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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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얼마간 흘렀지만 하라는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했다. 긴장이 풀리자 맥이 더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있었다. 이제부터 자기가 어떻게 처신해야 할것인가를 생각하는것이다. 그러다가 그는 고개를 들고 입을 열었다.

《저를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는 누구에 의해서 이러한 처지에 놓이게 되였고 또 어떻게 관대한 처분을 받게 되는지 알고싶습니다.》

《그렇소? 하긴 그럴수도 있겠지. 너는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기 위한 조선공산주의자들의 무장부대인 반일인민유격대에 의해 체포되였다가 놓여나게 되였다.》

하라는 흠칫 놀라서 한번 머리를 쳐들었다가 다시 천천히 떨구었다.

《그렇습니까. 잘 알았습니다. 골수에 새겨넣고 잊지 않겠습니다.》

꺼져들어가는듯 한 목소리로 이렇게 중얼거린 하라는 무겁게 매달린 안경에 의해 몸의 균형을 잃은것처럼 앞으로 숙일사하고 앉아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본사에서 심양특파원이 보낸 반일인민유격대에 대한 전보를 보기도 했고 이번 길에 그와 관련한 어떤 특종기사를 하나 쓸수 없을가 하고 기대한것도 사실이였지만 이렇게 면바로 맞부딪칠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었다. 그런것만큼 그의 충격은 엄청난것이였다. 그는 다시한번 몸을 떨었다. 하지만 그 전률속에서 직업의식이 강하게 머리를 들었다.

《반일인민유격대가 일본제국을 타도하기 위한 무장부대란 말씀입니까?》

《그래 잘 믿어지지 않는가?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요.》

《일본제국이 조선에서 쫓겨난다는것을 믿어도 괜찮겠습니까?》

《믿고 안믿는것은 각자의 자유요. 하지만 두고보면 알겠지만 틀림없이 그렇게 될것이요.》

하라에게 있어서 이것은 이미 상상을 초월하는 개념이였다. 그가 처음 유격대에 대한 이야기를 얻어들었을 때도 문제를 이렇게까지 근본적으로 세워보지 못했었다.

한참동안 고개를 떨구고 생각에 잠기였던 하라는 이밤에 일어난 모든것을 아무리 믿을래야 믿을수가 없었다. 조선인무장부대에 의해 관동군의 전투물자를 운반하던 수송대가 기습을 당했다는것도 그렇지만 일본이 조선공산주의자들에 의해 패망당하고 조선에서 쫓겨나야 한다는 그 엄청난 예언을 어떻게 믿을수 있겠는가?

《매우 황송합니다만 한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사전에 량해를 구합니다만 저의 질문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량심적이며 직업적인것입니다. 반일인민유격대가 어떻게 일본제국을 타도할수 있는지 알고싶습니다. 혹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대부대라도 어디에 준비되였는지요? 준비되였다면 지금 공개할수 있는 병력수는 몇개 사단쯤으로 보면 되겠는지요? 가령 십여개의 사단이 있다고 본다면 그의 무장이나 보급은 어떤 방법으로 이루어지는지요? 한마디로 말씀드려서 어떤 승산을 예견하실수 있는지 알고싶습니다. 미안합니다.》

《그거 참 기자다운 물음이요. 보매 당신은 모든것이 믿기 어려운 모양인데 우선 그것을 리해하자면 편견과 주관에서 벗어나 현실그대로를 볼수 있는 관점이 필요하오. 그렇게 할수 있겠는가?》

하라는 자기 속심을 낱낱이 꿰뚫어보는것 같은 차광수의 강렬한 시선을 피해 들었던 머리를 또 숙이였다.

《내가 보건대 당신은 아주 바보는 아니기때문에 단 몇분동안이라도 공정한 립장에 설수 있다면 우리의 타산을 쉽사리 리해할수도 있을것 같은데…》

《맹세할수 있습니다. 기자 그자체는 공정합니다. 그렇기때문에 기자를 가리켜 사회여론의 대변자라고 하는줄 압니다.》

《저것 보지, 거짓말을 또 하고있는걸. 그렇다면 한가지 대답해보겠는가? 만주사변을 보도하기 위해 <국제련맹>의 릿든조사단을 취재하러 다닌다는데 만주사변을 일으킨 장본인들을 옆에 두고 어데로 다니는가? 심양복판에서 9. 18사변을 조작한자들은 관동군사령부에 들어박혀있는듯 한데… 안 그런가? 그리고 지금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조선인민을 닥치는대로 살륙하고있다. 바로 며칠전에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일본군 한개 부대가 동원되여 수백명의 우리 인민을 학살하였다. 내가 보건대는 이런 사건이 칼을 들고 담장을 뛰여넘어 돈과 옷가지를 얼마간 앗아갔다는 강도사건보다는 훨씬 큰 사건같은데 당신의 생각에는 어떤가? 그래도 당신네 신문에는 이에 대해 일언반구도 쓸수 없지 않는가. 이래도 <여론의 대변자>요 뭐요 하고 말할수 있는가?》

《…》

《그건 그렇다치고 기왕 말이 난김에 당신이 알고싶어하는걸 말해주지. 우리에겐 아무런 비밀도 없고 특이한 방법이 있는것도 아니니까. 우리가 일제를 타도하고 승리할수 있다는 타산은 어떻게 세워진것인가? 우리의 타산은 매우 단순하고도 철저한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일제는 무장을 든 강도이며 우리는 침해를 당한 주인이다. 우리는 조국과 인민의 생존을 위해서, 우리 민족의 존엄을 위해서 일떠섰다.》

잠간 사이를 두었을 때 하라는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군사적대결은 곧 힘에 의해 결판이 나는것으로 저는 알고있습니다. 인도주의자들은 아프리카에 항상 정의가 있다고 했고 아시아에 대해서도 역시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아프리카대륙은 유럽의 강자들에게 분할되였고 아메리카에서는 인디안이 백인에게 빵을 구워주게 되였습니다. 어쨌든 한쪽에는 많은 사단이 있습니다. 겸해서 이편에는 능력을 헤아리기 곤난할만치 방대한 발동기를 가지고있고 보급능력도 대단합니다. 다른 편은…》

우등불에 비쳐 한껏 붉어진 차광수의 얼굴에 웃음이 깃들었다. 그러자 하라는 당장에 결심을 달리해서 얼마간 당돌해졌다고 볼수 있는 자기를 권총으로 쏴눕힐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하라가 눈이 꼿꼿해있는것을 보고 차광수는 입을 열었다.

