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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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촌에 돌아오신 장군님께서는 이튿날 하루종일 여러 지방에 파견되였던 공작원들로부터 실태보고를 받으시였다. 지방마다 형편이 서로 달라 일이 잘되는 고장도 있었지만 쏘베트가 선데서는 좌경바람에 엄중한 사태가 빚어지고있었다.

그이께서는 여기로 오시기 전에 근거지에서 좌경적편향이 발생하여 일이 순조롭게 되여가지 못하고있다는것을 이미 알고계시였다.

그러나 사태가 이 지경에, 이런 파국적인 위기에 이르렀으리라고는 상상 못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가슴이 허물어져내리는듯 하시였다. 좌경적인 쏘베트로선을 주장하고 실시한 사람들에 대한 분격이 치밀어올라 진정할수 없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밖으로 나가 마을길을 홀로 걸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털외투를 걸치시고 고개를 수굿하신채 무거운 걸음을 옮겨가시였다.

눈길을 밟는 소리만이 밤의 정적을 조용히 흔들었다.

마을은 고요에 묻혀있었다. 눈보라가 집집의 울타리밖이며 나무가리옆에 눈을 한길이나 되게 쌓아올렸다. 길바닥의 눈은 바람이 말끔히 쓸어가 사람들의 발에 다져진 자리만이 달빛에 희미하게 번들거렸다

장군님께서는 문득 걸음을 멈추시고 집집의 방문들을 돌아보게 되시였다.

고삭아서 후줄근하게 처져내린 처마의 그림자가 드리워 침울하게 보이는 문들도 있고 새 동기와지붕의 빳빳하게 쳐들린 처마밑에 달빛을 받아 환한 문들도 있으며 불빛이 발기우리하게 어린 방문들도 있다.

사람들의 얼굴모습처럼 서로 다른 그 문들은 한없는 기대에 차서 그이를 바라보는것 같았다.

저 문들안에서는 가슴에 피멍이 들게 고생살이를 하며 각이한 운명의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 아이들과 안해와 부모들을 옆에 눕혀놓고 살아갈 걱정을 하다가 시름많은 가슴을 펴지 못한채 쪽잠이 들었을것이다. 어찌 보면 그 모든 집집의 방문들에서는 그들의 요구와 주장과 희망이 숨쉬고있는듯 하였다.

(인민들의 요구가 혁명의 구호로 웨쳐지며 혁명이 참되게 인민대중을 위한것으로 되게 한다면 혁명은 몇몇 사람의것이 아니라 인민대중자신의 일로 될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도대체 어떤 사태가 벌어졌는가?)

현당의 일부 사람들은 근거지안에서는 사회주의혁명을 해야 한다고 그릇되게 주장하면서 쏘베트를 통하여 《공동생활》, 《공동경작》을 실시하려고 하였다. 그들은 인민들이 그것들을 기쁘게 받아들이는가, 마지못해 받아들이는가, 반감을 품고 받아들이는척만 하고있는가에 대하여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고려하지 않았다. 혹심한 주관주의에 사로잡혀 몇몇 사람의 의지면 못해낼 일이 없을것 같이 여기고 인민들의 리익, 인민들의 념원, 인민들의 감정과 생활풍습까지도 무시하면서 좌경적인 쏘베트로선을 내휘둘렀다. 리재명이같은 사람들은 인민들의 심정을 대변하려고 하였다가 그들로부터 강박을 당하였다.

그들은 인민들에 대하여 소경이였으며 인민들은 자기들의 심정을 알아주지 않는 그들을 자기네와는 다른 사람들로 여기고 반신반의하면서 간격을 두고 대하게 되였다. 눈에 보이지 않고 가슴속 깊은 곳에서 서서히 맺혀진 티끌만 한 이 하나의 문제점으로부터 시작하여 혁명과 인민대중의 뉴대에 금이 가고 혁명의 대중적지반이 흔들리우는것과 같은 엄중한 사태가 생겨났다.

