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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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군님께서는 집을 나서시였다. 전령병 리성림이와 리재명이 그이의 뒤를 따랐다.

눈에 덮인 골안에 해빛이 가득찼다. 눈이 시여 앞을 볼수가 없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손을 이마에 올리시고 마을을 둘러보시였다.

리성림은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우며 장난기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야, 이건 바늘로 막 찌르는것 같네!》

이 고장의 풍토에 습관이 된 리재명은 전령병의 그 모습이 재미나고 우스워 실눈을 지으며 미소를 머금었다.

《이런 날에는 아닌게아니라 십리를 걸어가도 얼굴이 새까맣게 타고 살가죽이 벗겨진다고 합니다.》

《회장동지, 그럼 오늘 한번 훌렁 벗어던지구 일광욕을 해볼가요?》

《허허허…》

장군님께서는 그들의 이런 롱말에는 아랑곳없이 마을길을 따라 걸음을 천천히 옮기시였다.

바람 한점 없으나 지독한 추위였다. 면도칼같이 예리한것이 코등이며 볼을 저며내는것 같다. 허공에서는 운모가루같은것이 반짝거리며 아물아물 날아오르기도 하고 떨어져내리기도 한다. 속눈섭이 떡떡 얼어붙는다.

영림서자리인 유격대병실쪽에서 들려오는 노래소리도 한껏 울려퍼지지 못하고 공중에 고드름으로 얼어붙는듯 하다.

말없이 걸음을 옮기시던 장군님께서는 전령병을 돌아보지 않고 물으시였다.

《저기서는 아침부터 오락회요?》

리성림은 흰 입김을 훌훌 날리며 웃음이 가득 담긴 얼굴로 대답했다.

《여기 왕청유격대 장룡산중대장동무가 정말 괴짜입니다. 우리가 남만진출에서 부른 노래를 오늘 하루사이에 다 배우겠다고 들구일어나 박훈중대장동무를 못살게 굴었습니다. 중대장동무는 오늘은 쉬여야 한다고 잘라버렸는데 전광식동무가 맡아나섰습니다.》

《그 동무 거참 대단한 욕심꾸러긴데.》 하고 장군님께서는 웃으시였다.

《그런데 전광식동무가 장룡산중대장한테 넘어갔다는게 조화로군. 응? 그렇지 않소? 오락회때마다 노래를 한번 시키자면 그렇게 비싸게 굴던 전광식동무가 말이요.》

《장룡산중대장동무는 마음에 낀 촌때는 노래로 닦아내야 한다면서 그저 노래를 배우는 일인게 아니라 왕청유격대 촌때를 닦아내는 사업이라고 큼직하게 간판을 내붙이고 구슬리다가 하하하 참, 노래 한곡에 메돼지 한마리씩 잡아낸다고 하지 않았겠어요!》

《그러다간 왕청 메돼지를 다 잡아내겠소! 좌우간 장룡산동무가 이만저만이 아닌데… 노래로 때를 벗긴다. 얼마나 비슷한 소리요.…》

장군님께서는 큰소리로 웃으시였다. 리재명이도 따라웃었다.

여기저기에서 마을사람들이 길로 달려나와 장군님께 인사를 올렸다.

그이께서는 그들과 친절히 인사를 나누시고 살아가는 형편에 대해서도 물으시였다.

사람들은 그이의 물으심에 대답하면서도 세상을 들었다놓고있는 젊으신 장군님의 영상을 가슴에 깊이 새겨두려고 그이의 용모며 군복차림이며 무장을 여겨보는데 더 마음을 쓰는것 같았다.

장군님께서는 흔연하게 웃으시며 농민들의 엉뚱한 물음에도 진지하게 대답하여주시였다.

노루가죽으로 등거리를 해입은 건장한 농민은 장군님의 손을 잡고 눈물이 그렁하여 물었다.

