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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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지휘관이 물러간 후에 그이께서는 웃옷을 어깨에 걸치신채로 숲속을 천천히 거닐고계시였다.

《하늘아래 첫동네, 그 누구도 보습을 대보지 못한 생땅을 갈아엎고 씨를 뿌린다.…》

들쭉밭으로 걸음을 옮겨놓고계시던 그이께서는 문득 이렇게 혼자소리를 하시였다. 깊고깊은 산중에 찾아들어가 아직 정치적각성이 전혀없는 주민들에게 정치사업을 편다는것은 보람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 흥분을 자아내는 일이기도 하였다. 오가자나 고유수도 그랬고 최근에는 푸르허에서도 그런것을 직접 체험하시였지만 어데를 가나 자기의 특수한 실정이 있고 각이한 단계에 놓여있어 매번 대담하고 심중할것을 요구하였다.

군중정치사업, 이것은 하나의 커다란 예술창조와 같은것이여서 완벽성과 고도의 세련성을 요구한다.

반일인민유격대를 처음 대하게 되는 그곳 군중들의 심리상태는 어떤것이겠는가? 정치생활에서 거의 격리되다싶이한 그들을 조국광복을 위한 투쟁에 나서도록 용기를 불러일으키며 앞으로 이곳을 대밀영지대로 만든다고 가정한다면 미리부터 준비시켜야 할것은 어떤것이겠는가? 우리가 그들에게 주어야 할것은 무엇이며 그들이 우리에게 줄것은 또 무엇이겠는가?

소담하게 자란 들쭉나무우듬지를 뜯어 훌훌 뿌려던지기도 하고 오리나무잎을 뜯어 향긋하고 쌉쓰레한 냄새도 맡으면서 숲속 멀리까지 거닐어나가시였다.

한편 전광식이 말한것처럼 《새날》의 시절도 매우 인상깊은것이였고 또 백광명을 위해 례를 들게 되였던 그 장울화는 지금 무엇을 하고있는지도 궁금하시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산속으로 깊이깊이 들어가야 한다.

사령관동지!》

김일성동지께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자 전광식이 어둠속에 서있었다.

《아까 말씀하신 그 동무들을 모이도록 하였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리구 저, 전동무! 동무에게 알려줄걸 잊은게 있습니다.》

그이께서는 전광식을 멈춰세우더니 옆으로 다가오시였다.

《래일아침에 곧 천상데기마을에 선발대를 출발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차광수동무와 토의했습니다.》

전광식은 발을 모으며 활기있게 대답하였다.

《누굴 보내면 좋겠습니까?》

《제가 가는것이 어떻습니까?》

《전동무가? 좋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대원들은 한 둬서너명쯤 데리고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네! 두명이면 될것 같습니다.》

《인원은 동무가 결정하시오.》

그이께서는 전광식을 돌려보낸 후에 천막쪽으로 돌아오시였다.

나무밑을 거닐고계시는 사령관동지를 뜻밖에 뵈옵게 된 최칠성은 자기가 련락을 잘못 받지 않았나 의심하였다. 모임이 있다기에 급히 달려온것인데 아무도 아직 보이지 않았다. 그가 주저주저하고있을 때 사령관동지께서 그를 보고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하시였다.

최칠성은 약간 서툴기는 하지만 그래도 얼마간 숙련된 동작으로 발을 모으고 거수경례를 올리였다.

《여기 와앉으시오.》

그이께서는 최철성에게로 다가와서 통나무를 잘라 세워놓은 자리를 가리키시였다. 최칠성이 통나무의자에 앉자 사령관동지께서는 초막안에서 학습장을 안아내오시였다. 그것은 쉴참마다 손수 백로지를 접어서 만드신것이다.

《최칠성동문 글을 배웠습니까?》

최칠성의 옆의자에 학습장을 내려놓고 웃음을 지으면서 물으시였다.

《네! 저…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래 글을 한자도 모릅니까?》

《네! 모릅니다.》

손을 뒤덜미로 가져가는데 그의 얼굴은 금시 홍감빛으로 변하였다.

《이름이야 쓸수 있겠지.》

사령관동지께서는 학습장 하나를 통나무의자우에 놓으시더니 연필을 최칠성에게 내주시였다.

