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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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조반뒤에 집안에서 다시 회의가 계속되였다.

그이께서는 지도를 펼쳐놓고 각 지구별로 유격대를 내오며 해방지구를 설정할 구체적대책들을 말씀하시였다.

마을어구가 환히 내려다보이는 뒤산중턱에서 38식보총을 안은채 바위틈에 앉아 보초를 서고있던 박흥덕은 량미간이 팽팽해져서 아래를 쏘아보았다. 바지저고리를 입고 머리수건을 동인 청년 하나가 마을을 향해 걸어오고있었다. 어깨에는 배낭을 메였고 손에는 지팽이를 짚었다.

박흥덕은 고함을 질러 멈춰세울가 하다가 그냥 두고 보기로 하였다. 청년은 이미 그를 발견한 모양인지 걸음을 멈추고 쳐다보더니 이쪽으로 올라오는것이였다. 그의 얼굴에는 웬일인지 웃음까지 깃들어있는듯 하였다. 하는수없이 박흥덕은 바위틈에서 내려서서 그닥 높지 않은 목소리로 누구냐고 소리를 질렀다.

《네! 저올시다.》

《제가 누구요? 이 마을 사람이요?》

마을사람도 아니고 친척집방문을 오는 손님도 아니라는 대답에 박흥덕은 총을 쑥 내밀면서 그러면 돌아가라고 고함을 쳤다.

《아니올시다. 좀 말씀드릴것이 있어서 그럽니다.》

《돌아서시오. 정 말 안 들으면 총을 쏘겠소.》

《그러지 마시고 제 말을 좀 들으시오. 당신은 유격대지요?》

《뭐? 유격대?》

박흥덕은 놀라는 한편 얼굴에 웃음 확 퍼뜨렸다. 그는 방금전까지 바위틈에 앉아 어떻게 하면 지하공작을 그만두고 유격대에 들어갈수 있을가를 궁리하고있었던것이다. 지하공작을 하기 싫다는것은 아니지만 기왕이면 총을 메고 유격대에서 싸우고싶었다.

그래서 두루 짬을 보아가다가 사령관동지께 직접 청을 드려볼가도 생각하고있던 참이였다.

《그래 내가 유격대로 보인단 말이지?》

《그야 뻔하지요. 내가 저 밑에서 보고도 단번에 알아차렸는걸요.》

《내가 유격대라면 어쩔셈이요?》

《부탁할것이 있어서요.》

이쯤되고보니 밀정인것 같지는 않았다. 수수하게 생긴 농촌청년인데 어디 먼길을 가던것 같다. 서로 말을 주고받는 사이에 청년은 그냥 올라와서 박흥덕앞으로 다가왔다. 그는 바위우에 배낭을 내려놓으면서 한시름 놓았다는듯 한 기쁜 얼굴을 지어보이였다.

《부탁이란 뭐요?》

박흥덕은 그와 마주서서 총부혁을 감아쥐면서 물었다.

《부탁이 다른게 아닙니다. 저는 유격대에 들어가려고 그럽니다. 어데를 찾아가야 유격대에 들어갈수 있는지 알려주십시오.》

《뭐요? 하! 이런 엉터리친구라구야.》

박흥덕은 청년의 어깨를 툭 갈기며 웃었다.

《친군 노죽이 대판이구만, 이런데 찾아와서 유격대에 보내달라는걸 보니. 이것 보우, 실상은 나도 유격대가 아니란 말이요.》

《이러지 마십시오. 내가 그런걸 모를줄 압니까?》

《하! 이것 봐라, 막 걸고든다.》

박흥덕은 하는수없이 그 청년을 바위등에 앉히였다.

《꼼짝말고 여기 좀 앉아있소.》

청년의 어깨를 눌러놓은 박흥덕은 총을 훌쩍 둘러메고 바위등으로 올라갔다. 그는 경각성을 한층 높이며 예정한 초소를 한바퀴 빙 둘러보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박흥덕은 하는수없이 그 청년과 마주앉아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눈이 억실억실하고 관자뼈가 두드러진 스물이 갓 넘었을 그 청년은 순박하고 선량하다는것이 대뜸 알려졌다.

최칠성이라고 한다는 그는 여기서 백리가 넘는 쏙새골이라는 곳에서 떠나 열흘째 유격대를 찾아다니다가 오늘 량강구방향으로 가던 길에 우연히 총을 든 사람을 보고 찾아올라왔다는것이다.

박흥덕은 자기가 유격대원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얼마간 쑥스럽고 게면쩍은데가 있었지만 최칠성이가 끝내 유격대가 틀림없다고 우기는 바람에 어느덧 그러루 처신할 생각이 들었다. 한시름 놓게 된것으로 안 최칠성은 수건을 벗어 이마의 땀을 문지르며 아래우 회색로동복을 입고 지하족을 신은 박흥덕을 부러운듯이 바라보았다. 박흥덕은 그 청년이 별로 의심스러운것은 없지만 때가 때이니만치 흥흥거리고있을수가 없었다.

