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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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님께서 어제밤 연설을 끝내신것은 2시나 되여서였다.

군중들이 헤여지게 되였을 때 김일성동지께서는 동구밖까지 늙은이들을 배웅해주며 일일이 잘 가시라고 인사를 하시였다.

그때 등너머 범바위골아주머니가 장군님을 가까이에서 뵙게 되였다. 애기어머니는 처음에 하도 신기해서 자기 눈을 의심하였다. 그러나 틀림없이 푸르허 친정집에서 뵈온분이였다.

《아이구, 저분께서 바로… 이 일을 어쩌나…》

아주머니는 놀란 나머지 얼결에 소리쳤는데 그것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였다. 참하면서도 개방적인 그 아주머니는 본대로 이야기를 하였다. 푸르허 친정집에 몸풀 달이 되여 갔다는것과 우물길이 미끄러워 고생할 때 그이께서 얼음까지 까주셨다고 하였다.

작대기길이와 키가 비슷한 때로부터 머슴을 살아온 박흥덕은 그 말을 듣고 놀라기도 하였지만 한편 그는 사령관동지를 자기들과 혈연이라도 있는것 같은 친근감을 더 느끼였다.

그래 설마 그럴리 있는가고 부정은 하면서도 어쩐지 그 일에 마음이 끌리게 되였다. 소대의 식사준비를 다 돌아보고 오는 길에 그는 느티나무밑을 지나게 되였다. 청년들이 한 십여명 나무밑에 둘러서서 떠들어대고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한가운데 키가 커다란 유격대원이 어색하게 서있었다. 최칠성이였다.

얼굴이 벌개진 최칠성은 어쩔바를 모르고 좌우를 둘러보기만 한다.

《그것을 꼭 알아야 한다면 그게 어디 있는지 말해줘야 할것이 아닙니까?》

《어디 있긴 어디 있어? 이 동무가 가지고있을터인데.…》

《여보시오, <공산당선언>말구 또 알아야 할건 뭡니까?》

《군복은 어떻게 합니까? 제 집에서 해입어야 합니까? 유격대에서 줍니까?》

《자, 이 친구, 떡 줄 사람은 꿈두 안 꾸는데 김치국부터 마시는 격이군. 받아주기만 한다면 군복이야 어떻게든 될거 아닌가.》

《이봐, 유격대란 군대 아닌가. 군대는 우선 군복과 총이 있구봐야 하는거야. 그것도 똑똑히 모르고 유격대원이 되겠다구 그러나?》

《하긴 총이 난사야. 그래 총은 어떻게 합니까?》

최칠성은 점점 더 딱한 모퉁이로 몰려들어갔다.

소사하에서 박흥덕을 만난 뒤에 작은데기 통신처에서 기다리다가 사흘전에 입대한 그는 너무 기분이 좋아 화승대를 걸머메고 마을을 돌아보다가 청년들에게 붙잡혔던것이다.

최칠성은 이것도 저것도 다 모른다고 하였지만 유격대원이 어째서 그런것을 모를리 있는가고 하면서 자꾸만 따지고들었다. 순진한 그는 진정으로 모르기때문에 그런다고 사정을 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청년들의 구미를 부쩍 더 동하게 만들어놓았다.

막다른 골목까지 몰려들어간 최칠성은 하는수없이 그전날 바위등에 앉아 박흥덕이가 하던 말을 상기해내였다. 그리하여 어찌어찌 번져나가다가 《공산당선언》 이야기가 나왔고 드디여는 입대청원자들의 고문격이 되여 부풀어날대로 부풀어난 청년들의 끝없는 호기심앞에 벌거숭이나 다름없는 순진한 가슴을 드러내놓고 서서 쩔쩔매게 된것이다. 최칠성의 목덜미에는 땀이 내배였고 두드러진 관자뼈는 시물시물 떨렸다. 한 반쯤 벌려진 입에서는 무슨 말이 나올듯나올듯 하면서 종시 나오지 못했다. 청년들은 숨을 죽이고 그의 입이 다시 벌어지기를 기다리고있다.

마침내 최칠성은 울대뼈가 꿀꺽 울리게 군침을 한덩어리 크게 삼키고나서 한마디 하였다.

《유격대에 들어가자면 공부도 많이 하고 혁명두 잘해야 한다오.》

천만신고끝에 가까스로 한마디 던지자마자 청년들은 또 왁작 떠들어 대였다.

《아니, 무슨 공불 해야 한다는것이 있을거 아닙니까? 난 야학에 나가는데요.》

《야학에 다닌다고 유격대에 받아준다면 유격대에 못 갈 사람이 세상에 없겠다. 그걸 다 말이라구 하나?》

《유격대가 뭐 대학인줄 아나? 공부 못했어두 왜놈 잡을 각오가 있으면 된단 말이야.》

《저 친구가 유격대보담 더 잘 아는데… 흐흐흐.》

와그르르 웃음이 터졌다. 모두 스무살안팎인데 무쇠통같이 단단한 팔다리를 가졌고 얼굴들이 구리빛이였다. 두리번거리던 최칠성은 자기가 이야기의 대상이라는것은 가뭇 잊어버리고 자기도 그들처럼 누구를 찾아와 묻고있는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그때 박흥덕이가 어깨너머로 얼굴을 쑥 내밀며 거쉰 소리를 내였다.

《여기서 왜 떠들고들 있소?》

일제히 뒤로 고개를 돌리였다.

