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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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동지께서는 젊음이 되살아나신듯 생동한 빛이 넘쳐흐르는 어머님의 모습을 끝없는 존경심을 가지고 바라보시였다.

《참, 먼길을 오느라고 몸이 좀 고단하겠느냐, 어서 좀 누워라.》

어머님께서는 문득 눈길을 돌리시더니 베개를 더듬어 찾으시였다.

《괜찮습니다. 전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어머님께서 오히려 너무 오래 앉아계시는것 같습니다. 이젠 그만하고 누으시지요.》

《아니다. 나는 낮에도 잤지만 늘 누워있다보니 이렇게 앉아있는것이 쉬는것이나 같단다.》

어머님께서 베개를 밀어주시였다. 어머님에게 자꾸 걱정을 끼치실가봐 베개를 받아쥐려던 김일성동지께서는 손을 멈추시였다. 그이의 눈길이 베개를 밀어주시는 어머님의 손에 미쳤던것이다.

그것은 한순간의 일이였다. 어머님께서는 벌써 그 손으로 바늘을 잡고 한뜸한뜸 소매자락을 감치고계시였다.

그러나 김일성동지께서는 어머님의 손에서 눈길을 뗄수가 없으시였다. 마디가 굵고 거칠어지고 살이 빠진 어머님의 손-어린시절에 그이께서 보신 어머님의 손은 그렇지 않았다.

대동강가에 빨래하는데 따라나가면 돌아오실 때는 의례히 어머님께서 세면을 시켜주시였다. 그때의 손은 부드럽고 희였으며 물을 움켜도 새지 않던 그런 손이였다.

중강을 지나 무송에 이르렀을 때도 이렇게까지 손가락사이가 벌어지지는 않았다. 화전으로 떠나던 때 짐을 들어주시던 어머님의 손은 그래도 지금처럼 구불고 거칠지는 않았었다.

번연히 아는것이지만 그이의 가슴속에서는 어머님의 손이 왜 이렇게까지 되였는가 하는 강한 충격이 머리를 들었다.

완악한 세상의 가시덤불속에서 그 손으로 삶의 길, 싸움의 길을 헤쳐나가셔야 했던만큼 그럴수도 있다고 하겠지만 너무나 가슴아픈것이였다. 저 손으로 한평생 땅을 파고 돌을 주어내였으며 풀을 뜯으시였다. 빨래방망이가 수없이 닳아 끊어지고 바늘끝이 무디여졌다. 시장하실 때는 저 손으로 치마끈을 졸라매고 참으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등잔불에 마주앉으신 어머님의 모습과 그 손을 한참 바라보시다가 나직이 말씀하시였다.

어머님! 이젠 바느질을 그만하고 쉬셔야 하겠습니다. 너무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조국이 해방되면 따뜻한 바다가 어디에서 어머님들을 모두 쉬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

그렇게 되면 어머님의 손도 다시 부드러워질것이라고 그이께서 말씀하고싶으시였지만 그런 말이 오히려 어머님의 가슴을 더 괴롭힐것만 같아 말끝을 여밀수가 없으시였다. 차마 맺지 못하시는 그 말마디가 그대로 가슴에 맺히는듯 그이의 눈굽에는 금시 핑하니 물기가 어리였다. 어머님께서는 바느질손을 멈추고 아드님을 바라보시였다. 어머님께서도 짚이는것이 있었다. 속이 편치 않아 며칠동안 수저를 들지 못하시다가 오래간만에 온 아드님앞에서까지 끼를 건늘수 없어 억지로 몇술 뜨신것이 내려가지 않았다.

아드님이 그런 기미를 채신것만 같아 조심스러우시였다. 어머님께서는 되도록 명랑해지려고 애쓰시면서 일감을 거두시였다.

《이젠 그 병이야길랑 그만하구 무슨 기운나는 얘기를 좀 하여라. 그래 유격대가 이번에 떠나가면 언제쯤 돌아올것 같으냐?》

《아무래도 한해 잘 걸릴것 같습니다.》

《혹시 지나가는 길에라도 량선생을 만날수 있다면 안부나 전하여라.》

량선생이란 독립군두령인 량세봉을 이르는 말이다.

《지금 예정은 독립군들과도 만나볼 생각입니다. 량선생은 꼭 만나겠습니다.》

《들릴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것이 좋겠다. 아버님께서도 량선생에 대해 자주 말씀하셨더랬기에 하는 말이다.》

《독립군과 손을 잡기로 우리가 방침을 세웠습니다.》

《하기야 독립군들가운데도 좋은 사람들이 있지. 저번날 내가 한 50리 떨어진 곳에 볼 일이 있어 갔더니만 마침 거기에 머리가 텁수룩한 사람이 강연을 한다기에 가본 일이 있다. 무슨 <공산당재건파>라든가 뭐라든가 하는 사람인데 그 <주의자머리>를 휘둘러대면서 냅다 연설을 하는것이 아무거나 다 후려갈기는 식이더라. 독립군은 죄다 낡아빠진 보습과 같은것이니 도가니에 깨뜨려 넣어서 녹여버려야 한다면서 주먹을 휘두르지 않겠니. 그러니 앉았던 사람들이 슬금슬금 일어나 가버리더라. 왜 안 그렇겠느냐. 그 사람들가운데 독립군 하던 사람도 많고 그 자제들도 많을터인데.》

