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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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저물자 유격대원들은 숙영준비를 하였다.

알맞춤한 이깔나무를 찍어다가 초막을 쳤다. 앞에는 두개의 기둥을 가슴노리만 한 키로 세우고 뒤에는 물매가 늦은 이영처럼 밋밋하니 내려가서 저쪽 언덕에 가닿게 한 다음 량옆과 우를 나무가지로 막았다. 그런것을 량편에 마주세우고 그가운데에 우등불을 피워놓으면 초막안은 후끈후끈하다. 이런것을 군데군데 소대별로 만들어놓는 한편 작식을 담당한 동무들이 줄기를 베제낀 하얀 통나무그루우에서 칼도마소리를 내고있다. 한쪽에서는 장작을 패고 쌀을 씻고 불을 일군다.

박흥덕이 눈코뜰새없는 때가 왔다. 그는 희색이 만면해서 가슴을 뒤로 제끼고 걸었다. 긍지높은 몸가짐을 하고 네군데로 나누인 취사장을 다 돌아보고 저녁과 아침식사에 대해서 지시를 주었다.

저녁은 강낭밥에다 지금 한창인 산나물로 푸짐히 국을 끓이고 아침은 백리행군을 예견해서 조찰밥을 든든히 먹이자고 마음을 썼다.

그가 숲속을 한바퀴 돌고나서 사령부가 자리잡은 곳에 이르렀을 때 김일성동지께서는 진대통에 걸터앉아 백로지로 공책을 매고계시였다. 무엇을 하려는것인지 얄팍하게 접어서 삼노끈으로 정성스럽게 꿰매시였다. 어제부터 쉴참마다 그렇게 하시는것이였다.

박흥덕은 숙영준비와 저녁식사준비가 순조롭게 되고있다는데 대해서 보고를 올리고 옆에 다가앉으며 말씀드렸다.

《저에게 주십시오. 제가 책을 잘 맬수 있습니다.》

《그래?》

그이께서는 종이를 접던 손을 멈추고 언제 공부를 했기에 책을 잘 맬수 있느냐고 물으시였다.

《아홉살때 서당에 한 댓달 다닌적이 있습니다. 그때 책 매는것을 봤습니다.》

《그럼 천자는 뗐겠소?》

그이께서는 쇠줄을 갈아서 만든 송곳으로 끈을 꿰면서 재차 물으시였다.

《소경 경읽듯 해서 뭐가 뭔지 모르고 지났습니다.》

《이쯤하면 글을 써낼만 한가 한번 보시오.》

박흥덕은 그이께서 내미신 공책을 두손으로 받아들고 어쩔줄을 몰라하였다.

《어떻소. 괜찮을것 같습니까? 손재간이 없다보니 이렇게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글이야 쓸수 있겠지. 동무한테 손칼이 있습니까?》

공책이 열댓권은 되였다. 끈을 다 꿰신 그이께서는 공책을 한데 포개시더니 툭툭 그루를 박아 넓이와 길이를 가늠해보고나서 박흥덕의 손칼로 도련을 치기 시작하시였다. 나무토막우에다 놓고 자를 대여 쫙쫙 내리긋는데 여간 능란하지 않으시였다. 칼이 그어질 때마다 종이오리가 꼬리를 저으며 발등에 날아떨어지군 하였다. 한책이 끝나면 또 다음책이 그렇게 완성되여나갔다.

박흥덕은 손을 대지 못한채 덤덤히 서서 보고만 있다가 물러나고말았다.

저쪽나무밑에서는 차기용이 웃동을 벗어제끼고 장작을 패고있었다. 구리빛어깨가 번들번들 빛났다. 굵다란 모태에 이깔나무토막을 놓고 도끼로 힝힝 내리쳤다. 어깨가 땅을 향해 기운차게 숙어질 때면 숲이 쩡쩡 울리면서 손벽같은 도끼밥이 어깨우로 휙휙 날아넘어간다. 한발이나 되는 토막이 쩍쩍 갈라지면서 송진내를 확확 풍겨놓는다.

화승대를 멘 최칠성이 고개를 기울사하고 뚱깃뚱깃 걸어왔다. 그는 웃동을 벗어서 참나물 뜯은것을 한아름 싸안고있었다.

