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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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점골 맨 막바지에 귀틀집이 세채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산턱에 바투 들어앉은것이 김정룡이네 집이였다. 마당에는 백양나무가 한그루 쑥 솟았고 그 초리 한끝에 까치둥지가 하나 위태롭게 얹혀있었다. 나무밑에는 짚신을 신은 두명의 아이들이 제기차기를 하고있었고 한 아이는 백양나무 중간에 기여올라 이따금씩 먼데를 내다보면서 자치기감을 꺾느라고 칼질을 하고있었다.
뒤산으로는 흰 머리수건을 쓰고 허리를 잘라맨 녀인 하나가 나물바구니를 들고 귀틀집을 향해 급히 내려오고있다.
나무꼭대기에 매달렸던 아이가 까치둥지를 쳐다보는척 하면서 《깍깍, 깍깍.》하고 소리를 내자 걸음을 멈추었던 녀인이 수건을 벗어 허리에
찌르고 재빨리 귀틀집 울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부엌문이 열리더니 중년이 된 김정룡의 안해가 나와 그 녀인을 맞아들이였다. 방안과 통하는
사이문이 열리자
《수고했소.》
우선 몸이 어떤가, 별일은 없었는가를 일일이 물으신 후에
《정말 수고하셨소. 일이 잘돼 그런지 얼굴색도 매우 좋은것 같군, 하기야 무척 고생을 했겠지만.》
그러자 이제까지 쳐다보고만 있던 녀인들이 일제히 자세를 흐트리면서 손을 내밀어 련락원의 팔을 잡아보기도하고 혹은 고개를 숙여 인사도 하였다.
《금옥이, 수고했어요.》
《글쎄 여기 와서까지 야산으로 올건 뭐야. 옷이 말이 아니예요. 손도 저렇게 긁히구.》
《구운 게도 비끄러매놓고 먹을 성민걸 뭐.》
《시장하겠는데 내가 이러고만 있군.》
금옥이는 봄바람에 감실감실하니 탄 얼굴을 들었다가는 곧 숙여버리면서 동무들의 위로에 송구해서 어쩔줄 모르고있다.
《건넌간에 나가서 다리쉬임을 좀 하라구. 우린 하던 일의 말미를 지어야겠으니까, 어서.》
방안은 다시 정숙한 분위기로 돌아왔다.
《하던 이야기를 더 계속합시다.》
《이자까지 말한것으로써 지금 우리 녀성운동의 형편을 대략 알게 되였을줄 믿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놓고 잠간 말해보겠습니다.》
분위기는 긴장되였다. 빛나는 시선들이
《이제부터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우리 유격대를 어떻게 하면 더 잘 돕겠는가 하는것부터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물론 우리가 야학도 계속하고 미신도 타파하고 조혼, 매혼도 반대하고 봉건에 얽매인 이런저런것을 풀기 위해서도 일을 더 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 모든것은 반드시 부채살이 하나의 사북에 모여들듯이 유격대를 돕는 일에 쏠리게 해야 합니다. 그럼 우선 무엇부터 해야 할가요? 내가 동무들에게 첫째로 호소하고싶은것은 우리 젊은 녀성들이 유격대에 많이 들어가 총을 메야 한다는것입니다. 원래 녀성해방운동이란 마땅히 인간으로서, 어머니로서 또 로동자, 농민으로서 자기들이 차지해야 할 권리를 주장하며 그것을 위해 투쟁하는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나라를 왜놈들에게 빼앗겼고 지주, 자본가들의 억압착취밑에서 신음하고있으며 우리의 부모들, 어린것들이 무참히 학살당하고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우리 조선녀성은 먼저 일제를 때려엎고 조국을 찾는 성스러운 싸움에 남자들과 같이 떨쳐나서야 하는것입니다. 우리는 그 어떤 나라에서 하고있는것처럼 남녀평등권을 찾기 위해 기발을 들고 밀려다니면서 선거권을 내라, 국회의석에도 자리가 있어야겠다, 녀성을 천시하는 나쁜 버릇을 없애라, 이렇게 하고있을수 없습니다. 총을 든 원쑤를 총을 들어 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 멸망하고맙니다. 윤숙이도 아까 말했지만 큰골에서는 우리 어머니, 우리 어린것들, 우리 젊은이들의 피가 땅에 흐르고있다지 않습니까. 이런 형편인데 우리 녀성들이 어찌 가만있을수 있겠습니까. 어제 어느 동무가 말했지만 녀성이 어떻게 총을 메고 군대를 하느냐고 한다는데 그들을 우리가 하나하나 일깨워 눈을 띄워주어야 하겠습니다. 여기 안마을에 민지주집 아이보개 영숙이라는 처녀가 있었습니다. 내가 여기 와서부터 알게 되였는데 지난 겨울에 그 애를 만났습니다. 아버지가 철도공사장에서 왜놈한테 매를 맞아죽고 어머니는 아이를 낳고 굶어죽었다는 그의 과거를 말하면서 아버지, 어머니의 원쑤를 갚기 위해 싸울 생각이 없느냐고 했더니 대번에 자기도 원쑤를 치는 싸움에 나서겠다고 하는것이였어요. 영숙이는 지금 혁명조직의 한 성원이 되여 잘 싸우고있어요. 우리는 단술에 배를 불리려 하지 말고 꾸준히 힘을 써야 합니다. 오늘은 한둘의 녀성이, 래일은 또 열, 스물의 녀성이, 또 그다음에는 백, 천의 녀성이 혁명에 참가하여 우리 전체 녀성을 다 혁명가로 키워나가야 합니다. 그러는 한편 우리 녀성들이 할 일은 유격대를 원호하는것입니다. 먹을것, 입을것을 우리가 대야 합니다. 이것도 또한 총을 메는것만 못지 않는 큰일입니다. 이제 유격근거지를 내오게 됩니다.…》
《깍깍, 깍깍.》
나무꼭대기에서 신호가 왔다.
