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5 회)

제 3 장

6

(1)

 

한편 뒤집에서는 큰 경사날을 맞은듯 사람들이 모여들어 벅적 끓어번졌다.

굴뚝이 터지도록 연기가 피여오르고 열어놓은 정지문과 방문에서는 뜬김이 무럭무럭 밀려나왔다.

정지칸에 자욱히 서린 뜬김속에서는 녀인들의 그림자가 언뜻거리고 다급한 부름소리, 웃음소리, 즐거운 말소리들이 들렸다.

《아재, 조선이 인차 독립이 된다우?》

《소문에만 듣던 장군님께서 조선땅에 나왔으니 더 물을게 있나요!》

《장작이 잘 붙소?》

《예, 불길이 황황 소리를 내요.》

《에이구, 나라가 독립이 된다니 불도 잘 붙고 물도 이렇게 설설 끓는구나. 하하하…》

《호호호…》

온 마을이 달라붙어 유격대를 대접할 국수를 누르는것이다.

한설봉로인이 전령병 리성림이를 구슬려 장군님께서 국수를 즐기신다는것을 알아내여 귀띔소리 몇마디로 온 마을을 불러일으킨것이였다.

앞집에서 회의를 하고계시는 장군님께서는 이 일을 전혀 모르고계시였다.

한설봉로인은 마당에서 박태화와 마주앉아 꿩털을 뽑고있었다. 로인의 옆에는 열두어마리의 꿩이 딩굴고있었다. 옹노를 놓아 잡아둔것이다.

팔을 걷어붙인 로인은 익숙한 솜씨로 꿩털을 뽑았다. 박태화는 칠색무늬가 아롱진 장끼의 꼬리를 몇개 웃주머니에 꽂고 앉아서 털을 뽑다가는 로인의 날랜 솜씨에 경탄의 눈길을 흘끔흘끔 던지였다.

담장을 넘어온 바람이 마당을 스칠 때마다 꿩털들이 나비떼처럼 날아올라 박태화의 머리와 어깨에 내려앉는가 하면 눈앞에서 나풀거렸다.

박태화는 손을 홱홱 저으며 자리를 옮겨앉기도 했다.

한설봉은 그 모양이 우습고 재미나서 눈가의 주름살에 미소를 담았다.

《맘을 누긋하게 먹고 가만히 있으라구, 화를 내면 더 기승을 부린다니까.》

《허, 요것들이 나하구만… 할아버지한테는 그러지 않는데.》

《내앞에서 나풀대봤댔자 재미없으니 그러지요.》

《할아버지, 여기서 꿩이 많이 잡힙니까?》

《어떤 해에는 들을 덮는다우,… 육수물이야 꿩국물이상이 있소.》

박태화는 더욱 신이 나서 손을 재게 놀리며 털을 뽑았다. 그는 손을 재게 놀릴수록 엉뎅이를 하늘로 쳐들었다.

이때 정지문의 김속에서 오판단이 뛰여나왔다. 그는 웃도리를 벗어제꼈다.

코등과 볼에 국수가루가 허옇게 묻었다.

덤벼치며 달려나오던 오판단은 꿩을 보자 껑충 뛰여오르며 두손으로 엉치를 철썩 때렸다. 까투리가 땅을 차며 날아오르는 모양 그대로이다.

《야- 꿩! 푸드득!…》

《넨장, 덤벼치긴!》 하고 박태화는 웃음어린 눈으로 그를 흘겨보았다.

《소대장동무, 알기나 아우? 국수에는 꿩고기이상 없단 말이요!》

《옳지. 쳇, 제 혼자 아는것 같다.》

《야- 이건 참, 막 명절인데요!》

《이 친구야, 코등이나 닦으라구.》

《예?》

《코등에까지 왜 국수가루를 묻혀가지고 돌아치는가? 국수는 제 혼자 누르는것 같군.》

오판단은 팔소매로 코등을 쓱 문대고는 좋아라 웃어댔다. 웃으니 얼굴에서 눈이 없어진다. 그저 좋다는것이다.

그는 국수를 먹는 재미보다도 누르는데 더 흥이 나서 돌아치는것 같았다.

성미가 마른편인 박태화도 배밑창에서 웃음이 꿈틀거려 어처구니없어하는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아니, 그런데 왜 부엌에 들어가서는 삐치개질이요. 아주머니들한테 맡겨둘것이지.》

《야, 소대장동무, 정- 모르는구만. 국수분틀옆에는 뚝심을 쓰는 남정이 하나쯤 붙어있어야 제격이지요!》

《옳네! 옳으이!》 한설봉은 그 모습이 우습고 재미나서 손바닥으로 무릎을 내리쳤다.