《일제가 바로 그러기를 바라지요. 조선사람끼리 뭉치지 못하게 말입니다.》

《공산주의를 한다는 사람들이 단결이 무엇인지 모르니 한심하지, 참…》

《조선의 공산주의운동은 그런 종파쟁이들이 다 말아먹어놔서 우리들이 생판 시작하게 되니까 힘이 갑절이나 더 듭니다.》

《옳은 말이다.》

이야기는 가지를 뻗고 덩굴을 올리여서 두분께서 다 밤가는줄을 모르시였다. 어머님께서는 손에 쥐였던 일감을 다 치우자 벽에 걸린 그이의 옷을 내려서 손질할것이 없는가 보시다가 매듭이 늦추어져서 단추가 건들거리는것을 발견하시였다.

《단추가 떨어지게 됐구나.》

《얼마전에 전투를 했습니다. 아마 그때 늘어난 모양입니다.》

《전투를 하다니?》

그이께서는 마차수송대를 매복습격하던 이야기를 하시였다.

일손을 멈추고 전투이야기를 듣고나신 어머님께서는 활짝 밝아진 얼굴로 만족하게 웃으시였다.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유격대를 확대강화할 문제 그리고 녀성혁명가들이 해야 할 당면한 과업들에 대한 문제, 또는 일제가 중국을 침략하고있는데 그것이 앞으로 어떻게 결말을 짓게 되리라는것 같은 문제들을 두고 이야기들을 나누시였다. 단추이야기로부터 유럽에 전쟁의 인화점이 생겨나고있다는 문제로 넓혀지기도 하고 아직도 잠을 깨지 못하여 제국주의자들이 저마끔 란도질을 해 뜯어내고있는 광대한 아프리카대륙에서도 미구에는 노한 사자처럼 침략자들을 반대해 일어날 시기가 오리라는 예언에로 번져가고 그것이 다시 만경대고향집은 지금쯤 어떻게 지내고있는지 모르겠다는 사사로운 일로 돌아오기도 하였다.

이야기는 먼 과거로 거슬러오르기도 하고 또 아득한 미래에로 내닫기도 하였다. 독립된 사회주의조국의 미래, 그것은 실로 희망에 넘치는것이였다. 생각만 하여도 가슴이 넓어지고 온갖 시름이 잊어지신다. 압박과 착취가 없다. 누구나 배울수 있고 일할수 있으며 휴식하는것이 또한 의무로 된다. 병나면 무상으로 치료받을수 있고 로인들이 제일 큰 존경을 받으며 어린것들에게 가장 좋은것들이 차례지게 된다. 어머님께서는 바로 이런 이야기를 벌써 오래전에 만경대에서 김형직선생님으로부터 들으신적이 있었다.

모자간에 주고받는 이야긴 호수에 일으킨 잔잔한 파문마냥 희로애락을 엇바꿔가면서 끝없이 물결쳐나갔다. 그러나 기쁨과 슬픔이 얽혀든 무수한 이야기를 나누시면서도 서로 조심스럽게 피하는 모퉁이가 있었으니 그것은 지금 서울에서 옥중고초를 겪고계시는 두 삼촌, 김형권선생과 강진석선생에 대한 이야기였다.

실상 더 많이 이야기하고싶은것이 그것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아픈 마음을 건드리지 말자는 심정들이 그 계선까지 가기를 두려워하고있는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두 삼촌의 소식을 알기 위해 그동안 많은 애를 쓰시였다. 공판결과를 알아보려고 신문을 구해 읽기도 하셨고 인편으로 소식을 묻기도 하시였다. 15년형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 계시는 외삼촌 강진석선생님께서는 벌써 해수로 12년째 잡아들지만 여전히 옥중에서도 투쟁을 계속하고계시였다. 그러다가 요즘에 와서는 몸이 너무 쇠약해져서 잘 일지도 못하신다는 말이 있었다.

김형권선생님께서는 동행한 혁명군대원들과 함께 최종판결 15년형을 받으시였다. 어머님께서도 손수 사방으로 줄을 놓아 비슷한 정도의 소식을 알고계시였다.

첫닭이 울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어머님과 철주동생의 일을 가지고 말씀을 나누시였다. 어머님께서는 웃으시며 말씀하시였다.

《막내가 내게 귀뜀을 해주는데 철주가 이제 유격대를 크게 무어가지고 형을 찾아갈 작정이라더라.》

《철주는 꼭 그렇게 할겁니다. 한번 결심하면 그대로 하는 성미니까요.》

《저번날 금창에서 간 로동자들을 만났겠지?》

《네. 만났습니다. 안도중대에다 넣었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지나간 나날들을 더듬으시듯 아드님의 얼굴을 이윽히 바라보시다가 조용히 말씀을 이으시였다.

《하긴 철주도 열성이야 하늘에 꾹 닿아있지.》

밤이 깊어 별빛마저 깜박깜박 조을고있었다. 꽃밭에서 풀벌레가 요란하게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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