그이의 눈앞에는 문득 쌍암촌의 쏘베트지붕에서 날름거리던 시뻘건 불길이 떠올랐다. 다른 지방들에 갔다온 공작원들도 최근시기 구국군들이 구나 촌의 쏘베트들에 달려들어 행패질을 한 사실들을 보고하였다. 그들의 이런 기습을 식량을 빼앗으려는 비적행위로만 볼수 없다. 쌍암촌을 비롯한 여러 지방들에서 쏘베트에 대한 그런 기습이 거의 같은 시기에 거듭된것으로 보아 그 방자한 행패질밑에 그 어떤 정치적감정이 깔려있는것이 아닌가? 구국군은 쏘베트의 좌경적인 시책때문에 우리 조선공산주의자들과 우리 혁명에 대하여 적대감을 품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좌경적인 쏘베트로선은 혁명과 인민대중의 혈연적인 뉴대를 심히 약화시켰을뿐아니라 구국군들과의 관계도 극도로 악화시킨것이 아닌가?

쏘베트로선의 제창자들은 여태 이런 엄중한 후과가 빚어지고있는것을 모르고있었는가? 알면서도 모르는척 했는가?

그들은 발생하는 후과들에서 교훈을 찾을 대신 왜 그토록 험악하게 놀아났는가? 무식으로부터 다른 나라 혁명의 경험을 통채로 받아들여 쏘베트로선이 옳다고 믿었기때문에, 《정의감》에 불타서 그토록 광분하였는가? 종파적야심때문인가? 근거지를 해치려는 의식적인 리적행위인가? 고의적인 리적행위라면 문제는 간단히 서며 해결하기도 훨씬 쉬울것이다.

그러나 쏘베트의 일군들속에는 혁명이라는것은 이렇게 하는것인가 하여 쏘베트로선을 적극 지지하고 그 집행을 위하여 헌신분투한 사람들이 많지 않는가. 과거에 피눈물을 삼키며 살아온 소박한 인민들속에도 못마땅한것은 울며겨자먹기로 참으면서 왜놈이 없고 지주놈이 없는 정치라고 쏘베트를 진심으로 떠받든 사람들이 많지 않는가.… 한가지나 두가지 원인이 아니라 크고작은 그리고 뚜렷하기도 하고 희미하기도 한 여러가지 요인들이 하나로 뒤엉켜 이런 사태를 빚어낸것이 분명하다.

장군님께서는 마을을 벗어나 동림촌쪽으로 멀리까지 가셨다가 다시 돌아오시며 이 사태를 어떤 방법으로 수습할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하시였다. 하나의 원인으로부터 생긴 사태라도 그 하나의 원인을 제거하고 사태를 바로잡는데는 여러가지 방도가 있을수 있을것이다. 하물며 인간과 생활이 배태하고있는 헤아릴수 없는 원인에 의하여 생긴 사회적현상을 수습하기 위한 방도를 찾아내기란 헐한 일이 아니였다.

좌경적편향이 심하게 나타난 지방들에 나갔다온 동무들이 리적행위라고 규탄하며 부르짖던 말들이 귀전에서 쟁쟁히 울리였다.

그이께서는 걸음을 뚝 멈추시였다.

(그럼 주동인물들은… 조직적인 제거란 말인가?)

푸르스름한 달빛이 흐르는 하늘에서 별들이 흠칫 움츠러들며 얼어붙는듯 하였다.

그이께서는 민족주의자들과 종파분자들의 그 피비린내나는 파쟁을 조금이라도 련상시킬수 있는 방법을 취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시였다.

(우리는 새형의 공산주의자들이다!)

그러면 근거지에 처음으로 정권을 세우고 아무런 경험도 없이 그 정권을 운영해보는 과정에 생긴 과오로, 이를테면 세상에 갓 태여난 아기가 앓는 소아병과 비슷한 하나의 좌익적인 소아병으로 보고 조심스럽게 고쳐나갈것인가?

장군님께서는 결론을 내리시는데 서두르지 않으시고 심중하게 거듭거듭 생각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이날 밤에만 마을길을 거니신것이 아니였다. 사람들은 그 다음날, 다음다음날 밤에도 그이께서 깊은 생각에 잠기시여 마을을 에도시는 모습을 보았다. 그이의 사색에 방해로 되지 않게끔 멀리 뒤에 떨어져서 걸으며 호위의 밤을 밝히는 전령병의 얼굴도 눈에 띄게 깎이웠다.

마을에 며칠째 고요가 계속되였다. 그 고요속에서 밤마다 마을을 거니시는 장군님의 발걸음소리만이 울렸다.

그것은 비상한 침묵이였으며 류다른 고요였다. 사람들로 하여금 반성케 하고 사색케 하고 자각하고 헌신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침묵이며 고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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