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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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때 풍인동골안어귀앞을 지나간 경비도로에 붙여지은 경찰관 출장소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지고있었다.

벽에 붙인 나무의자에 앉아있는 한 녀자앞에서 하야시순사와 최순사, 황순사가 번갈아가며 구슬리는 말을 엮어대고있었다.

밖에서는 눈이 펄펄 날리고있었으나 어둑한 방안은 난로가 잘 피여 후끈했다.

녀인은 앞으로 흘러내려 얼굴절반을 가리운 머리칼을 쓸어올릴념도 않고 눈을 내리뜬채 숨을 죽이고있었다.

류행에 따라 코밑에 나비수염을 붙인 최순사가 손가락끝으로 녀인의 머리를 꾹꾹 찌르며 은근한 목소리로 뇌까렸다.

《이봐 윤보금이, 듣는가.… 우리를 믿게 하란 말이야. 네가 공산구역에서 살수 없어 뛰쳐나왔다는걸 믿게 하자면… 마을로 돌아다니며 순회강연을 하면 되는거다. 거기가 어떠어떠해서 나쁘다는걸 얘기하면 돼. 하겠는가? 못하겠는가?… 하지?… 알아들었는가?》

윤보금은 죽은듯이 대답이 없다. 내리감은 속눈섭밑에 눈물이 맺혀서 떨뿐이다.

순사들이 살기 나쁘다고 욕하라는 《공산구역》은 시집이 있는 고장인데 고향사람들앞에서 시집마을을 욕되게 할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시아버지, 시어머니, 남편 더 나가서 리재명회장이나 림성실부녀회장을 생각해봐도 욕할만한것이 없다. 남편이 그처럼 하고싶어하는 혁명은 더욱 욕할수 없다. 설사 가슴에 맺힌 일이 있다 해도 뭇사람들앞에서 시집마을을 욕하는것과 같은 그런 악착한짓을 어찌 하랴! 보금이는 남편의 앞길을 열어주자는 한가지 생각으로 시집을 떠난것이 험악한 세상의 엄청난 일에 걸려들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허물어져내리는듯 하였다.

그래서 입술을 꼭 깨물었다.

화김에 하야시가 발을 탕 구르며 최순사에게 소리쳤다.

《질질 끌지 말구 내다가 쏴갈겻! 공산밀정이 분명하다!》

최순사의 주먹이 윤보금의 뺨으로 날아들었다. 윤보금은 신음소리 한마디 없이 의자에서 굴러떨어져 석탄재가 거멓게 깔린 마루바닥에 쓰러졌다.

황순사가 달려들어 보금이를 안아일으키려는데 밖에서 다급한 말발굽소리가 울렸다. 출입문이 벌컥 열리며 만또차림의 기병 수명이 달려들어왔다.

그들은 두말없이 기병도의 칼집과 주먹으로 세 경관의 목이며 어깨, 잔등을 마구 후려쳤다.

《게으름뱅이자식들, 경비도로는 저 모양인데 아편장사 돈주머니나 뒤지고있는가?》

세 경관은 기병들의 왁작 고아대는 기갈소리에서 소좌의 군마가 발목을 상했다는 말을 가려듣고 눈알을 굴려 출입문옆에 서있는 새파랗게 젊은 소좌쪽을 바라보았다.

소좌는 이 자그마한 근무실의 탁한 공기와 벽지경관들의 밥곽반찬냄새때문인지 흰장갑 낀 손을 코앞에 대고 서있다가 만또자락으로 바람을 일으키며 홱 돌아서 나가버렸다.

뒤따라나가던 중위가 안에 대고 소리쳤다.

《며칠안에 너희네 구역내 도로를 직선으로 펴놓아. 여기는 이제 전장이 돼. 알겠는가!》

자기들이 족치던 녀자앞에서 이런 벼락봉변을 당한것이 창피해서인지 세 경관은 얼굴들이 벌겋게 되여 서로 말없이 쳐다보다가 윤보금에게 냉큼 돌아가라고 소리쳤다.

보금이 엉거주춤 일어서는데 최순사가 주먹으로 그의 턱을 툭툭 건드리며 오금을 박듯이 뇌까렸다.

