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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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상에 좁쌀이 절반나마 섞인 밥에다 된장국과 찌개 그리고 버들치 구운것이 한접시 올랐다.
버들치가 색다른것이였다.
《별게 아니다. 물을 말아서 다 먹어라.》
이윽고 외면을 하신채 이렇게 말씀을 시작하신
《아이들두 어떻게나 형 생각을 하는지 내가 뭐라고 말을 못하겠다니까. 그 고기가 아마 한달은 실히 걸려서 잡았을거다.》
《한달이라구요?》
《그렇단다. 두 애가 형이 나다니면서 고생한다고 얼음이 녹은담부터 인차 낚시질을 했단다. 형이 오면 아무것도 내놓을게 없는데 물고기라두 잡아야겠다고 그러잖겠느냐. 그래서 한두마리씩 버들가지에 꿰여들고 들어왔는데 어떤 날은 나갔다 빈손으로 들어오기도 했지.… 그런 날은 어찌나 락심해있는지 내 속이 다 안됐더라니까. 그 애들두 짬이 없다보니 한 사날에 한번, 댓새에 한번 나가나마나했단다. 그런것이 아마 손가락만 한것까지 합쳐서 한 열댓마리 되는걸 말려두었던거란다. 어서 동생들 지성을 봐서라두 다 먹어라.》
동생들은 별로 다른 기색이 없이 물말이를 한 밥을 탐스럽게 떠먹고있다. 이미부터 동생들의 극진한 정을 느끼고계셨지만 날이 감에 따라 가슴을 저리게 하는 일이 더 자주 생기는것이였다.
《자! 기왕 너희들이 수고한것이니까 다 함께 먹자.》
《우린 그때그때 맛을 봤어요.》
《그래, 네 말이 옳다.》 하고 받으시는
상을 물리고 얼마 안 있어 뒤집 김정룡이 찾아왔다. 그는 오래전부터 이 지구의 열성적인 조직원이였다. 그 집이 좀 따로 떨어진 산기슭에 있어서 유격대조직을 위한 회의도 그 집에서 여러번 했고 통신련락소로도 쓴 일이 있었다.
그와는 서로 잘 알고있던 사이였으므로 허물없이 인사를 나누시였다. 30이 다된 김정룡은 침착하고 정열이 있으며 포부가 크고 아량이 있는 동지였다. 그는 그렇게도 바라던 반일인민유격대가 여기서 얼마 멀지않은 언덕에서 선포될 때 병으로 참가 못한것을 매우 유감이라고 하였다. 그리고나서 오늘 나무해오시는것을 보았는데 집을 잘 돌보아드리지 못해 큰죄를 진것 같다고 여간 미안해하지 않았다. 말이 그렇지 그도 공작임무가 바빠서 그럴 사이가 없는 사람이였다.
이야기는 옮겨져서 곧 유격대원호를 위한 앞으로의 사업을 토의하게 되였다. 몇마디 말을 주고받으시는중인데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동생이 나갔다오더니 어제 말씀드린 백선생님이 찾아왔다고 하였다.
김정룡이와의 담화는 뒤로 미루지 않을수 없으시였다. 김정룡이 인사를 하고 나가자 안경을 낀 사나이가 토방에 올라섰다.
《좀 뵈올수 있겠습니까?》
《어서 들어오십시오.》
《불의에 이렇게 찾아와서 매우 미안하게 되였습니다.》
백광명은 안경을 벗어들고 허리를 깊숙이 숙여 정중히 인사를 하였다. 자리에 앉게 되자 백광명은 자기소개와 함께 찾아온 경위를 말하였다.
백광명은 자기
자기소개를 대체로 끝내자 그는 창촌에서 철주동지를 만났고 그후에 여기에 찾아와 몇번 만난적이 있다고 하였다.
사실 백광명은 철주동지의 적극적인 영향에 의해서 차차 혁명의 편으로 기울기 시작한것이였다. 그러다가 뜻밖에 철주동지의 친형님이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하신 김일성동지이시라는것을 알고 그는 기어이 한번 만나뵈올 결심으로 200리가 넘는 이곳까지 한달에 한두번씩 찾아오군 하였던것이다.
《담배를 피워도 괜찮겠습니까?》
백광명은 속심을 털어놓아야 할 중요한 대목에 이르자 좀체로 입이 떨어지지 않아 주저주저하면서 주머니에서 마꼬갑을 꺼내였다.
