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 회)

왕관없는 녀왕

2

(2)


커다란 원형식탁에 외국손님들과 함께 앉아있던 민비가 시중을 들고있는 나쯔미에게 손짓했다.
《다까하시부인도 어서 와앉으세요.》
나쯔미는 황송스럽게 대척했다.
《전하, 전 오늘 왕비전하의 시중을 들려고 왔습니다.》
《그러지 말고 어서 오세요. 오늘은 명절손님이 아닙니까.》
민비의 진정어린 초청에 나쯔미도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고맙습니다. 전하, 전 왕비전하를 모시는것이 정말 기쁩니다.》
나쯔미는 상궁이 주는 음식그릇을 받아 민비의 앞에 차려놓았다.
민비는 그 음식그릇을 외국인들앞에 밀어놓았다. 하면서 그는 나쯔미의 거동을 눈여겨보았다. 일본녀인들이 갑삭거리며 남의 비위를 잘 맞춘다는것은 이미전부터 알고있었지만 오늘 나쯔미의 류다른 태도에 어쩐셈인지 왼심이 씌여졌다. 하지만 민비는 별것에 다 신경을 쓴다는 자격지심이 들어 외국손님들을 둘러보며 흔연한 기색으로 말했다.
《요즘은 우리 대궐두 개명해서 서양음료도 있습니다. 커피도 있고 샴팡술도 있습니다.》
알렌이 익살을 부렸다.
《나는 조선서 오래 살아서 이제는 조선음료가 더 입에 맞습니다. 커피보다는 구수한 숭늉이 더 좋은데 숭늉은 커피처럼 중독이 되지 않는다는 우점도 있습니다. 술도 서울에서 생산되는 <소곡>, <도화>, <두련> 이라든가 평양의 <감홍로> 그리고 전라도의 <죽련고> 같은것이 아주 좋습니다.》
《그럼 알렌씨에겐 오늘 조선술만 대접해야겠군요.》
민비가 이렇게 말하자 조상궁이 얼른 찬장에서 《감홍로》병을 꺼내여 식탁우에 놓았다.
《이건 무슨 술인가요?》
류달리 눈이 둥그런 프랑스공사 꼴랭드 쁠랑시의 부인이 이렇게 묻자 알렌이 아는체를 했다.
《붉은 누룩에 있는 색소와 알콜우림액에 곶감, 사과, 배, 대추라든가 밤과 같은 과일우림물을 꿀과 함께 섞어 만드는 평양술인데 우리 서양의 리큐르보다 더 달고 감미롭지요. 부인도 맛을 보십시오.》
아까부터 얼없이 민비만을 쳐다보던 영국처녀 이사벨라가 말머리를 돌렸다.
《왕비전하, 전하는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우리 유럽엔 전하와 비길만 한 미인이 없습니다.》
나쯔미도 맞장구를 쳤다.
민비가 수집게 웃으며 그들을 가볍게 나무람했다.
《맞대놓고 칭찬하는건 모욕이란 말을 부인들은 모르십니까?》
《아니,정말입니다.》
이사벨라가 두손을 가슴에 모으며 대꾸했다. 그의 말은 진심이였다.
당시 우리 나라를 방문하여 여러차례 민비의 접견을 받은 영국왕실 지리학회회원 이사벨라 바드 비숍은 후에 자기의 수기에서 이렇게 썼다.
《왕비의 눈은 예리하고 랭정한 빛이 어려있었으며 머리의 기민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것은 당연한것이였다. 왕비의 생활은 항상 투쟁의 련속이였기때문이다. 그러나 왕비는 정중하고 정답게 우리들을 대하여주었다. 늘 기분좋게 대화하였다.
그는 사람을 끌줄 아는 사교성있는 녀성이였다.
민비는 홀쭉한 몸매였고 동작은 우아하였다.
늘 아름다운 의상에 머리카락은 칠흑이였고 화장은 진주가루로 했기때문에 얼굴은 아름다왔으나 좀 창백해보였다.》
민비는 손타크에게 눈길을 주었다.
《손타크부인, 호텔은 언제부터 문을 열 예정입니까? 듣자니 정동에 2층짜리 양옥으로 멋지게 지었다고 하던데…》
《전하의 은총으로 다 완공되였으니 곧 개업하겠습니다.》
《아무튼 잘되였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첫 양옥호텔입니다. 나이트클럽같은것이 없어 적적해하던 서양인들이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도이췰란드의 랜스돌프 부인이 놀란 기색으로 물었다.
《전하께서는 유럽의 나이트클럽까지 아십니까?》
《귀동냥으로 들었을뿐인걸요.》
손타크가 자리에서 일어나 두손을 맞잡고 인사했다.
《왕비전하께서 저에게 집도 하사해주시고 부지도 하사해주시여 오늘의 정동호텔이 완공될수 있었습니다. 왕비전하, 감사합니다.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앉으세요. 오늘은 이 약밥이랑 조선음식들을 많이 드십시오. 마지막엔 조선랭면까지 들어야 합니다.》
《아, 국수!…》
손타크가 탄성을 지르며 손을 맞잡았다. 그는 조선에 있는 사이 국수에 상당히 맛을 들인 모양이였다. 그뿐이 아니라 다른 녀인들도 기쁨과 호기심이 어린 표정으로 등글연회탁우에 차려놓은 푸짐한 음식들에 눈길을 주었다.
외국료리들도 있었지만 조선음식들이 더 많았다. 통닭구이며 소고기저냐, 소고기산적, 꿩백숙, 인삼닭곰, 룡봉탕, 뱀장어구이와 같은 고기료리, 굴회를 비롯한 각종 물고기회, 찰떡이며 송편, 설기, 기장 등 여러가지 떡, 송이버섯찜이며 팽나무버섯국, 고사리, 도라지, 두릅과 같은 나물들 그리고 연회탁의 군데군데 놓인 숯불이 이글거리는 신선로가 그들의 입에 군침을 돌게 하였다.
로씨야공사 웨벨 부인이 팥보숭이를 묻힌 찰떡을 가리키며 웃었다.
《우리 로씨야사람들은 이 떡을 보고 매맞은 흘레브라고 한답니다. 》