박흥덕을 알아본 최칠성은 너무 반가와 어쩔줄을 몰랐다. 두툼한 입술을 벙글써하니 열고 손바닥으로 이마를 문대였다.

《한증이라도 한탕 한것 같구만, 최동무!》

《난 모르겠수다. 이 동무들을 맡으시오.》

최칠성은 화승대를 훌쩍 둘러메더니 군모를 고쳐쓰고 달아나듯이 다리우로 바삐 걸어나갔다. 뒤에서 박흥덕의 익살맞은 말소리가 따라왔지만 그는 모르는척 하였다.

《친구들, 저 대원을 붙잡고 조르면 될건데 왜 나더러 그러우? 여! 최칠성동무, 어디루 내빼?》

그러거나말거나 최칠성은 군복단추를 터놓고 손으로 훌쩍훌쩍 바람을 부치면서 개울가로 걸어올라갔다.

사실 저로서도 놀랄만치 엉큼한 소리를 해버린것이다.

《<공산당선언>을 봤는가?》

그 짤막한 한마디 말이 얼마나 자기를 아뜩하게 만들었던가?

그래서 부지불식간에 툭 튀여나갔는지도 모른다. 최칠성은 마치 무엇을 훔치다가 들킨 사람처럼 마음이 괴롭고 창피하였다.

밭뚝을 돌아나가는데 저쪽에서 자주빛저고리에 깜장치마를 입은 젊은 녀자가 걸어왔다. 최칠성은 흠칫 놀라며 걸음을 멈추었다.

아직 처녀티를 채 가시지 못한 그 녀자는 나물바구니를 안고 고개를 소곳하고 옆을 지나갔다. 얼굴이 화끈해진 최칠성은 어쩌면 그리도 비슷할가 생각하였다. 그는 결혼한지 한해밖에 안되는 바로 그런 안해를 집에 두고 온것이였다. 그는 이래저래 열적어진 감정을 못이겨 길바닥의 돌을 공연히 툭툭 차굴리면서 숙소로 들어갔다.

청년들은 한참 웃기고난 박흥덕은 같이 가서 참모장에게 청을 들여보자면서 그들을 일렬종대로 렬을 세우고 《앞으로 갓!》해서 중대부가 자리잡은 마당으로 들어섰다. 그는 차광수에게 그들을 넘겨주었다. 때마침 차광수는 박흥덕을 만나러 갈 작정이였는데 잘되였다고 하면서 마을청년들을 전광식에게 보내고 그를 방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차광수는 사령관동지께서 백두산과 압록강지구의 진출로정을 말씀하셨다고 하면서 군수관으로서 후방공급에 참고할 점을 몇가지 이야기하였다. 원래 성미가 깐깐한 차광수는 이것저것 많이 말했지만 박흥덕은 압록강상류에서 통화로 그리고 북쪽으로 에돌아 제자리로 돌아오는 하나의 커다란 원이 머리속에 그려졌을뿐이였다.

어깨가 무죽해서 숙소로 돌아온 박흥덕은 방안에 둥글소반을 올려다놓고 수첩을 꺼내 문서질을 하기 시작하였다. 무지러진 꽁다리연필을 혀끝에 꾹 찍어서 종이장우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몇자씩 긁적긁적하군 하였다. 아홉살나던 해 겨울에 서당에 가서 천자를 떼고 무제시를 읽다가 그만둔 그는 원체 글재주가 없는데다가 붓을 들어본지가 너무 오래되여 글 댓자만 적으면 수첩장 한옆이 꽉 차군하였다. 수첩장 한복판에서 백두산이라는것을 삼각으로 큼직이 하나 그려놓고 그 량쪽으로 압록강과 두만강을 갈라 쭉 그었다. 그리고는 중요지점들을 동그라미로 표시하였다. 백두산줄기의 깊숙한 골짜기를 꿰지르고 중강쪽을 향해 쑥 빠지면서 압록강을 끼고 근 천리나 나가야 하였다. 박흥덕은 흥이 났다. 그는 손가락으로 상우에다 도드락도드락 장단을 치기도 하고 코노래도 불러가면서 부대의 몇달앞 살림을 재보는것이였다.

《야! 굉장하구나.》

이윽해서 그는 콩마당을 그린것 같은 수첩을 내들고 감탄을 하다가 마당으로 나왔다. 노을이 비낀 하늘에 수리개가 떠서 원을 그리고있었다. 그는 자기를 그 수리개에 비교해보았다. 1년동안의 통신처생활이란 얼마나 단조롭고 갑갑하였던가? 헌데 수천리를 가로세로 달리게 되고 혹시 백두산에도 오를지 모른다. 사나이가 한평생 목숨을 내대고 해볼만 한 일이다. 그는 입대하기 위해 차광수에게 두번세번 퇴맞으면서도 그냥 졸라댄것이 얼마나 잘한 일인가 생각되였다. 사령관동지께서 말씀하신대로 이제 광대한 지역에다가 혁명의 씨앗을 뿌리게 될것이다. 산도, 들도, 숲도 그리고 험난한 길도, 낯선 마을과 처음 보는 사람들, 그 모든것이 얼마나 인상깊은 생활들을 보여줄것인가. 기분이 한껏 좋아진 박흥덕은 뒤짐을 지고 마당을 느릿느릿 거닐다가 문득 붉은 기발을 만들라던 일이 생각나서 수첩을 주머니에 찌르고 칠성이네가 든 집쪽으로 강냉이밭을 에돌아 재우리를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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