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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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둑한 방안에는 새끼와 짚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물을 뿌려 눅눅해진 짚에서 풍기는 싱그러운 짚냄새와 메주콩냄새, 로벽에 밴 담배진내와 무슨 그을음냄새 같은것이 한데 어울린 빈농가정의 진한 생활체취가 방안에 가득차있었다.

김진세로인은 새끼퉁구리며 짚을 서둘러 웃목으로 밀어놓으며 장군님께 자리를 내여드렸다.

로인은 장군님께서 자기 집을 찾으시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있은데다가 이런 루추한 방에 모시게 되니 너무 송구하여 어쩔바를 몰라하였다.

장군님께서는 로인이 권하는 자리보다 좀 웃쪽에 스스럼없이 앉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짚을 서너오리 쥐여 무릎우에 올려놓고 그것을 다심하게 쓰다듬어보며 이런 산골에 웬 벼짚인가고 물으시였다.

김진세는 의아한 눈으로 장군님을 보다가 어줍게 웃으며 지난해에 벌방쪽에 내려가서 귀밀쌀과 바꿔와서 잘 말리워 헛간 천장밑에 올려놓았던것이라고 말하였다.

《한해 묵은 짚으로 새끼를 꽈서야 얼마나 든든하겠습니까?》 하고 장군님께서는 물으시였다.

《예, 맥을 못춥니다.… 그래도 웬만한데는…》

《차라리 역삼이나 피나무껍질로 바를 든든하게 꽈쓰면 좋지 않습니까?》

《예.…》

김진세는 장군님께서 농사군의 새끼며 바에 대하여 잘 아시는데 저으기 놀라면서도 겁이 내비친 눈으로 그이의 눈치만 살피는것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이 고장 농민들의 생활에 대하여 이모저모로 물으시였다. 그이께서 한가지를 물으시면 로인은 겨우 그 한가지를 대답하고는 목소리가 기여들어가고말았다. 그리하여 이야기는 기름기있게 흐르지 못하고 토막토막으로 끊기였다.

장군님께서 신발에 대하여 물으시였을 때 김진세는 갑자기 절을 하듯 머리를 숙이며 비통하게 부르짖었다.

장군님! 에둘지 말아주십시오! 저는 장군님을 만나뵈옵기 떳떳하지 못한 놈이올시다.…》

로인은 백발이 성성한 머리를 떨었다.

문가에 앉았던 성림은 너무도 뜻밖이고 놀라와 엉거주춤 일어나기까지 했다.

장군님께서는 방바닥을 짚고있는 로인의 거쿨진 두손을 뜨겁게 잡으시였다. 그 손등에서는 피줄이 툭툭 뛰였다.

《로인님, 왜 이러십니까?》

로인은 서서히 얼굴을 들었다. 그의 눈에서는 열물같은 눈물이 장구한 생활고의 흔적인 주름살들을 메우며 흘러내려 수염발에 방울져 맺혔다.

《저는 죄를 지은 몸이올시다.…》

로인의 목소리는 순간에 탁 갈리여버렸다.

《사람들이 이 허연 백발에 침을 뱉어도 항변할 소리 없는 놈입니다.》

《로인님, 이러지 마시고 차근차근 말씀하십시오. 집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저는 로인님이 이 마을에서 제일 좌상되시는분이라기에 마을형편이랑 농민들의 심정이랑 들어보려고 들리였는데 이렇게 나오시니 제 마음도 좋지 못합니다.》

장군님, 저한테 무슨 쓸소리가 있겠습니까.… 실은 저희 집에 기막힌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구실을 못해서… 제 아들놈도 부실해서… 며늘아이가 글쎄 탈가해서 여기서 아주 도망쳐나갔습니다. 처음에는 저 대왕청하물에 몸을 던진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은것 같습니다. 차라리 온성 친정에나 가있었으면 다행이겠는데 도무지 소식을 알수 없습니다.

이런 기막힌 일이 어디 있습니까.… 저는 마을에서 좌상구실도 변변히 못했소이다. 저아래에 살던 마종삼이라는자도 도망쳐나갔는데… 저는 그와 결의형제를 무은 사이였습니다. 그 사람이 쏘베트가 하는 일에 대해서 별의별 악담을 다 하는걸 듣고도 가만있었습니다. 쏘베트가 농군들의 뙈기밭까지 다 빼앗는다고 펄펄 뛰는것도 뺨을 쳐서 눌러앉히지 못했습니다. 나이를 주어먹었다는것들이 이 꼴이니 그 사람 아들인 동호라는 애도 모진 고생을 겪었습니다.

