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1 회)
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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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지의 산야에는 바야흐로 봄이 다가왔다.
얼음장밑에서 돌돌 흘러내리는 눈석임물의 소심한 속삭임소리로부터 시작한 봄은 만물중에서도 제일 느리고 둔감한듯싶은 황소의 후각까지 못 견디게 자극하였다. 달구지를 끌고가던 황소가 앞발을 뻗딛고 서서 부풀어오르며 눅눅해진 땅에 코를 박고 코김을 세차게 내불며 무슨 냄새인가를 욕심스럽게 들이키는 일이 자주 있었다.
겨우내 마른 짚이나 콩깍지만 씹어온 그 미물은 땅속에서 올리미는 길짱구나 민들레싹의 향기롭고 싱그러운 냄새에 얼이 나가 주인의 욕질과 매질을 마다하지 않고 길가의 파릿한 반점에로 목을 내뻗치는것이였다. 봄은 길을 가는 황소가 매를 제일 많이 맞는 계절인가싶다. 근거지의 농군들은 희망에 젖어 농쟁기들을 고간에서 끌어내고 처녀들은 다래끼를 안고 버덩으로, 산기슭으로 내달렸다.
그무렵
이 책에는 조선혁명군과 항일유격대가 피어린 투쟁의 길에서 쌓은 경험들에서 흘러나오는 귀중한 명제들과 작전, 전투조법들이 수록되여있었다. 부피가 얼마 두텁지 않을뿐아니라 저작명치고는 너무도 소박한 그 로작은 사실상 유격대의 일과생활준칙에서부터 유격전의 제반원칙과 구체적인 방도까지를 포괄하는 참신한 교과서였다.
《유격대동작》은 왕청현내의 유격부대들뿐아니라 훈춘과 연길, 황룡일대에서 활동하는 유격부대들에도 배포되였다.
《유격대동작》은 그 내용의 진리성과 독창성으로 하여 배포되는 곳 마다에서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
각 유격부대들에서는 그 책을 빼앗아가며 돌려읽었다. 《유격대동작》을 해설하는 강습들이 조직되였다. 지휘관들과 초급지휘성원들은 《유격대동작》의 전문을 베껴쓰고 밑줄들을 그어가며 그 내용을 학습하였다.
훈춘에서부터 왕청과 연길을 지나 화룡땅에 이르는 광활한 유격구들에 산재한 부대들에서는 《유격대동작》에서 밝혀진 준칙들에 따라 전투훈련들을 시작하였다. 그 과정에 구령치는 법과 일과표, 모든 제식행동들이 하나로 통일되여 혁명군의 새로운 면모가 갖추어졌으며 여러가지 양상의 전투들에서 적은 병력으로 강한 적을 타승할수 있는 유격전법들과 묘술들이 습득되였다.
그무렵
전광식이도 연길지방으로 떠나갔다. 그리하여 남북만진출후 여기 근거지로 들어왔던 18명의 인원들은 거의다 떠나가고
모든 유격근거지들에는 항일유격대를 기둥으로 하여 그 두리에 반일자위대(적위대가 반일자위대로 개편되였다.)와 청년의용군을 망라하고 전체 인민대중을 동원할수 있는 전인민적방위체계가 마련되여갔다. 시야가 멀리에까지 훤히 트인 높은 봉우리들에는 망원초를 두고 그밑에 바닥초, 마을에는 받을초, 문전초들을 세워 신경선처럼 예민한 감시체계가 조직되였다. 적이 무시로 출몰하는 지점들에는 잠복초를 매복시키고 밤이면 각 초소들사이로 무장순찰대가 돌았다.
이 봄에
마촌의 새벽은 하늘을 찌르는듯 한 나팔소리와 그에 뒤따르는 기상소리들로 밝아왔다.
허리에 곤봉을 차고 배낭을 멘 아동단원들은 등산훈련에 떨쳐나서 뒤산으로 뛰여오르고 자위대원들과 청년의용군들은 체조를 하고 제식훈련을 벌리였으며 유격대원들은 들썩하게 전투훈련을 시작하였다. 온 골안이 이른아침부터 지휘관들의 구령소리와 대원들의 동작소리로 들썩들썩하였다.
가난에 쪼들리고 절망에 시달려 봄이 언제 오는지도 모르던 산촌아낙네들이 이 봄에는 일찌기 개천으로 나가 겨우내 묵은 빨래를 하며 물방치소리로 새들을 날리였다. 처녀들은 메꽃으로 머리태를 장식하고 양지쪽산기슭에서 민들레며 달래를 캐다가 어느 유격중대 꼬마전령병이 날려보내는 버들피리소리에 정신을 파는가 하면 제김에 까르르 웃으며 냅다 도망쳐가는것이였다. 진정 봄다운 봄이 왔다. 이 봄에는 모든것이 따뜻하고 아늑하고 부드러운 정을 풍기였으며 희망과 희열에 차넘치였다.
이즈음
토지분여대장과 농민호구조사부가 든 가방을 안은 리재명, 토지부의 안경쟁이서기, 측량용으로 쓰는 새끼퉁구리를 멘 김진세가
토지개혁준비위원회를 무을 때에도
일제와 그 주구인 친일지주들의 토지를 무상으로 몰수하여 땅이 없거나 적은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분배하는것이 그 원칙이였다.
토지에 대한 분배는 농호단위로 하지 말고 로력수를 기본으로 하여 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그리하여 로력자들을 빠짐없이 료해장악할것이며 주민들에 대한 이 모든 료해자료들은 주민호구조사부를 작성하여 등록하여놓아야 하였다.
토지에 대한 조사는 몰수하여 분배할 농경지를 정확히 정하고 그 평수와 토질을 과학적으로 료해장악하는것이였다.
토지는 비옥도와 위치, 여러가지 자연조건에 따라 1등전, 2등전, 3등전으로 분류하도록 하시였다.
누구에게 1등전을 주고 누구에게 2등전을 주겠는가? 3등전을 받은 사람은 섭섭해하지 않겠는가? 토지분배는 그야말로 복잡하고 골치아픈 문제들을 수없이 제기할수 있으나 유격근거지와 혁명의 계급적진지를 강화하는데 기본을 두면서 농민들의 전반적리해관계를 깊이 고려하도록 하시였다.
그리하여 1등전은 고농과 빈농, 항일유격대가족과 혁명렬사유가족들에게 우선적으로 주고 3등전은 1등전이나 2등전에 비하여 비옥도가 낮으므로
평수를 늘여 더 많은 땅이 차례지도록 안을 세우라고 하시였다. 구체적인 분배대상자를 놓고 그에게 2등전을 줘야 하는가 3등전을 줘야 하는가,
어느 위치에 있는 밭을 줘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서는 불같은 론의들이 벌어지고있었다. 물에 적신 수건으로 머리를 질끈 동인 준비위원들은 참을성있게
수판알을 튕기다가도 이렇게 힘들줄은 몰랐다고
진지하고 열정적인 론의의 결과 분배대상자와 토지의 등급이 결정되면 그것이 곧 토지분여대장에 등록되였다. 그러나 뜻밖의 일이 도처에서 생기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