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5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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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세로인이 토지개혁준비위원회로 들어가던 바로 그날이였는지도 모른다. 저녁어스름이 내리덮인 룡정시가의 음산한 거리로는 십여명의 기마병들에게 옹위된 한대의 포장마차가 무엇에 쫓기는듯 황급히 달려가고있었다.

기마병들은 보복의 총구가 숨어있는듯한 음침한 골목들이며 상점가의 불빛이 꺼진 유리창너머에 표독스러운 경계의 눈길을 던지며 말을 달리였다.

고관대작들이 타는 검은색가죽풍막의 마차는 들쑹날쑹한 길을 따라 가볍게 오르내리며 미끄러져갔다.

북쪽교외를 멀리 벗어난 마차는 갑자기 남쪽으로 방향을 꺾어 좁은 길에 들어서서 조선쪽으로 달리였다.

달빛에 희푸스름한 눈벌판은 바다처럼 설레이는듯 하였다.

마차안에는 아래배쪽이 보기좋게 불거져나온 비만한 신사와 몸매가 날씬하고 군복차림이 단정한 젊은 장교가 앉아있었다.

두리두리한 얼굴에 중절모를 푹 눌러썼고 은테안경을 낀 50이 넘어보이는 이 신사는 흔들리는 마차에 아주 몸을 내맡겨버리고는 눈을 지그시 내리감았는데 한잠 푹 자볼 심산인것 같다.

그러나 젊은 장교는 어지간히 흥분된 얼굴이다. 그는 차창에 언뜻거리는 기마병들의 그림자들이며 저 멀리에서 반짝이는 인가의 불빛들을 바라보기도 하고 마차가 몹시 들출 때마다 옆의 신사를 여겨보기도 한다.

장교는 회령련대의 사또 요시나리 소좌였다.

사또는 오늘낮 룡정의 제국령사관에서 진행된 비밀회의에서 이 로인을 알게 되였다.

관동군사령부, 관동군헌병대, 조선주둔군의 간도림시파견대, 함경북도경찰부와 조선국경경찰대 및 만주경찰기관들의 고위인물들이 모인 련석회의는 1932년 하반기에 진행한 《토벌》작전들을 비롯한 제반 군사행동들을 총화짓고 금후 대책안을 토의하였었다.

창문들에 누런 휘장들을 내려놓고 극비밀리에 진행된 모의였으나 처음부터 신랄한 책임추궁과 그에 따르는 자기변호, 더 나가서는 뒤집어쓴 책임을 남에게 넘겨씌우려는 비렬한 행위로 말미암아 소리들이 높아지고 격렬한 언쟁이 벌어졌다.

이 늙은 신사는 회의실에 좀 늦어 들어와서 흑곤색중절모를 보기 좋게 들어 좌중에게 눈인사를 보내고는 구석쪽에 자리를 잡았다.

모두들 의자에서 궁둥이를 조금씩 들며 그에게 경의를 표했다.

회의가 진행되는 과정에 사또는 어느 누구도 그 신사의 관등급이며 직함을 부르지 못하고 그저 《각하》라고만 부르는데 주의가 갔다.

책임추궁들이 끝난 다음 론의의 초점으로 된것은 간도지방에 새로 생긴 공산주의자들의 적색근거지에 대한 평가문제였다. 즉 그것이 전 만주땅을 휩쓴 황군의 맹렬한 《토벌》작전에서 살아남은 공산잔여분자들이 쫓기고쫓기던 끝에 산간오지에 모인 결과에 형성된 우연적인 산물인가 아니면 공산주의자들 특유의 조직력으로 꾸려진, 적색운동의 새 발전단계를 시사해주는 필연적인 산물인가 하는 문제였다.

전자일 경우에는 황군의 《토벌》공세가 적을 산간오지의 좁은 지역에 압축해놓고 일거에 소탕해버릴수 있는 유리성을 마련해놓았으니 성공적이였다고 말할수 있겠으나 후자일 경우에는 그리 락관할 문제가 못되였다.

락관적인 견해와 비관적인 견해의 밖에 서있는 군부의 젊은 대표자들은 적색근거지들이 쏘베트로씨야와 겨울이면 두껍게 얼어붙는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린접하여있다는 사실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들은 그것이 우연적인 산물이건 필연적인 산물이건 관계없이 쏘만국경에 관동군의 일부 력량을 포진시켜 배후지원을 차단해버린다면 일거의 공세로써 소탕해버릴수 있다고 장담했다.