장군님, 삼년후에는 조선이 독립이 된다는 소문이 도는데 그게 실말입니까?》

《조국을 하루빨리 광복시키자는것은 전체 조선사람들의 간절한 소원입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독립이 빨리 되는가, 늦게 되는가 하는것은 우리가 왜놈을 칠 힘을 어떻게 마련하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우리 인민들이 한데 뭉쳐 무장을 들고나선 반일인민유격대를 적극 도와나선다면 조선은 빨리 독립이 됩니다. 독립은 누가 선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자기 힘을 믿고 싸워서 쟁취해야 합니다.》

노루가죽등거리를 입은 농민뒤에 서있던 눈이 총명하게 생긴 로인이 앞으로 나섰다.

리재명은 그에게 길을 내여올리라고 눈짓하였다.

마을길을 따라 유격대병실쪽으로 가시던 장군님께서는 오풍헌네 집모퉁이를 도시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시였다.

그 집 울바자에 색이 난 광고종이가 한쪽귀가 찢어져 펄럭이고있었던것이다. 지난가을에 붙인것이다.

《우리는 왜 즉시 사회주의혁명을 해야 하는가?》

장군님께서는 그 광고를 유심히 바라보시다가 의아하신 눈길로 리재명을 돌아보시였다.

《이게 여기서 한 강연광고입니까?》

《예.…》

《그래 강사는 왜 사회주의혁명을 한다고 했습니까?》

《유식한 소리를 많이 했는데 그 후과는 좋지 못했습니다.》

《어째서요?》

이때 뒤에서 누구인가 다급히 뛰여오는 소리가 났다.

리재명은 놀라서 돌아보았다.

군복차림이 말쑥한 홍병일이 헐떡거리며 달려왔다.

그는 추위때문인지 전에없이 얼굴이 창백해보였다.

홍병일은 장군님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며 곧바로 다가와서 절도있게 거수경례를 붙였다.

《안녕하십니까? 현당위원 홍병일입니다!》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거의 무표정으로 그의 밤빛이 도는 눈을 빤히 들여다보시였다.

홍병일은 말이 없는 사이를 두지 않으려는듯 인차 다음말을 이었다.

《현당조직책동지는 독감에 걸려 나오지 못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오풍헌네 헛간쪽에서 누군가의 울부짖음소리가 들려왔다.

《죽어두 여기서 죽겠다!》

뒤이어 달래는 목소리들이 들렸다.

장군님께서 그쪽으로 걸음을 옮기려고 하시자 홍병일이 그이의 앞을 막아섰다.

《쏘베트사무실에 간부들을 모이도록 했습니다. 불도 뜨뜻이 때놓았습니다. 그리로 가십시다.》

《그럴 필요가 있겠습니까? 모두 자기 자리로 돌아들 가서 여느때나 다름없이 일들을 보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왔다고 사람들을 모이라 헤치라 하며 들볶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남만진출담을 듣고싶은것도 여기 사람들의 심정인데… 자, 갑시다!》

《그런 얘기는 차차 합시다. 동무도 가서 일을 보십시오. 나 혼자 마을을 좀 돌아보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주저없이 울부짖음소리가 들려온 오풍헌네 집마당쪽으로 걸어들어가시였다.

리재명이 눈이 커져서 홍병일을 돌아보았다. 홍병일은 새파랗게 질린 입술을 바르르 떨다가 마당쪽으로 걸어들어갔다.

마당의 공기는 살벌하였다. 헛간앞에 불화로가 내동댕이쳐져 재가 흩어졌다.

그 재를 쓸어모으던 오풍헌령감이 장군님을 알아보고 손에서 비자루를 떨구었다. 보초인듯 장총을 들고 서있던 김창억이 시뻘겋게 울기가 오른 얼굴로 장군님을 우러러보다가 헛간안을 들여다보았다.

헛간안의 짚덤불속에 옷주제가 람루한 청년이 엎드려 흑흑 느껴울고 있었다. 그의 발치에 구겨진 지페 몇장이 흩어져있었다.

장군님의 안광에 섬광같은것이 번쩍하고 지나갔다.

《여기서는 왜 이럽니까?》

김창억이 홍병일에게 눈총을 쏘고는 장군님께 피를 토하는듯 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이 동무 아버지가 근거지에서 도망쳐나갔습니다. 동호는 억울합니다.… 억울합니다.

