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회)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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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창억이는 김일성장군님께서 안도에서 유격대를 조직하시였다는 소문이 왕청땅에까지 퍼져왔을 때 친구들과 작당을 하여 두번이나 집을 뛰쳐난 일이 있었다. 한번은 연길현과 안도현의 현계에서 경찰에게 잡혀 죽도록 매를 맞고 돌아왔으며 다른 한번은 도중에 열병에 걸려 동무들에게 업혀서 집으로 돌아왔던것이다.

왕청에 유격대가 조직되고 적위대가 무어졌을 때 제일 기뻐 춤춘것도 다름아닌 창억이였다.

그는 적위대원이 된 다음 이따금 집에 들리면 봉남이를 하늘에 번쩍 들어올려서는 한바퀴 빙그르르 돌려놓고는 껄껄 웃어댔다.

지금쯤 봉남이는 집으로 돌아갔을것이며 온 집안이 자기의 참군이 부결된것을 알게 되였을것이다.

창억이는 아래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장가든 사람은 왜 참군을 못하는가?

젠장 쳇, 녀편네치마자락에 매달려살면서 용맹이 썩어문드러진줄로 아는겐가?… 지난겨을 장포리(장룡산의 별명)가 곰을 잡을 때 총에 맞은 곰이 몰이군들한테로 달려드니까 다 들구뺐지만 맞받아나가 그놈을 안고 씨름한건 누구였던가. 동림촌에 들어와 행패질하는 경찰놈을 때려엎은건 누구였던가. 왜놈들때문에 가슴에 어혈이 들고 그놈들을 짓밟아치우지 못해 속에서 제일 불이 붙는건 누구인가.

사람을 고를줄도 모르는 이따위 참군법을 어느 작자가 꾸며냈는가? 제일먼저 떠오르는것이 홍병일이와 권일균의 얼굴이다. 그들이 나한테 승치를 먹고있어서 나를 골탕먹이려고 법을 이렇게 꾸며냈는가? 아니다. 그 사람들은 김창억이라는 적위대원이 있는지 없는지, 장가를 들었는지 어쨌는지도 모르고있지 않았는가.…

창억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괴물같은것이 어디엔가 도사리고앉아서 자기를 어처구니없이 훼방하고 앞길에 함정을 파놓는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며 어디에 숨어있는것인지 도저히 가늠해낼수 없었다.

그는 마음이 산란해져서 눈살을 사납게 찌프리고 이 생각 저 생각을 굴리였다.

창억이는 집안에서 참사가 벌어진 이듬해 봄에 장가라는것을 들었다. 아버지, 어머니에게 큰절을 한 다음 그의 안해로 된 보금이는 눈안에 깃든 그 무슨 빛발을 남에게 보이기 수집은듯 언제봐야 눈을 내리뜨고 다녔다. 열여섯살에 시집와서 이날이때까지 이마살 한번 찌프리는 일없이 아무 일에나 고분고분 잘 응하는 안해였다. 그러니 기갈을 할 일도 없었다.

(양같이 순한게야.…) 하고 창억은 자주 생각했었다. 그러면서도 이런 속마음은 가슴깊이 묻어두고 절대로 남에게 내비치지 않았다. 그는 제 혼자 일찌기 장가든것이 창피스러워 긴긴 겨울밤 마실을 가서 같은또래들과 화로를 끼고앉아서는 어제 녀편네가 나무를 패주지 않는다고 찡내길래 혼뜨검을 내주었다는 등의 대포를 곧잘 놓았다. 그리고는 기고만장해서 녀자들은 거저 주먹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줴쳤다. 그러면 화로가에 둘러앉은 그의 또래들은 그 말을 곧이듣고 가슴마다에서 사나이의 자부심이 설레여 흥성거리면서 그를 눈이 게슴츠레해서 녀편네곁을 떠나지 못하는 추물이 아니라고 믿어주었으며 장가는 들었어도 창억이는 역시 창억이라고 머리를 끄덕였던것이다.

창억은 마음이 흐뭇했다.

사실 그는 안해를 그리 중하게도 여기지 않았으며 그렇다고 미워서 멀리하는 편도 아니였다.