사또 요시나리도 그런 견해의 편에 서있었다.

아편쟁이처럼 얼굴이 누렇게 뜬 만주경찰의 한 대표자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신문의 한구절을 읽었다.

《…산림자원이 풍부하여 재계의 구미를 당겨오던 간훈일대, 화룡, 연길, 왕청, 훈춘의 산간오지들에 적색체계의 구역이 형성되다… 나라안에 새 나라가 생긴셈이다. 이것은 만주치안의 암이다. 나아가서는 동아평화의 암으로 자라리라는 설이 세론을 흔들고있으니 치안당국의 두통도 짐작할수 있다…》

구석쪽에 앉아 내내 눈을 내리뜨고 주로 듣기만 하던 신사가 그에게 손을 내밀며 신문을 좀 보자고 했다.

그는 신문기사를 한눈에 훑어보고는 내팽개치듯 신문을 도로 주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몇걸음 나와서 말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적색구역이 당신들이 막연하게 생각하는것처럼 우연하게 생긴것이 아니라고 찍어서 말하였다.

《조선공산주의운동에 새로 대두한 젊은 세대들은 명월구에 모여 모의를 가지였는데 거기서 그들의 지도자가 발표한 대강에 유격근거지창설에 대한 항목도 들어있소. 동만에서의 제반사태발전은 아군의 <토벌>공세에도 불구하고 그 대강은 착착 실현되여나간다는것을 보여주고있소. 이 운동의 지도자는 조선인들속에서 김일성장군이라고 불리우는 신화적인 인물로서 그 령도력과 기개가 출중한 청년장군이요. 나에게 입수된 정보에 의하면 아군이 라자구와 로흑산일대에서 공산유격대의 주력을 겹겹으로 포위하여놓았을 때 그 부대가 바로 김일성 친솔한 부대였단 말이요.

그런데 그는 전무후무할 그 포위를 벗어나 오늘은 왕청근거지로 들어와 군세를 확장하고있다니 과연 신화적인 인물이 아닐수 없소.》

적에 대한 이런 과찬이 허용되는것으로 보아 그는 대단한 세력가인것이 분명했다.

그는 적에 대한 옳은 분석과 평가에 기초한 방략만이 승리를 담보해준다고 전제하고는 금후의 대책안토의를 더 심화시킬것을 제의하였다.

장시간의 진지하고 열정적인 론의끝에 하나의 안이 세워졌다.

새로 창설된 적색근거지는 전조선과 만주의 공산주의자들을 끌어당길것이다. 황군은 도처에서 중소규모의 《토벌》작전을 계속 벌려 공산분자들의 근거지에로의 집결을 촉진시킨다.

황군은 우세한 무력과 치안경계조치로써 적색근거지를 봉쇄한 다음 그 세력이 팽창되지 못하도록 적당한 정도의 타격을 수시로 가하면서 때를 기다리다가 적절한 시기에 봉쇄를 죄여 공산본거지를 질식시켜 그 내부에 분규가 야기되게 한 다음 대《토벌》전을 벌려 일거에 소탕해버린다.

이 안에 대하여 그 신사는 반신반의하는듯 하면서도 동의를 표하였다.

련석회의가 끝나고 모두 휴계실로 나왔을 때 그 신사는 두개의 차잔을 들고 사또에게로 마주 다가와서 그 하나를 권하며 뜻있는 미소를 보냈다.

사또는 기착을 하며 자기의 소속과 성명을 대는것으로써 답례하였다.

뜨끈한 차를 다 마시였을 때 신사는 양복저고리 안주머니에서 명함장을 꺼내여 그에게 보였는데 흰눈같은 명함지에는 관동군사령부 특무부요원 구니모도 아무개라고 찍혀있었다.

사또는 작년가을 우가끼총독이 저택정원을 거닐며 하던 말이 뇌리를 때려 소스라쳐 놀란 나머지 하마트면 탄성까지 지를번 했다.

구니모도는 손등으로 그의 배를 툭툭 건드려보며 배포유하게 미소를 지었다.

《반갑네, 자네였댔구만. 음… 나도 조선쪽에 나갈 일이 있는데 동행할 의향은 없나? 모두 기차요 자동차에 타고 떠나겠지만 우리는 어디 한번 구식마차로 산책을 해볼가. 그편이 한결 흥겨울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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