《여기다 동무 이름을 써보시오.》

《전 쓸줄 모릅니다.》

두손으로 받아든 연필 한대가 이겨내지 못할 어떤 중량물이기라도 하듯이 그는 연방 들었다내렸다하며 어쩔줄을 몰라하였다. 얼굴은 붉다 못해 금시 연기가 일것처럼 되였다.

《그래 동무는 무엇때문에 글을 배울수 없었습니까?》

사령관동지께서는 번연히 아시면서도 그에게 각성을 주기 위하여 물으며 자리를 떠서 최칠성의 등뒤로 돌아오시였다.

《주인령감이 야학에 가면 내쫓겠다고 야단해서 종시 글을 못 배웠습니다.》

《주인이란 누굽니까?》

《지주놈입니다.》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고있습니까?》

《글을 배워야겠지만…》

《배워야겠지만 뭐가 걸립니까. 학교나 야학이 없다는 말입니까?》

이렇게 말씀을 시작하신 그이께서는 최칠성이 눈뜬 소경이 된 까닭을 스스로 깨닫도록 이것저것 묻기도 하고 설명해주기도 하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학습장을 펼쳐놓고 최칠성이 글을 쓸수 있도록 연필을 쥐라고 하시였다. 이전에 몇번인가 연필을 잡아본적이 있기는 하였으나 사령관동지앞인지라 어떻게 처신했으면 좋을지 몰라 안절부절 못하였다. 절절매는 모양을 잠간 지켜보시던 사령관동지께서는 최칠성의 어깨밑으로 팔을 뻗치여 연필을 바로잡게 한 다음 손을 잡아 글을 써주시였다.

《연필을 이렇게 잡고 가볍게 내리누르면서 그어야 합니다. 자, 또 이렇게 점을 치고 긋고 비껴치고 또 점을 친 다음 이렇게 내리그으면 <최>자가 됩니다. 자, 이것이 동무의 성인 <최>잡니다.》

최칠성은 그저 그이의 품에 몸을 맡기고 그이의 손이 움직이는대로 손을 놀리였다.

《최》자 다음에 《칠》자와 《성》자도 그런 식으로 써졌다.

최칠성은 그이의 후더운 입김이 볼을 스칠 때마다 마치 어린시절에 어머니에게 안겼을 때처럼 그런 포근한 느낌을 받았다.

손길이 꽛꽛한 전날의 머슴의 손을 잡으시고 이리 끌고 저리 끌고 하며 여적 문명밖에서 방황하던 그의 첫걸음을 떼게 해주신것이다.

책가위에 이름 석자를 다 적으신 다음에 한장을 번지고 우리 글 자모를 적으시였다. ㄱ, ㄴ, ㄷ자가 차례로 씌여졌다. 자모를 다 쓰시고나서 다시 한장을 번지고 1, 2, 3의 수자를 적어주시였다. 최칠성은 처음에 목이 꽉 메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것을 겨우 참고있었다. 그러나 다음에는 글자를 알아볼수 없게 앞이 흐려졌고 끝내는 눈굽에 맺혔던 눈물방울이 볼을 타고 주르르 흘러 책장우에 뚝뚝 떨어져내렸다. 그는 가쁜숨을 들이그으면서 어깨를 들먹거렸다. 그것을 보셨는지 못 보셨는지 사령관동지께서는 그의 손을 잡은채 계속 글을 써나가시였다.

이윽해서 등뒤에서 그이의 부드러운 말소리가 들리였다.

《어떻소? 이것을 보고 그대로 써낼만 합니까?》

《네! 꼭 써보겠습니다.》

《그래, 꼭 배워야 합니다. 거저 글을 익힌다고 생각 말고 우리의 원쑤들과 싸운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지주놈이 왜 최동무가 글을 배우는것을 극구 반대했는지 압니까? 동무를 영원히 자기의 노예로 만들자면 눈을 뜨지 못하게 해야 하기때문입니다.》

《알겠습니다, 사령관동지!》

《최칠성동무! 이것은 하나의 혁명입니다. 이제 글을 배워 학습을 하노라면 그것이 무슨 말인지 알게 될것입니다.》

고개를 숙이고 최칠성은 연방 턱밑을 훔치였다. 그러는 사이에 10여명의 동무들이 모여왔다. 그들은 모두 문맹자들이였다.

