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6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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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엌앞의 주인아낙네는 어디로 내뺐는지 보이지 않았다. 국수분틀을 붙잡고있던 주인만 바지괴춤을 잡고 몸을 뒤로 젖히며 마음껏 웃어댔다.

《하하… 흐아흐아!…》

오판단이는 짐짓 어리둥절해진듯 한 얼굴로 두리번거렸다.

누구인가 뒤쪽에서 그의 바지띠를 쥐고 잡아끌었다. 그 바람에 그는 분틀채에서 떨어졌다. 돌아보니 박태화소대장이였다.

박태화와 한설봉로인은 정지칸에서 하도 숨이 넘어가는 웃음소리가 나서 아까부터 문밖에 웅크리고 앉아 안을 들여다보고있었던것이다.

《나오라구, 그만하구 나오라구. 동무를 붙였다간 국수를 다 망쳐놓고말겠어.》

박태화가 이렇게 말하자 한설봉은 도리여 그를 말렸다.

《원, 놔두시오. 웃음절반에 국수절반을 말아놓으면 더 좋지 않겠습니까. 옛날 무인들은 퉁소소리를 안주삼아 술을 들었다는데, 허허허…》

이렇게 말하는 로인은 벌겋게 상기된 얼굴에 능청스러운 웃음을 담고 오판단이를 대견하게 쳐다보았다.

밖으로 나온 그는 뒤덜미를 썩썩 문지르며 벌쭉거렸다.

《허,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니까.》

로인은 엉거주춤 일어서며 그의 잔등을 뚝뚝 두드렸다.

《우리 군대 수고했네. 이 마을에 오래간만에 웃음판이 벌어졌네. 허, 세상에 침술하구 사람웃기는 일처럼 선한 재간이 있나.》

로인은 아득한 옛날에 짓밟힌 동심이 되살아오르는듯 영채가 빛나는 눈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여보게 군대, 님자 고향은 어딘가?》

오판단은 뜻밖의 물음이라는듯 눈이 휘둥그래졌다.

《고향이요?》

《엉.》

《없어요.》

《아니, 허, 이게 무슨 소린가. 부모님들이야 계셨겠지?》

《할아버지, 사람이 바람속에서 나올수야 없지요. 어렸을 때 마을사람들은 저보구… 어느 비가 몹시 오는 날 밤에 너를 다리밑에서 주어왔네라, 집에 안아다가 아래목에 눕혀놓으니 너무 울어 목이 꽉 쉬여서 울지도 못하고 그저 비를 맞은 강아지새끼처럼 오돌오돌 떨기만 하더라.… 이렇게 말해줬지요.

제 양부모들은 조선팔도를 다 돌아다니며 살아보자구 아득바득거리다가 비명에 가버리고 저만 류랑민들속에 흘러들었지요. 북간도에 들어가서 지주집 양몰이를 하다가 유격대총소리를 듣고 뛰쳐났지요.》

《음…》

《할아버지, 이렇게 자라나다나니 팔도강산이 다 제 고향인셈이지요.》

《에이구, 소시적부터 끔찍한 고생을 했구만.》

《저만 겪은 고생이겠습니까. 누구나 다 매일반이지요.》

《하긴 그러이.》

로인의 눈에는 물기가 어리였다.

이때 앞집에서 회의를 끝마치신 장군님께서 유격대지휘관들, 지하조직책임자들과 함께 밖으로 나오시였다. 지하조직책임자들의 얼굴들에는 흥분이 어려있었다.

박태화가 그이께로 다가가서 마을에서 유격대를 위하여 국수를 누른다고 알리였다.

《살림형편들이 어렵겠는데 국수까지 누르게 해서야 되겠소?》

장군님을 모시고 유격대를 맞이한 이런 경사날에 가만있을수 있겠느냐 들구일어나는데 도무지 막을수 없었습니다.》

《인민들의 지성이 그렇다면 너무 옹졸하게 사양하지 맙시다. 그래 동무들은 올방자를 틀고앉아서 대접을 받을 생각만 하고있었소?》

장군님께서 이렇게 선선히 물으시자 박태화는 활기를 띠였다.

