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8 회)

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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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바깥날씨는 쌀쌀하였다.

홍병일이 든 동기와집으로 찾아갔다. 그 집 마당에서는 가라말이 안장을 얹은채로 구유에 주둥이를 박고 조짚을 서걱서걱 씹고있었다.

정지문밑의 개구멍에서 검둥이가 머리만 내밀고 이 불청객을 향하여 왈왈 하고 짖어댔다. 그것에는 아랑곳없이 궁둥이살을 푸들푸들 떨며 먹새질만 하던 말이 인기척에 머리를 번쩍 쳐들었다.

말은 퀭하니 뜬 시커먼 눈으로 권일균을 돌아봤다.

권일균은 손을 뻗쳐 자갈띠를 잡고 말의 머리를 번쩍 쳐들었다. 그는 말이마에서 번쩍이는 구리장식이며 울긋불긋한 안장밑깔개를 한눈에 살펴보고는 쓰겁게 웃었다.

(헝, 이건 만청기병이로군!)

권일균이 방에 들어서니 이마에 상처자국이 험상스러운 박두남이 말채찍손잡이로 턱을 고인채로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방안에는 향긋하고 시큼한 냄새가 떠돌았다. 권일균은 홍병일의 손끝에 묻은 시꺼먼 먹물을 본 다음에야 방안에 떠도는것이 참먹냄새임을 알았다. 홍병일은 무슨짓을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얼굴이 해쓱해져서 눈길을 벽쪽에 돌리며 손끝의 먹물을 닦고는 필갑같은것을 들고 얼른 아래방으로 내려갔다.

박두남은 어디서 주어입은듯 한 낡은 밤색가죽외투의 앞섶을 헤쳐놓으며 앉음새를 편안하게 가지였다. 그의 치째진 눈에 야유와 적의의 빛이 번뜩이였다.

《안녕하오!》 하고 권일균이 먼저 인사말을 하였다.

《안녕하시오?》 하고 박두남이 메아리처럼 받아외웠다.

《허, 내가 이거 못 올데를 온게 아니요?》

《아니요, 당신을 찾아가려던 참이요!》

권일균은 어째서? 하고 들이대는듯이 그의 앞에 마주앉았다.

박두남은 그에게서 역겨운 냄새라도 풍겨오는듯 몸을 뒤로 비스듬히 젖히며 말채찍끝으로 코밑을 슬슬 쓸었다. 그의 눈에 신중한 빛이 어리였다.

《권선생, 젊어졌수다! 한때는 칼 맑스를 숭상하여 장발을 하더니 지금은 장발과 함께 그 숭배심도 줴버렸는가요? 신앙이 바뀔 때마다 머리단장을 달리하니 수고가 이만저만이 아니겠수다.… 나는 여태까지는 녀자들… 계집들만이 머리단장을 자꾸 바꾸는줄로 알았지요.》

권일균은 얼굴이 재빛으로 변하였으나 눈에는 재미있어하는듯 한 미소를 그리였다.

《그래서?》

《나한테 권선생같은 처세술이 있다면 며칠안팎에 천하를 휘여잡겠소. 거 그런 가금이 있지요. 게사닌가? 아니, 칠면조지. 그놈 새는 매일아침 볏을 새로운 색으로 물들이지만 비둔한 몸에 비해 날개죽지가 작아 높이 날지 못한다오. 돼지처럼 땅바닥을 게다니지요. 그래두 저- 고기맛은 달달해서 서양사람들은 카- 술을 할 때면 칠면조료리를 으뜸으로 친다는데 권선생은 염라국에 무엇으로 등록이 됐을가요?》

선뜩한 살기가 방안공기를 떨게 하였다.

권일균의 눈아래꺼풀에 경련이 스쳐지나가는것을 본것은 방안에 들어선 홍병일이뿐이였다.

《박동무, 내 분을 터치고싶은 모양인데 삼가하오. 피차간에 그게 좋을게요.》

권일균은 바지주머니에 슬며시 손을 넣었다. 그안에서 격철이 떨어지는듯 한 잘칵하는 소리가 났다. 이 찰나 홍병일이 몸을 날려 그의 팔을 붙잡았다.

《잠간만!》

권일균은 팔을 홱 내휘둘러 그를 뿌리치고 벌떡 일어나 몸을 와들와들 떨며 박두남을 향하여 회파람같은 소리를 내질렀다.

