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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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묻힌 마을과 마을들은 며칠째 계속되는 쏘베트의 시책에 대한 토론으로 들썩거렸다. 김일성동지의 가르치심에 의하여 각계각층의 근거지주민들을 망라하여 진행되는 이 토론은 사람들의 흉금을 털어놓게 하였다. 난생 사람들앞에서 큰소리 한번 쳐본 일이 없던 사람들까지 식솔들의 명줄과 이어진 토지며 그 경작문제가 화제에 오르자 목에 피대를 세우고 열을 내여 자기 의사를 말하였다. 어떤 집에서는 부자간에 론쟁이 벌어져 룡마루가 울리도록 소리치기도 하였다. 이러한 토론들에서 제기된 의견들은 촌쏘베트를 거쳐 구쏘베트에 올라가 종합되였다.

그날 김일성동지께서는 김중권의 보고를 마감으로 다시한번 가필하시느라고 좀 늦어서 모임장소로 나가시였다.

길가의 나무가지들에는 눈꽃이 하얗게 피여 해빛에 눈부시게 반짝이였다.

그이께서는 흰 입김을 날리며 걸어가시면서 뒤따르는 김중권, 한흥권, 장룡산 등과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나무짐을 진 두 청년이 지게작시미를 겨드랑이에 끼고 길바닥만 보면서 성큼성큼 마주 걸어왔다. 나무짐이 어찌나 높은지 사람은 밑에 깔려서 보이지 않을 지경이였다.

장군님께서 길을 피하여주시려는데 지게군들도 그이를 알아보고 창황히 길옆으로 물러섰다.

그들은 김창억이와 마동호였다.

장군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시였다.

《수고들 하오. 나무를 어디서 해오오?》

김창억이 시뻘개진 얼굴에 밝은 미소를 그려보이며 쾌활하게 대답하였다.

《저 뒤산에 올라가면 이런 삭정이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집에서 땔 나무요?》

김창억은 웬일인지 대답을 못하고 쭈밋거렸다. 마동호가 겨드랑이에 낀 지게작시미로 그의 옆구리를 툭툭 건드렸다.

《유격대병실에 가져가는겝니다.》 하고 창억이는 대답하였다.

《유격대병실에?… 땔나무야 유격대에서 하면 되겠는데… 누가 시켰소?》

창억이는 발끝을 내려다보며 망설이다가 주눅이 든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저희들이 있으면서 유격대동무들이 땔나무까지 하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장군님께서는 그들을 보내고 한동안 말씀이 없이 걸으시다가 한흥권을 돌아보시였다.

《저 동무들이 얼마나 유격대에 들어오고싶으면 저러겠소.》

한흥권은 그이의 말씀에 공감하며 미소를 지었다. 이때 내내 말이 없던 장룡산이 한흥권의 옆으로 나서며 그이께 말씀올렸다.

《요새 와서는 입대하자는 말이 싹 없어졌습니다. 이전에는 입대하지 못해 설설 끓었는데…》

《?…》

사령관동지께서 데리고오신 대원들과 자기네를 비교해보고 주눅이 든것 같습니다. 겉모습을 보나 속에 든걸 보나 비교가 됩니까. 왕청산골에서는 뚝심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저 창억이는 안해때문에 몹시 괴로와하는것 같습니다. 자기가 전혀 돌보지 않아 그렇게 됐다고 저한테도 말했습니다.…》

《음…》

그이께서는 더 말씀이 없으시였다.

쏘베트마당에는 형형색색의 사람들이 가득 모여서 붐비고있었다.

출입문앞에서 리재명이 팔을 내흔들며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여러분, 물러들 가시오. 오늘 여러 지방에서도 사람들이 왔기때문에 참가인원이 제한돼있습니다. 방이 네칸밖에 없어서 다 못 들어갑니다!》

웅성거리는 군중속에서 털벙거지를 눌러쓰고 꼴망태를 멘 작달막한 농민이 약이 바싹 올라서 그에게 맞받아 소리쳤다.

《여보- 가라면 가구 말라면 말줄 아우? 새벽에 떠나 60리나 걸어왔소!》

리재명이도 화가 동하는듯 목이 벌개져서 소리쳤다.

