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8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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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군진에서 하루밤을 지내고 나루가를 찾아나선 장문휴는 그중 제일로 큰 나루배를 향해 말을 내몰았다.

장문휴가 여러마리의 말을 실을수 있는 큰 배앞에서 말을 멈춰세우자 배사공이 깜짝 놀라 황급히 꿇어엎드렸다.

붉은 전포를 덧입긴 하였지만 그속의 보라색관복이 배사공을 놀라게 한것이였다.

그런 옷차림은 높은 벼슬아치들에게서나 볼수 있는것이였다.

온태곤이 배사공에게 일렀다.

《도독어른을 이 배에 모셔야겠소.》

《그야 여부가 있겠소이까.》

허리를 구부정하고 일어선 배사공이 얼른 노대를 잡으며 장문휴에게 아뢰였다.

《도독어른, 어서 오르시오이다.》

호력이와 온태곤 그리고 몇명의 군사들이 장문휴를 따라 말을 끌고 그 배에 오르고 나머지 군사들은 다른 배들에 나누어 탔다.

배사공이 노를 젓자 배는 서서히 강으로 미끄러져들어갔다.

배전을 치는 강물에 손을 담그던 호력이 감탄을 터뜨렸다.

《야, 강이 넓기도 하네. 바다같소이다.》

바다는커녕 지금껏 료수와 같은 큰 강을 보지도 못한 호력이로서는 그럴만도 하였다.

장문휴도 미소속에 파도가 굽실대는 강을 둘러보았다.

아직도 배가 강복판에 이르지 못했는데 파도우에서 떠나온 나루가 저멀리에서 아물거렸다.

강의 하구도 아닌데 강폭이 이처럼 넓으니 료수는 과시 큰 강이라 할만 했다.

바다에서 병선까지 타본적 있는 온태곤이 호력이의 어깨를 툭 치며 뻐기였다.

《자네 바다를 영 구경조차 못한가보이. 하여튼 이 강이 우리 나라에서 흑수 다음으로 큰 강이라니 바다를 못 본 자네에게는 바다라고 해도 곧이들릴거네.》

자기를 무시한다는 생각에 쓴입을 다신 호력이 온태곤을 쳐다보며 물었다.

《형님은 이 강을 왜 료수라 부르는지 아오이까?》

온태곤이 눈을 흘기며 핀잔투로 대꾸했다.

《아, 료수니까 료수라 하는거지. … 옛날부터 그렇게 불러왔으니까.》

호력이 화를 내며 대들었다.

《그것도 말이라고 하우? 삼척동자들도 그렇게는 대답할거우다.》

《이, 그럼 넌 안단 말이냐? 그럼 말해보라는데. 어서!》

그들의 말에 장문휴가 웃음을 지었다.

《허- 태곤이가 억지를 부리는군.》

호력이 장문휴를 쳐다보며 말했다.

《도독어른께서 가르쳐주사이다.》

사품치는 강물을 굽어보며 장문휴가 고개를 끄덕였다.

《료수라는 강의 이름에서 〈료〉자는 멀리에 있다는 뜻이네. 그래서 이 강은 먼곳에 있다는 뜻을 가지고있는거네.

선조의 나라 고구려가 처음 졸본에서 일어섰을 때 이 강이 서쪽으로 멀리에 있었으니 그렇게 불리웠을수 있었을거네.

그건 그렇고… 자네들이 료수를 넘나들어야 하는것은 다시는 외적이 우리의 강토를 넘보지 못하도록 해야 하기때문일세.》

이윽고 나루배들은 건너편 나루에 가닿았다.

배사공에게 잘 타고왔다는 인사말을 남기고 말우에 올라앉은 장문휴는 한창 벼이삭을 뽑고있는 논벌이 안겨와 배를 어루만지였다.

먹지 않고서도 배가 불러지는 벼바다를 어찌 무심히 대할수 있단 말인가.

올해는 어데 가나 농사가 잘되였다고 백성들이 좋아하는데 이런 변방에서까지 벼풍작을 거둔다면 그만큼 나라방비가 잘되여가고있다는것을 보여주는것으로 될것이다.

온태곤이 논벌을 끼고있는 마을을 가리켰다.

《도독어른, 저 마을에서 점심을 드시고 쇠달이네 군진을 찾아가는것이 어떻소이까?》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장문휴는 말을 내몰았다.

마을어구에 이른 장문휴는 버드나무가 뜨락에 서있는 초가집에서 주인임직한 두 남녀가 땅을 치며 우는것이 이상하게 생각되였다.

혹시 이 마을 백성살이에 무슨 탈이라도 생긴것은 아닐가. 도독으로서 군진에 대한 시찰길에 백성들이 아파하는것도 바로잡아주는것이 마땅하리라.

장문휴는 호력이에게 버드나무집을 가리키며 일렀다.

《얼른 가서 저들이 우는 사연을 알아오너라.》

장문휴가 마을에서 제일 큰 정자나무아래에 말을 들이대고 섰는데 얼마 안있어 호력이 달려와 아뢰였다.

《사연을 알아보니 억울한 일이였소이다. 저 집은 이 마을 부자네 땅을 부치는 작인이온데 몇해전 그 부자가 한쌍의 망아지를 주며 크게 길러놓으면 수말을 주겠다고 약조를 하였다는것이오이다. 그래서 4년세월 애지중지 키워서 길까지 잘 들여놓았더니 바로 오늘 그 부자가 수말까지 앗아갔는데 말이 여위였기때문에 약조를 지킬수 없다고 그놈이 뇌까렸다하오이다.》

《뭐, 말이 여위였다고?》

성을 내는 장문휴에게 호력이 제 생각을 덧붙여 말했다.

