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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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동안에 한그릇을 다 먹어치우고난 그는 물을 마시면서 최칠성이가 어데 갔느냐고 물었다.

최칠성은 들쭉밭에 돌아앉아 무엇을 하고있었다.

《칠성동무, 나 좀 봅시다. 참나물을 많이 뜯어 한턱 냈는데 감사를 드려야지.》

고로쇠나무 저쪽에서 최칠성이 나타났다.

《최동무, 거기 앉아 뭘하더랬소?》

《별로 한거 없습니다.》

《아, 그거 풀을 뜯어 문대던거 있잖나.》

《거 호밉니다.》

《좀 봅시다.》

어정쩡해진 최칠성은 잠시동안 우두커니 섰다가 재촉을 받고야 다시 돌아가 호미를 들고 왔다. 박흥덕은 호미를 받아들고 신기하게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물푸레자루에 반들반들한 날이 달렸다.

《이거 어디서 났소?》

《집에서 떠나 작은데기로 오던 날 길가에서 주었습니다.》

《길가에서 주었다. 바위등에서 담배를 꺼낼 때도 이게 배낭에 있었소?》

《네!》

《자, 이 친구 어떻게나 깨끗이 손질했는지 밥을 떠먹어도 일없을 정도군, 하하하.》

손에서 손으로 호미가 연방 옮겨갔다. 그것은 마치 신기한 물건처럼 되여보이였다.

《그걸 간단히 봐서는 안돼. 어떤 일이 있어두 자기 계급은 버릴수 없다, 그걸 말하는거요.》

진봉남이가 웃을 일이 아니라는듯이 의젓하게 한마디 하였다.

《오늘은 전체 배낭을 다 좀 봐야겠소. 가만보니까 별별 요지경단지가 다 나올것 같아.》

유격대에 호미가 전혀 필요치 않다는것을 최칠성이도 곧 알았다. 그러나 그것을 버릴수 없었다. 그의 몸에 호미가 있다는것은 손가락이 다섯개 있는것과 마찬가지로 너무나 자연스러운것이였다. 어떤 경우에서나 그는 호미의 무게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호미이야기 뒤끝에 배낭에 아직 숨겨둔것이 많으리라는 누군가의 억측은 큰 착오였다. 따져보면 누구의 배낭에 무엇이 있는지 열흘이 못돼 다 공개되였고 사실상 그것은 공동창고와 같았다.

그러나 그들은 그 배낭들을 놓고 며칠이라도 이야기할수 있었다. 마치 그것은 과거와 미래가 함께 담긴 옹달샘과 같은것이였다.

배낭이야기가 끝없이 번져가는데 문득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동무들! 저걸 보우.》

차기용의 목소리다.

《백두산이요, 백두산!》

바람을 쏘이러 등마루에 올랐던 차기용이 큰일이나 난것처럼 고아대였다. 한달음으로 모두 산마루로 달려갔다. 호미를 치우고 최칠성이도 올리달았다.

모두들 사시나무 한그루가 비뚜름히 서있는 바위등에 올라섰다.

《오! 백두산이다!》

모두 발을 돋우고 바라보았다. 망망한 대해마냥 천리수해가 시선이 모자라게 아득히 비껴갔다. 곤청색숲이 늠실늠실 물결쳐 지평선 한끝에 가닿았고 그우로는 하늘이 또 그와 같이 펼쳐져서 지평선우에 하나의 직선으로 맞물리였다. 바로 그 새짬에 은백색으로 빛나는 백두산의 봉우리가 우뚝 솟아있었다.

바위 한끝 맨 높은 모서리에 전광식이 나섰다.

그는 이마에 손을 대고 눈을 가느스름히 뜨고 바라본다.

그옆에 그와 키가 비슷한 차광수가 입을 한 반쯤 벌리고 넋을 잃은 사람처럼 서있다. 최칠성이나 변인철이는 뒤늦게 올라와서 잘 보이는 곳을 찾노라고 여기저기 자리를 옮기고있다.

이러루하면 박흥덕이나 차기용이 높은 목소리로 환성을 지르거나 아무개나 붙잡고 자기 흥분에 휩쓸어넣으려고 떠들어댐직하나 그들도 아무 말을 못하고 그저 숙연한 감정에 휩싸여있었다.

