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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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온 세상에 웅-웅-거리는 바람소리만 가득차있는것 같았다. 그 광란적인 소음이 몸에서 더운 피가 소용돌이치는 소리인지 대기가 흐르는 소리인지조차 가늠할수 없었다. 길이며 마을이며 산이며 나무들이 모두 제 자리에 있는것 같으면서도 조화가 마구 헝클어지고 이지러져 보이며 그지없이 어수선하게 느껴졌다. 최형준은 자기만이 홀로 캄캄한 황야를 달리는것 같았다.
권일균은 림시로 든 집의 웃방에서 아래벽의 말코지에 외투를 벗어 걸다가 문을 차고 뛰여든 최형준을 놀라서 돌아보았다.
《최동무, 무슨 일이요?》
《모르겠습니다! 나는 동지를 리해할수… 리해할수 없습니다! 과연 홍병일의 총구멍이 무서워서 일이 그르쳐지는줄 알면서도 바로잡지 못했단
말입니까? 정말 그랬는가요? 그 말이 진실인가요? 쏘베트야 당신
최형준은 의분이 치밀어 떨리는 음성으로 부르짖고 권일균은 무거운 걸음을 옮겨 방안을 돌아만갔다.
한동안 말이 끊어졌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권일균은 이윽고 벽에 이마를 박더니 주먹으로 벽을 동안이 뜨게 뚝뚝 두드렸다.
《최동무, 진정하오.… 우리는 자중해야 되오.… 나는 실천가지 론객은 아니요…》
최형준은 문을 쾅 닫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는 그길로
그 집 마당에서 솜옷을 입고 토끼털모자를 깊이 눌러쓴 서너명의 유격대지휘관들이 서성거리고있었다.
전령병 리성림이 최형준의 앞을 막아섰다. 그는
최형준은 돌아서 나오다가 마당에서 서성거리는 지휘관들이 주고받는 말을 통하여 망원초에서 적정이 보고되여왔다는것을 알았다.
이날 다행히도 전투는 없었다. 최형준은 낮에 세번이나
저녁녘에는 현당위원 홍병일이 직책에서 떨어져 동림촌적위대 소대장으로 갔다는 소문이 쫙 퍼져 마촌골안을 들었다놓았다.
울타리밑에서 자치기를 놀던 아이들이 홍도깨비가 떨어졌다고 좋아라 웃어대며 여기저기로 뛰여다녔고 마을에 경사라도 난듯 젊은 아낙네들은 우물터에서 깔깔 웃어대며 이야기판을 벌리고 남정들은 소외양간앞이나 장작가리옆에서 담배들을 나누며 신중한 낯빛으로 소리들을 주고받았다.
《그래 말을 타고 내빼자는 작정이였는가?》
《아니라는데, 훈춘으로 가자구 했다니까.》
《훈춘에 제 하내비라두 있던가?》
《훈춘쏘베트에 국제당인가 하는데서 웬 어른이 나오기로 돼있은 모양인데 거기서 제편의 지지를 얻어보자는게였겠지.》
《허-》
《흠- 하루강아지 범 무서운줄은 모른다더니.》
최형준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홍병일에게 내려진 징계가 자기 운명에 대한 예고처럼 느껴지며 피가 서늘하게 식어들었다.
그는 모든것을 잊으려고 일찌기 자리에 눕고말았으나 잠들수가 없었다. 자리에서 몸을 뒤채기며 모대기던 그는 다시 벌떡 뛰여일어나 개천으로
달려나갔다. 얼음판우에서 왔다갔다하며
(홍병일이처럼 돼도 좋다!)
최형준은 몸을 홱 돌려 한걸음, 한걸음에 비장한 마음을 다져넣으며 마을쪽으로 걸어갔다. 준엄한 운명이 기다리는 곳으로 돌진해가는 사람처럼 그의 얼굴은 해쓱하게 굳어졌다.
밤이 얼마나 깊었는지 마을에는 괴괴한 정적이 깃들었다.
