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7 회)

제 4 장

6

 

고인의를 사두(단장)로 하는 발해의 사신단을 태운 배들은 세찬 파도에 부대끼고있었다.

《뭍이다!―》하는 누군가의 기쁨에 찬 목소리에 정신이 펄쩍 든 고인의도 다급히 앞을 바라보았다.

《정말 뭍이로구나!》

보고 또 보아도 수평선 저끝의 희끄무레한 형체는 뭍이라는게 확연했다.

온 갑판이 기쁨으로 설레였다.

관리들과 배군들이 서로서로 손을 부여잡고 울고웃었다.

정녕 바다귀신이 독을 쓰던 와류속에서 빠져나왔단 말인가.

《사두어른, 이젠 됐소이다.》

눈물속에 부르짖는 젊은이에게 고인의는 함뿍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 젊은이가 미친듯이 달려드는 파도속에서 배길을 찾아낸 고재덕이였다.

《자네 덕에 우리가 바다귀신을 이겨낸것 같네.》

그 말에 감격한 고재덕이 고인의의 팔을 부여안았다.

고재덕에게 팔을 맡긴 고인의는 믿음어린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바다일에 밝고 대담무쌍한 이 사람에게 배를 부리는 두령의 직을 맡긴것이 얼마나 잘한 처사인가.

고재덕은 동해에서 병선을 타던 군교였다.

만시름이 봄눈쓸듯 말끔히 가셔진 고인의는 못내 흡족한 눈길로 웃고 떠들어대는 일행을 둘러보았다.

발해가 생겨 처음으로 왜나라를 찾아가는 사신단은 그만하면 큰 일행이라고 할수 있었다.

사신이 24명이라지만 악공, 숙수(료리사), 짐군, 의원, 배군들까지 합치면 백명이 잘되였다.

이 많은 사람들이 배길로 가자니 여러척의 배로 일행을 뭇지 않을수 없었다.

보다싶이 선두배에는 사신들이 탔고 뒤를 따르는 배들에는 악공들과 왜나라에 가서 그곳의 토산물과 교역할 물건들을 가득 실었다.

그것들은 천하가 보배로 일러주는 산삼과 검은돈가죽과 같은 발해의 특산이였다.

고인의의 눈길이 구척장신의 유격장군 덕주의 웃는 얼굴을 더듬었다.

고인의는 같은 위에서 마음을 통해온 그를 사사(부단장)로 천거했던것이다.

이어 고인의의 눈길은 판관(서장관격)인 사항의 얼굴을 더듬었다.

사항은 뛰여난 시재를 지닌 덕으로 판관으로 임명된 재사였다.

사항이 시흥에 겨워 시를 엮어내릴 때면 그것을 보고 듣는 사람들모두가 어찌나도 감동되는지 하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는 정도였다.

사신단의 모두가 한가지이상의 뛰여난 재주가 없는 사람이 없으니 세상을 앞서나가는 발해의 문명으로 왜나라를 크게 흔들어놓을것은 의심할 여지도 없었다.

《사두어른, 뭍이 가까와지고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소이까?》

고재덕의 물음에 일행을 둘러보던 고인의는 서둘러 입을 떼지 않았다.

광란하는 풍랑끝에 맞다든 뭍이건만 그 땅이 어느 나라의것인지 알지 못하고서는 서뿔리 움직일수가 없었던것이다.

고국을 멀리 떠나온만큼 한걸음, 한걸음 깊이 재여가며 내디뎌야 할것이였다.

이윽고 고인의는 고재덕에게 령을 내렸다.

《만약을 위해 이 배만 뭍에 들이대고 다른 배들은 그냥 바다에 남아있도록 하게.》

《알겠소이다.》

고재덕은 즉시 갑판을 뛰여다니며 배군들에게 노를 저으라고 소리쳤다.

고인의는 점점 다가오는 뭍에서 잠시도 눈길을 떼지 않고 눈여겨 살피였다.

이제는 뭍의 모든것이 잘 보이였다. 숲에서는 이름모를 새들이 날아예고 멀리의 산봉우리들은 눈이 쌓이였는지 희게 보이였다.

