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회)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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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준은 말했다.

《동무가 조혼했다는 그 리유 하나만으로도 참군이 보류되거나 아주 부결될수 있소. 왜 그런가? 조혼이란 락후한 봉건적생활인습의 집중적인 표현이요. 때문에… 알겠소? 때문에 동무는 본인이 원했거나 원치않았거나 관계없이 봉건에 한발이 깊이 빠져있소, 봉건에.… 그런데 우리 공산주의자들은 사회주의혁명을 하고있소. 봉건에 한발이 깊이 빠져있는 사람이 아무리 다리를 넓게 벌린다 해도 다른 발을 사회주의혁명에까지 내디딜수 있겠소? 쉽게 말하면 리치는 이렇소. 무장을 들고 피와 목숨까지 바치며 사회주의혁명의 길을 진두에서 개척해가는 혁명군은 정수분자로… 계급적으로나 사회륜리적으로 흠할데 없는 정수분자로 꾸려야 하오.… 설사 참군했다고 치더라도 동무자신이 어떻겠는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오. 봉건관계를 청산하는 투쟁에서 혁명적무자비성이 발동되겠소? 량심이 저리고 손이 떨리지 않겠는가?… 또 군중의 립장에서 보면 어떻겠소. 저 사람은 제코도 못 씻으면서 남의 코를 씻자고 날친다고 뒤에서 비웃는 사람들이 있지 않겠소?… 이편에서 보나 저편에서 보나 참군부결은 그럴만한 리유가 있단 말이요. 혁명투쟁에서 어찌 모든 사람들이 다 일선에 서겠소. 동무야 적위대원으로 있어도 되지.… 몇살에 장가들었소?》

창억이는 그 마지막물음에 단재를 들쓴듯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러나 문곁에 서있는 녀자때문에 울분을 터뜨리지 못했다.

박현숙은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그를 지켜보고있었다.

창억이는 단숨을 가쁘게 몰아쉬다가 얼결에 그 녀자쪽을 돌아보았다. 박현숙은 그와 시선이 마주치자 눈을 내리뜨며 얼른 문을 열고 나가주었다.

최형준은 문턱밑에 내던져진 가죽가방을 들어 책상에 올려놓고 검은 양복저고리를 벗어 그우에 던진 다음 벽에서 토목수건을 벗겨 얼굴이며 목의 먼지를 썩썩 씻어냈다. 얼굴이며 목이 대뜸 벌개졌다. 그는 수건을 또 양복저고리우에 휙 내던졌다. 그가 어찌나 세차게 움직여대는지 뙤창문곁에 걸려있는 등불이 꺼질듯이 파르르 떨었다.

그는 방바닥의 물사발을 들어 물을 꿀꺽꿀꺽 마시다가말고 창억이를 치떠보며 빙긋 웃어보였다.

《동무, 하여튼 마촌사람들은 유명하오. 사흘만에 강연에서 돌아왔는데 온돌에 앉아보지도 못하게 들이닥치니, 하하하.… 저 녀선생은 강연에서 교육사업을 쳤다고 그 대목을 당장 제강에서 빼라고 항의하오. 답답한 일이요. 사회주의혁명은 안하고 교육사업에 치중하니 투항주의라는 소리까지 듣지 않는가 말이요. 또 내가 빼고싶다고 빼지오? 강사가 뭐요. 나는 상급에서 시키는 말을 하는 사람이요. 동무도 그렇지.… 참군문제를 나한테 들고오면 어떻게 하오? 강연에서 내가 말했다고 다 나한테 찾아오는데 이거야 참… 동무, 내가 참군을 시켜주오?》

창억이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거의 위압적인 소리로 부르짖었다.

《꼭 알고싶은게 있어 왔습니다! 조혼한 사람은 앞으로도 영영 참군을 못합니까? 그것만 솔직히 말해주시오!》

최형준은 얼굴이 해쓱해졌다.

《원칙적으로는 안되오.…》

《됐소!》하고 창억이는 격하게 부르짖으며 홱 돌아서서 문고리를 잡았다.

최형준이 한팔을 앞으로 내뻗치며 다급히 불렀다.

《동무!》

창억이는 분기에 펄펄 타오르는 눈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최형준은 그 분노에 놀라서 눈이 커졌다.

《동무… 동무… 왜 그러오?》

창억이는 그 말에 더 수모를 느낀듯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주먹으로 제 가슴을 쳤다.