우등불을 가운데 두고 그 두리에 빙 둘러앉았다.

사령관동지옆에 최칠성이 앉고 그다음에 철도판로동자였던 진봉남이, 그런 차례로 10여명의 대원들이 자리잡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방금전에 최칠성에게 하신것처럼 글을 배우지 못한 리유를 각자 자신들이 말하도록 하였고 그것이 누구때문인가를 일일이 캐물으시였다.

물기어린 눈을 들고 최칠성은 동무들의 얼굴을 쳐다보고있었다.

오래전부터 그이께서는 새로 받아들인 대원들의 학습문제를 생각하던 끝에 우선 문맹자들을 먼저 대책해야겠다는 결심을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몇동무에게 다시 현재 형편에서 어떻게 하면 시간을 짜낼수 있는가를 물으시고나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동무들이 지금까지 제 이름 석자도 쓸수 없도록 글장님이 된것은 동무들자신의 잘못은 아닙니다. 그것은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조선인민을 노예로 만들기 위해 몽매정책을 써서 글을 배우지 못하게 하였기때문입니다. 더구나 동무들은 여기 이 칠성동무도 그렇고 모두 지주들의 머슴을 살거나 봉남동무처럼 어린시절부터 로동을 하지 않으면 안되였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글을 배울 여유가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왜놈이 나쁘다고 욕이나 하고앉아서는 문제가 풀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혁명하는 사람이며 혁명은 알지 못하고는 해낼수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떤 곤난이 있다 하더라도 글을 배워야 하며 학습을 해야 합니다. 글을 모르면 혁명을 정확하게 리해할수 없고 그런 사람은 신념이 생기지도 않는 법입니다. 신념이 약하면 혁명을 하다가 물러설수도 있고 끝까지 혁명을 해낼수도 없게 됩니다. 글을 배워서 맑스-레닌주의를 끊임없이 학습하지 못한다면 혁명이 언제 승리할지 모른다는 식으로 암둔해질수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동무들이 내 말을 알아들을만 합니까?》

사령관동지께서는 최칠성의 어깨를 짚고 물으시였다. 될수록 리해하기 쉽게 말씀하시려고 애를 쓰시였다.

《우리는 지금 어떤 혁명을 하고있는가?》하고 그이께서는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우리는 일제를 조국땅에서 몰아내고 장차 조선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한 혁명을 하고있습니다. 우리는 력사에 보기 드문 포악하고 야만적인 적과 맞다들었습니다. 또한 일제는 아시아의 대부분을 강점하겠다고 생각할만큼 강대합니다. 우리의 로정은 간고하고 장기적입니다. 아까 누가 말했지만 몇해동안에 혁명을 끝내고 한시름 놓고 편안히 학교에 들어앉아 공부할수 있는가? 절대로 그럴수 없습니다. 그 생각은 꺼꾸로 섰습니다. 학습은 혁명을 하기 위해 필요한것이지 누구를 유식하게 만들기 위한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혁명에서 승리하기 위해 총으로도 무장해야 하지만 그와 함께 사상적으로도 무장해야 합니다. 우리는 인민들을 각성시키고 그들과 함께 결전에로 나아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군중들보다 멀리 앞을 내다보아야 하며 그들의 앞에 서서 여기는 돌이 있으니 돌아가야겠다, 여기는 물이 있으니 건너뛰여야겠다 이렇게 길잡이를 해야 하는것입니다. 그런데 동무들은 자기 이름도 쓸줄 모르고 책 한권도 읽을수 없는 형편이니 무엇으로 어떻게 군중을 이끌겠는가? 앞이 캄캄한데 어데로 가자고 하겠는가? 이렇게 놓고볼 때 우리는 글을 배우며 학습을 하는것을 하나의 혁명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진봉남동무, 동무는 어려서부터 보이라에 불을 땠고 철도공사판에서 목도를 했다니까 잘 알것이 아니요?》

진봉남은 고개를 숙이고 아무 대답도 못하였다.

《자, 이것을 보시오.》

그이께서는 손을 뻗치여 이글이글 타고있는 우등불에서 불꼬치 하나를 집어드시였다.

