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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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잔불이 방안을 환히 밝혔다.
그의 얼굴에는 준엄한 시련과 간난신고의 흔적이 력연했다. 두만강변의 세찬 바람에 검스레하게 탄 얼굴은 첫눈에 모색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험하게 깎이웠다.
이마의 한쪽모서리와 왼쪽관자노리에는 긁히워 피터진 자리가 있었다.
《여기 도착하자 모두 동무 생각을 했소. 우리가 근거지로 돌아온걸 알고 왔소?》
《처음에는 전혀 모르고 쌍암촌에 좀 다녀가자고 들렸다가
《다 왔소. 이제는 여기에 아주 든든히 자리를 잡겠소.》
《그렇습니까! 작년 가을부터
쌍암촌에서부터 단숨에 달려와 몸이 화끈 달아오른 그는 덧저고리를 벗어 옆에 개여놓았다. 그 솜덧저고리의 어깨죽지와 앞섶에는 기운 자리가 있고 불에 그슬린 자리도 몇군데 보였다.
《그새 외따로 떨어져 공작하느라고 고생이 많았겠소. 앓지는 않았소?》
《예, 고생이야 무슨 고생이겠습니까. 성과가 적습니다. 속이 타번져
《우리도 동무 걱정을 많이 했소.》
그의 이야기는 두시간이나 계속되였다.
김중권은 분격에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근거지안 일을 바로잡지 않고는 근거지밖에서 반유격구를 절대로 꾸릴수 없습니다. 현당은 시기상조라고 하며 반유격구를 꾸리는 일에는 완전히 무관심입니다. 그뿐이면 또 괜찮습니다. 근거지의 일부 지방에서 죽탕을 쒀놓아 두만강류역 인민들속에서 적지 않은 의혹과 동요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래서 현당의 권일균동무나 홍병일동무와도 이야기해봤는데 근거지의 특수한 조건에선 사회주의혁명을 할수 있다고 땅땅 큰소리만 치면서 우리 로선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도저히 론박해낼 재간이 없습니다.》
《왜 론박할수 없소?》
《이번에 단독공작을 수행하면서 제 리론적준비가 얼마나 빈약한가를 통감했습니다.…》 김중권은 잦아드는 목소리로 대답하며 무거운 한숨을 내쉬였다.
김중권의 눈은 불을 뿜는듯 번쩍이였다.
《권일균은 엠엘파고 홍병일은 화요파입니다. 그들의 행동에는 틀림없이 종파적야심이 깔려있습니다. 그러지 않고야 어떻게 그토록 열에 떠서 제 주장만 뻗대겠습니까. 이번 기회에 조직적으로 문제를 세워 제거합시다.》
《나도 여러모로 생각해봤소. 책임이 큰 몇몇 사람을 제거한다거나 쏘베트를 페지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건 아니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쏘베트로선에 공명하고 추종했던것만큼 우선 그들이 쏘베트로선이 왜 나쁜가를 똑똑히 알도록 해야 하오. 그다음에 인민들
《제가요?》
김중권은
《천천히 준비하오. 내가 도와주겠소. 인민들을 깨우치는 이 일에는 시간을 아끼지 말아야 하오.》
김중권은
《
《동무는 그런 생각은 말고 맡은 일에 전념하오. 어떤 역경에 처하더라도 근거지를 꾸려놓고봐야 하오.》
이때 정지간문이 여닫기는 소리가 나더니 부엌쪽에서 주인늙은이가 누구인가를 반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이 밤중에 어떻게?》
《찬거리를 좀 구해왔어요.》
《원, 부녀회장한테 이런 수고까지 시켜서 되겠소?》
그 소리에
《웃방에는 누가 왔어요?》
《이전에 왔던 김중권이라는 그 사람이 찾아와서 자꾸 얘기를 하는 통에
늙은이는 웃방에서 들을가봐 저어하는듯 목소리를 죽여가며 소곤거렸다.
《하루밤도 편히 쉬지 못하셨는데 날래 유격대병실에나 가서 자고 래일 아침에 와서 얘기했으면 좋지 않겠소. 속상해서…》
《누구라구요?》
《이전에 왔던 김중권이라는 그 사람이라니까.》
《예- 저는 그럼…》
《올라와 좀 몸이나 녹이지 않구.》
이윽고 정지문이 다시 여닫기는 소리가 나고 발자국소리가 뜨락을 총총히 지나 아득히 멀어져갔다.
방안에는 따뜻한 화기가 휘감겨드는듯 하였다.
김중권은 괴로운 얼굴로 담배를 꺼내들었다가
《담배를 배웠소?》
《적후공작에서 속이 타는 일이 많으니 자연히 피우게 됐습니다. 혼자 있을 때는 이게 정말 동무가 됩니다.》 하고 말하며 그는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피우오, 어서 피우오.》
이튿날 이른아침, 김중권이보다 먼저 일어난
울바자밖에 나와서신
(그러니 저 부녀회장동무가 한흥권동무가 말한 그 녀성이 아닌가. 룡정에서 중학교를 졸업했다더니 애인의 뒤를 따르자고 여기 유격근거지로 들어온 모양이군.…)
뜨락쪽에서 비자루질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일어났는지 김중권이 싸리비자루로 눈을 쓸어나왔다. 그는 차겁고 신선한 아침공기속에서 기운이 우쩍우쩍 솟아나는듯 비자루를 걸싸게 놀렸다. 그의 량옆으로 번갈아 날아오르는 비자루끝에서 눈가루가 뽀얗게 날렸다. 그렇게 눈을 쓸던 김중권은 림성실의 발자욱을 알아보았는지 문득 비자루를 멈추고 한동안 그 무슨 상념에 잠기는듯 하더니 다시 조심조심 눈을 쓸어나오며 그 자욱도 지워버렸다.
(저 동무는 지난날 애인의 가슴에 그토록 아픈 상처를 남겨놓고도 오늘은 여기 근거지에 들어와 만났는데 왜 또 모르는척 외면하는가?… 그사이 갈라졌는가? 아니면 자기들의 관계를 숨겨야 될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겐가?)
밤새 그쳤던 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