《아니, 누가 오라 해서 왔습니까?》

《여보시오, 아들이 촌쏘베트에서 일하는데 그녀석과 엿새동안 말씨름을 하다가 왔소다. 그녀석은 쏘베트가 하는 일은 덮어놓고 좋다는 판인데 내 여기서 결판이 나는걸 보구 가서 그녀석을 꺼꾸로 매달 작정이요.》

사람들은 그 소리에 와 웃어댔다.

리재명이도 하는수없이 벙글거렸다.

군중속에서 검정덧저고리를 입은 키가 훤칠한 장정이 호기있게 소리쳤다.

《여보게 회장, 우리는 밖에 조용히 서있겠네. 그저 요긴한 대목에서 뙤창문을 슬쩍 열어주게. 새나오는 소리를 듣는게야 일없겠지?》

장군님께서 쏘베트마당으로 들어오시자 사람들은 길을 내드리며 량옆으로 물러섰다.

그이께서는 환하게 웃으시며 사람들의 인사에 답례를 하시고는 여기서 토론된 문제들은 다 알려드릴테니 추운데 돌아가라고 이르시였다.

그러자 털벙거지를 쓰고 꼴망태를 멘 작달막한 그 농민이 그이께로 다가서며 자기 심정을 토로하였다.

장군님께서는 웃지 않고 심중하게 들으시더니 리재명에게 이분만은 들여놓을수 없겠느냐고 말씀하시였다.

그 농민은 우쭐해져서 리재명에게 이끌려 방안으로 들어갔다.

쏘베트의 네 방에는 사람들이 빼곡이 들어앉아있었다.

《쏘베트와 그 시책에 대한 소감》

김일성동지의 가르치심을 받으며 김중권이 작성하여 쏘베트관계자들의 협의회에 제출한 보고의 표제는 이렇듯 소박하고 부드러운것이였다.

장군님께서 김중권에게 보고를 시키신데는 깊은 의도가 계시였다.

우선 그가 이 지역에 파견되여 공작하였으므로 이 고장의 형편에 밝은것이며 다음으로는 그의 리론수준을 한층 높여주시려는것이며 그리고 자신께서 직접 보고를 하시면 사람들이 그것을 곧 결론으로 받아들일수 있기때문이였다. 그렇게 된다면 론쟁은 없을것이며 따라서 사람들은 쏘베트와 그의 시책에 대한 견해들을 충분히 털어놓고 나누어보지도 못하여 무엇이 옳고그른지 석연하게 인식 못할수 있기때문이였다.

김중권은 쏘베트의 시책들중에서도 농민문제, 토지문제에 중점을 두고 보고하였다.

그의 목소리는 시종일관 조용히 울리였으나 보고가 진술되는 사이 쏘베트의 네칸 방에 빼곡이 들어앉은 사람들의 머리우에서는 격랑이 휩쓰는듯 했다. 보고자의 예리한 분석이 가해질 때마다 사람들은 마른번개라도 치는듯 눈앞이 아찔아찔해지였다.

진홍색상보를 덮은 낮은책상에 마주앉아계시는 장군님께서는 내내 눈을 조용히 내리뜨시고 깊은 생각에 잠겨계시였다.

사람들은 웅성거리다가는 인차 조용해졌다. 보고자의 입에서 페부를 찌르는듯 한 표현이 튀여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가운데방 복판에 앉아있는 권일균이며 홍병일, 리재명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권일균은 눈을 지그시 감고 조용히 앉아있었다. 독감때문인지 부석부석해진 그의 얼굴에는 저항도 반성도 아닌 피곤한 표정이 어려있었다. 그는 이따금 커다란 주먹으로 무릎을 툭툭 두드릴뿐이였다.

웃방의 문턱곁에 앉은 홍병일은 열기가 번뜩이는 눈으로 보고자를 쏘아보다가는 권일균의 얼굴을 한동안 바라보고 환멸의 쓴 침을 꿀꺽 삼키는듯 하더니 최형준을 돌아보며 무엇이라고 수군거렸다.

최형준이 그에게 꽁다리연필을 넘겨주자 홍병일은 목단추를 끌러놓고 목책우에 연필을 달리였다.

 

장룡산동무!

말을 준비시키시오!

 

그의 어깨너머로 목책을 내려다보던 최형준의 눈이 커졌다.

