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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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치는 법>이 솜뭉테기처럼 되였습니다. 어머님!》

저녁상을 물린 후 어머님과 마주앉으신 그이께서는 말씀을 건늬시였다. 철주동생은 문건을 전달할것이 있다며 나가고 막내동생은 먼길을 갔다와서 고단한지 밥술을 들고있을 때부터 잠이 잔뜩 실린 눈을 연신 슴뻑거리더니 형의 무릎에 매달려 졸았다.

《그게 아마 길림에서 소포로 보내온것이니까 해수로 다섯해짼가 되는구나. 그동안에 숱한 사람들이 읽었다. 아낙네들도 많이 읽었구. 빙빙 돌아서 건너마을에 가있는걸 저 애가 읽겠다고 기어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그 책가위는 전번에 철주가 해씌우는것 같더라.》

어머님께서는 피곤을 잊고 아드님의 속옷을 기우면서 말씀을 이어나가시였다.

《난 늘 생각한다만 그 소설이 끝이 좀 허전하더라. 그렇지만 좋은 책이지. 읽으면 힘이 생기고 또 가까운 이웃을 하나 사귄것만 같고… 난 주정뱅이남편한테 옴짝 못하던 그 늙은이와 종종 이야기를 주고받고한단다. 그 늙은이는 자주 눈물을 흘리지만 실상은 약해서 그런건 아니지.》

어머님께서는 바늘에 실을 다시 꿰려고 끝을 비비시다가 생각에 잠긴듯 고개를 드시였다. 소설의 주인공과 이야기를 나누신다는 어머님의 깊은 심정이 또다시 가슴을 허비여주는것만 같으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어머님의 그윽한 눈길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소설의 뒤부분이 허전하시다는건 무송에 계실 때도 말씀하셨지요. 투쟁을 더 계속하는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시니 그런 생각이 더 드실것입니다.》

《난 그때생각은 벌써 다 잊었다. 내 생각이래야 별게 있겠느냐. 그 늙은이가 끝에 가서 잡히고말것이 아니라 좀더 싸우는걸 봤으면 해서 그러지.》

《그 말씀이 옳습니다. 아마 그때엔 작가가 그렇게밖에 쓸수 없었던 여러가지 사정이 있은거 같습니다. 그때 어머니들의 형편도 그렇고 작가자신의 생각도 그렇고 벌써 30년가까이나 된 이야기니까 그럴수밖에 없지요. 사실은 어머님말씀대로 뒤에 싸우는 이야기가 더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그런걸 보여주자면 또 한권의 책을 써야 할것입니다.》

《그런거야 이제 어떻게 바랄수 있겠느냐. 하긴 그 작가가 아직 살아있다면서?》

어머님 참 모르시는것이 없으십니다. 그건 또 어떻게 아십니까?》

《귀가 보배라는것이 그래두고 하는 말이 아니냐. 지난 초봄에 차광수가 와서 그렇게 말하더구나.》

어머님께서는 한뜸한뜸 속옷의 따진 소매를 감쳐나가면서 차광수 앓던 이야기를 하시였다. 어머님께서는 언제나 차광수를 칭찬하시였다. 인사성이 밝고 언제나 단정하고 나이에 비해서는 어울리지 않으리만큼 인정이 있다고 하시였다. 그러다가 정신을 잃고 앓으면서 어린애들처럼 《아이구 어머니, 어머니》하며 앓음소리를 치더라고 흉내를 내시였다.

어머님께서 웃으시는 바람에 그이께서도 따라웃으시였다.

《난 그 사람 생각을 하면 지금도 속이 알알하다. 그렇게 된고비를 겪었는데 몸이 온전히 추서지도 못한것을 그냥 떠나보내놓고보니 내가 못할짓을 한것만 같아 마음이 놓이지 않더라. 저 애가 벌써 잠들었구나. 얘, 어서 자리 펴고 누워라. 그러고있으니 형이 힘들겠다.》

형의 무릎을 베고 이야기를 듣고있던 동생은 어느새 포르르 잠들고 말았다.

《그냥 둬두십시오. 푹 잠든 다음에 눕히지요.》

그이께서는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차동무는 늘 어머니 병환을 걱정하고있습니다. 이번에도 같이 오려고 했지만 일이 그렇게 되지 않아 오지 못했습니다. 먼데까지 따라나오며 안부를 전해달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인정이 끔찍하지. 지난달 보름께 그 사람이 또 약을 인편에 보냈더라.》

《약을 보냈다구요?》

그이께서는 전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자기에게는 그런 눈치도 채지 못하게 하는 차광수의 웅숭깊은 심정이 눈물이 날만큼 고맙게 생각되시였다.

《그래, 참 약이야기를 하니 생각이 나는구나. 그새 세군데서 소포를 보내왔는데 모두 약을 보내왔다. 이름을 봐야 난 누가 누군지 짐작이 가지 않아서 편지도 못하고있단다.》

《다 가명을 쓰니까 어머님께서 아시기 어려울것입니다.》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으시던 그이의 손길은 천천히 한자리에 멎었다. 굳은 맹세를 나누고 설한풍 사나운 밤길에 헤여졌던 전우들의 모습이 하나하나 그려지셨다. 드넓은 광야에 뿔뿔이 떨어져있어도 언제나 한피줄에 이어진듯 사상과 정이 통하는 옛전우들이 그리우시였다.

《그런데 카륜회의에서 내놓은 로선을 해설한 소책자를 몇부 더 구했으면 좋겠는데 무슨 방법이 없겠느냐?》

밤이 깊어서 어머님께서는 등잔에 기름을 따라넣으며 물으시였다.

《이제 유격대에다 출판부를 내오겠습니다.》

《그땐 그때구 당장 그게 없어 애를 먹고있단다. 조직에 받아야 할 부녀회원들에게 한번씩은 다 읽혀야겠는데 워낙 몇책 안되니까 너무 더디여서 세월이 없구나. 그러니 별수없이 둘러앉아 몇장씩 베껴내기라도 해야 할것 같다.》

어머님께서는 실을 물어 끊으시고나서 이번에는 단추를 집어드시였다.

《유격대가 나왔으니 녀성들의 할 일이 부쩍 늘었는데 모든 일이 맘대로 되지 않아 걱정이다. 군복두 지어보내구 또 군대에 나간 남정들을 대신해서 집의 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 이젠 녀성들도 크게 한걸음 앞을 내디딘셈이지. 여태까지야 고작 문맹을 퇴치한다, 조혼, 매혼을 반대한다, 미신을 타파한다 하는 정도였지만 이젠 우리 녀성들도 혁명에서 버젓하게 한몫을 감당해나선셈이니까.》

어머님께서는 대견한 생각에 잠시 고개를 들어 먼 허공을 쳐다보시였다. 그렇게 고난에 찬 생활속에서도 언제나 미래를 내다보며 크나큰 희망과 포부를 안고 억세게 살아가시는 어머님이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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