《너같은 얼빠진 년들때문에 우리가 본분을 다하지 못한단 말이야. 가서 깊이 생각했다가 부르면 다시 와! 군대들을 봤지? 여기는 이제 전장이 돼. 고분거리지 않으면 땅해치우겠다.》

밖에는 눈발이 설피여졌다. 날씨는 푸근했다.

길가에 나와선 윤보금은 흐려진 눈으로 마을쪽을 바라보았다.

눈을 하얗게 들쓴 집집의 굴뚝들에서 김같은 연기가 모락모락 피여오르며 평화로운 기운을 풍기였다.

저쪽길가의 집옆에 있는 우물에서 녀인이 물동이를 이고 일어나더니 동이밑굽에 맺히는 물방울들을 손으로 털어내리며 한가롭게 걸어서 사립문안으로 사라졌다.

보금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그 녀자가 무척 부러웠다. 아, 그도 이러한 아늑한 저녁이면 저렇게 동이로 물을 긷지 않았던가. 동이굽에 맺히는 물방울들을 한손으로 털어내리며 가볍게 걸을 때의 그 만족감… 온 식구가 저녁상에 둘러앉아 변변치 못한 음식이나마 맛스럽게 들어줄 때의 그 기쁨, 설겆이를 말끔히 해놓은 다음의 홀가분한 즐거움… 보금이는 시집에 두고온 그 모든것이 못내 그리워지며 눈에 눈물이 가랑가랑 맺혔다. 어느 집에서나 가정적인 단락이 깃드는 이러한 시각에 모든것이 서먹서먹해진 친정집으로 들어가기가 죽도록 싫었다.

그는 마을우의 재빛하늘을 우두커니 바라보다가 집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얼마나 속을 태우며 기다리랴 하는 생각이 들어서야 하는수없이 싫은걸음을 떼였다.

그가 마촌 시집을 떠난지도 어언 두달이 지났다.

보금은 시집에 있을 때 남편이 혁명에 반하여 자기를 외면하고 나가 돌아치며 철없이 굴어도 웬일인지 그것이 밉지 않았다. 밉기는 고사하고 그럴수록 남편이 철부지어린애로 여겨지며 정이 더 가는것이였다.

보금은 창억의 안해라기보다도 누이이며 어머니였다.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이 맹목적인것처럼 남편에 대한 보금의 사랑 역시 그와 비슷했다.

혹시 맛있는 음식이 생기면 자기는 입에 대보지도 않고 남편의 상에만 놓았다. 남편이 어디 나가 축에 빠진다든지 몰리우면 가슴에서 불같은것이 펄펄 타오르며 입맛도 없어지고 잠도 오지 않았다. 남편을 위해서라면 무던한 성미까지 버리고 어떤 모질고 악착스러운짓도 할것 같았다.

남편의 유격대참군이 부결된 까닭을 알게 되였을 때 그는 절망과 함께 자기만이 집에서 사라지는 날이면 모든 일이 다 펴이리라는 생각을 품게 되였다. 생각은 그러면서도 시부모들을 노엽히는것이 무서워 용단을 내리지 못했다.

시집에서의 마지막밤, 시아버지가 남편에게 웨친 소리는 망설이기만 하면서 내딛지 못한 그 무서운것에로 자기를 떠미는 호령이였다.

새벽에 집을 뛰쳐난 그는 대왕청하와 소왕청하의 합수점에 있는 소로 달려나갔다.

바위우에 올라앉은 보금은 사품치며 소용돌이치는 검은 물결을 들여다보다가는 뒤를 돌아보게 되였다. 누가 소리치며 달려와주었으면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 더럽고 검질긴 미련이 소에 몸을 던지지 못하게 하였다.

보금은 자기의 꼬락서니를 친정집에는 물론 어느 누구에게도 보이고싶지 않았다. 그래서 정처없는 길을 떠나 발이 가는대로 걸어가다가는 류랑민들의 모닥불가에 자리를 얻어 쪽잠이 든 일도 한두번이 아니였다.

