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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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낮인데도 숲속은 어두컴컴하였다.

이깔나무와 분비나무들이 삼단같이 들어섰는데 간혹 고로쇠나무와 사시나무들이 끼여있었다. 습하고 곰팡내 풍기는 땅은 무릎까지 빠져들어갔으며 한발을 옮겨디디자면 어깨가 땅에 닿을만치 몸을 기울이고 발을 뽑아내야 하였다. 어디라없이 땅에서는 물이 쿨쩍쿨쩍 스며올라왔다. 한참씩 가서야 손바닥만 한 하늘이 나무가지사이로 올려다보이였는데 거기로 찬란한 해살이 내리비치였다.

하늘은 끝없이 푸르렀다. 연두색으로 물든 나무우듬지들이 바람에 물결처럼 흔들리고있다. 어데도 길은 없었다. 숲이 생겨서 이때까지 누구도 발을 들여놓지 않은것 같다.

대렬은 곧추 빠져나갔다.

김일성동지의 친솔하에 소사하를 떠난 반일인민유격대의 한 부대가 행군하고있는것이다.

압록강지구 진출의 첫 로정으로서는 두만강지구에서 유격대가 자취없이 사라져야 하며 압록강지구에는 불의에 나타나야 하였다.

행군은 처음부터 간고하였다.

산도 숲도 마구 꿰지르고 나가야 하였으며 어떤 때에는 산 하나를 놓고 뱅뱅 맴돌기도 하고 또 어떤 때에는 한 100여리를 단숨에 내지르기도 하여야 하였다. 그러다가 혹간씩 한 30~40리정도밖에 못 가서 숙영을 하게 되는 때도 있었다.

세상에는 곧고 평탄한 크고작은 길이 많기도 하건만 이 대오는 신통히도 말그대로 전인미답의 숲속, 산릉선, 들 그리고 바위츠렁을 정복해나가는것이였다.

로정도 특이하였지만 그 구성도 또한 그러하였다. 아래우 황록색군복들에다가 로동화들을 신었는데 절반쯤은 38식보총을 메였고 그 나머지는 화승대와 토퉁들이였다. 등에다는 모두들 배낭을 졌다. 그것도 등산용으로 이미 만들어진것이 아니라 통개가 좀 넓은 자루의 아가리에다가 끈을 꿰도록 만든것이였다.

하나같이 모두 스무살안팎의 청년들이다.

얼핏 보건대 생김새도 모두 비슷한것 같았다. 해빛에 그을은 얼굴들과 임의의 동작에 준비된 민첩하고 정열에 넘치는 체구들 그리고 다소 높다고 느껴지는 목소리들이 모두 그러하였다. 그들은 얼마전까지 호미와 마치를 들었었다. 그래 고생을 누구보다도 많이 했고 글 읽은것이 적어서 교훈적인 말은 잘하지 못하였지만 그대신 생활의 대부분을 행동으로 채워나가는것이였다.

그렇지만 이들과 단 한시간이라도 같이 있게 된다면 각양하고 뚜렷한 개성들을 곧 느끼게 될것이다.

맨 뒤에 따라오면서 무어라고 대구 떠들어대는 박흥덕은 부대살림을 돌보는 군수관이다보니 벌써 소사하에서부터 《느렁망태》라는 별호까지 붙을 정도로 기질이 로출되였다. 총부혁을 잔뜩 늦추잡았기때문에 총신이 드러누워 앞뒤 간격이 곱이나 늘어진 그 대렬 한복판에서 느적느적 걷고있다. 그는 우스개소리를 잘하여 남을 늘 웃기였다. 당장 하늘이 무너진대도 꿈쩍 안하는 성미다. 그러나 군수관의 사업, 혁명임무에 들어서서는 빈틈이 없다. 꼬치꼬치 따지기도 하고 단호하고 엄격하며 때에 따라서는 날파람이 있고 기민해지기도 한다. 그는 지금 자기의 단짝인 《탄광쟁이》 차기용을 붙잡고 자기가 집을 떠날 때 땅고집을 부리던 아버지이야기를 늘어놓아 한바탕 웃기고있다.

차기용은 박흥덕과는 정 반대로 키가 늘씬하고 어깨가 넓으며 목이 길다. 눈섭은 시꺼멓고 얼굴은 약간 침울한것 같이 보이지만 눈에서는 매우 강한 빛을 뿌리였다. 어깨는 약간 구부정하였는데 성미는 장탄된 탄알마냥 아무때나 뛰쳐나가려고만 하였다.