아버지를 돌려세우자고 쫓아나간것이 도주혐의를 쓰게 됐습니다.… 내내 낮이면 적위대 나무를 해오고 밤이면 이 혁명감옥에 갇혀있었습니다. 우리는 보초를 서고… 동호는… 밥은 가마치만 먹고… 나무짐을 나르느라구 잔등살이 다 벗겨졌습니다. 오늘 아침에 로자까지 주면서 근거지를 떠나 아무데나 가라고 했습니다. 가라는 말이 죽으라는 말보다 더 섧다는데 기끈 부려먹다가 가라고 했습니다. 동호는 못… 못 가겠답니다. 죽어두 근거지에 묻히겠답니다!》

창억이는 제 설음에 겨워 흑흑 느끼며 주먹으로 눈물을 빗씻다가 동호를 들여다보며 부르짖었다.

《야, 동호! 장군님께서 오셨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오셨다! 이 자식아!》

그 소리에 동호는 머리를 번쩍 쳐들고 이쪽을 내다보았다. 눈물과 때국물이 범벅이 된 그의 얼굴이며 시뻘건 살이 들여다보이게 찢어져 너덜거리는 옷주제는 차마 눈을 뜨고 볼수 없었다.

동호는 짚덤불우로 기여나오며 시뻘겋게 피진 눈으로 밖을 내다보면서 부르짖었다.

장군님! 살려주십시오. 저를 내쫓지 말아주십시오!》

그리고는 다시 짚덤불에 엎어져 잔등을 마구 떨며 울음을 터뜨렸다.

리재명이와 창억이가 달려들어가서 그를 안아일으켰다. 오풍헌은 엉거주춤 서서 장군님을 우러러보며 부들부들 떨다가 주먹으로 제 가슴을 들이쳤다.

《어이구, 기막힌 일두. 이 겨울에 화로 하나를 끼구 밤을 샜수다!》

장군님께서는 얼굴이 엄엄하게 굳어지시여 홍병일을 돌아보시였다.

《오늘 아침에 추방처분을 내린건 누구입니까?》

홍병일은 얼굴이 백지장처럼 질리고 눈빛이 더 노랗게 되였다.

《대렬을 정리하자고 그랬습니다. 지내보며… 검열을 해봤는데…》

그는 창억이쪽에 차거운 눈빛을 던졌다가 말을 이었다.

《이 동무들은 모릅니다.…》

《뭘 모른단 말입니까!》

《따로 조용히 이야기했으면 좋겠습니다.》

《좋습니다.… 우선 어느 따뜻한 집에 데려갔으면 좋겠습니다. 저 청년도 조선사람인데 정상이 저게 뭡니까? 저 청년에 대해선 내가 직접 알아보겠습니다!》

그이의 음성은 분노에 떨리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더이상 누구도 돌아보지 않으시고 마당에서 나가시였다.

오풍헌네 집뒤의 둔덕진 곳에 오르신 그이께서는 흥분을 지그시 누르시고 말없이 마을을 굽어보시였다.

눈에 묻힌 마을은 숨을 죽이고있는듯 하였다. 처마밑의 벽들이며 문들이 모두 어둑하게 보였다.

뒤따라 올라와 그이옆에 서있는 리재명은 주먹을 입에 가져가며 자꾸 헛기침을 짖었다.

전령병 리성림은 한쪽어깨에 건 기병총의 부혁을 꽉 움켜쥐고 기쁨이 가셔진 쓸쓸한 눈으로 집들이며 으슥한 골짜기, 산등성이의 시커먼 상록수림을 둘러보았다. 로흑산에서부터 요영구를 거쳐 찾아온 여기 근거지가 낯설은 고장으로 느껴지는 순간 그는 미간을 찌프리고 보슴털이 보르르한 볼에 보조개가 패이도록 입을 오무려물었다. 그의 눈에서 물기같은것이 보일듯말듯이 떨었다.

장군님께서는 리재명을 돌아보시며 힘찬 음성으로 이 마을에서 제일 좌상이 되는분이 사는 집이 어디냐고 물으시였다.

주민구성에 대하여 잘 알고있는 쏘베트회장은 서슴지 않고 김진세로인의 집을 가리켜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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