식사시간이 되였다.

소대별로 둘러앉았다. 강낭가루와 쌀이 반씩 될가한것이 커다란 양재기에 그득그득 담기였다. 김이 문문 피여오르면서 구수한 냄새를 풍기였다. 차기용은 밥에다 국을 들부어 소금으로 간을 맞추었다. 참나물내가 향긋이 풍긴다. 그는 저가락이 휘도록 듬뿍이 떠서 후후 몇번 불고나서 입으로 가져갔다.

꼬마 변인철의 코등에도 땀이 송글송글 내돋았다. 키가 커서 걸음을 잘 걷는 상선이도 눈을 껍적껍적하며 더운것을 떠넘기고있다.

식사가 한창일 때면 의례히 박흥덕이가 한번씩 순회를 하였다. 그는 약간 발을 벌려디디고 느릿느릿 나무밑으로 걸어왔다.

《넉넉친 못하지만 많이들 자시오.》

《군수관, 식사했소?》

이럴 때면 차기용이도 누구보다 례절이 바른 축에 들게 된다. 그러나 항상 그다음이 문제였다. 박흥덕은 손으로 입술을 문지르면서 먼저 많이 먹었노라고 하였다. 하긴 박흥덕이 언제 식사를 하는지 본 사람이 아직 없었다. 이쪽에서 물으면 저쪽에서 먹었다고 하고 저쪽에서 물으면 이쪽에서 먹었노라고 하였다. 케를 봐가다가 좀 모자랄듯 하면 자기는 굶고도 그런 식으로 굼때넘겼다.

자나깨나 그는 나물죽 한사발이라도 대원들에게 더 공급하기 위해 애를 썼다. 정 끼니를 건느기 곤난할 때는 작식대원들한테 가서 좀더 먹어야겠다고 우스개소리를 하며 눌은 밥으로 끼니를 에우는 때가 많았다.

《군수관이 식사를 많이 했는지 안했는지 내가 한번 들어봐야 아는데.》

차기용은 어느새 밥그릇을 내려놓고 물러났다. 화닥닥 일어선 그는 박흥덕이 어쩔새없이 허리를 그러안고 닁큼 들어올리였다.

《하! 이거 거뿐하군. 안됐소. 작식대원동무! 군수관 식사를 곱배기루 시켜 보내야겠소.》

《이자 3소대에서 먹고 오는 길이요.》

《가만 좀 있소. 오늘은 내가 군수관 혼을 좀 내야겠소.》

매사에 거칠고 대범한것 같으면서도 관찰이 예민하고 빈틈이 없는 차기용은 박흥덕이 식사를 설때리고 다니는 눈치를 챈지가 벌써 오래였다. 차기용은 3소대로 달려가 군수관이 거기서 식사를 했는가 알아보고 돌아왔다. 차기용이 달려다니는 까닭을 알리 없었던 대원들은 또 롱이 시작된것으로 알았다.

차기용은 박흥덕에게로 달려오더니 어깨를 와락 잡아 주저앉히였다. 박흥덕이도 보통체격은 좀 지나는 축이였지만 웃통이 한발이나 되고 뼈마디가 억센 그에게는 당해내지 못하였다.

《내 보는데서 곱배기를 하지 않으면 놔주지 않겠소.》

《아, 이런 억지가 있나. 이자 난 먹었대두 그런다.》

《왜 이리 꾸물거리오. 빨리 주시오. 얼떨떨하다간 우리 군수관 굶기겠소. 자! 동무들, 내 말을 들으시오. 오늘에야 내가 군수관의 꼬리를 붙잡았소. 군수관이 어떤지 압니까?》

차기용은 군수관이 대체로 식사를 설때리고 지난다는것을 폭로하였다. 눈물이 글썽해진 최칠성은 돌아앉아 코밑을 훔치였다. 누구도 그런줄은 몰랐다. 물을 마시던 상선이는 목이 메여 한참 물그릇을 든채로 서있었다.

《어떻게 그럴수 있소? 군수관이 그렇게 하면 우리가 맘놓고 식사를 할수 있겠소?》

차기용이 정색해서 다궂는다.