《친구! 그만 쉬였으면 가던 길이나 빨리 가는것이 좋겠소. 나도 내 볼일을 봐야겠으니까.》

박흥덕은 자리에서 일어나 예리한 시선으로 이쪽저쪽 산밑을 내려다보았다.

《부탁입니다. 내가 얼마나 유격대를 찾았는지 아십니까? 그걸 안다면 날 그냥 돌려보내지 못할겁니다. 난 어떤 일이 있어도 유격대에 들어가고야말겠습니다. 우리 동네에서 나먼저 벌써 세사람이 떠나갔습니다. 난 그것도 모르고 회령쪽에 소금을 사러 갔던겁니다. 에참, 분해서. 내가 집에 있었더면 틀림없이 친구들과 함께 갈수 있었던거지요. 이 배낭을 보시오. 벌써 한달전에 만들어뒀던거랍니다.》

《이보우, 한심한 친구! 유격대에서 그렇게 아무나 막 받아들이는줄 아우?》

박흥덕이 시침을 따고 말하자 최칠성은 대번에 불안한 빛을 띠였다. 능청스러운 박흥덕은 이러루하니 일단 덜미를 눌러놓고 제풀에 꼭지가 물러나게 하자는것이다.

《내가 유격대에서 싸우지 못할것 같아 그럽니까? 이래뵈두 하루에 이틀갈이는 헐헐히 갈아제낍니다.》

최칠성은 북두갈구리같은 손으로 해빛에 그슬린 검고 번들거리는 볼을 슬슬 문지르며 애원하는것인지 들이대는것인지 알수 없이 중얼중얼하였다. 그로서는 이것이 대단한 용단이였다. 그는 나서 이날까지 남의 말을 그대로 믿어야 했고 순종하는데 습관되여있었던것다.

《친구는 유격대가 뭐 밭갈이를 하는덴줄 아오? 유격대는 총을 메고 왜놈들과 싸워서 빼앗긴 우리 조국을 찾자는 무장부대란 말이요. 혁명을 하는 집단이요. 알겠소?》

《저두 혁명을 하자는겁니다.》

《혁명을 하겠다? 하하, 이거 단단히 걸렸는데. 그래 혁명이야 유격대가 아니고도 할수 있지 않소. 공청에서두 할수 있구 반제동맹에서두 하구.》

이때 박흥덕은 얼굴이 확 달아남을 느끼였다. 방금 해버린 그 말은 자기자신이 차광수가 아니면 사령관동지께 직접 입대를 청원하는 때에 이런 물음이 있을수도 있다는것을 제 혼자 짐작했던것이다. 최칠성은 소태라도 씹은것처럼 낯을 잔뜩 찡그리고 배낭끈을 팔목에 감았다풀었다하다가 드디여 용기를 내였다.

《군대어른은 나보다 더 잘 알겠지만 명월구에서 김일성장군님께서 말씀하셨다지 않습니까.》

《무슨 말씀인데?》

《조선청년들은 모두 총을 들고 왜놈들을 치는 싸움에 나서라고 하셨다는것 말입니다.》

《그래서?》

《그러니 나도 조선청년인데 어떻게 가만있을수 있겠나요.》

최칠성은 쏙새골이라는 자기 마을에서 명월구회의소식을 들은지 오래였다. 자세한것은 알수 없었지만 유격대로 청년들을 부른다는것과 일제와의 판가리싸움이 바야흐로 시작된다는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것을 줄줄 내리외워서 상대편을 납득시킬수 없는것이 못내 안타까왔다.

《친구 말이 옳소. 그렇지만 아무나 막 받아준다고 생각해서는 안되오.》

최칠성은 초벌승낙은 받은것으로 보았지만 록록치 않은 상대편이 또 무엇을 걸고들지 몰라 불안하였다.

《그럼 어디 유격대원이 될 준비가 되였는가 봅시다.》

박흥덕은 코를 킁킁 둬번 울리며 잠간 생각하였으나 무엇을 물어야 할지 딱히 떠오르는것이 없었다. 그는 매우 거북하였다. 최칠성이라는 청년이 아니라 자기자신이 차광수와 같은 깐깐한 사람한테 심사를 받고있는것 같았다.

《동무, 공부를 좀 했소?》

《별로 한것이 없습니다.》

《음, 자기를 낮추는군. 그럴 필요는 없소. 동무, <공산당선언>에 대해서 아는껏 말해보시오.》

《네?!》

《왜 놀라우? 그런것쯤은 알고있다 그 말이요? 그렇지만 그걸 그렇게 간단히 생각해서는 안되우.》

최칠성의 얼굴은 순식간에 활짝 달아올랐다. 그것을 본 박흥덕이도 몸이 후끈후끈해왔다. 지난 겨울에 통신원들로부터 한두번 소책자를 빌려 읽어보기는 하였지만 그 내용을 말할수 있을만치 그자신도 익혀두지 못하였던것이다. 그러나 기왕 말을 꺼낸것이니 최칠성을 물리치는데 적절히 써먹어야 할것이였다.