홍병일은 책장을 찢어내여 쪽지로 접어 앞사람에게 주며 장룡산중대장에게 전하라고 일렀다. 쪽지는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제일 아래방 문옆에 앉은 장룡산에게로 가닿았다.

장룡산은 언제나와도 같은 심드렁한 얼굴로 쪽지를 풀어보더니 그것을 무릎밑에 깔았다. 그리고는 아무일도 없었던듯 배포유하게 앉아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 그쪽을 내려다보시였다.

장룡산이 시커먼 눈을 몇번 슴벅이더니 홍병일이쪽은 보지도 않고 무릎밑에서 쪽지를 꺼내 그이께 올리였다.

장군님께서는 쪽지를 보시더니 근엄하신 안색으로 홍병일을 바라보시였다.

홍병일은 얼굴이 백지장처럼 질리여 그이의 시선을 외면하였다. 무엇인가 달가닥- 하고 소리를 내며 방바닥에 떨어졌다. 홍병일의 무릎옆에 꽁다리연필이 떨어진것이다. 최형준은 그것이 자기것이지만 쥐지 못하였다. 그는 순식간에 얼굴이 확 붉어져 동정이라도 구하는듯 한 눈으로 권일균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권일균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다.

최형준은 입술을 피터지게 깨물었다.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고있단 말인가! 저 방심한듯 한 얼굴표정은 무엇을 뜻하는것인가? 저 귀는 왜 저리도 보기 흉하게 늘어졌는가. 저 큰 두개골속에서는 지금 무슨 생각이 끓고있는것인가. 비게만 차있는게 아닌가? 최형준은 혐오와 의분으로 가슴을 끓이며 그를 쏘아보았다.

보고가 끝났다.

김중권이 앉기바쁘게 홍병일이 앞사람의 어깨를 짚으며 일어났다.

그는 누구인가를 찾는듯 좌중을 둘러보다가 크게 뜬눈으로 보고자를 삼켜버릴듯이 노려보았다. 그의 고수머리가 밤빛을 더 띠며 뻣뻣하게 살아오르는듯 하였다.

홍병일은 옆구리에 드리운 목갑총을 뒤로 밀어제끼고 곧추 편 두손가락으로 머리우의 허공을 찔렀다.

《본질을! 본질을 놓고 이야기합시다!》

그는 보고자가 현상적인 결함만을 긁어모아 렬거하였지 우리가 진행한 혁명의 본질에 대하여서는 언급하지 않았다고 비난하고는 다음과 같이 이었다.

《여기서 초창기에 조직되였던 토지개혁준비위원회를 해산하고 토지의 공동소유를 선언하였다고 비판하였는데 이건… 이건 혁명의 리치에 맞지 않는 평가요! 우리 혁명이 어디에로 지향하는가? 우리 혁명의 종국적인 목적이 무엇인가? 사회주의,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하자는것이여! 여기서 우리가 거인적인 힘으로 민중을 떠밀어 사회주의에로 접근시켜놓은게 좋으면 좋았지 나쁠게야 뭐냐 말이요?

물론 과정에 무리도 있고 마찰도 있었지만 보고자인 당신도 생각해보시오. 근대문명의 세례를 받은 산업프로레타리아트가 없어 암매한 농민대중을 동력으로 삼고 혁명을 추진시켜온 우리에게 어떤 고충들이 있었겠는가도 생각해보시오. 그런데 김중권동지! 당신은 무엇때문에 무슨 목적을 추구하여 여기에 온 첫날부터 왕청에서 일해온 우리의 결함만을 들추는거요? 만약에 우리 자리가 탐이 나면 그렇다고 말하시오. 내-놓-겠-소-》

이때 모든 사람을 놀라게 한 일이 벌어졌다.

내내 불상처럼 올방자를 틀고 무표정의 얼굴로 앉아있던 권일균이 눈을 부릅뜨고 홍병일을 쏘아보며 불호령을 한것이다.

《야비하오! 자리를 운운하다니! 아직도 화요파의 때를 벗지 못하고 파심에서 문제를 고찰하는가? 비렬해-》

홍병일은 어정쩡해서 입을 벌린채 굳어져버렸다. 최형준은 이 현실이 믿어지지 않는듯 권일균을 뚫어지게 보다가는 홍병일, 리재명 등에게로 눈길을 돌리는가 하면 김중권을 쳐다보기도 하고 김일성동지를 우러러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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