《나는 형들을 다 잃었소! 왜놈들에게 다 잃었소! 이 가슴에 피멍이 들었소!》

최형준은 다가와서 그의 팔을 끌어 방바닥에 앉히고 자기도 마주앉아서 너무 섭섭하게 여기지 말아달라고 사과하였다.

이 인정에 분기가 누그러져 창억이는 자기 집에서 겪은 참사를 다 털어놓았다.

그 이야기를 죄다 듣고나서 최형준은 두손으로 머리를 움켜잡고 잠자코있더니 이윽고 손을 내리고는 가볍게 질책하였다.

《그럼 그렇다고 말해야지.… 낮에 쏘베트마당에서도 그렇소. 현당조직책동지도 관심을 돌리고있었는데 그렇게 욱해서 뛰쳐나가면 되오?…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다시 찾아가보오. 쏘베트에서 회의중일게요. 나한테 한 이야기를 다 말하고 심정도 솔직히 말하오. 나도 뒤에서 힘쓰겠소. 내가 보냈다는 말은 말고… 어서 가보오. 어떤 엄한 법에도 인정이 비비고 들어설 틈이 있다는데… 용기를 내오.》

하늘에는 별들이 총총했다.

창억이 마당을 지나 나오는데 사립문옆에서 박현숙이 그를 반기며 다가왔다.

《뭐라고 해요?》

《…》

창억이는 이 녀자가 울분을 터뜨리는 소리를 다 들었으리라고 생각하니 좀 면구스럽기도 하였지만 자기를 걱정하여 밖에서 기다려까지 준것이 여간 고맙지 않았다. 그는 두손을 앞에 모아쥐고 허리를 약간 구붓한채 녀자의 뒤를 따라 사립문을 나섰다. 그들은 울바자를 끼고 돌아나간 길로 가지런히 서서 걸었다.

박현숙은 스스럼없이 곁에서 걸으며 활달하게 말을 건네였으나 창억이는 도시녀자옆에서 난생처음으로 걷는지라 몸가짐이 굳어져 엉거주춤한 걸음을 옮겨갔다.

《현당간부동지한테 가보라고 하는데…》

《가보세요! 강사라는 저 사람은 자기가 한 말도 다 책임 못 지겠다고 해요.… 연단에서만 사자야요, 무슨 사람인지?》

《인정은 깊은 사람인것 같습니다.》

《가서 들이대세요. 왜 입대 못하겠어요.》

이때 그들의 앞으로 한 녀인이 다가왔다.

창억은 직감적으로 안해를 알아보았다. 그는 몸을 옹송그리고있는 녀선생에게 무엇이라고 변명하려다가말고 창황히 보금에게로 다가갔다.

창억은 우악스럽게 안해의 팔목을 거머쥐고 울바자모퉁이를 바람처럼 돌아지나 길가의 느티나무밑으로 끌고갔다.

보금이는 몸을 오돌오돌 떨었다. 남편을 쳐다보는 눈에는 눈물이 가랑거렸다.

《왜 쫓아다니며 망신만 시켜?》

《어떻게 됐어요? 속시원히 말해요!》

《님자가 걱정할 일이 아니야.》

《왜 제가?…》

보금이는 마른침을 꼴깍 삼키였다.

《제때문이라면… 마을에 도는 소문처럼 제때문이라면… 그럼 그렇다구 말해줘요!》

보금의 목소리에는 흐느낌이 섞이였다.

《쟈- 이거…》

아버님이 찾아요. 오늘 밤중으로 집에 끌어들이래요.》

《집에 무슨 일이 생겼어?》

보금이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아니… 아니… 그저… 봉남이가 와서 말해 다 알아요. 마을에 소문두 자자하구 해서…》

《소문이?》

창억이는 숨을 거칠게 씨근거렸다.

《저 녀자는 누군데?…》

느티나무가지사이로 흘러내리는 어스름한 달빛에 보금의 눈에서 차거운 빛발이 번쩍하는것이 보였다.

《가자요!》

《먼저 가오. 내 들렸다 갈데 있소.》

《가자요. 아버님이 분해서 형편없어요. 가자요!》

《먼저 가라는데!》

창억이는 꿱 소리쳤다. 그러자 보금이는 말대답도 못하고 공손히 돌아섰다.

창억이는 느티나무밑에 우두커니 버티고서서 어스름속에 멀어지는 안해의 뒤모습을 지켜보며 안타까운 한숨을 후- 내쉬였다.

(에익, 차라리 엇서기라도 했으면… 그저 양이라니까.…)

어디선가 소쩍새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피타는 울음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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