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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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걸이를 만나 마을형편을 자세히 료해한 전광식이 고개를 숙이고 불탄 집터를 지나 철삼이네 집앞에 이르렀을 때 김일성동지께서는 자그마한 귀틀집앞을 걸어가고계시였다.

마을형편을 친히 돌아보고 오시는 길이였다.

그이께서도 매우 난처해지시였다. 마을형편은 말이 아니였다. 굶어서 누운 사람이 한집에 두셋씩 되였다. 어제오늘은 유격대의 얼마 되지 않은 비상용식량으로 우선 드러누운 사람들에게 미음을 쑤어 먹이였다. 마을사람들도 유격대원들도 식량이 곤난하게 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걸음을 천천히 옮겨놓으면서 딱한 사정을 푸실 방도를 찾기 위해 생각에 잠겨계시였다.

철삼이네 집모퉁이에 이르시였을 때였다.

네댓살났을가 한 계집애가 댑싸리가 다문다문 자란 언덕밑에서 소꿉놀이를 하고있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지켜보시던 그이께서는 계집애옆에 허리를 굽히고 앉으시였다.

《너 혼자서 재미나게 놀고있구나.》

장난에 정신이 팔렸던 계집애는 고개를 들고 코를 훌쩍 들이그으며 방긋 웃었다.

《나 세간놀이해요.》

《이건 뭐지?》

그이께서는 꽃무늬가 새겨진 사발깨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시였다.

《그거? 그건 김치담근거지.》

아닌게아니라 능쟁이잎을 뜯어 올려놓은것이 제법 김치라고도 할만하였다.

《이건?》

《그건 밥이야, 밥. 이제 풀래.》

《이건 물사발이구나.》

《아니, 그건 물독이야.》

《오! 물독, 그것 참 대단하구나.》

《아저씬 물독도 모르구.》 ·

계집애는 물이 날고 팔굽이 나간 색동저고리소매를 들어 동이깨비를 옮겨놓으며 눈을 할기죽히였다. 그 모양이 어떻게나 귀염성스러운지 그이께서 계집애의 단발머리를 쓸어주며 그옆에 앉게 되시였다.

《네 이름이 뭐지?》

《내 이름?》

《오냐, 네 이름이 뭐냐?》

《나 영희야.》

《영희! 오, 용타!》

영희는 사발깨비를 오지랖에 싸안으며 쌍까풀진 눈을 깜박깜박하는데 언제 울었는지 눈에서부터 턱으로 눈물이랑이 생겼다.

《영희, 너 몇살이나?》

벌써부터 영희는 안아달라고 그이 품으로 다가들며 응석을 부린다.

그이께서는 영희를 덥석 안아 무릎에 올려놓으시였다.

《세면을 해야겠다. 고운 얼굴에 이게 뭐냐? 그래 몇살이지?》

《요렇게 났어.》

고사리같은 손가락을 짝 펴보인다.

《다섯살이냐?》

《응!》

《아빠엄마는 뭘하나요?》

《아빠엄마?》

《그래.》

영희의 눈은 갑자기 겁에 질린것처럼 올롱해졌다가 차차 긴장이 풀리면서 시선이 파르르 떨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심상치 않은 어린애의 표정을 읽고 당황해져서 영희를 돌려안으시였다. 앵두알처럼 빨갛고 말랑말랑해보이는 입술이 떨리더니 볼이 이죽이죽하였다. 눈굽에는 눈물이 가랑가랑해지고 량미간이 좁아졌다. 뒤이어 《으앙.》 하고 울음이 터졌다.

《영희야! 영희! 왜 그러니, 응?》

그이께서는 굴러내리는 눈물을 손으로 훔쳐주면서 아이를 추스르시였다. 그러거나말거나 아이는 머리를 흔들며 섧게 울었다.

《엄마! 엄마야!》

《하! 이거 야단났군. 영희야, 내 업어줄가?》

《엄마!》

《내 이거 줄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무엇인가 찾으시지만 아이에게 줄만 한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자! 이거 주지. 이거 곱구나.》

만년필을 뽑아 영희에게 내보이시였다. 그러나 어린것은 그냥 울었다. 안았던 그릇깨비를 뿌려던지며 몸을 흔든다.

《하하, 이런…》

사위를 둘러보셨지만 사람 하나 띄지 않았다. 그이께서는 한참 걸려서야 겨우 울음을 그치게 하신 후 개울로 안고 내려가시였다. 개울은 멀지 않은 마을 오른쪽언덕밑에 있었다.

구슬같은 물이 돌등으로 굴러내리는데서 수건을 적시여 영희의 눈물을 닦아주시였다. 한참 울고난 영희는 촉촉히 젖은 눈을 뜨고 그이를 말끄러미 올려다보면서 설음에 겨워 딸꾹질을 연방 한다.

《영희야! 울면 안돼요. 이름두 알구 나이두 아는 착한 애가 울면 되나요. 얼굴을 닦자. 참 이쁘다. 자, 턱을 요렇게 들구.》

겨우 바쁜 모퉁이를 면하신 그이께서는 수건으로 얼굴을 문대주면서 언덕우로 걸어올라오시였다.

맞은편에서 물동이를 든 아주머니가 오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영희야, 너 또 울었구나.》

녀인은 물동이를 길바닥우에 내려놓고 영희를 받아안았다.

《어머니십니까?》

《아, 아닙니다.》

《애가 놀다가 그만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이께서는 영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울게 된 사연을 말씀하시였다.

