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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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가 급하고 어성이 높은 서국보는 손짓을 해가며 《토벌》당하던 광경을 방불하게 설명하였다. 때로는 울분에 차서 커다란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리기도 하고 때로는 잔디판을 북북 긁으며 왜놈들에 대해 이를 부득부득 갈기도 하였다. 그는 자기도 안해와 아이 둘을 잃었다고 하였다.

《눈물은 내려가고 숟갈은 올라간다는 옛말 옳은줄을 인제야 알았시다. 어이구, 목숨이 모질지요.》

땅을 치는 서국보를 이윽히 바라보시던 김일성동지께서는 천천히 말씀하시였다.

《고정하십시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더 정신을 똑똑히 가지구 살아야 합니다. 제 목숨 아까와서가 아니지요. 산 사람은 죽은 사람들의 원한을 풀기 위하여 살아야 하며 그리고…》

김일성동지께서는 갑자기 말씀을 끊으시고 시선을 강쪽으로 돌리며 누데기를 걸치고 반나마 알몸뚱이를 드러내고 앉아있는 어린것들을 한참 바라보시더니 계속하시였다.

《저 의지가지없이 된 어린것들의 장래를 위하여 어떤 곤난이 있더라도 살아야 하며 싸워야 합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며칠전에 마을로 돌아온 리광도 그렇게 말하더군요. 김일성장군님께서 유격대를 만들었으니 이제 우리의 원쑤를 갚아주실것이라고 했습니다. 동네사람들을 데리구 우선 피해가있으라고 하기에 길을 떠나기는 했습니다만…》

《리광동무가 여기 일행에 같이 있습니까?》

서국보는 그이께서 리광이를 물어보시자 잠시 의아한 빛으로 바라보았다. 옆에서 다소 진정하고 그이를 유심히 살펴보고있던 정옥이가 대답하였다.

《리광동지는 마을사람들을 데리구 마반산줄기를 타고 들어갔습니다. 그리구 국보아버님과 저한테 아이들과 먼길을 갈수 없는 늙은이들을 데리구 가까운 화련땅에 넘어가 조직을 찾아 보호를 받으라고 길을 대주었습니다. 자리를 잡으면 다시 기별을 보내 데려간다고 하였습니다.》

《그래 그 리광동무네 집에서들은 어떻게 되였습니까? 어머니와 어린 동생이 있을텐데…》

김일성동지께서 이렇게 다우쳐 물으셨으나 정옥이도 국보도 대답을 드리지 못하였다. 그이께서는 불길한 예감을 느끼면서 좌우를 둘러보시였다. 어느새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여러명 모여와 둘러앉았다. 아까 언덕밑에 앉아서 어린 딸인듯 한 계집애의 머리를 땋아주고있던 중년사나이도 서국보옆에 와 앉아서 담배만 풀썩풀썩 태우고있었다. 노랑저고리를 입은 외태머리계집애는 머리를 다 땋자 밥알이 묻은 쟁개비를 들고 강가로 내려갔다. 고무총을 만들던 첫째라는 아이가 불쑥 일어서더니 쨍쨍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철남이는 왜놈들이 쏘아죽이구, 철남이 엄마는 불에 태워죽였습니다!》

바지괴춤을 쥔채 웨쳐대는 첫째의 눈에서 눈물방울이 드르르 굴러떨어졌다.

《그게 정말이냐?》

김일성동지께서는 첫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서국보와 정옥이를 바라보시였다. 그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첫째는 주먹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고개를 끄덕이였다.

《정말이지요. 모든것이 사실입니다. 사람의 리성을 가지고는 믿을래야 믿을수 없는 현실이지요.》

불쑥 격한 어성으로 이렇게 끼여든것은 언덕에 앉아서 계집애의 머리를 땋아주던 중년사나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웃옷단추를 터놓으면서 그에게로 시선을 돌리시였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습니까? 백주에 무고한 사람을 닥치는대로 학살했습니다. 동서고금에 이런 이야기는 일찌기 있어본적이 없습니다. 아! 분통이 터집니다. 저는 큰골사람이 아니고 돈화로 가던도중 객주집에 들었던 길손입니다. 저 계집애가 제 딸애입니다. 난 저애를 데리고 객주집에 들어있었습니다. 총소리가 나길래 밖으로 뛰여나갔지요. 순식간에 마을은 피에 물들었습니다. 시체가 길가와 골목에 널리고 불더미에서 아이들이 타죽었습니다. 아! 조선은 아주 이렇게 숨지고마는것인가요? 예?》

그 사람은 부르쥔 두주먹과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 역시 여태 목격한 참상을 누구에게 하소할데가 없어 울분을 눌러오던터이였다. 그는 상대편이 누구이든 관계없었다. 조선사람으로서 응당한 동정을 불러일으킬 그럴 대상이면 며칠을 두고라도 이렇게 통탄하고 울고싶었다.