《군수관은 이제부터 우리 소대에서 식사하게 합시다.》

《처벌로 열흘동안 곱배기식사 시킵시다.》

여기저기서 항의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밥그릇을 받아든 박흥덕은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동무들이 저 대포쟁이같은 차기용의 말을 그대로 듣소? 절대로 차동무 말을 믿지 마시오. 내가 왜 굶겠소. 나야 늘 넉넉히 먹었지. 자! 내 팔뚝을 좀 보우. 내가 굶었겠는가 먹었겠는가 하는거야 이걸 보면 알게 아니요.》

박흥덕은 소매를 걷어올리고 동무들앞에서 이리저리 팔을 내둘렀다. 그러나 누구도 그것을 믿어주지 않았다.

《실상 난 먹지 않고도 배가 불렀소. 동무들이 식사를 만족하게 하는걸 보면 난 마음이 흐뭇해지지. 우리가 뭐 언제 배불리 먹고살았소.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더 많은것이 우리들 살림이 아니였소? 머슴살이 10년 하면서 늘 나는 배를 곯았소. 배나 불리자면야 내가 뭣하러 유격대에 들어왔겠소? 산골에 들어가 부대를 일궈서 감자나 삶아먹고 앉아있지. 생각들 해보우. 글쎄 여기만두 최가, 리가, 박가, 민가, 차가 별의별 사람이 다 있지 않소. 이 각성내기가 지금 한솥의 밥을 먹으며 한식구가 되지 않았소. 난 동무들이 식사하는걸 볼 때면 별생각을 다하오. 세상이 아무리 못돼먹었다 해두 한사람이 누울 따뜻한 구들장 몇잎을 구할수가 있고 된장 한그릇이라도 맛나게 끓여먹을 부뚜막을 마련할수 있는것이 아니요. 그런데 이것저것 다 버리고 바로 이렇게 우리는 살기를 원했단 말이요. 조선을 독립시켜야겠다는것, 우리 조국을 사회주의, 공산주의락원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우리의 결심이 이런 길을 택하게 했지. 난 어떤 땐 이런걸 생각해보군 했소. 이제 우리 나라가 해방될것이다.

그때는 차동무도 리동무도 신동무도 모두 각자 자기 초소에 있게 될거다. 군대도 있고 기술자도 있고 학자도 있고 또 로동자도 농민도 있을거 아닌가. 그때 가서 내가 무슨 수로 저 사람들을 단 한번이라도 한솥의 밥을 먹여볼수 있을가 하고 말이요. 안될거요. 그땐 모두 고기, 생선에 맛나는 김치에 흰쌀밥을 먹겠지. 그러나 강냉이를 섞고 산나물국을 끓인 이 유격대식사만치 맛이 있을가? 동무들, 잊지 말자구, 응! 이 유격대식사를 우리 잊지 말자구. 솔직히 말해서 이거야 맛이 없지. 이것이 무슨 맛나는 음식이요. 그렇지만 이걸 먹구 우리는 하루에 200리를 갈수 있구 물이 괴여오르는 땅바닥에서도 잠잘수 있지 않는가! 이걸 먹구 우리는 죽을데도 같이 갈수 있지. 이제 해방돼서 말이지 내가 한번 모이자구 할 때 다 오라구, 응! 우리 살림이 흰쌀밥에 고기국을 먹게 되였을 때 내가 1년에 한번쯤 바로 이맘때에 강낭가루에 나물을 뜯어넣은 범벅을 끓여놓구 부를테니까 모두 오라구. 다 오겠소? 정말 오겠지? 그때 우리 옛말하면서 이런걸 먹어보자구, 응?》

누구도 대답이 없었다. 박흥덕은 동무들을 한번 둘러보고나서 두툼한 입술을 들어올리며 웃었다.

《왜 이러구 있나. 자! 그럼 난 먹겠소. 곱배기할 처벌이 내렸으니까 그대로 복종해야지. 작식대원동무, 있는대로 다 가져오우. 열그릇이라도 먹겠소.》

박흥덕은 국을 떠서 후후 불어가며 탐스럽게 먹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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