢어 으흐흑… 하고 흐느꼈다.

그러나 어금이를 꽉 악물고 배를 지그시 밀어주며 딸을 찾았다. 사돈님에게 인사말이라도 잘 전하라고 당부하고싶어서였다.

그런데 배우에 탄줄 알았던 딸은 사람들속에 보이지 않았다.

보금이는 강뚝 저쪽에서 외롭게 설레이는 오리나무를 붙안고 서있었다.

그에게로 창황히 달려간 윤치석은 다급히 소리쳤다.

《왜 이러구있니?》

보금이는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강쪽을 바라볼뿐 대답을 못하였다.

나무가지들이 몸부림치며 이슬이 화라락 떨어져 로인의 몸이며 잔등을 적시였다.

떠나지 못하는 딸의 심정이 가슴에 뭉클 안겨들어 목이 꽉 멘 로인은 부들부들 떨며 아무말도 못하였다. 그는 그저 허물어져내리는 가슴을 두손으로 움켜잡고 허망한 눈길을 강쪽에 돌릴뿐이였다.

기슭에서 멀어지는 배의 고물에 누구인가 엉거주춤 서서 빨리 오라고 재촉하는듯 이쪽을 향하여 손을 젓고있었다.

하늘에서는 우- 우- 하는 굉음이 울리며 바람이 일었다. 안개가 무섭게 파도쳐오르며 산산이 흩어졌다. 흩날리는 안개속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배는 어스름에 녹아들어 희미하게 어른거리고 노젓는 소리만이 바람결에 간간이 들려왔다. 삐꺽… 삐꺽… 삐꺽…

그 구슬픈 소리는 저 흩날리는 안개속이 아니라 눈물이 가랑거리는 보금의 눈에서 울려나오는듯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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