장군님! 장군님께서 군사를 일으켜 남북만주를 진감하며 왜놈들과 싸우시는데 백성의 도리를 지켜 힘껏 도울 대신 뒤에 앉아 이런짓을 했으니 이런 고약한짓이 어디 있겠습니까.… 장군님께서 오셨다는 말을 듣고 지난밤을 뜬눈으로 새며 지나온 일을 생각하니 기막히기만 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없이 깊은 생각에 잠기시였다.

김진세는 머리를 푹 떨구고 앉아있었다.

이윽고 아래방에서 로친의 말소리가 나자 김진세는 조용히 일어나 정지간으로 내려갔다.

방안에는 고요가 짙어갔다.

장군님께서는 모두숨을 길게 내쉬시고는 무심결에인듯 짚을 한줌 쥐여 툭툭 터시더니 새끼를 꼬기 시작하시였다. 놀랍게 익숙하신 솜씨였다. 새끼는 굵기가 고르로우면서도 탄탄하게 꼬아졌다. 그이께서는 가락맞는 소리를 썩썩내며 날래게 꼬아나가시다가 이따금 물을 뿌려 둔 짚단을 쑥 쓸어만져 손바닥에 누기를 주시고는 손을 더 재게 놀리시였다. 새끼발은 쑥쑥 늘어나 그이의 등뒤 온돌바닥우에 8자를 그리며 사리여졌다.

이때 정지간으로 통하는 문이 조용히 열렸다.

잉걸불이 가득 담긴 화로를 안고 들어오던 김진세가 문턱에서 와뜰 놀라며 굳어져버렸다. 로인은 화로를 조용히 내려놓고 엉거주춤 서서 새끼를 꼬시는 그이의 모습을 얼이 나간 눈으로 지켜보았다. 화로에서 오르는 열기와 불빛이 어려 로인의 눈은 유난히 번쩍이였다.

장군님께서는 로인을 돌아보며 밝게 웃으시였다.

《같이 새끼나 꼬면서 이야기를 합시다.》

김진세는 그이께로 다가와서 두손을 덥석 잡으며 간절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장군님, 이런 궂은일에 손을 적시지 말아주십시오! 무인의 손이… 이게 될 일입니까?》

《저의 조부님도 로인님과 같은 농사군입니다. 제 고향집은 대대로 땅을 허비며 농사를 지어온 빈농가입니다. 사실 아까 방에 들어설 때 오래간만에 짚냄새를 맡으니 고향생각이 났댔습니다.》

로인은 그 말씀에 놀라서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깊은 혈연으로 이어진 혈육을 오래간만에 만난듯 한 반가움과 기쁨에 로인은 물기가 그렁한 눈으로 그이를 우러러보았다.

저도 모르게 떨리는 입술에서 새여나오는 로인의 목소리는 눈물과 기쁨에 젖어 높이 울리였다.

《아니… 장군님께서도 우리같은… 하… 그러하십니까!》

얼마후 장군님과 로인은 가지런히 앉아 새끼를 스적스적 꼬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리성림은 이런 변화와 융합이 신기하게 느껴지면서 눈시울이 자꾸 뜨거워오름을 어찌할수 없었다.

장군님께서는 로인에게 쏘베트가 뙈기밭까지 빼앗았다는것이 무슨 말인가고 물으시였다.

김진세로인은 쏘베트가 농민들의 모든 토지를 공동경작한다고 농군들이 산속에 화전을 일구어 가꾸던 뙈기밭까지 조사했던 일들을 죄다 말하였다.

《여기로 흘러든 류랑민들이란게 다 제땅이 없어서 쫓겨다니는 사람들이였지요. 지주놈의 등쌀밑에서 소작지를 얻어 겨우 살아가면서도 평생소원인 제땅을 가지고싶어 산에 몰래 화전을 일궈 뙈기밭들을 마련해가졌던겝니다.… 쏘베트가 서서 지주놈을 내쫓은 다음 그 넓은 땅이 작인들에게 차례지려니 은근히 바라면서 기뻐들 하였지요. 한데 어떤데서는 그게 다 쏘베트가 관할하는 공동소유지로 들어갑데다. 섭섭한 마음이야 이를데 없었지만 애당초 제땅이 아니였으니 그런대로 마음을 가라앉힐수 있었습니다.