《이 애가 글쎄 하루에도 몇차례씩 그렇게 울면서 애간장을 말리지 않습니까.》

졸지에 고아가 된 철삼의 손녀 영희는 날이 저물어 어슬어슬해질무렵이면 어머니가 그리워 섧게 운다는것이다.

《아! 그렇습니까?》

세걸의 숙모에게서 사연을 다 들으신 그이께서는 금시 가슴이 후두두 뛰는것을 진정할 길이 없으시였다. 그러고보면 어머니가 어데 있느냐고 물으신것은 어리디어린 영희의 가슴에 금방 생겨난 상처를 모질게 다쳐놓은것으로 되였던것이다.

《영희야, 내려서 걸을가? 그럼 여기 섰거라, 내 곧 물을 길어가지고 올라올게.》

녀인은 동이를 들고 급히 언덕아래로 내려갔다.

《영희야!》

그이께서는 가슴에 영희를 그러안고 볼을 마주 비비시였다. 어린것의 물기어린 볼이 그이의 볼에서 떨어질줄 모르는데 영희의 가느다란 팔은 그이의 목을 그러안고 놓아주지 않는다.

얼마후 영희가 잔디우를 걸어나갔다.

《자! 여기서 우리 꽃을 뜯자. 저기 고운 꽃이 있다.》

어린것의 정서라는것은 실로 여름날의 번개와 같은것이여서 금시 울던것이 방글방글 웃으며 민들레를 향해 두팔을 벌리고 달아나간다. 이제 보니 아이의 발에는 아무것도 신은것이 없다. 치마는 토스레여서 대패밥처럼 꽛꽛하니 들리웠다.

어느땐가 엄마가 손끝으로 한뜸한뜸 떠서 해입힌 색동저고리도 이제는 색이 다 날고 소매가 짧아졌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꽃을 뜯으며 뛰여다니고있는 천진란만한 어린것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기시였다. 잃어버린 조국, 준엄한 계급투쟁, 야수를 릉가한 원쑤, 이런것들을 알기에는 너무나 어리고 천진한 나이이다. 그러나 생활은 그를 무자비하게 태를 쳐놓고 너무나도 가혹하게 모든것을 빼앗았다. 그이께서는 이때까지 조선인민의 재난에 대하여 많이 보기도 하셨고 또 직접 당하기도 하셨지만 이날 이때처럼 가슴이 미여지기는 처음이였다. 그이께서 언덕에 서계시는데 영희는 꽃을 꺾어들고 와서 웃으며 재롱을 부린다. 쌍까풀진 눈이 그냥 새물새물 웃고있는 티없이 맑고 깨끗한 얼굴이 그이를 쳐다본다. 그이께서는 또다시 아이를 와락 끌어안으시였다.

석양이 곱게 비꼈다. 하늘과 땅이 감빛으로 물들었다.

영희는 그이의 손에 끌리워 풀밭을 걸으며 쉴새없이 조잘대였다. 집 모퉁이를 돌아선 전광식은 세걸의 숙모가 물동이를 인채로 언덕우를 정신없이 바라보고 선것을 발견하였다.

《뭘 그리 보고있습니까?》

《저걸 좀 보시우.》

전광식이 고개를 돌리니 사령관동지와 어린 영희가 풀밭에서 놀고있는 광경이 바라보이였다. 바야흐로 노을이 한창이였다.

해는 서산마루에 걸려서 하늘과 땅에 붉은 빛을 찬란하게 뿌려던지고있다.

《에미애비 다 잃고 밤낮 울고있던 계집애가 지금 저렇게 깔깔 웃고있습니다.》

《그래요?》

전광식은 세걸의 숙모에게서 그 사연을 자세히 들었다.

노을이 져서 어둠이 내릴 때까지 전광식은 그 자리에 서있었다.

어린것의 손목을 끌고 그이께서 마을로 들어가신 후에도 그는 잔디 언덕에서 떠나지 못하였다. 날이 어두워서 별빛이 흐르는데 전광식은 그 언덕에서 그냥 서성거리고있었다.

어떻게 하면 사령관동지의 근심을 덜어드릴수 있을가, 길림에 계실 때도 신발을 신지 못한 이웃집 어린애를 위해 어머님께서 학비로 보내온 많지 못한 돈으로 신을 사주시는것을 보았고 가득령너머 저쪽 강기슭에서 큰골사람들을 만나셨을 때도 절대로 그냥 지나치지 못하시는것을 직접 보지 않았던가. 천상데기 이 마을은 그 어데서 본것만 못지 않은 참상이라고 할수 있다. 울고있는 영희의 얼굴에서 그이께서는 조국의 미래가 사정없이 무지러지고있음을 읽으셨을것이 아닌가. 그 애는 굶주렸고 헐벗었으며 그 연약한 발에는 아무것도 신은것이 없었다.

처음에는 영희가 울었지만 결국 사령관동지께서 더 많은 눈물을 가슴속에서 흘리셨을것은 뻔한 일이다. 사령관동지를 모시고 벌써 5, 6년을 지내오면서 언제한번 그이의 걱정을 헌헌히 덜어드리는 일을 해본적이 있었던가. 이 마을에서만해도 그렇다. 경솔하게 사업한탓으로 인민들과 일시나마 오해가 있었다. 만약 이런 실정을 사전에 알고 련락을 했던들 달리 대책을 취하셨을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이에 대하여 미리 준비를 해올수도 있었을것이다. 전광식은 실성한 사람모양 캄캄한 언덕을 이리저리 거닐면서 자기자신에 대한 가차없는 반성을 하였다.

우선 어떻게 하면 영희에게서 받은 그이의 아픔을 덜어드릴수 있을것인가? 그날 밤 그는 뜬눈으로 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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