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회)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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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락엽이 우수수 흩어져내렸다.

뒤산에서 바람에 날려 하늘높이 날아올라간 락엽들은 새떼처럼 골짜기우를 떠돌다가 누렇게 날아내리며 황토색흙먼지와 한데 어울려져 마을길을 휩쓸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그 락엽들속으로 달려오던 더벅머리소년이 두손을 번쩍 쳐들며 소리쳤다.

《삼춘- 삼춘-》

오풍헌이네 집모퉁이를 돌아서던 창억은 마주 달려오는 그 아이를 보자 쇠메에 가슴을 얻어맞은듯 나직한 신음소리를 내며 멈춰섰다.

봉남이는 그의 대여섯걸음앞에까지 와서 발꿈치를 모아붙이고 방긋 웃으며 귀우에 손을 펴서 붙이였다.

《유격대삼춘, 보고!》

자기 아버지를 닮아 이마가 약간 도드라지고 눈이 오목한것이 오돌찬 얼굴이다.

봉남이는 그의 얼굴에서 심상치 않은 기색을 읽었는지 인차 눈이 올롱해져서 경례를 붙였던 손을 맥없이 내렸다.

《삼춘!》

《…》

《할머니가 오래!》

《엉?》

《찰떡을 쳤어.》

《쌀이 어디 있게?》

《감춰둔거래.… 조찰떡이야.》

《오늘이 할아버지 생신날인가?》

《쳇, 삼춘이 유격대에 붙는 날이라구 쳤어!》

《네 혼자 가서 먹어라.》

《할머니가 그러는데 내 먹을건 없대.》

《나는 안먹겠다. 네가 대신 가서 먹어라.》

《가자!》

《네 혼자 가라는데!》 창억은 짜증스럽게 말했다.

이때 저앞에서 얼굴빛이 환한 마동호를 가운데 세우고 부녀회장 림성실이와 마을의 젊은 녀인들이 떠들썩하게 웃으며 걸어왔다.

마동호의 가슴에서는 꽃송이가 한들거리고있다.

부녀회장 림성실의 둥실한 얼굴에는 웃음이 활짝 피였다.

언제봐야 옷차림이 수수하고 마음씨가 무던한 부녀회장을 두고 로인들은 맏며느리감이라고 탐나하였다. 나어린 적위대원들은 물론 장가를 든 대원들까지도 자기들의 생활을 살뜰하게 보살펴주는 그를 손우 누이처럼 여겼다.

림성실은 유격대나 적위대에 경사스러운 일이 생기면 제일처럼 기뻐하였다.

창억이는 그를 만나기가 부끄러웠다. 그리고 젊은 녀자들한테서 이런저런 동정과 위로의 말을 들을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벌컥 뒤집혀졌다.

그의 이런 속마음을 모르는 봉남이는 《삼춘, 가자, 가자!》하며 옷자락을 지꿎게 잡아끌었다.

그는 조카를 왈칵 밀쳐버리고 오풍헌이네 집앞을 에돌아 산기슭으로 올라갔다. 잡관목들을 와삭와삭 헤치고 산중턱에 오른 창억이는 무성한 소나무숲속에 들어가 누워버렸다.

그는 깍지낀 팔우에 머리를 던지고 멍청한 눈으로 하늘을 쳐다봤다.

바람에 나무우듬지들이 솨- 솨- 설레고 나무가지사이로 흘러드는 해빛이 쉬임없이 언뜻거렸다.

모든것이 꿈만같았다. 자기가 짜증을 냈을 때 겁먹은 눈길로 쳐다보던 봉남의 동그래진 눈이 선명하게 떠오르며 가슴이 찢기는듯 아파났다.

그 불쌍한것에게 화풀이를 하다니, 젠장… 이제는 그 애도 내 참군이 부결됐다는것을 알게 됐을게다.

그는 두팔로 머리를 감싸고 신음소리를 내며 락엽들우에서 몇고패 딩굴었다.

창억의 몸부림은 단순히 축에 빠진데서 오는 울분만이 아니였다. 그는 두해전 《대토벌》때 석현에서 맏형과 둘째형을 잃었다.

춘황폭동의 거세찬 바람이 간도땅을 휩쓸 때 언변이 좋은 맏형은 농민들을 선동하여 지주집을 들이치고 창고를 털어 굶주려온 농민들에게 량곡을 나누어준 다음 땅까지 나누어가질 잡도리를 하였다. 그 투쟁의 진두에는 둘째형이 섰다. 둘째형은 마촌에 들어오는 인편에 석현에는 지주가 없는 무산민중의 세상이 왔으니 아버지도 그 산골에 배겨있지 말고 어서 가장집물을 꾸려가지고 이쪽으로 나오라는 기별까지 보내였다.

