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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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떠날 때가 되였다. 집일이 걱정되여 뒤집 김정룡의 집에 들리시니 그는 자기의 잘못이 많다고 거듭 사과를 하면서 뒤일을 장담하여나섰다.

《제가 책임질테니 념려마시오. 어머님과 동생들에 대해서 아들만은 못하겠지만 있는 성의껏 돌보아드릴터이니 걱정 말고 어서 떠나시오.》

그이께서 김정룡에게 집일을 부탁하고 집에 돌아오시니 어머님께서는 농짝에서 다림발이 선 풀색군복을 꺼내여 방바닥에 놓고 앉아계시였다.

《맞겠는지 모르겠다만 입어보아라.》

어머님께서는 단추구멍이 잘된것 같지 않아 개여놓은 옷을 다시 펼쳐보고 앞섶의 실밥을 뜯으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너무 뜻밖이여서 아무 대답도 못하고 서계시였다.

《생각은 벌써 오래전에 있었지만 너도 아다싶이 어디 그럴 짬이 있었느냐. 하는수없이 급작스레 마련한것이 겨우 이런거다. 하기야 네가 나라를 찾을 군대를 만들었는데 내가 성의가 있었던들 군복 한벌쯤 만들어줄수 없었겠느냐. 내가 등한한탓이지. 어서 맞는가 입어보아라.》

어머님께서는 군복을 들고 그이앞으로 다가오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고개를 숙이시였다.

이윽해서 그이께서는 새 군복으로 갈아입으시였다. 흠잡을데 없이 꼭맞는다. 바쁘신 어머님께서 밤을 새며 한뜸한뜸 떠서 지으신 군복이라고 생각할 때 그이께서는 무어라고 심정을 나타내였으면 좋을지 모르시였다.

어머님께서는 여느날처럼 대범하신 표정으로 어깨며 깃이며 기장이며 통이며를 가늠해보며 자못 만족해하시였다.

《꼭맞는구나, 됐다. 신까지 한컬레 마련했으면 아주 구색을 갖추는것인데 이렇게 입고보니 더 아쉽구나.》

어머님께서는 서너걸음 뒤로 물러서서 어엿한 군복차림의 아드님을 다시한번 바라보며 말씀하시였다.

태반의 어머니들이 자기 자식에게 옷을 해입힌다. 따라서 그때마다 느끼는 기쁨을 유난스러운 체험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것이다. 하지만 강반석어머님께서는 조국광복의 장도에 오르는 아드님께 다른 옷도 아닌 바로 군복을 처음으로 해입히신것이다.

이날 강반석어머님께서 느끼시는 그 기쁨은 생애에 다시없는 그런 기쁨이였지마는 어머님자신의 표정에는 언제나 부드럽고 잔잔한 그 웃음이 어리여있을뿐이였다.

어머님께서는 몸이 아주 쾌차한것처럼 밝은 안색이시였다. 름름한 아드님의 모습이 어머님께 있어서는 그토록 큰 기쁨이고 자랑이였던것이다. 아드님을 낳아키우신 어머님이시건만 실상 불과 몇해를 같이 지내지 못하시였다. 철이 들자부터는 팔도구에서 만경대에 보내고 그리고 무송에서는 화성의숙으로 보내고 뒤이어 길림학교시절부터 오늘까지 륙칠년, 그러고보면 같이 있은것보다 떨어져 지낸 시간이 더 많았다. 그렇기때문에 어머님께서는 모자간의 정을 나누는데는 커다란 공백을 가지고계셨던것이다. 그래서 어쩌다가 이렇게 며칠 혹은 몇시간씩 만나는 때가 있으면 그 빈자리를 메꾸기 위하여 몹시 애를 쓰시였다.

이번에는 아드님에게 쏠리는 정이 전보다 몇배로 더 간절하시였다.

왜 그런지 이번에 떠나보내면 오래동안 다시 만나지 못할것 같은 지레짐작이 자꾸만 앞서지시는것이였다.

어느때나 놈들의 경계를 뚫고 다녀야 하였고 《체포령》에 대한 삼엄한 그물을 헤치고 다니였지만 이번에는 그전과도 다르다는것을 어머님께서는 잘 알고계시였다.

어머님께서는 이렇게 초조하고 애끊는 감정을 지그시 누르고 그저 은근한 표정으로 자주 아드님의 모습을 바라보시였다. 기실 이런 경우에 말이란 어머님의 심정을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무력한것이였다. 그보다는 오히려 항상 사색하고있는 눈이며 그윽한 미소를 담으신 입모습이며 때때로 가슴으로 가져가는 마디가 굵은 어머님의 그 손길이 얼마나 더 많은것을 나타내고있는지 모른다.

그이의 시선은 뙤창을 통해 들어오는 봄기운을 느끼고계시였다.

저 창밖에 펼쳐진 가없이 푸른 하늘에서는 종달새가 떠서 지저귄다. 싱싱 푸른 밀보리밭은 동백기름으로 감아 빗은 머리태같다.

푸른 들과 푸른 하늘이 끝없이 비껴갔다. 어디를 보나 화창한 봄기운이 물결치고있다.

마치 이 봄, 이날 그것은 작별의 시각을 앞둔 어머님과 아드님, 그 두분을 위해서 마련된듯 하였다.

어머님께서는 름름한 아드님의 모습을 보고 또 보신다. 크지 않을가 념려하셨던 푸른 군복에 꼭 들어맞는 몸이며 곧 아버지를 련상시키는 환한 얼굴, 어느것이나 다 미덥고 대견하시였다.

한편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정한 미소와 모성의 끝없는 자부가 감출수 없이 비껴흐르는 어머님의 모습을 그냥 바라보시였다.