《어서 말해보시오.》

《…》

《하하, 이 친구가, 그런것쯤이야 알아야 혁명을 하겠수다, 또 유격대에 들어가겠수다 하고 말할수 있을거 아니요.》

《까놓고 말하면 전 공부를 못했습니다.》

《공부를 못했다? 야학에도 못 다녔소? 쏙새골 그 어방에두 반제동맹이랑 다 있겠는데.》

《있긴 하지만 가지 못했습니다.》

《어째서?》

《주인령감이 야학에 가면 공산당물이 든다고 야학 앞마당에도 얼씬못하게 했거던요.》

《주인령감이 누구요?》

《제가 머슴살던 집 지주지요.》

《오! 동문 머슴이였소?》

《그렇습니다.》

《나와 동갑신세로구만. 머슴은 농촌의 프로레타리아요. 그러니까 동무는 <공산당선언>을 누구보다도 잘 알아야 한단 말이요. <공산당선언>은 프로레타리아의 앞길을 밝혀주는 홰불과도 같은거요. 그건 그렇다치고 그럼 제국주의에 대해서 아는껏 말해보시오.》

《제국주의요?》

그 말은 최칠성에게 매우 귀에 익은것이였다. 그렇지만 말로 번지자고 하니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저것 다 모른다고 할수도 없었다. 유격대에 들어갈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것이 이 순간에 달려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온몸의 힘을 끌어 입을 떼였다.

《제국주의는 우리 나라에 기여들어온 왜놈이지요.》

《그래서?》

《그래서 우리 로동자, 농민들을 억누르고 매질을 해가며 일을 시킵니다. 그놈들은 강도와 같습니다. 총칼을 휘두르며 우리 나라의 재산을 뺏어갑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놈들이 전쟁도 일으키지요. 우리는 어떻게 하든지 제국주의를 때려엎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도 유격대에 들어가자는것입니다.》

여기까지 겨우 말하고나서 최칠성은 산밑을 흘끔흘끔 내려다보고있는 박흥덕의 표정을 살폈다. 그닥 시원한 눈치가 아니여서 그는 맥이 탁 풀렸다. 한참이나 고개를 숙인채 짚신코숭이로 돌등을 문대고있었다.

박흥덕은 점점 더 딱하게 되였다. 아예 말을 끌지 않았더라면 좋았을것인데 실없이 이것저것 묻다나니 이러지도저러지도 못할 골목에 들어서게 되였다. 그래 우선 대답은 쓸쓸하게 했는데 유격대에 들어가자면 아직 멀고멀었다고 해두었다.

그러나 자기 말에 락심해버린 최칠성을 보니 가슴이 답답해왔다. 그렇다고 해서 무슨 수가 있는것도 아니였다. 차광수에게 데려가 그런 사유를 알릴가도 해보았지만 그것도 좋을것 같지 않았다. 최칠성은 돌등에 놓았던 배낭을 당겨 무릎우에 올려놓고 끈을 풀었다. 배낭속에서는 둘둘 말린 잎담배 한모숨이 나왔다. 불탄 나무등걸같은 손으로 신문지장을 뜯어주며 한대 피우자고 하였다.

박흥덕은 그것을 받아들고 담배를 말았다.

최칠성은 아무 말도 않고 담배를 뻑뻑 빨았다. 넓은 코구멍으로 연기가 굴뚝에서처럼 흘러나온다. 박흥덕은 그를 와락 그러안고 《너와 나와 같이 가자.》하고싶었지만 그럴수도 없었다.

그는 금시 눈물이 글썽해졌다. 그래 머슴들이 일떠설 때가 되였지. 머슴팔자를 털어버릴 때가 되였는걸…

담배를 다 태우고나서 박흥덕은 차광수한테 보고를 하였다.

박흥덕에게서 최칠성에 대하여 전말사연을 다 들은 차광수는 고개를 끄덕이고나서 당장 여기에 둘수는 없으니 작은데기로 가는 통신원에게 껴묻혀서 그곳으로 보내라고 지시를 주었다.

《친구, 됐네, 됐어. 그쯤하면 반승낙은 받은셈이야.》

자기 일처럼 기뻐난 박흥덕은 최칠성의 어깨를 떠밀어내치며 웃음을 지었다. 그때 명월구쪽에서 통신원이 도착하였다.

바야흐로 회의가 결속되여가고있었다.

이미 세워진 방침대로 근거지를 속히 내올데 대한 문제, 부대편성문제, 지구파견원을 보충할 문제 등에 대한 그이의 결론이 끝나고 리혁을 북부지구에 파견한다는것과 박기남을 리광과 함께 보내서 그의 사업을 방조하도록 조치를 취하시고 회의를 끝내시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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