《누가 또 왔구만. 복실이, 좀 나가보지.》
말씀을 중단하신
최초부터 제기하셨지만
《도중에 고생을 많이 했겠구만?》
《별일 없었습니다.》
《그럴리 있나. 지난 초봄에 연길서 오던 청년들 일흔명이 우사령부대에 붙잡혀 혼이 났다는데. 그래 조반들은 어디서들 자셨소?》
《넘은켠마을에서 먹었습니다.》
《여럿이 길을 떠났으니 한끼 먹기가 여간 큰일이 아니겠는데.》
청년이 복실의 안내로 뒤마을로 들어가자
한 30분 지났을 때 봉애아주머니가 놋대접을 수건에 받쳐들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얘야, 떨어질라! 거긴 왜 올라갔느냐?》
까닭을 알리 없었던 봉애아주머니는 걸음을 멈추고 잎이 파랗게 피기 시작한 백양나무를 올려다보며 고함을 질렀다.
《까치가 알을 낳았어요.》
볼우물을 그린 사내애의 붉은 얼굴이 나무잎새로 내려다보고있다.
《지금 어느때라고 벌써 알을 낳아,
대답은 들으나마나라는듯이 봉애아주머니는 대접에 담긴 약을 쏟칠가봐 조심스럽게 마당으로 들어서며 혼자소리를 하였다.
《몸은 돌보시지 않고 밤낮이 따로없이 일을 하시지, 약도 제때에 잡수려 안하시지, 어떻게 병을 고쳐 몸을 추세운담.…》
부엌에서 정룡의 안해가 나와 입에 손을 대보이며
《말씀도 글쎄 기운이 있어야 할거 아니요. 어서 약을 들여보내시오. 난 그 약을 잡숫는걸 보구야 가겠소.》
봉애아주머니가 부엌문안에 그러고 서있노라니
《총을 들고 싸우지 않는다면 나라를 찾을수도 없고 따라서 우리 녀성들이 해방될수도 없습니다. 아버지와 오빠를 잃은 우리들이며 동생들과 자기 자식을 빼앗긴 우리들이 아닙니까. 총을 들고 싸움에 나서야 합니다.…》
시간이 감에 따라 봉애아주머니는 방안에 정신이 끌리여 가슴에 두주먹을 모아붙이고 입술을 깨물었다. 잠자리에 누우면 노상 앓음소리를 하시는
낮이 지나서 해가 퍼그나 서쪽으로 기울어졌을 때 마당으로 어떤 녀인 하나가 급히 걸어들어왔다. 포대기에 싼 애기를 업었고 신발에는 붉은 진흙이 게발려있는것으로 보아 어딘가 멀리서 오는것이 틀림없었다.
《
다짜고짜로 방문을 열어제끼며 방안에 들어선다.
방안사람들의 주의가 일제히 문켠으로 쏠리는데 애기어머니는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목메인 소리로 부르짖었다.
《어머니! 옥심이가 죽었어요. 왜놈들한테 붙잡혀…》
옥심은 왕청지구에 련락을 갔던 통신원이였다. 애기어머니가 친정집에 갔다가 거리복판 전보대에 매달린 그를 보았던것이다.
사연을 들으신
이윽고
《눈물들을 거두시오. 우리가 울고앉았기에는 너무나 기막힌 일이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