《제가 철주네 형님을 이렇게 돌연히 찾아뵙게 된것은 다름이 아닙니다. 갈림길에 서서 방황하고있는 저를 옳게 인도해주시기를 바라서입니다. 성급히 용건을 두서없이 늘어놓아 안됐습니다만 저로서는 매우 중요하고 결정적인것이라고 보기때문입니다.》
《새삼스럽게 뭘 그러십니까? 대략 들어보아도 백선생님은 지금 옳바른 길로 가고계시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솔직히 말씀해주십시오. 이것은 한 인간에 대한 운명문제입니다. 저는 치명적인 답변을 받는 경우에도 그것이 확고하고 결정적이기를 원하는것입니다. 좀 자세히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이미 말씀드렸습니다만 저는 사람의 피땀을 착취해먹고 사는 부농의 자식입니다. 대학을 나왔습니다. 한데 저는 빼앗긴 조국을 위해 무엇인가 유익한 일을 하고싶어 어린것들을 모아놓고 글을 가르치고있습니다. 우리 나라 자모도 가르쳐주고 수자도 배워줍니다. 그러나 저의 처지는 유감스럽게도 인간의 넋, 직접적으로 말씀드리면 조선의 넋을 키워줄수는 도저히 없는 그런 인간이 아닙니까. 어째 그럴수 있는가고 반문하시겠지만 사실 저는 그렇습니다. 저의 흥분된 감정을 리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백광명은 말을 중단하고 몇번 기침을 하더니 수건으로 입을 닦고나서 계속하였다.
《저는 이 시각에도 나라고 할 때 즉 백광명이라 할 때 어느 나를 지적하는지 저
백광명은 안경을 벗어놓고 수건으로 이마의 식은땀을 닦았다. 관자노리에 파랗게 일어선 피줄이 신경질적으로 팔딱팔딱 뛰였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할만치 흥분을 일으킨것이다. 그러나 백광명
《저는 생각하기를 교원이라는 사람은 마땅히 후대들에게 넋을 배워주어야 한다고 봅니다. 더구나 나라를 빼앗긴 우리들의 경우에는 그것이 더 절박한 요구라고 생각합니다. 넋을 배워줄수 없는 교원, 그것은 심지가 없는 등잔, 뢰관이 없는 총알 같은것입니다. 아니, 차라리 위선자라고 해야 마땅할것입니다. 저는 그래도 여태 망국을 통탄했고 애국주의를 설교했으며 조선독립을 고창했습니다. 그러나 참된 넋을 상실한 애국주의, 독립, 조국 그것은 저를 한갖 시대착오를 일으킨 미치광이로 만들었을뿐입니다. 〈너는 부르죠아다.〉 첫째의 말이 옳습니다. 저는 부르죠아입니다. 〈너는 망국노다.〉 그것도 또한 옳습니다. 저는 부르죠아이며 망국노입니다. 이 두 백광명이가 매일 피투성이가 되여 결투를 하고있습니다. 이 시각에도 저의 가슴속에서는 서로 상용될수 없는 두 자아가 칼을 휘두르며 싸우고있습니다. 하나는 얼음덩이, 다른 하나는 불덩이. 그것이 제 가슴 한복판에 자리잡고있습니다. 불은 얼음을 녹이려 하고 얼음은 불을 끄려고 합니다. 이런 형편에서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가만 생각해보면 이런 무서운 모순을 안고 살아있다는 이자체가 모질고 허무하고 지어는 전률을 일으킬만치 무섭기까지 합니다.》
그는 자제력을 잃어버리고 때로는 그 누구를 향한것인지 알지 못할 저주와 규탄을 내리는가 하면 비애와 원한이 맺힌 탄식을 터뜨리기도 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것은 백광명 한사람에 대한 문제인것이 아니라 수다한 조선인테리들에 대한 문제라고 보시였다.
《백선생!》
《백선생의 말씀을 충분히 리해할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 복잡한 심경도 리해됩니다. 기로에서 헤매인다는 선생
김일성동지께서는 이와 류사한 문제를 안고 찾아왔던 수많은 얼굴들을 백광명의 희고 선량해보이는 얼굴우에 그려보면서 아직도 가냘프게 떨리고있는 백광명의 손을 잡고 앞으로 이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