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6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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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소창으로 흘러드는 달빛이 마차안을 희미하게 밝혔다.
사또는 동행자가 졸고있는지, 무슨 생각에 잠겼는지 가늠할수 없어 몇번인가 그에게 조심스러운 눈길을 돌렸다.
좌석등받이에 몸을 기댄 구니모도는 마차가 요동하는대로 머리를 흔들리우며 태평스럽게 자고있는 사람처럼 눈을 지그시 내리감고있다.
사또는 이 사람이 무슨 용건으로 이렇게 밤길을 타서 급히 조선으로 나가야 하는지 그 까닭을 짐작할수 없었다.
지나가는 말로 슬쩍 물어보고싶어도 상급의 행동에 대하여 의혹이나 호기심을 품는것은 군률이 엄금하는바이다.
그가 산책이요 뭐요 하면서 가볍게 스치던 말들을 되새겨볼수록 의혹은 가슴을 더 깊이 파고들었다.
구니모도는 사또의 손을 잡아 자기의 뭉실뭉실한 무릎우에 갖다놓고 꾹 누르며 조용히 말을 건네였다.
그는 앞으로의 싸움은 공산주의와의 전쟁인데 황군지도층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지난 세계대전의 공로자들로서는 로둔해진데다가 자만에 빠져 이 전쟁에서
이길수 없다고 하였다. 시대발전의 추세를 타고 군대안에 새로 대두한 혁신계장교들이 빨리 자라나서 군의 통수권을 쥐고 흔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때문에 군
《군들의 전도는 양양하네.… 앞으로 나와 련계를 긴밀히 가지세. 군은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마다 나에게 상세하고 솔직한 보고를 보낼것이며 나는 그것을 깊이 참작하여 해당한 조치들을 취하도록 사령부에 건의할것이네.》
구니모도는 자기의 비밀우편함번호를 대주었다.
마차는 무인지경을 달리는 모양이다. 멀리에서 개가 짖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마차용수철의 삐걱소리 사이사이로 기마호위병들의 말발굽소리만이 가락맞게 들린다.
마차가 세차게 흔들리였다.
구니모도는 배에 손을 가져가며 이마살을 찌프렸다. 그는 양복바지주머니에서 자그마한 병을 꺼내더니 알약 몇알을 입안에 털어넣었다.
《각하, 어디가 편찮으십니까?》
《음… 나한테는 위장병이 있네. 고약한 병이야. 떨어지지 않거던. 의사들 말이 저산이라나?》
사또는 응대를 안했다. 그는 저산에 대하여 무시무시한 추억을 간직하고있었다.
사관학교시절에 그를 총애한 체육교관이 저산으로 신고했었다. 그러다가 암으로 번지였다. 사또는 그를 구원하려고 도꾜의 큰 병원들과 의학박사들과 종양연구소들을 찾아 뛰여다닌 일이 있다. 어디를 가나 속수무책이였다. 두달후 환자는 자기 집 넓은 방에서 단말마의 함성을 지르며 몸을 비틀다가 숨지고말았다. 그것은 하늘에서 우뢰질을 하고 번개가 불채찍으로 대지를 내리치는 시커먼 저녁녘에 있은 일이였다. 은사를 장례지낸 다음 사또는 암에 대한 저서를 몇권 얻어 읽어보다가 불쾌하여 내던지고말았었다.
그를 뚫어지게 보고있는 구니모도의 눈에 이상야릇한 미소가 어린다.
《자네는 무언가 불길한 생각을 하는게 아닌가?》
《예?… 사관학교시절에 저의 교관이…》
사또는 자기가 생각했던바를 다 이야기했다.
《그래 그건 어떤 병인데 아직도 근원을 모른다는건가?》
《그 원인에 대해서는 비루스설도 있고 유전설도 있고 신경설도 있다는데… 진원인자체를 모르는것 같습니다. 처음에 발생한 암세포가 암조직으로 자라고 그 조직이 전신에 퍼지면서 모든 장기들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파괴하면 사람은 죽고맙니다.》
마차안이 으시시해졌다. 죽음의 마귀가 깜장메고양이같이 마차의 지붕이나 소창옆 어디엔가 붙어서 안을 들여다보는듯싶었다.
어딘가 멀리에서 우구구- 하는 괴이한 비명이 들려왔다. 무인지경을 헤매는 무리승냥이들의 울음소리인것 같다.
구니모도는 좌석등받이에 등을 붙이며 눈을 지그시 내리감았다. 그의 눈앞에서도 불길한 환영들이 어른거리는 모양이다.