창억은 자기의 처지와 립장을 놓고 몇백번 굴려보고 따져보아도 참군이 부결된것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

분명히 자기를 훼방하고 앞길에 방해만 놓는 괴물이 있다. 자기는 어느 누구에게 나삐 보였거나 죄를 지은 일도 없다. 그러면 무엇일가? 아무리 머리를 짜봐야 그 괴물의 존재를 가늠할수 없는 창억이는 번열이 나서 앞가슴을 헤쳐놓고는 몸을 뒤채기였다. 그러다가 저녁녘에는 허탈감이 들어 물기가 번들거리는 멍청한 눈으로 소나무가지들사이로 아득한 가을하늘만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문득 자기의 참군을 방해하는것이 이러나저러나간에 안해의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소나무우듬지들이 쏴- 쏴- 음산한 바람소리를 내였다. 어딘가 가까이에서 까마귀들이 청승맞게 울어댔다.

이때 아래쪽에서 잡관목숲이 와스스, 와스스 설레는것 같더니 인기척이 났다.

창억은 누가 자기를 찾아 올라오지 않는가 하여 엉거주춤 일어나 그쪽을 내려다봤다.

쏘베트의 경제부에 있는 안경쟁이가 장부책같은것을 옆에 끼고 마동호의 아버지 마종삼을 끌고 헐떡거리며 올라오고있었다.

그들은 창억에게서 얼마 멀지 않는 산턱의 콩밭에 이르러 걸음을 멈추었다.

키가 작달막한 마종삼로인은 얼굴빛이 캄캄하게 죽어 밭머리의 돌무지옆에 고목그루터기처럼 서있고 안경쟁이는 밭을 한바퀴 돌아보고나서 령감앞으로 갔다.

그는 연필끝으로 장부책을 두드렸다.

《아바이 눈에는 이 밭이 몇평이요?》

《…》

《몇평이나 되오?》

《이백평이 좀더 되오다.》

《아들이 유격대에도 들었는데 창피하지 않소?》

《…》

《버덩의 2천평은 등록하면서도 누데기쪼박같은 뙈기는 감춰둔단 말이요?》

마을에서 마점산두령이라는 별호를 붙이여 자기를 그에 맞추어 이따금 거세차게 굴기도 하던 로인이건만 지금은 죽은 고목처럼 움츠러들어 말이 없다.

안경쟁이는 장부책에 몇자 적어넣더니 책뚜껑을 소리나게 닫았다.

《이제부턴 유격대에 든 아들 생각을 해서두 쏘베트가 시키는 일에 고분고분 응하시오.》

아들이야기가 두번이나 나오자 마종삼은 버럭 사나와지며 역증을 터뜨렸다.

《내가 엇나간게 뭐가 있소? 쏘베트에서 언제 화전을 일군 뙈기밭까지 적어내라는 소리를 했댔소? 내 나이타령은 아니지만 손우사람을 그렇게 윽박지르면 못쓰오.》

《챠- 이거, 현에서 내려와서 마촌쏘베트를 발칵 뒤집겠답니다. 로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구… 리재명회장 얼굴이 새까매졌소. 오늘 저녁중으로 뙈기밭까지 다 조사해서 현에 바치라는데… 이제는 네것내것 없이 다 공동경작을 하게 됐소.》

《뭐라구? 네것내것이 없다구? 좋다!》

로인은 정신없이 밭가운데로 달려들어가 설피게 선 콩대들을 와락와락 쥐여뽑아 안경쟁이쪽에 내던졌다.

《다 먹어.… 다 먹어라! 쇠버치에 담아 다 먹어라!》

안경쟁이는 무엇이라고 꽥 소리치고는 돌아서 내려갔다.

창억은 콩밭으로 달려내려가 마종삼의 두팔을 붙잡았다.

《동호 아버지!… 동호 아버지!》

화닥닥 놀라 뒤걸음쳤다가 그를 알아본 로인의 눈에 적의가 무섭게 번뜩인다.

《옳지 헝, 적위대구나, 잡아가라! 고발해라!》

《동호 아버지! 창억이요! 접니다!》

《이녀석아, 어떻게 살라느냐-》

로인은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쿨쩍쿨쩍 울었다.

창억이는 그옆에 꿇어앉아 로인의 부들부들 떠는 두손목을 꼭 쥐고있었다.

그는 가슴이 화들화들 떨려 말이 나가지 않았다.

《동호 아버지, 왜 이럽니까?》

로인은 마을쪽에 눈길을 주었다가 억이 막힌 소리를 했다.