그의 말에 모두가 즐겁게 웃었다.
웃음을 담고 각국 공사 부인들을 둘러보던 민비의 뇌리에 불현듯 세계의 여러 나라들과 수호통상관계를 맺던 십여년전의 일이 상기되였다.
내가 그때 용단을 내려 개국개항의 문을 열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이런 자리가 마련될수 있었겠는가.
오늘 민비는 더없이 흐뭇한 심경에 잠겨있었다.
《저, 왕비전하…》
나쯔미가 조심스럽게 찾는 소리에 민비는 깊은 상념에서 깨여났다.
그는 미안스러워하는 기색으로 나쯔미를 바라보았다.
나쯔미는 간절한 표정으로 민비에게 요청했다.
《왕비전하, 외람된 말씀이오나 전하의 지나온 이야기를 듣고싶습니다.》
다른 외국녀인들도 열렬히 호응했다.
《전하! 부탁합니다.》
민비는 얼굴에 홍조를 띠웠다.
《부인들은 아마 내 젊은 시절 이야기에 관심이 있겠지요.》
외국녀인들은 웃으며 서로 마주보았다.
민비가 추연한 기색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옛적일을 말하자면 자연 상감마마의 부친이시고 나한테 시아버님되시는 대원위대감에 대해 먼저 말하지 않을수 없군요. 내가 그분을 만난 날은 행운의 날이기도 하고 불운의 날이기도 했어요.》
외국녀인들은 의아한 기색으로 또 서로 마주 쳐다보았다.
《전하, 행복하시면서도 불행하시였다는 말씀은?…》
영국공사 오코너의 부인이 의아쩍게 묻는 말에 민비는 씁스름히 웃었다.
《그렇게 됐어요.》
세월의 갈피를 더듬는 민비의 얼굴에는 추억의 감회로움보다 그 어떤 서글픔이 어린 추연한 기색이 짙었다.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1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