동정심 많고 속이 궁한 류랑민들은 삶은 감자알을 권하며 웬 녀인인데 무슨 팔자로 홀몸이 되여 이런 길을 헤매느냐고 물었으나 그때마다 보금은 입을 봉하거나 꾸며낸 말로 창억이와 잇닿은 자기 불행의 사연은 가슴에 깊이 묻어버렸다. 필요이상의 동정을 보이던 한 홀아비는 새벽녘에 무거운 한숨을 거듭 쉬고나서 기구한 자기 한생을 이야기하던 끝에 이 흉흉한 세상에서는 서로 마음을 의지해야 살아갈수 있다는 말을 비쳤다. 보금은 무섭게 번뜩이는 눈으로 그를 쏘아보고는 꼿꼿이 일어나 길을 떠나버렸다.

그는 어느 부유한 농가에서 키질도 해주고 방아도 찧어주고는 밥을 얻어먹고 지내다가 다시 길을 떠나 석두촌에 이르러 지주집 부엌데기로 들어갔다.

악착스러운 구박과 극심한 천대에 참을수 없었던 보금은 다시 그 집을 나와 일자리를 찾아헤매다가 굶주림에 시달린 나머지 병이 들어 길가에 쓰러지고말았다. 보금이 임자없는 주검처럼 길가에 딩굴던 자기를 물건너에서 온 전장원이란 사람이 의원집에 업어왔다는것을 알게 된것은 다음날 저녁무렵이였다.

의원집아래목에서 눈을 뜬 그는 자기옆에 앉아있는 양복차림의 사나이가 예전에 풍인동에서 룡정으로 건너가 중학교를 다니던 전장원이란것을 알아보았다.

전장원은 반가와도 하고 놀라기도 하면서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보금은 좀 다녀오려고 친정으로 나가다가 앓게 되였노라고 하고는 눈을 내리떴다.

전장원은 보금의 친정집래력이며 보금이에 대하여 잘 알고있었다. 그는 옛날 지주 서완오의 집에서 생겼던 돈궤도난사건은 셋째첩년이 앙큼한 질투심으로 감춘것이 판명이 되였노라고 하며 안심하고 집으로 고향으로 가자고 이끌었다.

보금은 전장원이 자기에 대하여 그처럼 잘 알고있는것이 놀라왔으며 그의 호의가 고마왔다. 보금이는 그에게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전장원은 어디로인가 달려나가더니 온성에서 들어왔다는 어느 운송점의 마차를 끌고와서 보금이를 그우에 눕혔다.

전장원과 운송점주인인 주영백이라는 사람이 내내 마차곁에 붙어서서 걸어왔다. 두사람은 매우 가까운 사이인것 같았다. 그들은 마부에게 마차를 조심조심 몰라고 자주 주의를 주는것이였다.

보금이는 보잘것없는 자기를 애지중지 보살펴주는 그들의 호의에 대하여 처음에는 같은 고향사람이기때문이려니 하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무엇을 자꾸 캐여물을가봐 눈을 꼭 내리감고 잠에 노그라떨어진척 하였다.

두사람도 그가 잠든줄로 알고 마차뒤에서 따라오며 수군수군 말을 주고받았다.

《확실하오?》

《내가 한마을에 살았는데 그걸 모르겠소? 왕청 산골 마촌이라는데 시집갔댔소.…》

《거기도 공산근거지안이겠지?… 거기 사정을 잘 알게 아니요?》

《글쎄말이요. 차차… 몸이 추선 다음 차차 알아보지.》

이런 이야기를 숨을 죽이고 들은 보금이는 그들의 호의밑에 다른 속심이 깔려있다는것을 비로소 알게 되여 의심스러운 생각과 함께 더럭 겁이 났다. 무슨 사람들인가. 내가 어떤 꾀임수에 든게 아닌가? 보금이는 마차에서 뛰여내려 어디론가 도망치고싶은 충동까지 느꼈다. 그러나 그들이 왜놈의 밀정이라면 친절을 베풀지 않고 당장 손목부터 묶고 마차에 내동댕이쳤으리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안도의 한숨을 호- 내쉬였다.

집에는 어슬막에 도착하였다. 온 집안이 벌컥 뒤집혀졌다. 전장원으로부터 사연을 들은 아버지와 어머니는 더 캐여묻지 않고 그를 아래목에 눕혀놓고는 부엌에 불을 지핀다 미음을 쑨다 야단법석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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