전라도에서 맨발로 떠나 스물세살나는 이날까지 조선 13도를 무른 메주밟듯 하면서 탄광, 광산을 모두 돌아다니다가 천곡탄광에 파견된 공작원의 영향으로 그렇게 모질게 마시던 술을 딱 끊고 혁명사업에 몰두하게 되였다. 세파에 부대끼면서 거칠대로 거칠어진 흔적이 아직 진하게 남아있기는 하나 그래도 누구한테 먼저 싫은소리 한마디 하지 않는 선량하고 듬직한 성품을 가지고있다. 그는 매사에 힘과 정력을 과도하게 쓰는 버릇이 있어서 우등불장작을 언제나 쓰고남을만치 패놓았고 숙영을 위한 초막도 다른 소대에 비해 두갑절이나 크게 만들어야 시원해하였다. 그에게 특이한것은 강한 저항력과 고통에 대한 검질긴 참을성이다. 그는 이때까지 한번도 눈물을 흘려본적이 없었고 단 한마디의 신음소리를 내보지도 않았다. 동발짬에 끼워 손가락이 두개나 부서졌을 때도 입을 벌리고 낯을 찡그렸을뿐 아프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완악하고 무자비한 세파에 찌들을대로 찌들은 그였다.

그런데 어떻게 돼서 성질이 판이한 박흥덕이와 단짝이 되여 한데 묻어다니는지 누구도 알수 없었다. 그가 있는 곳에서는 늘 박흥덕의 익살스러운 말소리가 들리군 하였다.

그보다 댓사람앞에서 혼자 수걱수걱 걷기만 하는것은 등이 약간 구불사한 최칠성이다. 항상 무엇을 사색하는것 같은 심중한 얼굴인데 실은 그렇게 줄창 생각하는것은 아니고 원래 습관이 그렇다. 동무들에게 하찮은 그 무엇을 물을 때도 곧 처녀들처럼 얼굴이 붉어진다. 글은 한자도 모른다. 열두살부터 입대하는 두달전까지 지주네 머슴을 살았다. 그의 신변에 특이한것이 있다면 결혼한지 1년밖에 안되는 아릿다운 안해를 집에 두고온것이다. 그의 가슴에는 묵직한 자물쇠가 몇개나 잠가있어서 좀체로 자기의 자랑이라든가 걱정거리 같은것을 내놓지 않았다. 조용조용히 말하며 또 그런 식으로 걷는다. 그에게 기껏 과장된 표정이 있다면 가장 통쾌할 때 눈이 보이지 않을만치 작아지면서 고개를 흔드는것이였다.

그는 손재간이 있었고 무엇이나 정성스레 다루었다. 구에게 차례진 화승대는 어떻게나 닥달을 하였는지 어디라없이 거울처럼 알른알른하였다. 그를 두고 하나의 수수께끼가 있었는데 누군가의 말에 의하면 그의 배낭에 호미가 하나 들어있다고 한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길이 없고 사실이라면 그것을 뭣에 쓰려는것인지 몰랐다. 그는 지금도 고개를 숙일사하고 힘들지 않게 걸어가고있다. 최칠성이보다 썩 앞으로 나가서 선두에서 한 댓사람만에 전광식이가 걷고있다. 길림 공청성원의 한사람인데 매우 영민하고 리론적으로 준비되여있으며 철저하다. 동료인 차광수와 많은 점에서 비슷하나 생김새가 좀 우둥퉁하여 농민형으로 보인다. 그는 늘쌍 과묵하다가도 매우 명랑해지는 때가 있다. 심각하면서도 쾌활한 두가지를 다 가지고있다. 그는 이 부대의 정치사업을 책임지고있지만 언제나 자기가 대원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투로 말을 하거나 행동해본적이 없다. 항상 책을 읽었다. 숙영할 때도 읽었고 휴식할 때도 읽었다. 대원들이 묻는것에 대해서는 무엇이나 막히지 않고 자세히 알려주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기 자랑이 될가 저어해서 《어느 책에서 보니까》 한다든지 《누구에게서 들으니까》 하는 식으로 전제를 놓군 하였다. 그는 지금 전령병 변인철이와 무슨 이야기를 재미나게 하면서 웃고있었다.

《이봐! 차동무.》

박흥덕이가 차기용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가 방금 시작한 이 걸음은 얼마나 걸으면 끝장이 날것 같은가?》

너무 엉뚱한 질문이여서 차기용은 걸음을 멈추고 상대편을 멍청히 쳐다보기만 하였다. 그때 이마에 난 푸른 흠집이 이깔나무사이로 내리비치는 광선을 받아 번뜩 빛을 내였다. 탄부들만이 가지고있는 푸른 상처를 그도 역시 돈잎만 한것을 가지고있었다.