혼자 참아내기에는 너무나 벅찬 설음이며 분노였다. 그는 저도 놀랄 정도로 크게 흥분된 목소리를 내였다.

《늙은이들, 아낙네들이 불에 타면서 무어라고 웨쳤는지 아십니까? 원쑤를 갚아달라던 그 애절한 웨침소리가 아직도 저의 귀에 쟁쟁히 울립니다. 사람이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잔인할수 있습니까? 설사 그것이 제국주의자들이라고 해도 말입니다. 이것은 인간자체의 수치이며 모독입니다. 그것은 그렇다칩시다. 어찌 우리가 원쑤가 너그럽고 사람답기를 바라겠습니까. 다만 원통한것은 애절하게 부르던 겨레들의 그 마지막웨침소리에 아무런 대답도 줄수 없었던 그것입니다.》

그 사람은 너무 격해서 가슴을 그러잡고 꺽꺽 기침을 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분명히 지식인으로밖에 볼수 없는 한 사나이의 부르짖음에 깊은 관심을 가지시였다. 견해도 그렇고 신념과 의지가 자기나름으로 확고하게 서있는것이 느껴지셨다.

때와 장소가 이렇지 않았던들 그이께서는 이름모를 한 지성인을 위해서 자세히 말씀을 나눌 적당한 시간과 적절한 방법을 생각해내셨을것이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사이가 없었다.

마침 노랑저고리를 입은 열살되나마나한 계집애가 쟁개비와 밥사발을 들고 울분을 터뜨리던 그 사람쪽으로 걸어왔다.

《숙이야, 다 가셨느냐?》

《네!》

계집애는 물방울이 떨어지는 사발을 들어보이더니 보따리에 찔러넣는다.

《아버지, 빨리 가!》

《오냐, 가자.》

그는 또 대통에 담배를 붙여물고 보따리의 멜빵을 손질하면서 해짐작을 해보는것이였다.

강변을 다 돌아보고나신 김일성동지께서는 버들방천으로 나가시였다. 눅눅한 땅에 발이 쑥쑥 빠지였다. 파랗게 물이 오른 버들가지들이 가볍게 발목을 스치였다. 그이께서는 막막하고 침중한 심정에 잠기시였다. 뒤짐을 지신 그이의 손에는 땀이 질척이 내배였다. 생각할수록 가슴이 미여지는것 같았다. 원쑤에게 짓밟혀 피멍이 든 조국의 한 축도가 이 강변에 펼쳐진듯 하였다.

불이 달렸던 팔소매를 흔들며 포동포동한 손으로 내밀던 민들레꽃, 한짝만 신고있던 계집애의 고무신, 불에 그슬린 어린애의 머리, 그 애들은 그래도 방글방글 웃고있었다. 너무나 천진한 그 웃음은 제국주의를 치라는 인류의 피맺힌 부르짖음이 아닌가.

철남이를 안고 불속에 끌려들어갔다는 어머니의 그 부르짖음 역시 이 땅에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제국주의와의 결사전에 떨쳐나설것을 호소하는 피타는 절규가 아닌가. 현대에 와서 제국주의자들에게 강점당한 나라는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도 악착한 원쑤에게 이렇게도 참혹하게 짓밟힌 실례를 다시 찾아보기는 어려울것이다. 일제의 살인만행에 의하여 아버님을 잃으시고 두 삼촌이 원쑤의 철창속에 갇혀있으며 놈들의 야수적인 탄압으로 이루 말할수 없는 시련과 고통을 겪으신 김일성동지이시였다.

그러나 아무리 모진 시련도, 아픈 희생도 꿋꿋이 맞받아 싸워오신 김일성동지이시였다. 하지만 이것은 인민의 고통이였다. 조선의 어린이가 불에 그슬린것이다. 그 그슬린 머리와 총알이 뚫고나간 팔소매를 흔들며 조선의 어린이들이 호소하고있는것이다.