어머님께서는 어느새 담담한 표정으로 돌아가 조용히 지나간 일들을 더듬어나가시였다. 그것은 처음 하시는 말씀들도 아니였고 아드님이 모르는 말도 아니였다. 그러나 조선혁명을 떠메고나설 조선인민의 무장력을 처음으로 보신 어머님으로서는 그러한 혁명군대를 만들려고 평생을 애쓰다가 돌아가신 김형직선생님 생각이 다시금 간절해진것이였고 그 잊을수 없는 사연들을 되새겨보지 않을수 없는 심정이시였다.

어머님의 어조는 여느때나 다름없이 부드럽고 잔잔하였지만 그속에는 어머님께서 안고계시던 불과 같이 뜨거운, 대해와 같이 설레이는 격정이 뚜렷이 느껴지시였다.

만경대에 뿌리를 둔 이야기는 봉화리로, 중강으로, 림강으로 다시 팔도구로, 무송으로 옮겨가는데 어떻게나 그것이 생동한 현실처럼 안겨오는지 김일성동지께서는 지나간 일들을 마치 목전에 보시는듯 하였다.

문득 그이의 눈앞에 무송 소남문거리의 자그마한 옛집이 떠오르시였다. 그때도 산과 들이 이렇게 푸르른 화창한 초여름이였다.

그이께서는 아버님의 부름을 받고 갈노전이 깔린 방안으로 조용히 걸어들어가 무릎을 꿇고앉으시였다. 머리맡에는 약병들이 놓이고 몇권의 책이 펼쳐져있었다.

병중에 계신 아버님께서는 하얀 잇을 씌운 베개를 뒤로 밀어놓고 몸을 일으키시였다. 벽에 기대신채 잠시 아드님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씀하시였다.

《네가 지금 몇살이지?》

《열네살입니다, 아버님!》

《그래, 열넷이지.》

아버님께서는 아드님의 나이를 모르셔서 묻는것이 아니시였다.

《남자가 열네살이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있는지 잘 알 때가 되였다.》

아버님의 말씀은 매우 장중히 울리였다.

숨이 차서 약간 사이를 두셨다가 이불을 한쪽으로 밀어제끼시였다.

《지금 우리 나라는 왜놈들에게 빼앗긴지 스물두해가 되였다. 네가 세상에 태여나기 전에 벌써 우리 나라는 왜놈들에게 강점되였더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망국노의 처지로 되여 어언 20여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우리 민족은 말할수 없는 고통을 겪었고 피도 많이 흘리였다.》

아버님의 얼굴에는 울기가 오르더니 기침을 하시였다. 하는수없이 아버님께서는 베개를 고이고 다시 자리에 누우시였다.

아버님의 눈에서는 번개가 이는것 같았다.

이불밑에 내놓인 주먹이 우들우들 떨리시였다.

《성주야, 조선력사는 지금 우리에게 묻고있다. 일어나 싸울테냐 앉아서 죽을테냐, 이렇게 말이다. 그래 너는 어떻게 대답하려느냐?》

김일성동지께서는 고개를 드시였지만 말씀을 하지 못하시였다. 말씀으로 대답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숨결이 느껴지셨기때문이다. 아버님께서는 진한 눈섭을 치켜올리기도 하고 또 때로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어보이기도 하면서 절박하고도 준엄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민족의 운명이 칠성판에 놓이고 온 강토가 호곡하고있는데 아버님께서는 이제 오래지 않아 자신은 이 세상에 없게 되리라는 참으로 비장한 예감을 느끼고계시였다.

한평생 조국의 운명을 건지기 위해 싸워오시였다. 나라를 찾는 일이라면 한몸이 찢겨 가루가 되는것도 상관하지 않으시였다. 그러나 아직 조국의 하늘에는 망국의 암운이 가셔지지 못하였다. 슬픈것으로 말하면 아버님께서는 주먹으로 땅을 두드리며 통곡하셔야 할것이였다.

그러나 아버님께서는 실망하지 않고 온 겨레를 향해 하여야 할 말씀을 아드님에게 하고계시는것이였다.

《나는 내 대에 우리 나라를 광복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너의 대에는 꼭 나라를 찾아 독립을 이룩해야 한다. 하지만 또 어떤 불행에 의해서 네가 그것을 이루지 못한다면 너의 아들대에 가서라도 그것을 꼭 성취해야 한다. 나라없는 백성은 상가집 개만도 못하다는 말이 있다. 나는 네가 이 말을 명심하고 네 손으로 나라를 찾을것을 믿겠다.》

아버님의 얼굴에는 가슴을 에일듯이 절절한 빛이 그대로 어리여있었다. 조국광복을 이룩하지 못한 안타까움과 아드님에 대한 기대가 한데 어울린 복잡한 감정이였다.

《나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간다. 그러나 너희들을 믿는다. 너희들은 언제든지 나라와 민족의 몸이라는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뼈가 부서지고 몸이 쪼개지는 한이 있더라도 나라를 반드시 찾아야 한다. 조국에 가고싶구나. 조국이 독립되는 날 나를 대동강가에 묻어다오!》

아버님의 웅글은 음성이 방안을 울리는것과 동시에 무릎에 놓였던 그이의 손이 이불밑으로 끌려들어갔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아버님께서 움켜잡으신 그 뜨거운 손을 거쳐서 온몸에 미쳐오는 처절한 감정을 그대로 느끼시였다.

그이께서는 고개를 숙인채 입술을 깨무시였다. 때마침 석양빛이 창문으로 비쳐들었다. 초록이불이 유난히 밝은 빛으로 두드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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