기다란 다리로 진대나무를 넘어뛰고나서 차기용은 느릿느릿 대답하였다.

《그런거야 두더지처럼 굴속에서 탄을 캐던 사람보다야 군수관이 더 잘 알것이 아닌가.》

박흥덕의 큼직한 코방울이 보기 좋게 한번 움직이였다.

《하하, 이럴내긴가?》

《어쨌든 그걸 지금부터 계산해 뭘하겠는가?》

《그래야 군수관이 이제부터 혁명이 끝날 때까지 몇끼나 밥을 먹여야 될지 회계를 때려볼거 아닌가?》

《어쨌든 군수관을 참 잘 골랐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국을 해방하고 경축연을 할 때 국수가 몇그릇이나 있으면 되겠는가도 미리 계산해둘판인가?》

이렇게 불쑥 말을 해놓고도 그는 얼굴이 붉어졌다.

《하기야 그것도 계산해둘만 하지. 한 3년 본때있게 내밀면 되지 않을가?》

박흥덕의 3년이란 계산은 노상 허무한것이 아니고 제딴에는 최근에 일어나고있는 혁명정세에서 이러저러한것을 대개는 타산한것이였다. 특히 우리 혁명이 장기성을 띤다는 점을 생각할 때 한껏 넉넉히 잡아서 1년간은 준비기간으로 보고 2년째는 격전의 해로 보고 나머지 1년은 결속 즉 매사에 약간한 여유가 꼭 필요한것이니 그것까지 계산에 넣어서 3년이면 될것으로 본것이였다.

《내 생각엔 말이지…》

차기용은 얼마간 정색해진 낯으로 박흥덕을 쳐다보며 진정을 털어놓았다.

《넉넉히 한 10년은 잡아야 하잖겠는가 생각하는데…》

《아니, 뭐 10년을?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지 않나? 동문 그 땅굴을 뚫던 검질긴 성미가 돼서 그런 어벌이 큰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난 그렇게까지 오래 걸릴것으로는 생각지 않네.》

《10년에라두 되기만 하면 아주 빨리 되는거야. 탄광 하나 일구는데도 몇년씩 걸리는데 이건 제국주의를 내몰고 거꾸로 선 세상을 바로잡아놓는 혁명인데 한두해로 되겠나. 너무 덤비지 말라구. 미리부터 후끈 달아하는것도 소부르죠아지근성이라는걸 알아야 해.》

《대관절 말이지, 내 흉은 그만하고 그 10년이란 근거를 내놔보란 말이야.》

《10년은 이렇게 나온거네.》

그는 소사하에서 김일성동지께서 연설하실 때 조선혁명은 장기성과 간고성을 띠게 될것이라고 하신 말씀을 념두에 두고 불쑥 10년이라고 불렀을뿐이지 그럴만한 아무런 근거가 없었다. 하지만 기왕 말을 낸김에 아무렇게나 둘러댈 작정을 하였다.

《10년이란건 3년이 3개 있고 나머지가 1년 안야?》

《그야 그렇지.》

박흥덕은 귀맛이 와짝 당기였다.

《첫 3년에는 력량을 키워나가면서 석탄이 어디 있나 알아보는 식으로 탐사를 한다 그런 말야. 다시말해서 왜놈들의 어느모를 쳐야 빨리 꺼꾸러뜨릴수 있겠는가 보는거지. 다음 3년은 구멍을 뚫고 남포를 놓아서 노다지판을 긁어내는 식으로 왜놈들을 족쳐댄단 말이야. 그러되 망탕 해서는 안돼. 처음에는 중심을 뚫고 다음에는 중심이 무너진 좌우상하를 넘겨뜨려야 하는데 그 중심이란 일제군대와 경찰이고 천반과 밑바닥 같은것은 왜놈들과 배짱이 맞아돌아가는 지주, 자본가,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이지. 그다음 또 한개의 3년은? 가만있자, 분명히 또 한개의 3년이 남아있던가?》

《그래, 이자 두개를 설명했으니까. 》

《그다음 하나는 사회주의를 일궈세워야 한단 말이지.》

《1년은?》

《그 1년이야 무슨 일에나 뒤거두매란게 있잖나. 막장에서 쟁기도 내오고 먼지두 털구 손두 씻구, 하하하.》

차기용은 이가 드러나게 입을 크게 벌리고 웃었다.

속았다고 생각한 박흥덕은 게면쩍게 혀를 내밀어 입술을 추기는데 마침 앞에서 전달이 왔다.

《행군도중에 말하지 말것!》

차기용은 아차! 하고 뒤덜미로 손을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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