벌써 겨울인가?…

하긴 늦여름에 배길에 올랐으니 지금은 고국에서도 겨울이 시작되였을것이였다.

눈앞의 이 섬이 왜국의 북쪽에 위치한 에조(혹가이도)인줄 알리 없는 고인의는 좀처럼 인적이 느껴지지 않는 뭍의 전경에 의혹감을 금할수 없었다.

혹시 이게 무인도는 아닌지.…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이라고 해도 왜나라와 이어져있다면 좋겠는데…

고인의에게 다가온 고재덕이 근심조로 말했다.

《우리 배들에 마실 물이 바닥났소이다. 뭍에 샘이 있지 않겠소이까?》

그렇지 않아도 음료수때문에 걱정하던 고인의였지만 물을 길어오라는 분부만은 선뜻 내릴수 없었다.

혹시 저 땅에 사나운 맹수들이 있다면?…

《우선 배를 뭍에 들이대고 보세나.》

개곬의 기슭에 바싹 배를 들이대고 닻을 떨구는 고재덕과 뭍을 번갈아 바라보며 고인의가 망설였다.

뭍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것 같았다.

무인도가 아니라면 밭도 있어야 하고 길을 오가는 사람들이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한참만에 고인의는 자기를 지켜보는 고재덕에게 일렀다.

《아직은 살길이 열렸다고 마음을 놓아서는 안되네. 자네가 직접 배군들과 역어를 데리고가서 여기가 어데인지 알아도 보고 물도 길어오게.》

《알겠소이다.》

벌써 차비를 해두었던 고재덕은 즉시 배군들을 갑판에 집합시켰다.

배군만도 스무나문명이 잘되였다.

빈 물통을 하나씩 든 그들에게 고인의가 일렀다.

《뭍에서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르니 다들 병쟁기를 가지고가게.》

덕주가 활과 화살을 배군들에게 나누어주었다.

허리에 장검을 차고 등에는 활과 화살이 든 동개를 진 고재덕을 보고서야 고인의가 웃음을 지었다.

《자네 명궁이라는데 진작 그렇게 차리고 나섰어야지. 이젠 가보라구.》

배군들은 고재덕을 따라 뭍에 올랐다.

그들이 숲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던 고인의는 뭍을 등지고 돌아섰다.

제발 다른 일이 없어야겠는데… 자꾸만 갈마드는 불길한 생각을 털어버리려고 하늘로 눈길을 드니 나루에까지 나와 바래워주던 반안왕의 모습이 떠올랐다.

《정말 다심하고 인정깊은 어른이야.》

이어 풍랑사나운 바다길을 돌이켜보았다.

반안왕의 바래움속에 만수(두만강)를 벗어난 사신배들은 정리부(로씨야의 연해변강지역에 있었던 발해의 지방)의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며칠을 달리였다.

될수록 북쪽으로 돌아가야 동해를 건느기에 유리하기때문이였다.

정리부의 북단에 있는 나루에 당도하여 며칠을 기다렸더니 하늬바람이 터져나왔다.

그 내리바람을 타고 한동안 기세좋게 달리였는데 순풍에 돛을 단 바다길로 벼락치듯 광풍을 앞세운 집채같은 파도가 달려들었다.

무시무시한 풍랑에 사신배들은 흡사 가랑잎같았다.

그러나 모두가 합심하여 노를 젓고 키를 잡으며 밤낮으로 파도와 싸웠다.

《강대국의 사신이라는 자각이 없었다면 우린 견디여내지 못했을거야.》 하고 고인의가 중얼거리는데 그때 누군가가 《괴물이다!―》 하고 소리치는것이였다.

그 소리에 놀란 고인의가 뭍을 향해 돌아서니 어데서 나타났는지 알수 없는 한무리의 괴물들이 고함을 지르며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있었다.

고인의는 본능적으로 허리에 찬 장검의 자루를 틀어쥐였다.

이건 도대체 무슨 괴물일가.

자세히 보니 사람처럼 두발로 서서 오는데 원숭이같았다.