《서라! 일어서라! 여기서 나가라- 당장 떠나-》

홍병일은 그를 붙안고 완력으로 구석쪽에 밀어갔지만 분노한 권일균의 절규의 웨침만은 막을수 없었다.

《내- 내- 네놈이- 못된 독설가인줄은 알았다만… 누구앞에서- 나이로 보나 혁명년조로 보나 감히 네가-》

홍병일은 기겁을 하여 뛰여일어난 박두남을 다른쪽구석으로 밀어가며 떨리는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이러지들… 이러지들 마시오!》

그는 대각선상의 량끝에서 노려보는 두 적수의 불같은 눈길이 몸을 지지는듯 발작적으로 떨면서 그들을 번갈아 돌아봤다.

《그만… 그만… 누가 보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가라앉히시오! 제발…》

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박두남은 권일균의 면상에 대고 손가락총질을 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 이 사람에게… 홍동무 한사람에게 책임을 다 덮어씌우고 자기는 슬쩍 빠져나간 당신이 할 말이 있는가? 여기서 벌렸던 쏘베트시책치구 당신과 관련되지 않은 일이 있는가? 남을 희생시켜 그 피를 밟고 나가며 처세의 길을 닦는게 당신네 엠엘파의 수법이요?》

권일균은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이제는 류혈이 불가피한것으로 되였다. 홍병일은 얼굴이 백지장처럼 되였다. 그러나 뜻밖에도 권일균이 자중하려고 마음먹은듯 무거운 한숨을 내쉬였다.

《여보게 친구, 지금이 어디 파벌을 내휘두를 땐가? 쏘베트로선이 뒤집혀져 다같이 실업자처럼 된 처지에 조금이라도 분별이 있으면 우리가 어떻게 처신하며 무엇을 해야 되겠는가를 생각하게. 친구, 자중하는게 좋아!》

그는 방에서 나왔다. 봄기운이 스며들기 시작하여 투명하지 않고 푸르스레하게 흐린 하늘이 그를 내려다보았다.

권일균은 목단추를 끌러놓고 큰숨을 몇번 들이키고나서 가라말을 흘깃 돌아보고는 마당에서 나왔다.

그는 발이 가는대로 마을길을 걸어갔다. 가슴이 번거로왔다.

저들이 무슨 심상치 않은 수작질을 한것 같은 의심스러운 생각이 가슴을 떠나지 않았다.

이때 아동단학교쪽에서 수십명의 아이들이 길이 터지게 달려나오며 《야-》 하고 환성을 올렸다. 아이들은 가슴마다에 꽃다발을 안았다. 소나무가지에 종이꽃을 붙인 꽃다발이다. 아이들의 뒤에서 검정치마저고리를 입은 녀선생이 목에 두른 자주색목도리를 바람결에 날리며 달려오고있었다. 박현숙이였다.

《조직책동지! 모르세요? 유격대가 돌아와요! 장군님께서 돌아오셔요!》

박현숙은 발기우리하게 상기된 얼굴에 웃음을 활짝 피우며 이렇게 부르짖었다. 그 녀자의 곱게 뜬 눈이 유난히 시원하다. 그 눈은 사람의 가슴에 살뜰한 정을 가득 안겨주는듯싶으면서도 정의롭고 순결하고 오돌찬 그 무엇이 동자의 깊은 곳에서 발랄하게 빛발쳐나오는듯 하여 그지없이 인상적이다.

새별눈… 그사이 아동단학교선생인 그를 사람들은 이렇게 부르게 되였다.

《같이 가자요! 모두 마중을 나가요!》

박현숙은 기쁨에 겨워 처녀애처럼 동동 뛰여오르는것 같다.

《아- 나두 알고있소… 가지… 먼저 가오.》 하고 권일균은 얼버무렸다.

그는 환희의 선풍이 휘몰아쳐 지나간 길바닥에 홀로 서있었다.

뿌옇게 흐려진 눈으로 아이들과 한데 어울려서 떠들썩하게 달려가는 박현숙의 뒤모습을 바라보는 권일균은 가던 길을 내처 가지도, 그들을 따라 달려가지도 못하고 우두커니 서있었다. 저렇듯 웃음꽃에 휩싸여 달려가는 생동한 삶을 보노라니 시기심같은 감정이 끓어올라 사고력이며 운동기능에 마비가 왔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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