《이 한점의 불꽃을 섶단무지에 가져다놓으면 거세찬 불길을 일으키며 타번지게 됩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매개 동무들이 그러한 불씨가 되여야 합니다.》

그이께서는 불타고있는 꼬쟁이를 보며 잠간 생각에 잠기시였다.

흥분된 대원들의 얼굴이 한결같이 붉게 물들었고 그이의 존안도 역시 붉은빛을 띠였다. 뒤에 묵묵히 앉은 전광식은 이때 몇해전에 있은 하나의 숭엄한 화폭을 회상하였다.

길림에서 공청이 조직될 그무렵에 김일성동지께서는 반제청년동맹원들앞에서 연설을 하시였다.

《홰불을 높이 들자. 조국광복의 홰불, 항쟁의 홰불을 들자, 이 주먹이 타서 숯덩이가 되더라도 홰불을 높이 들자!》

강남공원뒤 언덕진 곳에서 우등불을 피웠었다. 그이께서는 그때 불타는 나무가지를 머리우에 높이 추켜들고 소리높이 웨치시였다.

그때도 그이의 존안은 저렇게 붉게 빛났었다.

그이의 말씀은 계속 정적을 흔들면서 숲속으로 울려갔다.

《그럼 이걸 하나씩 받으시오. 무식에 대한 소탕전을 벌립시다. 또 하나의 혁명을 선포합시다. 그닥 좋은건 아닙니다. 자, 이쪽에서부터 받으시오. 최칠성동무.》

최칠성이 일어섰다. 그는 학습장 한권과 연필 한자루를 받아쥐였다.

그의 손은 걷잡을수 없이 떨렸다.

다음에는 경례를 붙이고 진봉남이가 받았다. 십여명이 차례로 일어섰다. 모두다 헤여져갈 때 최칠성은 숲속을 혼자 걸었다.

공책 하나를 가슴에 안고 풀밭을 밟으며 이깔나무사이를 천천히 걸어나갔다. 캄캄해진 숲속은 겨우 나무그루나 가려볼만 하였다.

고개를 수굿하고 걷고있는 그는 눈앞에 밟히는 어린시절의 자신을 보았다. 깡뚱하니 달려올라간 베잠뱅이를 입은것이 저와 동갑짜리 지주집아들 황보금을 업고 진창길을 뒤뚝거리며 가고있다. 학교앞에 이르러서는 내를 건넌다. 업힌 아이의 운동화가 젖을가봐 두다리를 잔뜩 들어올리고 얼음장이 배허벅을 베고 지나가도 발을 미끄러뜨리지 말아야 한다.

우산을 들고 비를 맞으며 학교마당 백양나무밑에서 황보금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목덜미로 등골로 차디찬 가을비가 흘러내린다. 물이 발뒤꿈치로 흘러내릴 때 황보금이 나와 우산을 받아쓰고 먼저 간다.

썰매를 끌고 강판을 달린다. 짚신짝이 벗어져서 맨발이 얼음판에 쩍쩍 들어붙는다. 그래도 신짝을 집어들지 못하고 학교앞까지 닿는다.…

생각에서 깨여난 최칠성은 코마루가 저려나고 얼굴이 홧홧 달아남을 느꼈다. 그는 옆에 선 이깔나무기둥을 안고 그 껄껄한 껍질에 볼을 대였다.

사령관동지! 글을 꼭 배우겠습니다. 그래서 꺼꾸로 선 이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혁명을 하겠습니다.》

그는 흑흑 느끼며 울었다.

고된 로동으로 헐벗음을 사고 억울한 부림으로 수모를 받고 순종의 대가로 매를 얻던 그 멍이 든 생활이 하도 엉키고 굳어져서 홀홀히 풀리지 않았다. 몇마디의 말씀과 어깨밑으로 뻗치여 손을 잡아 글을 써주시던 그이의 손길이 그리고 이 얄팍한 한권의 공책이 그토록 오래 침묵했던 그의 심금을 강하게 튕겨놓은것이다.

시간이 흘러서 걸음을 돌려 숙영장소에 이르렀을 때 최칠성은 아직도 우등불가를 천천히 거닐고계시는 사령관동지를 볼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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