원숭이도 성이 나면 사납다는데…

고인의는 모두에게 일렀다.

《저것들이 우리에게 달려들수 있으니 다들 병쟁기를 잡으라.》

두눈을 부릅뜬 고인의는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악악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는 무리의 기세가 너무도 험악했기때문이였다. 손에손에 별나게 생긴 쟁기(그것은 물고기를 찔러잡는 작살이였다.)를 들었는데 고함소리에 살기가 어려있었다.

대략 머리수가 백마리를 썩 넘어보였다.

인차 고인의는 그 무리가 원숭이가 아닌 짐승의 털가죽을 쓴 사람들임을 가려보았다.

이 섬이 무인도는 아니였구나. 헌데 저 사람들이 무엇때문에 성이 나서 달려오는것일가. 혹시 우리를 외적으로?!

덕주가 다급히 아뢰였다.

《사두어른, 배를 뒤로 뽑아야겠소이다.》

그 말에 고인의는 무릎을 쳤다.

난 왜 그런 생각을 못했을가? !

닻을 올리라고 분부를 하려던 고인의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게 무슨 망녕인가. 배를 뽑으면 뭍에 오른 사람들을 어찌한단 말인가. 고재덕이 없으면 누가 배길을 열고 역어가 없으면 왜인들과 어떻게 통성할수 있단 말인가. 그들을 내버린다는것은 사신의 직분을 저버리는것으로 된다. 그것도 그것이지만 저만 살겠다고 도망치는것이 어찌 사람이 할짓이란 말인가.

결단을 내린 고인의는 장검을 뽑아들었다.

《모두 내 말을 듣거라. 뭍에 오른 사람들이 돌아올 때까지 배를 지켜내야 한다. 만일 저것들이 배에 기여올라 행패를 부린다면 사정보지 말고 쫓아내라.》

도무지 알아들을수 없는 괴이쩍은 고함을 지르며 달려오는 사람들의 몰골이 똑똑히 드러났다.

뒤로 쑥 제쳐진 낮은 이마며 앞으로 삐여져나온 눈두덩이며 쑥 우무러든 눈확은 확실히 낯설은 몰골이였다.

고인의는 이들이 아이누족이라고 하는 에조의 토인임을 알리 없었다.

숲속에 토굴집을 짓고 수렵으로 살아가는 그들은 낯선 배를 발견하자 그 배가 저희들을 략탈하러 오는 해적선으로 알고 싸우러 달려오는것이였다.

당시 해적질을 일삼는 왜인들은 에조에도 달려들어 사람들을 죽이고 재물을 략탈해가고있었다.

어느새 선두의 토인들이 배에 기여올랐다.

고인의가 그들에게 소리쳤다.

《우린 발해국에서 왜나라를 찾아가는 사신이다. 그러니 흉기를 거두어가지고 물러가라.》

허나 발해의 말을 알수도 없거니와 사신들을 왜인으로만 아는 그들이 물러설리 없었다.

도리여 고인의의 웨침을 저희들을 죽이겠다는 소리로 들었는지 그들이 작살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놈들이 내리치는 작살에 맞은 사신들이 피를 흘리는것을 본 고인의의 두눈에서 시퍼런 불이 일었다.

《이것들을 쳐라!-》

고인의가 비호같이 몸을 날리며 장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얼마되지 않아서 뒤로 밀리웠다. 야수같이 달려드는 토인들을 쳐물리치기에는 사신들의 수가 너무 적거니와 힘도 약했다.

힘꼴이나 쓰는 배군들은 모두 뭍에 오르고 배우에는 사신들뿐인데 그나마 거의가 문인들이였다.

이리떼처럼 달려드는 놈들의 작살질에 사신들이 연방 쓰러졌다.

놈들은 참으로 악착스러웠다. 그놈들은 사신 한사람에게 대여섯씩 달려들어서는 숨이 끊어졌건만 그냥 찌르고 걷어찼다.

놈들의 작살에 맞아 쓰러진 사람이 마지막힘을 모아 소리쳤다.

《사두어른, 피하시오이다. 꼭 살아서 어지를 받들어주소이다.》

어지라는 소리에 고인의는 정신이 펄쩍 들었다.

