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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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둑한 방안에는 새끼와 짚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물을 뿌려 눅눅해진 짚에서 풍기는 싱그러운 짚냄새와 메주콩냄새, 로벽에 밴 담배진내와 무슨 그을음냄새 같은것이 한데 어울린 빈농가정의 진한 생활체취가 방안에 가득차있었다.
김진세로인은 새끼퉁구리며 짚을 서둘러 웃목으로 밀어놓으며
로인은
김진세는 의아한 눈으로
《한해 묵은 짚으로 새끼를 꽈서야 얼마나 든든하겠습니까?》 하고
《예, 맥을 못춥니다.… 그래도 웬만한데는…》
《차라리 역삼이나 피나무껍질로 바를 든든하게 꽈쓰면 좋지 않습니까?》
《예.…》
김진세는
《
로인은 백발이 성성한 머리를 떨었다.
문가에 앉았던 성림은 너무도 뜻밖이고 놀라와 엉거주춤 일어나기까지 했다.
《로인님, 왜 이러십니까?》
로인은 서서히 얼굴을 들었다. 그의 눈에서는 열물같은 눈물이 장구한 생활고의 흔적인 주름살들을 메우며 흘러내려 수염발에 방울져 맺혔다.
《저는 죄를 지은 몸이올시다.…》
로인의 목소리는 순간에 탁 갈리여버렸다.
《사람들이 이 허연 백발에 침을 뱉어도 항변할 소리 없는 놈입니다.》
《로인님, 이러지 마시고 차근차근 말씀하십시오. 집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저는 로인님이 이 마을에서 제일 좌상되시는분이라기에 마을형편이랑 농민들의 심정이랑 들어보려고 들리였는데 이렇게 나오시니 제 마음도 좋지 못합니다.》
《
이런 기막힌 일이 어디 있습니까.… 저는 마을에서 좌상구실도 변변히 못했소이다. 저아래에 살던 마종삼이라는자도 도망쳐나갔는데… 저는 그와 결의형제를 무은 사이였습니다. 그 사람이 쏘베트가 하는 일에 대해서 별의별 악담을 다 하는걸 듣고도 가만있었습니다. 쏘베트가 농군들의 뙈기밭까지 다 빼앗는다고 펄펄 뛰는것도 뺨을 쳐서 눌러앉히지 못했습니다. 나이를 주어먹었다는것들이 이 꼴이니 그 사람 아들인 동호라는 애도 모진 고생을 겪었습니다.
김진세는 머리를 푹 떨구고 앉아있었다.
이윽고 아래방에서 로친의 말소리가 나자 김진세는 조용히 일어나 정지간으로 내려갔다.
방안에는 고요가 짙어갔다.
이때 정지간으로 통하는 문이 조용히 열렸다.
잉걸불이 가득 담긴 화로를 안고 들어오던 김진세가 문턱에서 와뜰 놀라며 굳어져버렸다. 로인은 화로를 조용히 내려놓고 엉거주춤 서서 새끼를
꼬시는
《같이 새끼나 꼬면서 이야기를 합시다.》
김진세는
《
《저의 조부님도 로인님과 같은 농사군입니다. 제 고향집은 대대로 땅을 허비며 농사를 지어온 빈농가입니다. 사실 아까 방에 들어설 때 오래간만에 짚냄새를 맡으니 고향생각이 났댔습니다.》
로인은 그 말씀에 놀라서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깊은 혈연으로 이어진 혈육을 오래간만에 만난듯 한 반가움과 기쁨에 로인은 물기가 그렁한 눈으로 그이를 우러러보았다.
저도 모르게 떨리는 입술에서 새여나오는 로인의 목소리는 눈물과 기쁨에 젖어 높이 울리였다.
《아니…
얼마후
리성림은 이런 변화와 융합이 신기하게 느껴지면서 눈시울이 자꾸 뜨거워오름을 어찌할수 없었다.
김진세로인은 쏘베트가 농민들의 모든 토지를 공동경작한다고 농군들이 산속에 화전을 일구어 가꾸던 뙈기밭까지 조사했던 일들을 죄다 말하였다.
《여기로 흘러든 류랑민들이란게 다 제땅이 없어서 쫓겨다니는 사람들이였지요. 지주놈의 등쌀밑에서 소작지를 얻어 겨우 살아가면서도 평생소원인 제땅을 가지고싶어 산에 몰래 화전을 일궈 뙈기밭들을 마련해가졌던겝니다.… 쏘베트가 서서 지주놈을 내쫓은 다음 그 넓은 땅이 작인들에게 차례지려니 은근히 바라면서 기뻐들 하였지요. 한데 어떤데서는 그게 다 쏘베트가 관할하는 공동소유지로 들어갑데다. 섭섭한 마음이야 이를데 없었지만 애당초 제땅이 아니였으니 그런대로 마음을 가라앉힐수 있었습니다.
다음에는 자작농들의 밭까지 공동소유에 몰아넣더니 뙈기밭조사에 달라붙는게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 마종삼이란 사람도 맘이 잔뜩 꼬이구 뒤틀려졌지요.》
《아무데서나 다 그랬습니까?》
《어떤 마을에서는 더하고 어떤 마을에서는 덜했습니다. 우리 마촌에서는 래년봄부터 공동경작을 한다고만 소리쳤지 아직까지는 다른데서처럼 그렇지는 않습니다. 허지만 장차는 뙈기밭까지 내놓게 되겠거니 하고 생각하면 눈앞이 아뜩해지구 품에 안았던 어린 자식을 잃는것처럼 가슴이 그냥 허전한게 다리까지 후들후들 떨리면서…》
《예.…》
심정과 심정이 하나로 뜨겁게 어울려지는 가운데 어느덧 이야기는 김진세일가의 가정불화에로 미치여 아들의 유격대입대부결이며 며느리의 탈가가 화제에 올랐다.
이때 정지간으로 통하는 사이문이 방싯 열리며 머루알같이 새까만 눈이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손자입니까?》
《예.…》
봉남이는
김진세는 녀석이
《둬두십시오.》 하고
김진세는 한숨을 내쉬였다.
《애비에미없이 자란다고 불쌍해서 회초리로 다스리지 못했더니 녀석이 통 버르장머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로인은 왜놈들에게 학살당한 맏아들내외와 둘째아들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비명에 간 애들을 생각해서라두 제가 처사를 똑똑히 했어야 했겠는데 그러지 못하다나니 집안일이 이 모양이 됐습니다. 어떤 때는… 집안의 씨종자나 다름없는 이녀석이 흙뎅이처럼 굴러다니는걸 보느라면 앞이 캄캄해지고 가슴이 다 허물어져내리는것 같았습니다.》
로인은 가래같이 큰 손을 들어 눈밑에 즐벅해진 눈물을 훔치였다.
《로인님, 힘을 내십시오. 로인님에게는 잘못이 없습니다. 혁명을 시작해놓고 옳바르게 이끌어나가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잘못이 큽니다. 로인님같은분들이 마을에서 기둥이 돼서 일을 해야 합니다. 함께 손을 잡고 마을일이랑 바로잡아봅시다.》
이날
저녁무렵에는 근거지들에서의 사업형편을 료해하기 위하여 여러 공작원들이 멀고 가까운 지방들에 파견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