《더 계속하오. 어서 말해보우. 그것을 말한다고 해서 우리의 결심이 달라져서 처벌을 받지 않을가 하는 생각은 아예 하지 마오. 우리들한테는 어떤 경우에도 사실을 말하는 그자체가 죄로 되지 않소. 당신은 이렇게 말하려는것이겠지? <당신네 공산주의자들은 사단도 군단도 없다. 통털어 봐야 얼마 되지 않는다. 그것으로 사단과 땅크를 이겨낼만 한가?> 이것이겠지? 물론 그렇소. 그것은 사실이요. 얼핏 보건대 여기에는 대비가 성립되지 않으리만치 엄청난 차이가 있소. 그러나 반대로 우리에게는 침략자들이 가지지 못한 유력한 중포가 있소. 그것은 정신적우월성이란 무기요. 말하자면 침략자들을 때려엎고 자기를 해방하겠다는 수천만의 불타는 심장이 있단 말이요. 알겠는가? 이것은 돈과 거짓으로 긁어모은 침략자들의 무기에 비해 몇배나 더 힘이 있고 량도 무진장한것이요. 발동기에 대해서 말하고있지만 비행기, 땅크, 함선, 그것들은 반드시 침략자들에게만 있어야 한다는 신성불가침의것도 아니요. 우리가 그것을 뺏어냈다고 해서 발동기가 돌아가지 않거나 총이 발사되지 않는다는 법이야 없지 않는가? 그런데 우리의 정신적무기는 그 누구도 앗아내지 못하는거요. 우리는 이와 같이 제국주의자들을 힘으로도 이길것이지만 동시에 리성과 도덕에서도 이길것이요. 이를테면 전폭적인 대결이라고 할수 있지.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공개 못할 아무것도 없고 따라서 론쟁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거요. 이쯤 해두고 한가지 물어볼것이 있소. 대체로 <명치유신>이후로 계산해서 약 반세기이상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일제는 얼마나 되는 공업을 가졌고 그의 생산능력을 얼마쯤으로 볼수 있는가? 한 백만을 무장시켜 낼수 있는가?》

《300만정도는 감당할수 있을것입니다.》

《500만은 어떤가?》

《좀 마력을 내면 가능할수도 있을것입니다. 하긴 300만도 대단한것입니다.》

《1000만은 어떤가?》

《그렇게까지는… 모르긴 하겠습니다만 그런 정도까지는 필요도 없을것입니다.》

《아니요. 꼭 필요할터인데 그러면 넉넉히 1000만으로 쳐두지. 그다음 보급능력이 대단하다는데 그것은 어느 정돈가?》

《에또, 딱히는 알수 없습니다만 대체로 추산해서 일본인구 전체 로동능력의 몇배는 발동기가 수행할수 있을것입니다.》

하라는 공포에 질려 이그러졌던 얼굴에 점차 안도의 빛을 펴가면서 지어는 자랑까지 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대단하지두 않구만.》

차광수는 기대에 어긋났다는듯 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대체로 1000만쯤 무장시킬 작정이요. 여기서 미리 말해둘것은 오늘밤처럼 화승대나 사냥총으로 하지 않겠다는거요. 앞으로 좋은 보급로가 트이는 차제로 훨씬 더 처지가 나아질거요.》

하라는 고개를 기웃거렸다.

《왜, 리해되지 않는가? 일제는 수많은 무기를 날라오고있소. 어서 가져오라고 하라. 부산으로, 청진으로, 흥남으로 실어오라고 하라. 우리는 그것을 다 빼앗을것이니까. 어떤가? 믿어지는가?》

《…》

《우리는 결코 자기 자랑을 하기 즐겨하는 사람이 아니요. 하지만 한마디만 말해둘수 있소.》

이때 그는 사령관동지께서 하신 말씀을 상기하면서 확신에 차서 말하였다.

《다름아닌 바로 당신의 손으로 <조선공산주의자들은 자기 손으로 일제를 타도하고 자기 조국을 해방하였다> 이런 특종기사를 쓰게 해주지. 어떤가? 리해되는가? 아직은 리해되지 않을수도 있소.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굳게 믿고있거던.》

《무엇으로 그것을 담보하십니까?》

《말해주지. 그것은 우리의 사령관동지에 의하여 담보되고있소. 그이께서 약속하셨소.》

《아! 그렇습니까. 그분이 누구십니까?》

《알고싶단 말이지?》

차광수는 돌등에 놓았던 전투가방을 집어메고 무엇인가 잠간 생각하는듯 하더니 정중한 어조로 말하였다.

《여기에 앉아계시던 그분이요. 우리의 사령관 김일성동지이시오.》

《네?!》

《놀랄건 없소.》

《아! 그분께서…》

몇분후에 골짜기에서는 왜놈장교를 처단하는 총소리가 울리였다. 차광수와 하라는 각기 다른 방향으로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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