그렇다. 나에게는 황상의 령을 받들 본분밖에는 없다. 황상의 령을 받들기 전에는 죽어서도 안되는 내다. 지금 당장 살길은 하나 물속에 뛰여드는것이다. 허나 물속에 뛰여든다면 나는 살수 있어도 뭍에 오른 배군들과 역어가 저놈들에게 잘못될수 있다. 그들을 잃는다면 내 무슨 재주로 황상의 령을 받들수 있는가.

《내 설사 죽는다고 해도 그들을 구원해야 한다. 그들만 있으면 앞일이 순조롭게 펴일수 있으니까. 이놈들아, 내 칼 받아라!―》하고 부르짖은 고인의는 쓰러진 사항에게 작살질을 해대는 놈들속으로 뛰여들었다.

죽음을 각오한 그가 휘두르는 장검에 여러놈이 나가너부러졌다.

장검을 휘두를 때마다 《한놈이라도 더!》하고 소리치는 고인의에게 놈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고재덕이네들의 목숨이 제 손에 달려있다는 그 한생각뿐인 고인의는 앞뒤좌우로 충돌하며 연방 놈들을 버이였다.

《사두어른, 조심하소이다.》라고 소리를 치며 쓰러지는 사람은 덕주였다.

홀로 남게 된 고인의는 미칠것만 같았다.

《아, 천금같은 사람들을 잃다니

장검을 휘두르던 고인의는 사방에서 날이드는 작살에 맞아 쓰러졌다.

그때 고재덕이네들이 달려왔다.

고재덕이 두눈에 시퍼렇게 달이 떠서 연방 화살을 날리니 쏘는대로 놈들이 꼬꾸라졌다.

비발치는 화살에 놈들이 무리로 쓰러지자 간신히 살아남은 몇놈만이 홍찌를 갈기며 달아났다.

갑판에 뛰여오른 고재덕은 돛대에 기대앉아 마지막숨을 몰아쉬는 고인의에게로 달려갔다.

피가 질벅한 가슴을 그러안은 고인의앞에 털썩 꿇어엎드린 고재덕이 부르짖었다.

《사두어른, 이 어찌된 일이오이까?》

역어가 인사불성이 된 고재덕에게 귀띔했다.

《두령, 사두님은 운명직전이오이다.》

가쁜숨을 몰아쉬던 고인의가 선창쪽으로 눈짓했다.

그 눈짓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은 역어가 얼른 선창으로 달려가 국서가 들어있는 자개박이함을 들고나왔다.

제앞에 가져다놓은 자개박이함을 굽어보는 고인의의 두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였다.

왜나라를 찾아가는 첫 사신으로서 일을 잘해보자 했는데… 허나 이 사람들이 살아있으니 내 죽음이 결코 헛되지는 않을것이다.

고인의는 말을 하고싶었지만 입이 벌려지지 않았다. 하는수없이 역어를 바라보며 눈짓했다.

고인의의 눈길에 따라 역어가 함을 집어들어 고재덕에게 안겨주었다.

이어 고인의는 자기의 허리춤으로 눈길을 옮기였다.

그 뜻도 알아차린 역어가 고인의의 허리춤에서 가죽주머니를 끌러냈다.

그속에 고인의가 발해사신의 사두임을 증명하는 신표가 들어있었다.

황상이 몸소 내여준 신표였다. 그 신표를 주면서 황상은 무사히 돌아오라고 하였었다.

고인의는 함과 주머니를 받아들고 어쩔바를 몰라하는 고재덕을 미더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이젠 됐어. 내 뜻하지 않은 화를 당해 목숨을 잃지만 그 목숨의 대가로 이 사람들이 살아있으니 죽은들 무슨 한이 있으랴.

고인의는 온몸의 힘을 깡그리 모아 입을 열었다.

《자넬 믿네. 발해사람답게… 당당하게… 끝까지… 중임을… 아, 고국이 그립구나, 나의 고국이…》

이 말이 숨이 지는 마지막순간에 고인의가 남긴 절절한 당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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