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1 회)

제 4 장

1

 

요즘도 집안에만 꾹 박혀있는 리오구는 살맞은 맹수마냥 성이 나서 요동을 치기도 하고 고래고래 소래기를 지르기도 하면서 하인들을 못살게 들볶아대고있었다.

그것은 단지 장문휴 그 한사람때문이였다.

보름전 장문휴의 뒤조사를 하라고 임아가 파한 작자가 다녀간 다음날부터 그를 당장 해치지 못해 앓는 몸살이 더 중해진것이였다.

이제는 한시라도 더 빨리 장문휴를 도독의 자리에서 몰아내고 그 자리에 앉아야겠다는 욕심만이 전신의 피줄로 퍼져 온 몸뚱이가 확확 달아올랐다.

그래서 속절없이 허비되는 순간순간이 몸이 터져나갈듯 한 고통으로 지긋지긋하게 여겨지는 리오구였다.

더는 참을수없이 등이 달아오른 리오구는 장밤 뜬눈으로 새우고도 먼동이 트기 무섭게 하욕중이와 배대식을 불러들이라고 하인들을 내몰았던것이다.

찌쿵- 요란스레 대문이 열리더니 새벽의 고요를 깨뜨리며 두 심복이 헐레벌떡 들어섰다.

잡아먹을 기상으로 그들을 제 방에 꿇어앉힌 리오구는 장문휴가 안원부의 주인노릇을 하고있는것이 심복부하들의 죄인듯 여겨져 형틀에 묶어놓고 한바탕 두들겨패고싶었다.

도무지 가라앉을줄 모르는 분통에 리오구는 방안을 오락가락하며 그들을 쏘아보았다.

《네놈들 제 몸을 그리도 아끼다가 그 좋은 밥줄을 영영 잃지 않나 두고봐라.》

날 죽여주소 하고 머리를 방바닥에 구겨박았던 하욕중이 로골적인 위협에 견딜수 없어 고개를 쳐들었다.

《저이런것도 장문휴를 잡는 계책이 되겠는지 모르겠는데… 소인 생각엔 미인계로 그놈을 낚았으면 하오이다.》

《뭐, 미인계?…》

워낙 녀색이라면 오금을 못쓰는 리오구인지라 그 말에 두귀가 벌쭉해졌다.

어서 이실직고하라고 재촉하는 리오구의 눈길에 낯짝이 환해진 하욕중이 우쭐해서 말했다.

《장문휴 그놈이 외지에 홀로 나와있는지도 이젠 한해나 되였소이다. 아무리 일에 미쳐돌아간다고 해도 한해이면 오죽이나 계집생각이 간절하겠소이까. 지금은 사족이 다 근질거릴것이오이다.

이럴 때 고운 계집을 척 붙여주고 그놈이 방탕하게도 계집질에 푹 빠져 안원부의 정사를 싹 망쳐놓았다고 상소를 한다면 입이 열둘이란들 어찌 변명할수 있겠소이까.

아마 이 수가 역적루명을 씌우는것보다 헐하고 또 일단 이 수에 걸려들면 녹아나지 않고서는 빠져나갈수 없을것이오이다.》

듣고보니 치졸한 수이긴 해도 여기에 다른 루명을 덧씌운다면 승산이 있어보였다.

음, 이놈들이 낮잠을 자지는 않았군. 동네처녀 믿고 장가 못 간다고 임아만 믿다가는 앞일을 망칠수 있다.

임아의 혼자힘만으로는 장문휴를 떼기 힘들어. 조정의 원로인 반안왕이 그놈을 밀어주고있으니 임아가 용을 쓰게 하자면 그런 험턱을 적어도 몇개는 만들어주어야 할것이다.

리오구는 웃는 낯으로 하욕중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그놈을 녹여낼만 한 계집이 어디 있겠는지. 장수랍시고 으시대는 그런 놈을 녹여낸다는게 여간 헐치 않을거란 말이야.》

리오구의 부드러워진 목소리에 기운이 난 배대식이 입을 열었다.

《그런 일에 능할 계집이 있소이다. 성안사람모두가 다 아는 삼대재기라면 제노라하는 장수라 할지라도 녹여낼수 있소이다.》

리오구의 입이 항 벌어졌다.

료동성에는 춤과 노래로 벌어먹는 기생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속에서 천하제일색이라 할만치 인물이 뛰여난 료화라는 기생이 사람들의 인기를 모으고있었다.

료화는 춤과 노래뿐아니라 시도 잘 짓고 칠현금도 잘 타는 이 세가지 재간을 다 갖추고있어 《삼대재기》라 불리웠다.

헌데 이제 와서 그 계집을 장문휴 그놈이 차지하게 해야 한단 말인가.

리오구는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

사실 리오구는 몇해전부터 료화를 제것으로 만들려고 애써왔다.