누구 하나 말이 없다.

바야흐로 해가 지평선우에 걸리였다. 입김같은 저녁안개가 천천히 걷히면서 그 광대한 화폭을 차츰 더 선명하게 드러내놓는다.

하늘은 곤청색으로부터 보라색으로, 그다음은 연분홍색으로 변해가고 나무우듬지들은 차차 더 푸르러간다. 천리수해는 처음에 눈부신 연두색으로, 다음에는 찬란한 청록색으로, 그다음에는 곤청색으로 또 그다음에는 연한 비취색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백두의 봉우리는 끄떡하지 않고 그대로 백발이 성성한 머리를 쳐들고있다.

《전동무! 어떻소?》

차광수가 침묵을 깨뜨렸다.

《무어라고 말할수가 없소. 그저 숭엄해서 머리가 숙어질뿐이요.》

《난 이 나라의 조종을 보는것 같소.》

《그렇지, 조종이지. 그와 동시에 력사의 신성한 증견자이기도 하지.》

대원들속에서도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이미 들어온 이야기보다 직관적으로 보는것이 더 크고 장엄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는데 대하여 한마디씩 하였다.

조선사람은 누구나 나서자라면서 백두산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그래 직접 보지 못한 사람일지라도 저마다 그에 대한 표상을 가슴속에 간직하고있었다.

아득한 옛날 우주만물이 대혼돈속에서 깨여나고 이 땅덩어리가 두세개의 대륙으로밖에 분화되지 않았으며 한때 그것이 불덩어리였다는것을 보여주기 위해 아무데서나 함부로 불길을 뿜어올리던 그 시절에 동방일각에 이미 백두산의 터전이 마련되여있었다. 그로부터 얼마만한 세월이 흘렀는지는 알수 없으나 어쨌든 지금으로부터 수백년전까지 불을 토했다는 이곳에서 불길과 랭각의 끊임없는 싸움에 의해 장엄한 창조물이 하나 생겨났다는것은 능히 짐작할수 있다. 용암이 흐르고 재가루가 날려 반도를 이루면서 이 땅에 수없는 산과 들이 생기고 강과 늪이 만들어졌다. 하여 태백산마루에서나 멀리 한나산의 백록담에서도 천지의 물줄기를 볼수 있다는 말도 우연하지 않다. 이 땅에 나서자란 사람들은 조종의 산, 백두산을 우러러 우상과 신비를 만들었으며 건국설화들이 여기로부터 생겨난것은 물론 만년의 길흉과 년중의 흉풍, 지어는 래일의 천기마저 백두산을 쳐다보고 가리게쯤 되였다.

수수만년의 풍상을 이고 선 태고의 산은 오른팔을 펼쳐 2천리장강을 이루고 왼팔을 펼쳐 용용장수 두만강을 이루어 그 량끝을 천지에다 묶어놓고 이 땅의 사시절을 하나하나 여기서 떼여주고있다. 봄과 여름은 여기서 끝나고 가을과 겨울은 여기서 시작된다.

봄이 해당화 붉게 피는 남해기슭에서 거슬러 북으로 옮겨가면서 금강산 상팔담의 물을 녹여 구룡연으로 기울이면서 방울꽃의 망울을 틔울 때면 랑림의 철쭉꽃이 산을 붉게 물들이게 된다. 그러면 청봉의 봇나무들이 검은 이끼를 벗고 은백색피부를 내놓으면서 연두색잎을 내밀게 된다. 이럴무렵에도 천지는 쩡쩡 소리를 내며 얼어들고 눈보라는 주먹같은 부석들을 베개봉이나 무산령기슭까지 휘뿌려놓는다. 눈사태는 지동을 일구며 바위를 그러안고 공동이 진 천지기슭으로 굴러내린다.

하지만 역시 그밑에서도 봄은 시작된다.

얼음밑에서 물흐르는 소리가 한층더 정겹게 들리고 백두산의 진달래가 눈속에서 수집게 망울을 올리민다. 백두산의 봄은 짧고도 급격하다. 자연은 그 봉창으로 진한 색채와 성숙한 세련된 외모를 주게 된다.