《저 아주머님네들이 글쎄 저더러 분틀을 봐달라지 않겠습니까. 팔을 잡아끄는데야 어떻게 합니까? 야참, 이거야 정 딱해서!》

오판단은 능청스럽게 웃음을 감추며 이렇게 심드렁한 얼굴로 말하고는 굴뚝쪽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갔다. 그는 바싹 말라 댕그랑소리가 나는 장작을 한아름 안고 부엌의 뜬김속으로 다시 날아들어갔다.

한설봉이 부엌쪽에서 눈길을 돌리며 채머리를 흔들었다.

《원, 저런! 사람이 아니라 그냥 웃음덩어리가 굴러다니는것 같쉐다.》

《예- 좀 괴짜지요!》 하고 박태화도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저 군대는 성함이 뭔지요?》

《오판단이라고 부릅니다.》

《예… 판단이라… 성함이 좀 유별납니다?》

《본명은 오영수인데… 앞날을 내다보며 하도 판단을 잘 내려 오판단이라는 별호를 받았지요. 그래서 우리 유격대에서도 그저 판단이라고 불러야 다들 안답니다. 저 친구가 래일은 날이 흐린다고 하면 꼭 흐리지요. 어디서 그런 재간을 타고났는지 천기박사랍니다.》

《예- 알겠습니다. 저도 풍문에 장군님께서는 팔도강산에서 모인 각 방면의 귀재들을 거느리고계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상고적에두 불을 막는 장수, 물을 막는 장수, 일행천리를 내닫는 장수들이 있었다더니… 거 참, 흠!…》

부엌칸의 오판단은 마당에서 지금 자기가 어느 급으로 추켜올려졌는지는 모르고 땀을 뻘뻘 흘리며 국수분틀을 드놀지 않게 붙잡고있었다.

그는 머리를 기웃하고 분틀밑에서 술술 내리는 국수오리들을 내려다보며 흥얼흥얼 코노래를 즉흥적으로 내리엮었다.

 

에- 시구시구 절시구 내려간다

그렇지 옳지 내려간다

술술 내려간다

서울온면 함흥랭면 울고가겠네

매끈매끈 감칠맛에 메밀국수요

눈이 번쩍 기운이 우쩍 장끼육수라

 

다 내려간 분틀채가 떡 멎는다. 부엌앞의 주인아낙네가 모로 넘어지며 끝내 참지 못하고 깔깔 웃어댄다. 분틀채를 누르던 주인이 허리를 쭉 펴며 땀이 번들거리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담는다.

《하- 여보시오, 군대동무, 제발… 제발 통사정이요, 이거야 밸이 끊어져 힘을 쓰겠소?!》

가마곁에 앉아 걸이채를 휘젓던 이웃집어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주인에게 한마디 던진다.

《그런 소리마시우. 노래덕에 국수가 술술 내리는줄 아시우다!》

구들에서 반죽을 이기던 꽃나이색시들이 수집어 웃음을 감추며 오판단이만을 곁눈질해본다.

가마에서는 물이 설설 끓는다.

《에-라, 이거야, 자, 주인님, 이게나 붙잡소!》

오판단은 제사 우스워 못하겠다는듯 썩 물러서며 분틀채를 바꿔잡는다.

그는 분틀채를 쓰다듬어도 보고 툭툭 쳐도 보더니 그앞에서 준비운동이라도 하는듯 팔을 몇번 굽혔다폈다해보고는 채를 잡았다. 벌써 구들우의 녀인들속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웃집어머니가 벙글벙글 웃으며 제 얼굴처럼 둥실하게 빚은 반죽덩어리를 손으로 척척 소리나게 치면서 통에 그득 밀어넣는다.

오판단은 분틀채를 지그시 눌렀다. 삐걱삐걱… 뿌직뿌직… 하는 소리가 났다. 분틀채가 가슴아래로 내려오자 그는 가볍게 날아오르는듯 채에 매달렸다. 그의 발끝이 바닥에서 떨어졌다. 그는 분틀채에 배를 대고 온몸의 무게를 실었다. 그는 눈을 딱 감았다. 이마와 목에 굵은 피줄이 살아올랐다. 그는 온몸의 감각으로 국수가 내리는것을 가늠하는것 같았다. 분틀채는 부르르 떨면서 서서히 내렸다. 분틀채에 매달린 그는 허공에 드리운 다리를 굽혔다폈다하면서 그 속도를 조절하였다. 내리는 속도가 너무 빠르면 발뒤꿈치가 엉뎅이에 붙도록 다리를 까드라뜨리고 떠지는것 같으면 다리를 서서히 쭉 펴는것이였다.

입을 싸쥐고 그 모양을 지켜보던 꽃나이새색시들은 서로 꼬집고 잔등을 치고 하더니 더는 못 참겠다는듯 웃방으로 왈칵 뛰여올라가 때굴때굴 딩굴며 바스라지는 웃음소리를 냈다. 가마목의 어머니는 《아니, 저 애들은 왜 저러니?》 하고 핀잔의 소리를 하면서도 터져오르는 웃음을 참으며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바삐 닦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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