도독이라는 권세까지 휘둘렀지만 어찌나 도고한지 꺾이지 않았다.

씩씩대던 리오구는 한숨을 내뿜었다.

에라, 할수 없지. 큰것을 위해서라면 료화가 다 뭐냐.

《그런데 그 계집이 우리 말을 듣겠다고 하겠느냐?》

리오구의 질문에 하욕중이 턱을 쳐들었다.

《그건 념려할게 없소이다. 료화 그 계집이 눈이 잔뜩 높아서 사내다운 사내에게만 마음을 주겠다고 했다는데 그런 큰 장수를 마다하겠소이까. 제 수를 써서 그년이 장문휴를 가까이하도록 하겠소이다.》

그 말에 리오구는 심사가 꼴려 부아통이 치밀어올랐다.

그럼 장문휴만 진짜사내이고 이 리오구는 사내가 아니란 말인가?!

허나 지금은 참을수밖에 없었다.

어디 내 세상만 와보라, 그땐 오늘의 이 모욕을 백배로 갚고말테다. …

이런 속심을 깊이 묻어버린 리오구는 억지웃음을 지었다.

《좋아, 그런데 장문휴 그놈이 료화를 받아들이겠는지 걱정이다.》

배대식이 하욕중을 어깨로 떠밀치며 대꾸했다.

《그건 소인이 맡아하겠소이다. 계집을 사내로 둔갑시키지는 못해도 사내가 계집을 품어주게 하지야 못하겠소이까.

료화가 행실바르고 마음도 고운 미인이라 소문을 내면 장문휴도 몰라라 하지 않을것이오이다.》

리오구는 제가 먹지 못한 떡을 장문휴가 먹게 되였다는 생각에 입이 쓰거웠지만 아닌보살하며 허세를 부렸다.

《너희들이 애쓰겠다 하니 내 마음이 기뻐진다. 그건 그렇고… 내 집 하인들이 들은 소리라던데 요즘 장문휴 그놈이 당나라와 내통한다는 말이 나돈다며?》

배대식이 대꾸했다.

《그런 엉터리소문이 나돌고있소이다. 분명 장문휴때문에 밥줄이 떨어진 어느 놈이 꾸며 돌린 말이겠는데 그걸 곧이들을 사람이 어데 있겠소이까.》

얼른 하욕중이 맞장구를 쳤다.

《아무렴 꾸며도 비슷하게 꾸며야지, 바보같은것들.》

사실 그 소문은 당나라간자들이 영왕의 밀령을 받고 내돌린것이였다.

방석우에 주저앉은 리오구가 별안간 방바닥을 내리쳤다.

《무슨 소릴 하는거냐, 엉? 거짓말을 내돌릴바에야 그런 엄청난 거짓말을 해야 효험을 보는게야. 너희들도 그 소문에 합세를 해야겠다. 그런 다음 그 소문을 조정에 아뢰여가지고 루명을 만들어 씌운다면야… 흐흐흐- 전혀 아니한 일도 여러 사람이 모다붙어 했다고 하면 루명을 쓸수밖에 없어. 여기에다 료화년을 장문휴 그놈과 오가게 한 다음 정분이 났든말든 그놈이 계집에 미쳐서 정사를 망치고있다는 소문까지 크게 내면 조정이 믿지 않을수 없게 될게다.》

다시금 악에 받친 리오구는 칼까지 뽑아들고 피대를 돋구었다.

《이번 일까지 랑패하면 너희들도 끝장이다.》

무섬증에 그들은 다급히 머리를 조아리며 부르짖었다.

《랑패가 없도록 하겠소이다.》

한편 군진들을 시찰하고 영으로 돌아온 장문휴를 한통의 글월이 기다리고있었다.

문예의 사건을 가지고 당나라조정을 답새기고 돌아온 사신들이 료동성을 거쳐 동모산으로 가면서 준것이였다.

글월을 보니 반가웁게도 계루왕이 보낸것이였다.

글월에서 계루왕은 한어에도 능하고 날랜 풍걸이를 보내주어 요긴하게 쓰고있는데 문예놈의 목을 따러 그놈이 숨은 안서로 보냈다는것을 알리였다.

그리고 당나라의 영왕이 안동도호로서 평주로 내려간것과 미식가인 그가 발해음식에 능한 젊은 녀인을 바라니 이럴 때 맞춤한 녀인을 그의 집에 간자로 보내면 좋을듯 하다고, 그런 적임자가 있으면 자기에게 보내라는 부탁도 하였다.

글줄을 더듬던 장문휴는 철썩 무릎을 쳤다.

어쩌면 계루왕이 이내 마음을 들여다본듯 그런 부탁을 할가. …

요즘 내내 장문휴는 자신이 상대해야 할 주되는 적수는 영왕으로서 그의 턱밑에 눈과 귀를 묻어두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장문휴는 또 한번 무릎을 쳤다.