《우리를 살려주어요. 우리는 불쌍한 조선아이들이예요.》

김일성동지께서는 지그시 어금이를 깨물고 천천히 방천가를 걸으시였다. 구원을 부르는 수만어린이들의 애절한 부르짖음이 가슴을 두드리는듯 하시였다. 더는 답답함을 참을수 없어 시선을 드시였다. 저 멀리 비껴간 푸른 하늘끝에 흰구름이 한가롭게 떠가고있었다. 그러나 다음순간 구름은 변모되여 글썽한 눈길로 쳐다보던 녀인의 재티묻은 얼굴로 되여보이는가 하면 어미 잃은 아이를 씻겨주던 사나이의 모양으로도 되여보이고 원쑤를 쏜다고 고무총을 만들던 소년의 모습으로도 되여보이시였다. 그이께서는 구태여 눈길을 피할 생각을 안하시였다. 재난은 도처에 널려있었다. 외면을 한다고 피할수 있는 재난이 아니였다. 외롭게 선 백양나무밑에 동녹이 쓴것 같은 벌거우리한 물웅뎅이가 있었다. 어찌하여 저 물마저 붉게 보이는가. 그이께서는 사위를 둘러보시였다. 한없는 슬픔을 머금고 괴괴한 정적속에 가라앉은 버들방천, 방금전까지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시던 그 강물마저 지금 이 시각에는 동녹쓴 물웅뎅이와 같이 붉게만 보이시였다. 모든것이 선혈에 물든것만 같다. 조국이 통채로 피바다에 잠겨 꿈틀거리고있었다. 하늘을 봐도 땅을 봐도 어디에나 겨레의 원한이 서려있다. 구름도 물웅뎅이도 피빛을 머금고있다.

그것은 원쑤를 치고 조국을 구원해달라는 인민의 애절한 호소이다. 또한 그것은 제국주의를 영영 지구우에서 쓸어버려야 한다는 력사의 준엄한 고발이다.

그이께서는 불덩이를 그러안은것처럼 가슴에 사무치는 시대의 엄숙한 요구를 다시한번 느끼며 그냥 앞으로만 걸어나가시였다.

질퍽히 고인 물우를 마구 밟으며 걸으시였다. 발이 젖어오르는것도 느끼지 못하시였다. 줄곧 앞을 쏘아보시던 그이의 안광은 불을 뿜는듯이 강한 빛을 내였다.

전령병에게서 련락을 받은 전광식이 달려왔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전광식의 손을 잡고 언덕우에 앉으시였다.

《전동무, 우리 인민은 지금 피를 흘리며 신음하고있습니다. 조국은 피바다에 잠겼습니다.》

처절한 감정이 그대로 뿜겨나오는듯 한 그이의 말씀에 가슴이 뭉클해진 전광식은 아무런 대답도 올리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우리 인민은 지금 피흘리며 쓰러지고있습니다. 그러나 두고보시오. 전동무, 이 땅에서 무엇이 일어날것인가? 력사는 무엇을 이제 보게 될것인가? 우리 인민은 일어날것입니다. 제국주의침략자들을 때려엎고 반드시 자유와 해방을 찾을것입니다.》

그이께서는 전광식의 손을 더 힘있게 그러잡으며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우리를 그 누구도 정복해내지 못합니다. 압박받는 인민이 피로 물들인 자기 조국땅을 디디고 일어설 때 그 어떤 침략자들도 배겨내지 못합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맑게 개인 푸른 하늘에 시선을 보내시였다. 흥분된 그이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있던 전광식이도 주먹을 쥐고 창공을 쳐다보았다. 오래전부터 그이를 모셔온 전광식이건만 이때처럼 결연하고도 단호하게 말씀하시는것은 처음 보았다. 잠시후에 그이께서는 전광식이가 보고 들은 몇가지 사실에 대해서 짤막하게 물어보고나서 조용히 말씀을 건네시였다.

《전동무, 소사하에 도착하는것이 며칠 늦어지더라도 우리는 예정을 바꾸어야 될것 같습니다.》

《예.…》

김일성동지께서 무엇을 념두에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 딱히 알수 없었던 전광식은 어정쩡하게 대답하였다.

《저 사람들을 가까운 가재골에 데려다줍시다. 리광동무가 가라고 했다는 거기에 가려면 아직 이틀길을 걸어야 하겠는데 저 아이들이 어떻게 이틀길을 걷겠습니까. 어린것들을 어서 따뜻한 구들에 재우고 옷과 신발을 구해주어야지 이대로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알겠습니다. 사령관동지!》

말씀에는 다 표현하시지 않는 그이의 뜨겁고 절절한 심중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전광식은 대답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몇걸음 성큼성큼 걸어 풀밭에서 놀고있는 어린아이들에게 다가가시였다. 그리고 그중 너덧살되여보이는 어린아이를 뉭큼 안아올리더니 아이들을 향하여 말씀하시였다.

《자 얘들아, 아저씨하구 함께 가자. 가서 밥도 먹고 옷도 갈아입어야지, 응?》

아이들은 좋아라고 그이의 주변을 둘러싸고 따라내려갔다.

전광식은 뜨거워지는 눈굽으로 한참동안 그 정경을 바라보다가 황급히 뒤따라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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