다음에는 자작농들의 밭까지 공동소유에 몰아넣더니 뙈기밭조사에 달라붙는게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 마종삼이란 사람도 맘이 잔뜩 꼬이구 뒤틀려졌지요.》

장군님께서는 새끼를 스적스적 꼬시며 로인의 이야기를 주의깊이 들으시다가도 때로는 일손을 멈추시고 심각한 눈빛으로 그의 얼굴을 돌아보시였다.

《아무데서나 다 그랬습니까?》

《어떤 마을에서는 더하고 어떤 마을에서는 덜했습니다. 우리 마촌에서는 래년봄부터 공동경작을 한다고만 소리쳤지 아직까지는 다른데서처럼 그렇지는 않습니다. 허지만 장차는 뙈기밭까지 내놓게 되겠거니 하고 생각하면 눈앞이 아뜩해지구 품에 안았던 어린 자식을 잃는것처럼 가슴이 그냥 허전한게 다리까지 후들후들 떨리면서…》

《예.…》

심정과 심정이 하나로 뜨겁게 어울려지는 가운데 어느덧 이야기는 김진세일가의 가정불화에로 미치여 아들의 유격대입대부결이며 며느리의 탈가가 화제에 올랐다.

그이께서는 못내 가슴이 아프시여 한동안 아무 말씀도 못하시였다.

이때 정지간으로 통하는 사이문이 방싯 열리며 머루알같이 새까만 눈이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장군님께서는 어느결에 그 눈을 보시고 문을 여시였다. 문턱너머에서 토스레옷을 걸친 사내아이가 흠칫 놀라 물러섰다. 봉남이였다.

그이께서는 아이를 번쩍 안아들여 무릎우에 올려앉히시고 손수건을 꺼내여 코구멍에서 쿨쩍거리는 버들강아지같은것을 씻어주시였다.

《손자입니까?》

《예.…》

봉남이는 장군님의 품에 안기니 우쭐해져서 할아버지를 보고 벌쭉 웃고는 그이의 혁띠며 군복단추를 만져도 보았다.

김진세는 녀석이 장군님을 전혀 어려워하지도 않고 무엄하게 구는것이 놀라와 내려앉으라고 눈을 흘기였다.

《둬두십시오.》 하고 그이께서는 부드럽게 이르시였다.

김진세는 한숨을 내쉬였다.

《애비에미없이 자란다고 불쌍해서 회초리로 다스리지 못했더니 녀석이 통 버르장머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로인은 왜놈들에게 학살당한 맏아들내외와 둘째아들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비명에 간 애들을 생각해서라두 제가 처사를 똑똑히 했어야 했겠는데 그러지 못하다나니 집안일이 이 모양이 됐습니다. 어떤 때는… 집안의 씨종자나 다름없는 이녀석이 흙뎅이처럼 굴러다니는걸 보느라면 앞이 캄캄해지고 가슴이 다 허물어져내리는것 같았습니다.》

로인은 가래같이 큰 손을 들어 눈밑에 즐벅해진 눈물을 훔치였다.

장군님께서는 그 손을 뜨겁게 잡아쥐시였다.

《로인님, 힘을 내십시오. 로인님에게는 잘못이 없습니다. 혁명을 시작해놓고 옳바르게 이끌어나가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잘못이 큽니다. 로인님같은분들이 마을에서 기둥이 돼서 일을 해야 합니다. 함께 손을 잡고 마을일이랑 바로잡아봅시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리재명과 오래동안 담화하고나시여 유격대병실에서 지휘관들의 모임을 가지시였다.

저녁무렵에는 근거지들에서의 사업형편을 료해하기 위하여 여러 공작원들이 멀고 가까운 지방들에 파견되였다.

장군님께서는 떠나가는 공작원들을 친히 바래주시며 어느 마을에 가서나 지난 세월 고생도 제일 많이 하고 나이도 제일 많은 로인들을 먼저 찾아가서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그들의 이야기부터 들어보라고 이르시였다.

그이께서도 한 방향을 맡으시여 쌍암촌으로 나가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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