영왕의 집에 들여보낼 적당한 녀인을 생각해냈기때문이였다.

하늘이 두번씩이나 나를 돕는구나.

그 적임자로는 막대한 량의 말굽은을 찾아준 산련이보다 나은 사람이 없을것이였다.

당나라에서 태여나 당나라의 말과 풍습에 몸이 젖었고 미녀인데다 알뜰하니 영왕의 눈에 차고도 남을것이였다.

흠이라면 발해의 음식에 환하지 못한것인데 한 반년 두팔걷고 배우게 하면 될것이였다.

마침 료동성에 갖가지 발해음식을 잘하는 음식점이 있었다.

장문휴는 즉시 산련이를 불러들여 그를 찾은 사연을 말해주었다.

묵묵히 듣기만 하던 산련이의 두눈에 눈물이 고여올랐다.

이제는 고국에 안겨 마음편히 사는가 했는데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는 당나라로 다시 가야 한다니 기가 막힐수밖에 없었다.

눈물을 흘리는 산련이를 보느라니 장문휴도 가슴이 아파났다.

나라에 큰 리익을 준 그 하나만으로도 금방석우에 앉혀야 하는데…

《얘야, 너는 누구보다도 나라없는 백성의 상가집 개만도 못한 신세를 뼈저리게 느끼질 않았느냐. 바로 그 나라를 두번다시 잃지 말아야하겠기에 난 네가 그 길에 나서주기를 바라는거다.》

마침내 눈물을 거둔 산련이 머리를 끄덕였다.

《도독어른의 뜻을 따르겠나이다.》

그 말이 너무도 고마와 장문휴도 눈물을 머금었다.

이튿날 산련이를 음식점에 들여보낸 장문휴는 며칠동안 영에 머무르면서 밀린 일감들을 처리하고는 또다시 료동성을 나서려 하였다.

아직은 동모산으로 보낸 말굽은을 병선건조에 쓰도록 윤허한 황상의 어지가 떨어지지 않았지만 우선은 수군사들을 발동시켜 나무부터 베여놓아야 했기때문이였다.

바다가의 수군진으로 내려가는 길에 《안시별인》도 만나리라 생각하며 온태곤이네 호위군사들과 함께 대문을 나서는데 파수군이 웬 사람을 가리키며 아뢰이는것이였다.

《도독어른, 이 사람은 장사군이라는데 도독어른께 꼭 전달할게 있다면서 기다리고있소이다.》

장사군이라는 중년사나이가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입을 열었다.

《도독어른, 소인은 당나라를 드나들며 장사하는 사람이오이다. 이번에도 당나라의 평주를 다녀왔소이다. 안동도호부의 관리가 저를 찾아와 이걸 꼭 도독어른께 전해달라고 했소이다.》

장사군이 소매속에서 꺼내드는것은 흔히 글월을 넣어보내는 가죽주머니였다.

가죽주머니속의 글월을 읽어내려가던 장문휴는 어이가 없어 껄껄 웃었다.

세상에 이런 아닌보살이 어데 있으며 눈가리고 아웅하기로서니 이런 오그랑수가 어데 있단 말인가.

글월은 요즘 장문휴가 이를 갈며 잊지 않던 영왕이 보낸것이였다.

글월에서 영왕은 두 나라가 품들여 마련한 화친을 길이길이 이어가기를 바래서 자기는 안동도호의 권한으로 변방에서 자그마한 충돌도 허용하지 않을것이며 발해와의 교역을 장려하여 서로의 백성살이를 리롭게 할 결심이라는것이였다.

그러면서 안동도호와 안원부도독이 힘을 합쳐 군사를 억제하고 유무상통을 내민다면 어찌 두 나라가 형제처럼 가까와지지 않을수 있겠는가고 횡설수설을 늘어놓았다.

배웅하러 따라나온 왕종군에게 글월을 넘겨준 장문휴는 또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너희가 이따위 수로 우리와 싸우려드는 그 본색을 가리우는 동시에 나를 당나라와 내통하는 역적으로 둔갑시켜놓고 제 새끼 잡아먹은 망둥이처럼 우리 조정으로 하여금 나를 없애치우게 하는 간계를 쓰려 하는데 어리석구나.

그렇지 않아도 장문휴는 자기가 당나라와 내통했다는 소문을 놓고 간계의 능수들을 끌어들였다는 영왕이 세치 혀끝으로 적수의 목을 치는 수를 꾸몄다는것을 어렵지 않게 간파했던것이다.

자객까지 내몰았던 그것들이 쉽사리 물러서자 하겠는가.

코웃음을 치며 장문휴가 왕종군에게 말했다.

《영왕이라는자가 우리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군. 그가 보낸 이 글월을 고이 간수했다가 우리가 그것들을 크게 이긴 그날 당나라것들에게 보내주면 어떻겠소? 자, 그럼 난 가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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