이윽고 그는 불평조의 퉁명스러운 소리를 한마디 내뱉었다.
《흠! 요새 인간들의 과장병이란!…》
사또는 그 말의 뜻을 몰라 의아한 눈으로 구니모도쪽을 돌아봤다.
《간도의 적색근거지는 만주치안의 암이다.… 동아평화의 암이다. 문필가라는 작자들은 다 감상주의자들이고 어느 정도는 신경병환자들이야. 그따위 문장을 회의장에 와서까지 읽는자는 더한 놈이구. 아편중독자같은 그런 얼간이에게 경찰제복을 입히다니 눈들이 멀었어.…》
사또는 그 만주경찰이 만민이 전률하는 병을 상기시킨것으로 하여 이제 된욕을 당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은근히 동정이 갔다. 그리고 구니모도의 이런 분격의 일부는 비위에 거슬리는 이야기를 한 자기에게도 쏠리고있다는것을 느끼며 숨을 죽이고 꼿꼿이 앉아있었다.
구니모도는 다시 좌석등받이에 머리를 편안히 기대며 흔들거리는 천반을 쳐다보았다.
《암은 무슨 암?… 이제 적색구역에서는 저절로 분규가 일어나고 혈투가 벌어질거네.》
《?…》
《그 지대엔 소위 구국군이라고 하는 구동북군의 대무력이 산재해있는데 그들속에서는 반공감정이 날로 높아지고있네.》
《저도 왕덕림군단이 동녕과 라자구사이의 산악지대에 포진해있다는 정보를 들었습니다.》
《어느때에 가서는 공산군과 그들사이에 싸움이 벌어지네. 그들은 서로 적대적인 사상을 가지고있는데다가 민족적감정까지 개입돼있거던.… 시간상문제네. 앞에서는 황군이 공격하고 뒤에서는 구국군이 내밀면 한줌도 못되는 공산군은 압살되고마네.…》
《우리 뜻대로 구국군이 움직여주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친구들이 들어가있네.》
《그 되놈들이… 일본인을 믿어주겠습니까?》
젊은이를 흘깃 곁눈질해보는 구니모도의 입가에 비양조의 미소가 어리였다.
《전향한 조선독립군지휘관들속에서 반공분자들을 골라내여 라자구, 안도, 연길방면의 구국군부대들에 첩자로 들이밀었는데 그들의 모략이 성과가 크네. 조선공산당이 간도농민들속에서 쟁의를 선동하여 중국인지주들을 수탈한 관계로 구국군의 두령들은 조선공산주의자들을 자기네 원쑤처럼 여기고있네. 이제 조금만 자극해도 터지네… 불이 터지네.》
마차가 두만강다리를 건너서 서남방향으로 얼마 달리지 않아서였다. 밖에서 꿱꿱거리는 야성이 들려왔다.
소창으로 밖을 내다보던 구니모도가 마차를 세우라고 소리쳤다.
사또는 구니모도를 따라서 마차에서 내렸다. 살을 저며내는듯 한 칼바람이 얼굴을 후려쳤다.
달빛에 유리판처럼 번쩍거리는 두만강얼음판우에 20여명의 졸병들이 반라체로 서있고 4명의 사관들이 그들에게 얼음구뎅이에서 바께쯔로 퍼낸 찬물을 뿌려던지고있었다.
대렬앞에 군도를 짚고 서있는 키가 구척같은 장교가 사관들이 졸병들의 얼굴이며 가슴팍에 찬물을 뿌릴 때마다 《추운가-》하고 소리친다. 그러면 졸병들은 헉- 느끼면서 《덥습니다》하고 야성을 내지르는것이였다.
《추운가?》
《덥습니다!》
군도를 짚고 서있는 장교는 련대장 쯔루하라대좌였다.
귀밑에서부터 턱밑에까지 구레나릇이 시꺼멓게 덮인 쯔루하라대좌는 사또가 소개하는 말을 듣고 구니모도앞으로 걸어와서 거수경례를 붙였다.
웬일이냐는 구니모도의 물음에 대좌는 저자들은 빙설훈련에 나왔다가 춥다고 불만 쬐면서 제 밥통도 닦지 않았기때문에 자기가 직접 단련시키는중이라고 했다.
《모두 시고꾸와 규슈 등지에서 징모된 신병들입니다. 혹한이 계속되는 간도토벌에 준비시키자면 별수가 없습니다.》
《대좌, 장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