그때 어머니는 땅들을 다 나눠가지기 전에 빨리 이사나가자고 서둘러댔으나 운명의 파란곡절을 허다하게 겪어온 아버지는 한숨을 지으며 도리머리를 저었다. 세상이 그렇게 쉽게 뒤번져지겠느냐는것이였다.

아버지가 옳았다.

왜놈《토벌대》들이 달려들어 쟁의가 일어난 마을들을 불사르고 사람들을 야수적으로 학살하였다. 이 기막힌 소식은 사흘후에야 마촌에 날아들었다. 아버지와 창억이는 종주먹을 쥐고 석현쪽으로 달려나갔다. 석현땅에 들어서니 마을들에 연기가 안개처럼 자욱하여 어디가 어딘지 향방을 분간할수 없었다. 대기속에는 피비린내가 흘렀다. 불타서 재무지로 내려앉은 마을이나 어느 산기슭에서도 비통한 통곡소리 한마디 들리지 않았다. 숨을 가진 모든것이 죽어버린듯 한 괴괴한 정적이 처처에 깃들어있었다. 재더미로 된 맏형네 집터앞에서는 칼에 찍혀 쓰러진 형수의 시체만 딩굴고있었다. 재무지를 아무리 헤집어봐야 봉남이의 시체는 없었다.

살아남은 몇몇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맏형과 둘째형은 다른 청년들과 함께 첫날에 왜놈들에게 잡혀 봉암산쪽으로 끌려갔다고 하였다. 놈들이 그들을 살려두었을리 없었다. 창억이는 눈물을 삼키며 아버지의 뒤를 따라 사흘낮, 사흘밤을 산속을 헤매면서 두 형의 시체를 찾았다. 나흘째 되는 날 저녁 어슬막에 그들은 깊은 산중벼랑밑에서 기막힌 참상과 맞다들게 되였다.

시체더미가 벼랑에 기대여 높다랗게 쌓여있었다. 왜놈들이 사람들을 끌어다가 쏘아죽이고는 그 시체들을 ㅁ자형으로 장작가리처럼 쌓아올리고 맨꼭대기에 긴 나무장대를 꽂아놓았다.

모두 하나같이 끌끌하던 청년들의 시체였다. 그속에 맏형과 둘째형의 시체도 있었다.

그밤에 창억은 가슴에서 눈물이 영영 얼어붙었다. 어찌나 어금이를 악물었던지 여러날이 지나도록 이발이 시큰거려 밥을 씹지 못했다. 다른 사람이 돼버린듯 성미도 드세여지고 목소리까지 석쉼해졌다.

아버지 역시 달라졌다. 입에서 말이 영 없어졌으며 뼈를 아끼지 않고 더 극성스럽게 일하며 땅하고만 해봤다.

그러다가 별치않은 일을 가지고도 어머니에게 버럭 화를 터뜨렸다.

집안에서 제일 불쌍한것이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밤마다 꿈에 살아있는 봉남이를 본다고 하면서 눈물속에 나날을 보내였다. 어머니는 아버지 몰래 점쟁이로파를 찾아가 손자의 행처를 점쳐오기도 하고 뒤산의 국수당나무밑에 가서 그 아이를 찾게 해달라고 손이 닳도록 신령에게 빌었다. 그리고는 사방에 수소문을 해봤다. 한달후 쌍암촌의 지유복이라는 사람의 집에 석현에서 얻어온 아이가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석현의 반제동맹과 련계가 있던 지유복이라는 사람이 《토벌》이 한창 벌어지고있을 때 불타는 마을을 울면서 돌아치는 한 아이를 안고 산속으로 몸을 피하였다가 자기 집으로 데려왔다고 하였다.

그 아이가 봉남이였다. 온 집안이 애지중지 떠받들었으나 봉남이는 피여나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았다. 여름밤에 소낙비가 내리고 우뢰소리가 우당탕거릴 때면 아이는 자다가도 왜놈이 온다고 헛소리를 내지르며 소스라쳐 일어나 어디로인가 내뛰려고 하였다. 그럴 때면 온 식구가 기겁을 하여 뛰여일어나 아이를 붙잡아 자리에 눕히고 팔다리를 주무른다, 찬물을 먹인다 야단법석을 떨었다.

봉남이는 할머니의 품에 꼭 안겨서도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아버지는 그 가련한 모습을 지켜보다가는 웃방으로 올라가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지었고 창억이는 밖으로 나가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형님들의 원쑤를 백배천배로 갚고야말겠다고 이를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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