《작인들을 등쳐먹고 사는 부자놈치고 심통이 바른게 어데 있소이까. 보나마나 말들이 탐이 나서 그런 험태기를 뒤집어씌웠을것이 뻔하오이다.》

그 말에 분이 치밀어오른 장문휴는 손탁이 센 온태곤이에게 일렀다.

《내 여기서 기다리겠으니 자넨 호력이와 함께 가서 그 부자놈과 말들을 그리고 촌장을 끌어오게. 버드나무집 량주도 데려오고…》

좀 있어 온태곤과 호력이 여러 사람들을 뒤에 달고 나타났다. 두마리의 말도 끌려오고있었다.

마을사람들은 정자나무앞에 버티고선 장문휴를 보자 황급히 꿇어엎드렸다.

《일어들 나라.》

장문휴의 분부에 얼굴이 별나게 길어 말상이라 불리울만 한 사람이 먼저 일어서며 아뢰였다.

《소인이 이 마을 촌장이오이다.》

촌장이 뒤따라 일어서는 《메주볼》의 뚱보를 가리켰다.

《이 사람이 우리 마을 땅부자이오이다.》

심술궂게 생긴 《메주볼》을 엄한 눈길로 쏘아보던 장문휴는 호력이 고삐를 쥐고있는 두필의 말을 살피였다.

두필이 다 검은색의 가라말이고 몸매도 비슷한걸 보아 쌍둥이가 틀림없었다.

말갈기들에 검은 윤기가 찰찰 돌고 키도 크고 허리도 늘씬한데다 궁둥이에 살도 적당한것이 여간 날래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생긴 말이라야 건강하고 잘 달릴수 있으므로 그 값이 비싼것이다.

그래서 부자놈이 더더욱 욕심을 냈을것이였다.

《메주볼》의 속심을 꿰뚫어본 장문휴는 칼자루에 손을 얹으며 그놈에게 물었다.

《너 몇살이냐?》

제놈의 한짓이 있는지라 겁을 집어먹은 《메주볼》이 기여드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서른다섯살이오이다.》

《군역살이를 했겠지?》

땅에 닿아라 고개를 떨군 《메주볼》은 입만 다실뿐이였다.

촌장이 그를 대신하여 대꾸했다.

《이 사람은 군적에 이름이나 올라있을뿐 번을 들지는 않았소이다.》

물어보나마나 관가에 돈을 찔러주고 군역살이를 면했을것임은 뻔했다.

엉거주춤해 서있는 버드나무집 사내에게 눈길을 옮기며 장문휴가 물었다.

《넌 몇살이냐?》

《서른여섯살이오이다.》

《군역살이를 했겠지?》

《열여섯살부터 4년에 한번씩 한해기한으로 번을 들었소이다.》

《그러니 여섯해나 나라를 지키였군. 그때마다 군마를 타고나갔느냐?》

장문휴의 질문에 입을 열지 못하는 버드나무집의 사내를 촌장이 대신하였다.

《이 사람네는 살림이 구차하다보니 아직 말을 매지 못하고있소이다.》

머리를 한번 끄덕여보인 장문휴는 《메주볼》을 노려보았다.

《너는 약조를 어기고 남이 크게 길러놓은 두필의 말을 다 빼앗아가지였다. 뭐, 말들이 여위였기때문이라고? 이놈아, 네 눈깔은 어떻게 생겨먹었기에 저렇듯 멋스러운 말들이 말랐다고 하는거냐?

말은 자고로 소와 함께 큰 재산이라 일러왔거늘 그 재산을 앗아가진 죄 옥살이를 하든 정배를 가든 벌을 받아야 한다.

그래 벌을 받겠느냐, 이제라도 약조를 지키겠느냐?》

보통벼슬아치도 아닌 안원부의 생사여탈권을 쥐고있는 도독의 호령이라 공포에 질린 《메주볼》은 부들부들 몸을 떨며 여쭈었다.

《제… 제발… 약조를 지키겠소이다.》

더는 지체할수 없다고 생각한 장문휴는 《듣거라.》하고 소리쳤다.

《마을의 땅을 거머쥔 너는 암말을 받아가겠다고 했다니 약조대로 암말만을 가지도록 하라. 너는 그동안 나라를 지키는 일을 한번도 하지 않았다니 그 죄 엄히 다스려야 하겠지만 관대하게 용서를 할터이니 올해부터 여섯해동안 저앞의 변방진에 가서 군졸살이를 해야겠다.

촌장은 나의 령을 오늘중으로 너희 고을 현승에게 전하고 사흘안으로 이 사람을 변방의 진으로 보내도록 하라. 하루라도 드틴다면 촌장이 옥고를 치를줄 알라.》

장문휴의 분부가 떨어지기 무섭게 촌장이 얼른 엎드리며 부르짖었다.

《알겠소이다.》

낯짝이 시꺼멓게 질린 《메주볼》도 땅에 털썩 주저앉으며 대꾸했다.

《여부가 있겠소이까.》

《우에서 지켜보고있다는걸 잊지 말라.》 하고 엄포를 놓은 장문휴는 말우로 뛰여올랐다.

그리고 호력이에게 일렀다.

《너는 다시 료동으로 가야겠다. 부도독더러 부자들이 뢰물을 먹이고 군역에서 빠지는 일이 없도록 공문을 띄우고 그 실행여부를 엄하게 따지라고 일러라.》

호력이를 떠나보내니 무겁던 가슴이 다소나마 가벼워지는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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