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1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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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권은 자기가 마련한 회의터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그는 김일성동지를 따라 간고한 투쟁의 길을 걸어오며 수많은 회의들에 참가하였었다. 아무리 어려운 때에도 회의장은 회의장답게 꾸렸었다.

통나무로나마 연탁이 세워지지 않으면 붉은 상보가 덮인 책상이 앞에 놓이고 연사들을 위하여서는 구리주전자에 더운물도 끓여놓았으며 붉은기발이나 구호 한폭이라도 걸어놓고 회의를 하였다.

그러나 왕재산마루에 마련된 이 회의장소에는 눈에 덮인 땅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좁은 공지둘레에는 이렇다할 특징도 없는 참나무, 소나무들과 매우 설피게 자란 잡관목들이 서있으며 이끼가 덮인 두세개의 자연바위와 갓 잘라놓은 나무토막들이 누워있을뿐이다.

사령관동지께서 쌍안경으로 온성읍을 바라보시는 사이에 최춘국이 그의 팔굽을 툭 건드리며 회의장이 왜 이 모양이냐고 눈을 흘기였다.

사령관동지께서… 비밀회의라고…》 하고 김중권은 귀속말로 속삭이였으나 부대를 거느리시고 조국에 나오신 사령관동지를 이런 자리에 모시는것이 여간 송구스럽지 않았다.

그러나 사령관동지께서는 그들이 마음쓰는 그런것에는 전혀 개의치 않으시고 회의참가자들에게 어서 적당히 자리들을 잡고 앉으라고 소탈하게 말씀하시였다.

온성지구 지하혁명조직책임자들과 정치공작원들은 장군님을 가까이에 모시고도 적이 지척에 있는지라 가슴에 차넘치는 감격을 터뜨려 만세를 부르지도 못하고 박수나마 크게 치지 못하였다. 그야말로 기발도 만세도 박수도 열변도 없는 소박하고 조용한 회의였다.

회의참가자들은 눈물이 번들거리는 얼굴로 그이를 우러르며 선뜻 자리들을 잡지 못하였다.

장군님께서 자연바위에 걸터앉으시자 회의참가자들도 하나둘 자리를 잡기 시작하였다.

김중권과 최춘국, 박태화를 비롯한 유격대지휘관들은 지하혁명조직책임자들을 될수록 장군님가까이에 앉히려고 마음을 쓰면서 자신들은 가녁에 자리를 잡았다.

장군님께서는 김중권이를 통하여 이미 온성지구의 형편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료해하고계시였으나 지하혁명조직책임자들 한사람, 한사람에게 깊은 관심을 돌려주시며 그들의 사업과 생활에 대하여 물으시였다.

그이께서 제일 첫번째로 관심을 돌려주신 학산탄광 지하혁명조직책임자는 갓 스물의 로동청년이였다. 검스레한 얼굴의 관자노리에 상처자리가 있고 눈이 열정적으로 번쩍이는 그 청년은 장군님께서 물으시는것외의 말도 많이 하였다.

그는 자기들이 지하막장에서 지하혁명조직결성모임을 가지고 혈서로써 투쟁결의를 다지였지만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것을 말씀드리고 혁명적출판물이 없는것이 제일 애로라는것 등에 대하여 말하였다.

가슴에서 터져오르는 혁명적열정을 자기로서도 막을수 없는듯 그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 주위사람들을 둘러보다가 이렇게 덧붙였다.

장군님, 유격대에 가자고 들구 일어나는 동무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겨울에도 세 동무가 짝을 지어 간도로 넘어가 장군님을 찾아 녕안쪽에 가서 헤매다가 왜놈들에게 잡혀서 죽을 고생을 다하고 돌아왔습니다.》

도끼와 톱을 찔러넣은 나무군배낭을 메고있는 농민청년이 자기네 고장에서도 그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하며 슬그머니 이야기에 끼여들어 자기 판을 벌려놓았다.

그는 자기네 혁명조직 로농동맹에는 철도로동자 두명과 목공로동자 한명이 있었는데 그들이 다 다른데로 이사를 가서 큰 문제거리가 생겼다고 하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로동계급의 령도가 없는 조직은 존재할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로동자가 없으니 조직의 명칭만 《농민동맹》으로 고치면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두패로 갈리여 큰 론쟁이 벌어졌다는것이다.

군모를 바위우에 벗어놓으시고 이야기를 주의깊게 듣고계시는 장군님의 존안에는 밝은 미소가 환히 피여나는가 하면 심각한 빛이 어리기도 하였다.

그이께서는 제일 뒤쪽, 앞사람의 머리에 얼굴절반을 가리우고 앉아있는 전장원에게 자주 눈길을 주시였다.

《전장원동무!》 하고 사령관동지께서는 그를 조용히 부르시였다.