《웬걸요! 나무도 패주고 오판단동무랑 나서서 분틀도 거들어줬습니다.》

《허, 동무들은 그저 막 명절기분이구만. 하긴 참 경사는 경사요. 조국땅에 나와서 국수까지 눌러먹고 간다… 괜찮소!》

사령관동지, 메밀국수입니다!》

《이 고장사람들은 감자국수를 누르지 않소. 무산사람들은 감자국수를 좋아하지만 경원사람들은 메밀국수를 더 좋아한다고 했소.》

사령관동지께서는 어느쪽을 더 즐겨하십니까?》

《나 말이요? 허허허… 나야 명색이 국수면 다 좋아하지!》

저 아래집들쪽에서 유격대원들과 아이들이 한데 어울려서 부르는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장군님께서는 그 노래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이시다가 한창 바삐 돌아치며 국수를 누르고있는 뒤집쪽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뒤집마당에서 한설봉로인이 달려나오며 장군님을 반겨맞았다.

《로인님, 마을에서 너무 크게 잔치를 차리는게 아닙니까?》

《웬걸요. 국수를 좀 누릅니다. 이런 날에야 소를 잡고 떡을 쳐야 옳겠는데 하도 구차한 마을이다나니 그저 이렇습니다.》

로인은 가슴팍이며 무릎에 묻은 꿩털을 털며 말했다.

장군님께서는 밝게 웃으시였다.

《국수면 대단하지 우리가 무슨 대접이나 받자고 왔습니까?》

얼마후 유격대원들과 지하혁명조직책임자들은 여러 집에 나뉘여서 인민들의 지성어린 국수대접을 받았다.

장군님께서는 한설봉로인과 겸상을 하시였다.

류다섬인민들의 뜨거운 정이 가슴에 젖어들어 국수를 먹고난 사람들의 얼굴은 취기라도 도는듯 하나같이 불깃불깃해졌다. 사람은 술에만 아니라 인정에도 취하는가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느 집에서나 국수상을 물린 사람들은 취흥이 도는듯 롱말들을 주고받으며 껄껄 웃어대였다.

장군님께서 마당에 나오신 다음 한설봉로인은 그이께 이런 청을 드리였다.

장군님, 듣자하니 저 물건네 훈춘이나 왕청땅에는 혁명정부들이 섰다는데 여기 나오셨던김에 우리 류다섬에두 정부를 하나 세워주고 떠나주십시오.》

그이께서는 넌지시 웃으며 로인을 보시였다.

《하, 그거 참 좋은 의견입니다!》

장군님께서 거느리고오신 대원들중에서 한사람만 남겨두고 가시면 류다섬정부를 잘 운영해나가겠습니다.》

《자, 그럼 아무나 좋으니 한명 고르십시오!》

가슴을 쾅쾅 들이치는 호방한 롱말이였다. 빙 둘러서서 벙글거리고있는 유격대원들의 얼굴들에 보일듯말듯 긴장의 빛이 어렸다.

로인은 웃는 눈으로 유격대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둘러보다가 오판단의 팔을 꼭 붙잡았다.

《이 동무를 주십시오!》

순간 오판단은 얼굴이 새빨개지며 펄쩍 뛰여올랐다.

《못합니다! 아니, 이거 저는, 하하하… 못합니다!》

그는 로인을 뿌리치고 뒤걸음질쳐 도망쳐갔다.

로인은 두팔을 내뻗치며 그를 불렀다.

《아니, 여보게! 섭정관으로… 섭정관으로 모시겠네.》

대원들은 그 소리에 더 큰소리로 웃어댔다. 사람들은 오판단이와 로인이 노는 품이 우습기도 하거니와 그저 이 즐거운 날에 한껏 웃고싶어서 더 웃었다. 로인도 손등을 눈에 가져가며 어깨를 들썩거렸다.

장군님께서도 머리를 설레설레 저으시며 즐겁게 웃으시였다.

《허허허…》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여 벙글거리던 김중권은 물건너 저쪽 두만강연안기슭으로 줄줄이 뻗어내린 조국의 희끗희끗한 산발들을 바라보았다. 이제 저 산발들을 따라 온성과 경원을 비롯한 넓은 지역에 반유격구들이 꾸려질것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에게는 문득 반유격구형성문제때문에 권일균이와 론쟁했던 일, 최형준이와 여러 사람들이 우려했던 일 그리고 자기자신이 사령관동지께서 나오지 말기를 간청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사령관동지께서 나오시지 않았더라면 어림도 없을번 했다. 오직 사령관동지의 권위와 의지에 의해서만 국내에까지 반유격구가 꾸려질수 있게 되였다!)

김중권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휩쓸어오는 강바람에 그의 백포자락이 펄럭펄럭 소리를 내며 나붓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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