《현에 있는 저것들은 아무것두 몰라. 내가 용렬해서 이러는줄 아니? 어이쿠!… 고생스럽게 키운 자식이 더 귀하다구 내 이 밭을 어떻게 뚜지구 가꾸었나. 저 돌무지를 보게.… 손톱이 닳도록 허비구 돌을 주어내서 피땀으루 걸군 밭이다.… 내 이 밭에 아편을 심어먹자구 품에 끼구 있었겠니. 저것들은 다른 족속들이야. 염소처럼 종이장을 먹고 사는것들이야?… 저따위들이 우리 맘을 어떻게 알아. 쏘베트가 첨 나왔을 때 쇠버치라구들 하길래 우스개소린가 했더니 진짜야, 진짜다. 쏘베트쇠버치에 네것내것 없이 다 담아서 한데 버무려 노나먹자는 수작이지. 일 안하는 건달두 다 배불리 노나먹자는 수작이다. 쏘베트구 뭐구 퉤- 더럽다.》

이 마지막소리에 창억은 가슴이 섬찍해났다.

《동호 아버지, 동호 생각을 해서라두 이런 소린 어디 가 하지 마십시오. 동호는 유격대에까지 들었는데 누가 들으면 어쩝니까.》

《그깟놈이야 될대로 되라지. 허파에 쏘베트바람이 들어 늙은이들은 다 봉건이라는 개자식이야. 쇄지같던 녀석이 쏘베트바람에 불망종이 됐어.… 백성맘도 몰라보는 쏘베트가 뭐가 좋아. 한때는 온 동네가 한가마밥을 먹어야 한다더니 이제는… 퉤 ! 쏘베트등쌀에 못살아.… 여기서는 못살아!》

창억은 로인의 팔목을 내던지듯 밀쳐버리고는 밭머리로 걸어나와 등을 돌려대고 서서 씨근거렸다.

(고약한 령감! 우리 로농정권을 뭘로 아는게야?… 훈춘에서는 말 한마디 빗나갔는데 총살했다. 혁명이다.… 고발해야 한다.… 입버릇을 고쳐줘야 해.… 넨장, 그러다가… 진짜 총살하면 동호가?…)

뒤에서 다가오는 발소리가 나더니 령감의 되알진 소리가 울렸다.

《님자, 내 말에 켕겨서 그러나?-》

창억은 몸을 홱 돌리며 소리소리 내질렀다.

그는 자기가 무엇이라고 소리치는지 몰랐다. 마종삼로인은 눈이 뒤집혀지며 뒤걸음질쳤다.

이때 저아래 마을쪽에서 야무진 종소리가 뗑- 뗑- 울려왔다. 그것은 영림서자리인 유격대병실처마끝에 매단 쇠말장을 마치로 때리는 소리였다. 한달전에 상경리의 지주를 끌어다가 혁명재판을 벌리고 처형할 때도 저렇게 종을 쳤었다.

창억이와 마종삼은 얼떠름해져서 그 자리에 얼어붙은채 넋없이 마을쪽을 내려다보았다.

골안에 가득차서 울리는 그 음향은 멀고 가까운 산벼랑들에 부딪쳐 혼잡스럽게 메아리치면서 청동의 인경들이 엄청난 재난을 알리며 우는듯 한 환각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저기에서 기겁한 새떼들이 야단스럽게 날아올랐다.

아직 해가 지지 않은 석양녘이나 서쪽산들이 던진 짙은 그림자에 묻힌 마을에는 저녁어스름이 깃들었다. 저녁연기때문인지 마을우에는 설핀 연무가 보일듯말듯 층을 이루어 서리였다. 그 연무와 어스름속에서 올망졸망한 집들의 해묵은 동기와지붕, 새초지붕, 조짚지붕들이 종소리에 놀라 머리를 움쭉움쭉 쳐드는듯 하였다. 아이들의 부름소리, 개짖는 소리, 어른들이 꽥- 꽥- 누구를 찾는 소리들이 사처에서 들렸다.

집집에서 나온 사람들이 마을복판을 지나간 달구지길에 모여서는 두사람, 서너사람 혹은 대여섯사람씩 짝을 지어 웅성웅성거리다가 아래쪽으로 내려가고있었다.

종소리는 사람들을 불러내며 계속 울리였다.

뗑- 둥- 뗑- 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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