최형준은 선뜻 들어서지 못하고 마당가에서 머뭇거렸다.
눈서리가 반짝거리는 동기와지붕처마밑에서 자그마한 그림자가 우뚝 솟아오르더니 이쪽으로 사뿐사뿐 다가왔다.
전령병 리성림이다.
《야-참, 또 왔습니까?
《돌아가겠소.
이때 웃방문이 열리며 우렁우렁하신 음성이 울려나왔다.
《그게 누구요?-》
최형준은 전령병을 따라 방문앞으로 다가갔다.
《강사동무가 아니요? 어떻게 이 밤중에?》
최형준은 자기가 온 목적을 솔직히 말씀드렸다.
《그러니까 보고도 그렇고 우리가 한 이야기가 모두 납득이 안 간다는 말이겠소?》
이렇게 말씀하신
《긴긴 겨울밤인데 자, 띠를 풀어놓고 이야기해봅시다.》
《현당에 있는 우리들은… 조직책이나 저나… 우리들은 모두 확고한 신념에서 쏘베트를 세웠습니다. 이건 사실입니다. 저는 인정합니다. 여기서 더러 일이 잘못되고 무리가 생기고 혼란이 일어난건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쏘베트자체를 부정하는건… 쏘베트야 실천에서 그 정당성이 검증된 정권형태가 아닙니까?》
《정당성이 검증되였을뿐아니라 오늘은 그 위력이 세계를 진감시키고있습니다.》
《실천에서 검증됐다는데 그 실천이란 어디 실천이요?》
《네? 어디라니요? 로씨야에서지요.》
《그렇소. 로씨야혁명의 실천이요.… 그런데 동무는 어느 땅에 서있소? 어느 민족의 토양에 서서 어느 나라 혁명에 참가하고있소? 로씨야혁명이요? 조선혁명이요?》
《그래 동무는 남의 경험을
《말씀해주십시오! 로씨야혁명을 어떻게 평가해야 합니까?》
최형준은 울음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물론 두말할것없이 그것은
《로씨야혁명은 사회주의혁명이며 우리 혁명은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이요. 이 차이뿐이 아니요. 계급적인 력량관계, 력사발전의 특수성, 민족적인 기호… 이러한것들을 무시하고 허궁 떠서 남의 경험을 그대로 휘두르며 뛰여다니였다가는 참혹한 패배를 면치 못하오. 동무들은 여기에서 산업프로레타리아대군이 없다고 한탄하였소. 로동계급과 함께 농촌의 빈농민대중이 우리 혁명의 강력한 주력군이 될수 있다는것을 깊이 통찰하지 못하였소. 그렇기때문에 농민문제, 토지문제를 그렇게 경솔하게 다루었소.
정권문제도 그렇소. 혁명의 성격과 임무에 따라 정권의 형태가 결정되는것이지 어느 한 개인이나 그루빠의 주관적욕망에 의하여 결정되는것은 아니요.
우리 혁명은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이기때문에 광범한 반일대중을 뭉치게 할수 있는, 로동계급이 령도하면서도 가장 민주주의적인 정권형태를 취하여야 하오. 그것이 곧 인민혁명정부요! 로씨야사람들도 프랑스혁명의 산아인 꼼뮨에서 프로독재의 알맹이만 따오고 그 형태는 자기들의 실정과 기호에 맞는 쏘베트를 택하였소.…》
이밤 최형준은 자정이 훨씬 지나서
별들이 성기여진 동녘하늘가에 훤한 빛이 어리였다.
《아, 참 좋은 밤이였소. 나는 동무의 솔직성이 정말 기쁘오.》
자기 방으로 돌아온 최형준은 날이 다 샐 때까지 문가에 앉아있었다.
지난날 사소한 론쟁이나 반대의사가 있어도 말이 거칠어지고 권총까지 빼들군 하던 조야한 사람들속에서 살아온 그로서는
그는
(저런 포옹력을 지니신분은 처음이다.… 처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