진달래가 진홍색꽃잎을 흰눈의 바탕에 펼칠라들면 그와 승벽내기로 만병초가 두텁고 함치르르한 잎을 흔들면서 새노란 꽃을 내민다. 그런가 하면 두메양귀비가 하물거리는 꽃잎을 펴보이고 또 들쭉도 한몫 끼우려든다. 이렇게 되면 백두산의 봇나무가 온 산에 양기를 주고 겨우내 고생을 한 이깔, 분비, 가문비들이 흡사 구들비처럼 한쪽으로 가지가 쏠리고 키가 자라지 못한 그대로 푸르게 단장을 하고 나선다. 봄이 한창인데도 무두봉의 곰은 산마루의 눈을 보고 그냥 발바닥만 핥고있는데 사슴떼는 물이 먹고싶어 골짜기로 내려간다. 서벅서벅한 눈더미에 지난해에 잃어버린 한발이나 되는 뿔이 그대로 꽂힌것을 보고 꺼이꺼이 슬피 울면 어데선가 호랑이가 주림을 참지 못해 고함을 지른다.

여름의 천지는 절경이다.

눈보라가 지동치던 천지우에 어느덧 구슬알만 한 구멍이 생기고 그것이 며칠사이에 커져서 둘레 40리의 창창한 바다가 드러난다.

그러면 삼지연의 물빛이 어째서 그리도 아름다운지 알게 된다. 그것은 마치 원액들을 한데 모은 어마어마한 물감종지와 같기도 하고 안개와 바람과 구름을 빚어내는 신비경같기도 하다.

조종의 산은 이곳 사람들을 키웠고 자연을 길러왔으며 또한 긴긴세월 희로애락의 교차속에서 민족의 운명과 더불어 몸부림도 쳤고 통곡도 하였다. 그리하여 이 봉우리에 오늘과 같은 기상이 생겼고 모습도 달라졌다.

왜적이 기여올라와 온 강토를 짓밟기 시작하였다.

백두의 봉우리에는 사시절 질풍이 멎지 않았다. 진대통들은 함부로 쓰러지고 바위들은 소리없이 부서져 굴렀다. 무지막지한 왜놈의 도끼가 백두밀림을 찍어눕히고 온 육신이 파헤쳐져 도적맞을 때 몇번이나 통곡하며 몸부림을 쳤는지 모른다. 그러나 조종의 산은 넓은 가슴을 펼치고 이 나라 영웅들이 나타날 때를 기다렸다.

망국의 호곡이 울린지 20여년 백두는 매일같이 가슴을 헤치고 《여기로 오라, 내 품으로 오라.》 고 불렀다.

하다가 드디여 백두는 오늘 그들을 맞았다. 력사의 증견자 백두산은 처음으로 이 나라 절세의 영웅을 맞아 팔을 벌리고 크게 반기고있다. …《아! 저것을 좀 보우.》

차광수가 손을 들어 가리켰다. 지평선우에 저녁노을이 차츰 엷어지더니 누리에는 갑자기 어둠이 내려덮이였다.

그때 문득 흰 봉우리가 붉게 물들어갔다.

순간 그것은 활활 타는 홰불의 영상을 이루었다.

《그대로 홰불이군.》

차기용이가 탄성을 질렀다.

《유격대를 창건한 날 밤 사령관동지께서 쳐드신 저런 홰불을 쳐다보며 소사하의 숲속을 우리가 행진했었지.》

전광식이가 주먹을 쳐들며 웨치였다.

《그렇소. 동무들, 이쪽을 보우. 여기에 펼쳐진 이 숲은 우리 인민이며 바로 우리들이요. 하긴 점점이 널린 저 봉우리들이 어쩌문 우리 유격대라고도 볼수 있겠지. 그 모든것이 하나의 중심을 향해 모여들었소. 홰불을 추켜든 저 봉우리, 그것은 우리의 사령관동지이시구…

일제히 모두 환성을 올렸다. 팔을 저으며 높이 올리뛰였다.

4월 25일, 그날에 울리던 그런 환호성이 일어났다.

백두의 봉우리는 차차 더 진한 빛을 띠였다. 영원히 그러고있을것처럼 변하지 않았다. 얼마후 유격대원들은 숙영지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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