장군님께서는 환히 웃으시는 얼굴로 그를 보시며 스스럼없이 말씀하시였다.

《아니, 왜 그렇게 뒤에 앉았소. 여기로… 좀 앞으로 나오시오.》

장군님께서는 자신의 군모를 다른쪽으로 옮겨놓으시며 여기로 나오라고 하시였다.

누구인가 그의 등을 앞으로 떠밀었다.

전장원은 움쭉 일어나 성큼성큼 걸어서 앞으로 나와 그이께서 내주신 자리에 앉았다.

《장원동무, 중권동무의 보고에 의하면 동무가 얼마전에 우리 유격근거지와 련계를 맺으려고 들어왔다가 면장을 하는 사촌형때문에 욕을 봤다는데 그게 사실이요?…

지난날 일부 사람들이 쏘베트좌경로선을 휘두르는 바람에 그런 일이 다 생겼소. 지금은 시정되여가지만. 일부 사람들은 동무의 형이 면장이라고 해서 그 친척관계를 타고 적의 마수가 우리 혁명대렬속으로 뻗쳐올가봐 겁을 먹는 모양인데 그렇게 생각하는건 처음부터 지고들어가는 립장이요. 전에도 말했지만 반대로 우리가 그 친척관계를 타고 들어가서 면장을 틀어쥐면 어떻소. 그러면 왜놈들의 말단통치기구를 마비시키고 우리가 여기서 마음대로 크게 판을 벌릴수 있지 않겠소?

구미가 당기는 일이 아닙니까?》

그이께서는 좌중을 둘러보시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혁명에 나선 전동무가 면장인 형에게 먹히울것 같습니까 아니면 반대로 형을 휘여쥘수 있을것 같습니까? 나는 면장보다도 혁명가가 그 신념으로 보아 더 강하다고 봅니다.》

전장원은 무릎을 움켜잡고 머리를 뚝 떨구고 앉아 눈만 슴벅이였다.

그이께서 이미 다 가르쳐주신 문제였으나 그는 아직까지도 사촌형을 돌려세우지 못하고있었다.

그이께서는 전장원의 손을 뜨겁게 잡으시였다.

《그새 련계가 끊어져 얼마나 안타까왔겠소.》

《저는 며칠전까지도 장군님께서 근거지에 안계시는줄로 알았습니다.》

《그랬소?》

《예, 우리 마을에 마촌에서 살다가 나온 녀자가 있는데 그 녀자 말도 그렇고 해서 계시지 않는줄로 알았습니다.》

《마촌에서 나왔다는건 어떤 녀성이요?》

《윤치석이라는 농민의 딸입니다. 남편과 의가 틀려서 나온것 같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실눈을 지으시고 하늘의 한점을 잠시 바라보시다가 조용한 음성으로 다시 물으시였다.

《가만… 그 녀성의 이름이 보금이 아니요?》

《예!》

전장원은 몹시 놀라 눈을 번쩍이며 기쁨에 넘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그 녀성이 여기 와서 어떻게 지내오?》

《친정에서 농사일이랑 도우면서 야학에도 좀 다녔습니다. 총기가 밝아서 아주 공부를 잘했습니다. 한때 왜놈들이 근거지를 헐뜯는 순회강연에 끌고다니려고 했는데 제가 형을 내세워 그러지 못하게 했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못내 기뻐하시였다.

《그건 아주 잘했소. 전장원동무, 그 녀성을 앞으로도 잘 돌봐주오. 남편과 의가 틀려서 여기로 나온게 아니요, 쏘베트좌경로선을 주장한 사람들이 조혼했다고 남편을 유격대에 받아주지 않게 되자 그 녀성은 남편을 유격대에 넣자고, 남편을 혁명에 참가시키자고 시집을 떠났소. 녀자가 시집을 떠나가면 항간에 별의별 악평이 다 도는데 험한 루를 쓰면서도 남편을 위해서 그렇게 했으니 의식수준이 낮은 녀성으로서는 갸륵한 소행이 아니요? 나는 윤보금이라는 그 녀성을 한번도 만나본적이 없지만 어쩐지 남편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그 마음을 바로 돌려세워 옳게 키우면 혁명에 대한 무한한 헌신성으로 자랄것 같소. 잘 돌봐주오. 한사람을 품에 안으면 열사람, 백사람이 따라오오. 사람타발을 말고 이렇게 하나하나씩 바로잡아 걷어안아야 우리는 전체 인민대중을 하나의 혁명력량으로 묶어세울수 있소!》

전장원은 그이의 가르치심을 하나도 빠짐없이 가슴에 깊이 새겨넣으며 머리를 수굿하고있었다. 다른 회의참가자들과 유격대지휘관들도 생기가 넘치는 눈으로 그이를 우러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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